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14화 (414/849)

〈 414화 〉 #61. 식사 (7)

* * *

“그래, 오랜만에 보는 건데 정말 잘 지내는 모양이구나.”

“헤헤헤! 선배님이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연락을 주셨는지 모르겠는데, 오늘 제가 소고기 쏘겠습니다! 이번 활동 정산을 받았거든요!”

어쩐 일로 이렇게 들떠 있나 했더니 정신을 꽤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아니, 그 전에 벌써 정산을 받았다는 것에 놀라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물론 나도 정산을 빠르게 받은 편이다.

그런데 그건 허니 엔터가 워낙 특별한 회사이기에 가능했던 거다.

아무리 잘 됐을 경우에도 1~2년 동안은 정산을 받지 못하는 게 대부분.

오래 되면 3~4년차까지도 제대로 된 정산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땐 회사가 나쁜 경우도 있지만 정말 그때까지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해서 그런 경우도 있었다.

그만큼 제대로 된 아이돌을 만드는데 투자해야 하는 금액이 엄청나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아이돌이 데뷔하는 이유는 그렇게 계속 손해를 봐도 앨범 하나가 터지면 순식간에 회수를 넘어 엄청난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벌써 정산을 받았어?”

“이번 활동이 대박났던 건 알았는데 정산을 받을 정도일 줄은 저도 몰랐어요. 진짜 짱이지 않아요? 저는 그렇게 많은 돈은 생전 처음 봤어요. 물론 선배님 앞에서는 반딧불에 불과하겠지만, 저한테는 엄청엄청 큰 돈이거든요.”

“너한테 얻어먹으려고 부른 거 아니야. 오히려 정산 받은 거 축하할 겸 내가 사줄게.”

“진짜 제가 사고 싶어서 사드리는 거에요.”

“후배한테 얻어먹기에는 선배 체면이 있지. 나 밥 사주는 건 다음 정산 때 해줘. 지금은 나 말고 다른 사람들 챙겨주고.”

내가 못 버는 것도 아니고, 통장에 얼마가 쌓이고 있는지 잘 확인 안하게 되는 수준이었다.

재산 재테크는 비앙카와 멜리사가 전담하고 있었기에 돈 걱정을 안 하게 된지 오래였다.

이제 막 돈이 들어와서 주변 사람들과 자신에게 돈을 쓰느라 바쁠 텐데, 나까지 그 목록에 한 자리를 차지해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나저나 벌써 정산을 받으려면 얼마나 뺑이를 돌았다는 거야? 올해 축제는 너희가 다 돌면 가능한가?”

“음,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회사에서 무대를 가릴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제 기억 상으로 새벽에 일어나서 전국 팔도를 돌고 다음날 새벽 2시가 돼서야 겨우 숙소에 도착하고 막 그랬어요.”

“엄청 힘들었겠네.”

중소 기획사에서 거하게 터진 그룹이 나왔으니 뽕을 뽑고도 골수까지 뽑아 먹으려는 생각인 듯 했다.

다행이라면 시애와 그 멤버들이 그런 회사와 뜻이 같다는 거다.

“잠은 거의 이동하는 차 안에서 자면서 겨우겨우 채웠다고 보시면 돼요. 그렇게 생활하니까 칼로리 높은 걸 먹어도 살이 안 찌더라고요.”

“살이 중요한 게 아니라 건강이 문제지. 너무 힘들면 회사에 한 마디 하지 그래? 아직 신인이라서 불안한 거야?”

“아뇨, 저희는 아직 배가 덜 불러서 그런지 이렇게 찾아주는 곳이 많은 게 좋더라고요. 더군다나 아직 저희가 젊잖아요? 이 바닥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인기를 누릴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미리미리 바짝 일해서 돈 벌어두고 싶어요.”

연예인 대부분이 인기가 있을 때 바짝 벌어둔 돈으로 굴리고 굴려서 평생 먹고 살 수 있도록 불려놓을 생각을 한다.

많은 연예인들이 개인 사업을 시작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이 인기가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으니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서라도 미리 준비해두는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돈보단 건강이 우선이야. 건강은 꼭 챙기면서 일해. 나중에 잃고나면 왜 그랬지? 후회한다.”

“워낙 바쁘게 일하다 보니까 건강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어요. 선배님은 바쁘게 스케줄 뛰면서 어떻게 건강을 챙기셨어요? 노하우 좀 알려주세요!”

나는 일부러 대화 내용을 건강 쪽으로 잡았다.

그래야 후유증에 관련 된 얘기를 조금이라도 들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시애는 다행히 이상함을 눈치 채지 못하고 대화에 빠져들었다.

