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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16화 (416/849)

〈 416화 〉 #62. 하나 얹고 하나 더! (2)

* * *

그러고 보면 시애한테는 참 많은 걸 들키고 있는 나였다.

애인이 있다는 사실도 얼떨결에 들켰는데, 이번에는 능력도 우연히 들켜버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내 비밀들을 본의 아니게 자꾸 알게 되는 시애와 내가 무언가 연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하지만 나 스스로가 여자를 더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고, 시애를 여동생처럼 생각하고 있었기에 대충 봉합만 해놓은 것이었다.

은연중에는 시애와의 인연이 이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채였다.

“사장님.”

“네.”

그리고 여기에 내가 가장 비밀을 들켜선 안 되는 여자가 존재한다.

내 여자들 중 나를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단 한 명.

바로 내 카페의 운영을 맡아서 해주고 있는 ‘란나’씨다.

“사장님한테 저는 뭐에요?”

란나는 잡아 놓은 물고기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주의해서 관리를 할 필요가 있는 여자였다.

언제 탈주를 할지 모르는 성향이기도 하고, 그녀를 반드시 임신시켜야 하는 조건이 걸려 있어서 헤어지면 안 되는 중요한 사람이었다.

“네? 뭐냐니요. 당연히 사랑하는 애인이죠.”

그런 란나씨가 대뜸 나한테 저런 질문을 하니, 심장이 철렁 내려 앉는 기분이었다.

“제가 지금 그런 당연한 걸 물어 본 게 아니잖아요.”

“그럼요?”

“좀 더 진지하게 들어주세요. 사장님한테 저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요.”

란나씨가 뜻 모를 질문.

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는 삐용삐용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있는 상태였다.

‘이거 지뢰 밟기 직전인 거 맞지?’

카페 안에서 모처럼 여유를 즐기면서 데이트를 하고 있다가 생긴 날벼락이다.

도대체 뭘까?

내가 뭘 못해준 게 있나?

기념일도 잘 챙겼고, 란나씨의 생일도 아니었다.

‘전혀 모르겠네.’

뭔가 원하는 대답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그걸 힌트도 안 주고 대답하라고 하면 너무하지 않은가?

“무슨 일 있는 거에요?”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우리가 만난지 꽤 오래 된 것 같아서 슬슬 관계를 확실히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요.”

“우리 관계를 확실히 한다라….”

결혼 얘기를 하려는 걸까?

그런 거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결혼을 하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가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우리 결혼해요?”

“…그걸 왜 저한테 물으면 어떡해요.”

“진짜? 진짜 생각 있는 거에요?”

결혼 얘기를 꺼냈을 때, 란나씨가 보여주는 반응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나는 눈을 반짝이며 결혼 얘기를 구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재차 입을 열었다.

“저는 완전 좋아요. 프러포즈 받아들일게요.”

“프러포즈 한 거 아니에요! 누가 이렇게 멋없이 프러포즈를 해요!”

그래도 내가 결혼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란나씨가 얼굴을 붉히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 거 말고요. 좀 진지한 문제에요.”

“진지한 문제…. 그럼 저도 대충 대답하면 안 되겠네요.”

“그래주셨으면 좋겠어요. 가벼운 질문으로 생각하면 서운할 것 같아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알겠다고 대답하고 고민을 시작했다.

“일단 사랑하는 애인이죠. 그리고 카페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유능한 동료이기도 하고요.”

“그게 전부에요?”

“좀 더 깊게 들어가면 평생 내 곁에 두고 가족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는 여자이기도 하죠?”

“…정말 저랑 결혼하고 싶은 거 맞아요?”

“네. 완전 하고 싶은데요? 왜요, 어머님이 재촉하세요? 와~ 어머님한테 감사 인사 드려야겠네요. 덕분에 란나씨한테 프러포즈 받았다고요.”

예전에 란나씨 어머님 집을 방문했을 때, 잘난 남자친구 놓치지 말고 어서 도장부터 찍으라면서 너스레를 떨던 장모님이셨다.

‘그러고 보니 안부 연락드린지 오래 됐네. 연락 좀 드려야겠어.’

란나씨와 내가 만난 시간이 제법 되었으니 슬슬 결혼 얘기를 꺼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래 사귀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기왕이면 안정적으로 가정을 이루는 게 더 안정적이고 좋지 않은가?

딸아이를 결혼시키면 성공적으로 자식을 잘 키웠다고 인정해주는 세상이다.

그러니 남자친구가 있을 때 최대한 빨리 해치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부모 마음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아니에요? 에이, 좋다 말았네.”

“흠흠.”

란나는 연신 헛기침을 하면서 슬그머니 내게 몸을 붙여왔다.

내가 결혼에 매우 긍정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나 실망했으니까 위로해줘요.”

