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5화 〉 #62. 하나 얹고 하나 더! (1)
* * *
진해솔이 시애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사이.
정화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나이가 오십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난데없이 벌어진 사건은 그녀를 한없이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에 들린 물건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요 근래 몸이 좀 이상했다.
‘자꾸 잠이 쏟아지고, 몸 상태도 조금씩 변했으니까.’
건강을 되찾은 몸은 한껏 예민하게 이상을 감지해서 본인에게 알렸고, 그녀는 자신의 몸 상태가 과거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아닐 거라고, 그냥 착각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초조한 마음으로 임신 테스트기를 구매했다.
그런데 불길한 직감이 어김없이 들어 맞아버리고 말았다.
임신 테스트기에 그려진 진한 두 개의 선에 정화는 연신 한품만 뱉었다.
“왜 하필 나한테…하아~”
해솔이의 다른 여자가 임신을 했다고 한다면 정말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임신을 하는 건 곤란했다.
일단 주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부터가 고민이 되는 일이었다.
정화는 원망을 담아 자신의 손에 들린 임신 테스트기를 내려다 봤다.
좀 더 확실하게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산부인과를 가야 하는 게 맞지만, 본능적으로 임신이 맞다고 확신하는 중이었다.
‘지울…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정화는 순간 못된 생각을 하게 된 스스로를 질책했다.
이 아이는 자신의 아이이기도 하지만, 해솔이의 아이이기도 하다.
해솔이가 이런 생각을 한 걸 알면 크게 실망할 거다.
그가 아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화는 자신의 임신 소식을 기뻐할 수가 없었다.
일단 이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관계가 매우 복잡해진다.
‘내가 아이를 낳으면 태양이랑은 무슨 사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주아한테는 동생이 될 거고, 태양이한테는 이복 동생이 될 텐데. 아이들이 어릴 땐 그러려니 해도 크게 되면 상황이 달라질 거야.’
태양이에게 이 복잡한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지부터가 막막했다.
딸아이의 남자를 앙큼하게 가로챈 그녀의 행동이 크게 비난 받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많은 걸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적으로 올라가길 바라지 않아 첩을 자처했고, 여자들 관계에서 언제나 한 발 떨어져서 방관자의 자세를 취했다.
그녀가 하는 일은 주아가 고민이 있을 때 돕고 중심을 잡도록 조언을 해주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조심해서 행동하니 다들 그녀의 뜻을 존중해주고 비난이 아닌 예의를 지켜주었다.
그런데 임신이라니!
지금까지 해온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일이었다.
“하아~”
일이 이렇게 된 것에 해솔이의 잘못도 일정 부분 있었다.
‘해솔이가 준 약 성과가 너무 좋았어.’
그녀는 사실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었다.
이미 폐경기가 와서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해솔이가 준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몸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몸이 젊어지기 시작하면서 죽어 있던 그녀의 자궁도 다시 활발하게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젊어진 몸에 기뻤으나 곧 주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하면 절대 안 되니까, 그래서 정말 조심했는데….’
피임약을 먹어도 100% 피임이 되는 게 아닌데, 해솔이는 콘돔을 사용하지 못하는 몸.
거기다가 해솔이는 그녀의 안에 사정하는 걸 좋아했기에 관계가 끝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정액을 빼내는 일이었다.
그렇게 주의를 기울였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임신이 되어 버렸으니….
“이러고 넋 놓고 있을 순 없지. 병원부터 가야겠다.”
임신 테스트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화장실을 나온 그녀는 병원에 갈 준비를 했다.
바라지 않던 일이라고 해서 몸을 함부로 할 순 없었다.
아이에겐 죄가 없지 않은가?
가뜩이나 나이가 많은 자신에게 온 아이이니 자라면서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은 모두 해줘야만 했다.
‘아직 낳을 거라고 결정하지도 않았는데, 주책맞게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앞으로 이 아이를 어떻게 낳고, 키울지도 그와 상의를 해볼 필요가 있었다.
정말 그때까지만 해도 정화는 임신 사실을 알리고 의견을 구하려고 했다.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지 않았다면 말이다.
“쌍둥이네요.”
“…네?”
부랴부랴 찾아 온 산부인과 병원.
그곳 의사가 검사를 하더니 놀라운 말을 꺼냈다.
쌍둥이!
한 명도 아니고 무려 두 명!
부담이 두 개!