“일단 밥부터 먹으러 갈까? 소고기 먹자고 했지? 가자.”

“앗! 선배님 그건 제가 사드린다고 했을 때 메뉴인데…!”

“가자가자~ 고기 먹으러 가자~ 스타님이 귀한 시간 내주셨는데 그 정도는 사드려야지.”

그리고 건강을 챙기려면 좋은 걸로 배를 채우는 게 좋았다.

나는 다른 메뉴도 좋다고 하는 시애를 데리고 소고기 집으로 이동했다.

???

“건강을 챙기는 건 진짜 중요해. 각종 영양제는 기본으로 갖추고 있어야 하고, 일단 그쪽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을 필요가 있어. 10대, 20대에는 잘 모를 거야. 그런데 30대에 들어선 순간부터는 왜 사람들이 건강건강 말하고 다니는지 알게 되거든. 1년, 1년이 다르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육체 건강도 중요하지만, 정신 건강을 절대 무시할 수 없어.”

내 일장연설을 시애가 생각보다 진지하게 들어주고 있었다.

내 현재 나이가 20대라서 다소 허풍처럼 느껴지겠지만, 사실 나는 이미 30대를 경험해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건강에 관련 된 조언을 좀 더 현실적이게 해줄 수 있었다.

아는 지식이 많아 보이게 조언을 해줘서 일까?

시애가 조금씩 경계심이 풀렸는지 내게 본격적으로 자기 증상을 말하며 궁금했던 것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선배님, 자꾸 멍 때리게 되는 것도 문제가 있는 걸까요?”

“멍 때린다고?”

“네, 멤버들이 절 불러도 못 알아차릴 정도로 정신을 쏙 빼놓고 있어요. 제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거든요.”

시애가 경험하는 증상이 심상치가 않다.

내가 알고 싶어하던 부작용 얘기일 수 있었기에 좀 더 증상에 대해 캐묻기로 했다.

“단순히 멍 때리는 것만 하는 거야? 멍 때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데? 아무 생각도 안 들어?”

“어…좀 황당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는데, 뭔가 기억해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근데 정작 저는 뭘 기억하려고 하는 건지를 모르고요.”

“그 증상이 점점 더 심해지니?”

“아뇨. 시간이 지날수록 잦아들고 있어요. 그래서 크게 문제 되진 않을 거라고 낙관했고요. 그런데 선배님이 조심해야 한다고 하시니까 여쭤본 거에요. 혹시 이게 우울증 초기면 어떡하지?! 막 이런 생각이 들어서요.”

이건 확실히 후유증이 맞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증상이 점점 잦아들고 있다는 점이다.

역시 기억을 삭제하는 것보다 계약을 통해 봉인시키는 게 훨씬 본인에게 부담이 덜한 게 맞았던 거다.

“그 정도는 피곤해서 생긴 스트레스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문제는 그 증상이 점점 심해지면 안 된다는 거야. 평소에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따로 있니?”

“아니요. 딱히 그런 거 없는데….”

“없으면 한 번 마음먹고 만들어보는 게 좋아. 쉬는 날에 주로 뭐하면서 시간을 보내?”

“딱히 쉬는 시간이랄 게 없었어요. 여태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연습으로 보냈거든요.”

시애는 재능이 뛰어나질 않아서 모든 시간을 연습하는데 보냈다고 말해왔다.

그 덕분에 지금의 실력을 갖게 됐지만, 이만큼 실력을 올렸음에도 연습 중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건 분명 문제가 있어 보였다.

“너도 뭔가 해보고 싶다는 게 있었을 텐데, 한 번 기억해봐.”

“솔직히 피곤해서 쉬는 날이 오면 침대에 누워서 꼼짝도 안 하고 싶달까요…. 그렇게 쉬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는 다 풀릴 것 같아요.”

“물론 그렇게 쉬는 것도 스트레스를 푸는데 도움이 되겠지. 그런데 그게 하루 이틀, 그 이상이 되면 지겨워지지 않겠어? 심심할 때마다 침대에 누워서 자기만 할 거야?”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그렇게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바깥으로 나가서 친구를 만나거나 애인과 만나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나는 시애가 단순히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방법들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를 바랐다.

건강한 정신이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이니 말이다.

“그으건 좀 그러려나요?”

“정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야가 없는 거야?”

“으으으음….”

얼마나 연습에 매몰 되어 살았으면 하고 싶은 걸 떠올리는데 이렇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단 말인가?

나는 시애가 생각해낼 때까지 열심히 고기를 구워주며 기다렸다.

시애는 낼름낼름 고기를 받아먹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아! 하고 떠오른 게 있는 티를 냈다.