“위로요? 뭘 어떻게…?”

“어떻게는요. 당연히 이거죠.”

그녀의 입술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꽁냥꽁냥해진 분위기에 맞춰 키스를 나누니 금방 몸이 후끈해진다.

사실 그녀와 나누는 키스 자체가 좋기도 했지만, 시간을 벌기 위해서 키스를 해달라고 조른 것도 있었다.

나는 키스에 집중하는 한편, 상점을 켰다.

‘예전에 봐뒀던 아이템이 있었는데….’

[너의 속마음이 읽혀! (300초)]

찾았다.

상점에서 재빠르게 아이템을 구매하고 바로 사용을 했다.

그녀가 내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 건지 확인하기 위해 코인을 쓰기로 한 것이다.

‘내가 찔리는 게 있다 보니까 영 걱정이 된단 말이지.’

그래서 코인을 사용하는 것에 아무런 아까움도 들지 않는다.

안 썼다가 헤어질 위기에 당할 바에야 쓰고 편하게 관계를 지속하는 게 훨씬 낫다.

코인은 다시 벌면 되지만, 란나씨와의 관계는 한 번 틀어지면 되돌리기 어렵지 않은가?

‘신분을 숨긴다는 게 생각보다 빡세.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으니까.’

물론 내 진짜 신분으로 만나면 그녀와 헤어질 확률이 높아져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는 했다.

하지만 신분을 숨겨야 해서 본의 아니게 그녀에게 수많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쌓이고 쌓이다 보니 저절로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아이템을 사용한 보람이 있는지 곧장 그녀의 속마음이 머릿속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나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아우, 저="" 얼굴로="" 그런="" 말을="" 태연하게="" 하면="" 어쩌냐고.="" 심장="" 터질="" 뻔="" 했네.=""/>

<사장님이 이렇게까지="" 나랑="" 결혼하고="" 싶어="" 할="" 줄="" 몰랐는데….=""/>

<여기서 수락해버리면="" 너무="" 티나겠지?="" 그건="" 절대="" 안="" 돼!=""/>

별로 관심 없는 척 하더니, 속으로는 엄청 좋아하고 있었다는 점이 흐뭇하다.

하지만 마냥 흐뭇해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녀가 이러는 이유를 알아봐야 한다.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 건 300초.

5분 안에 그녀가 바라는 게 뭔지 떠올리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키스를 끝내고,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맞잡은 손의 온기에서 신뢰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결혼하자고 한 것도 아니면, 도대체 뭘까요? 새삼 제 사랑 고백을 듣고 싶은 건 아닐 텐데.”

“그냥 말 그대로 사장님이 절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던 거에요.”

“사랑하죠. 신뢰하고, 믿고 있어요. 언젠가 란나씨랑 절 닮은 아이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해요.”

“…그런데 왜 그러는 거에요?”

그리고 드디어 란나씨가 본격적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지인들도="" 소개시켜주고,="" 엄마까지="" 보여줬는데="" 정작="" 나는="" 사장님="" 지인을="" 만난="" 적이="" 없잖아.=""/>

아! 그거였구나!

말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란나씨의 속마음.

실제로 나는 란나씨의 친한 친구들을 소개 받기도 하고, 집에 방문해서 어머님을 뵙기도 했다.

내가 집에 갔을 때 란나씨 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해주셨는지 모른다.

나는 그 과정들이 란나씨에게 ‘이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라는 의미로 다가갈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효과가 있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서 미처 란나씨 입장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도 내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처럼 내 지인들을 소개 받음으로써 관계를 다지고 싶었던 것이다.

‘나쁘지 않은 일이기는 해. 나랑 결혼할 마음이 있으니까 서운한 마음도 드는 거잖아?’

그녀와는 얼마든지 찐하게 얽히고 싶고, 또 그래야만 하는 내 입장에서 좋은 현상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녀에게 소개시켜줄 마땅한 인맥이 내게 없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란나씨를 서운하게 만든 적이 있는 것 같네요. 어떤 부분이 서운했으려나. 제가 표현을 별로 못했나요?”

그녀의 속마음을 알아차렸다고 해도 당장 알고 있는 티를 낼 순 없었다.

“사장님은 전부 다 좋으세요. 요즘 사장님 같은 남자가 어딨어요. 근데 제가 욕심이 좀 나나봐요.”

“우리 관계에 좀 더 욕심이 난다는 뜻인 거죠?”

“네.”

“음~ 알겠다.”

“??”

“란나씨가 뭘 서운해 하는지 알 것 같아요.”

“그걸 알아차렸다고요?”

란나씨가 눈이 동그래져서 깜짝 놀란다.