임신 자체를 난감해 하고 있는 그녀 입장에서 짐이 하나가 아닌 둘로 늘어난다는 말을 들었으니 마냥 기쁠 수가 없었다.
“흠, 좀 위험할 수도 있겠어요. 아무래도 산모님 나이대가 있으시잖아요?”
그리고 현실도 그녀에게 썩 긍정적이지 못했다.
“아무래도 쌍둥이는 산모한테 부담이 클 수밖에 없어요.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산모님께서 평소 관리를 잘 하셨는지 매우 건강하시다는 거에요.”
“…쌍둥이를 임신 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아이가 괜찮을까요?”
“빠르게 눈치 채시고 오신 게 다행입니다. 지금부터 관리를 받으시면 건강하게 아이 낳으실 수 있을 거에요.”
의사는 난감해 하는 표정의 산부에게 위로를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실례지만, 남편 분은…?”
“아직 얘기를 못 꺼냈어요.”
아무래도 남자가 너무 적은 세계인지라 남자 없이 산부인과에 오는 여자가 많았기에 의사가 이 부분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호자가 없는 경우에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과 연결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보호자가 있다는 듯이 대답을 하자 의사가 안도하며 말했다.
“아! 그러시군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일단 남편 분께 말씀을 드리는 게 먼저일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쌍둥이다 보니 부군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같이 오시면 제가 주의해야 할 점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의사의 친절한 설명은 고마웠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의사의 친절을 들여놓을 만큼 여유가 되질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엔 온통 ‘쌍둥이’라는 사실만이 맴돌고 있었다.
? ? ?
“엄마,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무슨 일 있는 거야?”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 온 주아가 식탁에서 꾸벅꾸벅 조는 걸 보고 깜짝 놀라 정화를 깨웠다.
“으응?! 어머, 내가 여기서 졸았니? 너 기다린다고 앉아 있다가 잠든지도 몰랐네.”
“요새 잠이 걸핏하면 졸더라? 편하게 침대에서 자.”
“응, 그래야지. 너도 씻고 와.”
“태양이는?”
“한참 자고 있지.”
“아휴~ 나는 피곤해서 우리 태양이 얼굴 한 번 보고 자야겠어. 태양력이 부족해~”
이름을 태양이라 지어서 주아는 태양이를 보고 힘을 받는 걸 ‘태양력’이라고 표현했다.
정화는 주아가 잠든 태양이를 구경하고 씻으러 들어간 사이에 침대를 정리했다.
딸이 씻고 나와서 편하게 잠들 수 있도록 이부자리를 챙겨준 것이다.
“엄마!”
벌컥!
“으응?! 깜짝이야. 왜? 무슨 일이야?”
“화장실 쓰레기통에서 이걸 발견했는데, 설마 이거 엄마 꺼야?”
아차!
정화는 자신이 미처 치우지 못했던 임신 테스트기가 주아의 손에 들려 있는 걸 보고 아찔해졌다.
언젠가는 말을 하려고 했으나 그게 지금 당장인 건 아니었다.
이렇게 빨리 들킬 줄 몰랐던 정화는 너무 놀라 그대로 굳어버렸다.
“표정 보니까 정말인 것 같네? 진짜야? 임신했어?”
“미안해, 주아야. 숨기려던 건 아니야. 엄마도 오늘 알았어. 몸이 좀 이상하다 싶어서 혹시나 하고 했더니 그렇게 됐어.”
좀 더 생각을 정리하고 난 후에 알릴 생각이었다.
주아 입장에서 어떤 기분일지 고민하고, 어떤 말로 지금 상황을 납득 시킬 수 있을지 생각도 해봤어야 했다.
그걸 생각하느라 방금도 식탁에 앉아 있었던 거였다.
몸이 따라주질 않아서 금방 꾸벅꾸벅 졸아버렸지만 말이다.
“세상에, 엄마가 임신이라니.”
주아도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재차 임신 테스트기를 확인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듯 했다.
“일단 축하해, 엄마. 머릿속이 복잡하긴 한데, 그래도 축하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고마워, 우리 딸.”
착하디 착해서 자기 속이 편하지 않을 텐데도 축하 인사부터 해주는 주아.
정화는 모성애를 주체하지 못하고 주아를 꼭 끌어안았다.
“나 되게 기분 이상해. 동생이 태어나는 거잖아. 아니, 동생이 맞나?”
“미안해. 엄마가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그녀가 고민했던 부분을 주아도 바로 걱정하고 있다.
면목이 없었던 정화가 고개를 숙이려는데, 주아가 먼저 말했다.