“생각났어?”

“네! 생각났어요. 몸 움직이는 건 연습할 때로 충분해서 싫고, 도구만 있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취미요. 근데 배우기엔 너무 늦은 것 같고, 재능도 없어서 힘들다고만 생각했어요.”

“뭔데?”

“그림이요!”

“그림?”

“막 엄청 대단한 걸 그리고 싶은 건 아니구, 귀여운 캐릭터나 그런 거라도 그려보고 싶어요. 근데 제 성격상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볼 때까지 빠져들어서 연습할 거거든요. 그럼 본말전도 아닐까요?”

의외의 관심사였으나 계속 망설이기만 하던 시애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됐다.

지금 시애가 일하고 있는 연예계 쪽도 재능이 정말 중요한 곳 아닌가?

그림도 재능이 많이 중요하다고 알고 있다.

다만 시애가 연예계 쪽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어가고 있듯이, 그림 쪽도 노력을 하면 재능을 이겨낼 수 있는 분야였다.

“내가 그림 가르쳐줘?”

“헉! 선배님 그림도 잘 그리세요?!”

당연히 잘 그린다.

만류귀종이라고 올려 둔 능력치가 보완을 해줘서 굳이 배우지 않아도 여러 재주를 보통 이상 할 줄 알았다.

더군다나 내가 그림을 가르친다면 상점에서 그림과 관련 된 이론 도서를 구매하면 됐다.

“나도 막 엄청 전문지식은 모르지만, 네가 원하는 걸 그릴 수 있을 정도는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해주시면 저야 너무너무 감사하죠. 그런데 시간이 되시는 거에요?”

“일주일 중에 하루 거기에 몇 시간 정도 빼는 건데 안 되려고.”

컴백 준비로 바빠지긴 할 테지만, 그 정도로 쉴 틈 없이 연습을 하지는 않는다.

우리도 슬슬 연차가 되다 보니 다들 노하우가 생겨서 연습 시간 때 빡세게 하고 쉴 때는 푹 쉬는 시스템을 갖추게 된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연습시간을 줄인다는 게 무대 수준을 낮춘다는 의미는 아니다.

솔직히 우리가 줄어들었다고 말하는 연습 시간이 다른 사람들 입장에선 빡세게 연습하는 시간수준일 테니 말이다.

우리가 시간을 줄인 이유는 애들 실력이 그만큼 높아졌기에 효율을 따져도 괜찮을 상황이 왔기 때문이다.

‘아이템 빨을 받아서 애들이 전부 괴물이 됐어.’

주변에서 보이는 게 우리 애들 수준이다 보니 이상함을 못 느꼈는데, 다른 아이돌의 무대를 보면서 깨달았다.

우리 그룹이 인기가 많을 만 하다는 것을.

모든 멤버들이 당장 개인 활동을 시작한다 해도 연예계에서 거뜬히 살아남을 있겠다 싶을 정도로 끼와 재주들이 흘러 넘쳤던 것이다.

다른 아이돌과 비교하는 게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너한테 몇 시간 정도도 못 내줄 것 같아?”

“으아아아! 선배님, 제발 그만해주세요.”

“응?”

그런데 갑자기 시애가 자기 머리를 부여잡더니 괴로워하며 몸부림 치기 시작한다.

왜 이러나 싶어 당황하니 시애가 괴로워하는 이유를 알려줬다.

“선배님은 본인의 미모가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 자각하실 필요가 있으세요. 그런 다정한 말을 해버리면 아무리 저라도 설레지 않을 수가 없다구요!”

“뭐야, 나한테 설렜어?”

아깐 자기한테 반하지 말라며 너스레를 떨더니 이제와 설렌다고 하니 황당하다.

“이건 여자라면 어쩔 수 없는 거라고요! 만찢남처럼 말씀하시잖아요! 저 꼬실 생각 아니면 그런 다정한 말, 사심 없이 하지 말아주세요. 당하는 저는 괴로워요! 솔직히 선배님이 진심으로 별 생각 없이 하시는 말이라는 걸 알아서 더 괴로운 것도 있어요.”

시애를 꼬실 거였으면 이런 번잡한 일을 만들지 않았을 거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안 그럴게.”

“으으…!!”

시애가 쿵! 하고 테이블에 자기 이마를 박았다.

“야! 안 그러겠다고 했는데 왜 자학을 해?”

“너무 쿨하게 안 그러겠다고 하셔서 슬퍼져버린 걸 어떡해요.”

“아.”

아무래도 오늘 시애의 배가 든든하다 못해 터질 정도로 고기를 먹여서 보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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