“병원은 가 봤어?”
“…응. 다녀왔어.”
“뭐래?”
“그게….”
“왜? 위험하대? 몸이 안 좋은 거야?”
“아니, 엄마 몸은 건강하대. 해솔이가 잘 챙겨줬잖아.”
몸이 건강해도 너무 건강해진 탓에 애가 쌍둥이로 들어서버렸다.
정화가 조심스럽게 그 사실을 털어놓으니 주아가 놀랐는지 입을 벌린 채 굳어버렸다.
“싸, 쌍둥이라고? 애가 둘?!”
“으응….”
“와~ 엄마 진짜 대단하다. 존경해.”
“얘는! 장난 하지 말어. 엄만 심각해.”
“심각할 이유가 뭐가 있어. 생겼으면 낳고 키우면 되는 거지. 나도 괜히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을래.”
주아는 정화가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말에 오히려 복잡한 생각이 사라진 것 같았다.
“내 동생이면 어떻고, 태양이 동생이면 어때? 건강하게 잘 키우면 되는 거지. 그나저나 해솔이 걔가 진짜 대단하긴 한 것 같아. 엄마 폐경기 왔었는데, 그걸 뚫고 임신을 시키네.”
“…너도 하나 더 낳고 싶지 않아? 태양이도 부쩍 커서 이제 여유가 좀 될 텐데.”
태양이를 물고 빨고 하는 주아이기에 태양이가 적당히 크면 하나 더 낳고 싶어 할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이 쌍둥이를 임신해버렸으니, 계획을 실천하기가 어려워졌을 것이다.
“엄마가 쌍둥이를 낳으면 우리 집에만 애가 세 명인데 여기서 더 낳자구? 어우! 나는 3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걔가 만나는 여자가 한 둘만 있는 것도 아니니 앞으로 애는 더 많이 생길 거잖아. 나는 태양이 하나로 만족했어. 그런데 여기에 두 명이 더해지니까 여한이 없는 거지.”
“진심인 거야? 아님 엄마 때문에 그런 거야?”
“진심이야. 엄마도 나 하나 낳고 잘 키웠잖아. 나는 엄마를 닮고 싶었어.”
정화는 주아의 기특한 말에 감동이 밀려와 잠시 눈을 촉촉하게 적셨다.
“와~ 울 엄마 임신했더니 감정적이 됐네? 이런 거에 울고 말이야. 아무튼 해솔이한테는 말했어?”
“너한테 먼저 말하지도 못했는데 말했을 리가 없잖니. 아직 몰라.”
“어떤 반응일지 기대 되네. 그래도 걔가 임신했을 때 엄청 잘 챙기잖아. 엄마도 임신 했을 때 실컷 부려먹어. 먹고 싶은 거 말하면 걔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구해다줘.”
그렇게 잘 챙겨주니까 여러 여자를 만나고 다녀도 주아가 눈을 감아 줄 수밖에 없는 거다.
요즘 세상에 그렇게 여자한테 잘하는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너무 잘나가서 그런 배려를 해주지 않아도 여자들이 줄을 설 만큼 대단한 남자였다.
“그나저나 쌍둥이면 엄마한테 부담이 많이 되지 않아? 병원에서 뭐라고 했는지 자세히 좀 알려 줘봐. 나 걱정 돼. 아! 그리고 당분간 휴식기 가질게. 내가 옆에서 엄마 케어해줄 거야.”
“네가 왜 그런 일을 해? 그럴 필요 없어. 그리고 병원에서도 엄마 건강하다고 했어. 잘 관리하면 문제없이 낳을 수 있대.”
자신의 임신 때문에 주아를 부려 먹을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었던 정화가 질색을 했다.
하지만 주아는 자신이 배려 받은 만큼 엄마에게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제 나도 슬슬 효도할 때 됐잖아. 엄마는 아~ 딸 잘 키워서 이제야 호강하는구나 하고 받아들여.”
“누가 효도를 그런 식으로 하니?”
“엄마가 임신을 했는데 이런 식으로 해야지, 그럼 어째?”
주아의 말에 반박을 못한 정화가 결국 지고 말았다.
주아는 집안에 다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릴 걸 떠올렸는지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태양이를 키울 때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만큼 좋았던 추억도 많았다.
정화가 낳은 아이가 누구의 동생인지에 대한 복잡한 관계만 떠올리지 않으면 그녀의 임신은 충분히 축하 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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