<에이~ 설마.="" 다른="" 걸로="" 넘겨짚은="" 거겠지.=""/>

란나씨의 속마음을 들으니 내가 헛다리짚은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기에 말했다.

“저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싶다는 뜻이잖아요. 우리가 데이트할 때 대부분 란나씨 집에서 했었죠. 아니면 카페이거나. 일부러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그렇다 보니까 란나씨를 제 집에 초대 한 적이 없던 것 같더라고요.”

이곳에 거처가 있기는 하지만, 그곳에서 생활을 했던 적이 없다.

내 진짜 집이 아니었으니 그녀를 초대해야겠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란나씨가 생활하는 공간이 있었고, 그곳에서 느껴지는 생활감이 더 좋고 정겨웠다.

“제 집에 와본 적 없죠?”

“네. 맞아요. 없어요. 사장님이 어디서 지내는지, 어떤 사람들과 만나는지. 저는 한 번도 소개 받아 본 적이 없잖아요.”

이 부분은 솔직히 좀 억울하다.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지 않은가?

이게 다 만들어진 신분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그리고.

300초가 벌써 지나갔는지 들려오던 란나씨의 생각이 뚝 끊겼다.

이제부터는 내가 알아서 그녀가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을 해야만 했다.

‘빡센데.’

내게 부모가 없다는 건 란나씨도 알고 있다.

그럼 친구를 소개시켜주길 바라는 걸 텐데, 안타깝게도 이 신분에는 친구가 존재하질 않았다.

없는 친구를 갑자기 어떻게 소개 시켜준단 말인가?

‘직장 동료라도 소개시켜 달라고 할 기세인데.’

더군다나 이런 것들이 전부 거짓말이라는 업보를 쌓는 행동이었다.

잠깐 만나다 마는 관계가 아니라 평생 함께 해야 하는 사람인 란나씨였기에 신중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었다.

“저는 친구도 소개시켜줬고, 엄마도 보여줬어요.”

“그렇죠. 란나씨 친구들이랑 같이 술도 먹었죠.”

“그럼 이제 저는요? 저는 언제쯤 사장님 지인들이랑 만나볼 수 있을까요?”

“어…음…그게 말이죠.”

당황스럽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없는 사람을 갑자기 만들 순 없지 않은가?

그런데 내 망설이는 태도가 란나씨에게는 큰 상처였나보다.

“혹시 제가 지인들한테 소개시키기 부끄러우세요?”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럴 리가 없잖아요. 진심으로 그런 생각하는 거면 당장 그만둬요. 나 화낼 거에요.”

“그럼 소개시켜주세요. 저도 당당하게 사장님 애인으로 소개 받고 싶어요. 물론 제가 남들한테 소개시켜 줄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기는 해요. 그래서 열심히 노력했단 말이에요. 부끄럽지 않은 애인이 되려고요.”

건물을 구매해서 카페를 운영할 만큼 여유가 넘치는 자본을 갖고 있는 나.

그런 남자의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여자.

그 부분을 고려해보면 란나씨가 이렇게 위축 되어 있는 이유가 충분히 납득이 된다.

이 세계도 당연히 맞벌이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용돈을 주며 생활하는 게 일반적으로 자리를 잡혀 있는 문화였다.

‘심지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20대 남자는 정부로부터 지원금도 받으니까.’

그런데 란나씨는 애인의 카페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경제적으로 나한테 종속 되어 있다는 뜻이다.

“왜 그렇게 못되게 말해요? 내가 창피해서 말을 못한 건데.”

“제가 창피하다고요?”

“아뇨!! 그게 아니라!! 하아~ 나는 란나씨처럼 친구가 많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나마 있던 친구들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전부 연락이 끊겼어요.”

“아!”

그제야 란나씨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눈치를 챘다.

“맞아요. 눈치 챈 것 같은데, 란나씨를 소개시켜 줄만큼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어요. 그래서 선뜻 알겠다고 말을 못한 거에요. 소개시켜줄 사람이 없으니까. 창피해서 순간 돈 주고 친구를 고용해서 소개시켜줄까 고민 해봤는데, 그건 란나씨를 기만하는 거니까 포기했어요.”

“아…아아…? 사, 사장님이 친구가 없다고요? 말도 안 되는 일인데….”

란나씨는 내가 이런 말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나보다.

나는 좀 더 부연 설명을 해줬다.

“여자들은 뻔한 이유로 접근해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고, 남자들은 스스로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제 얼굴 때문에 저를 썩 좋아하지 않았어요.”

더군다나 현재 내가 쓰고 있는 신분은 서양 느낌이 은근하게 나지만, 결국 베이스는 동양인인 얼굴이다.

갈색 머리카락의 강아지 상은 인기가 없을 수가 없는 얼굴이었지만, 은근하게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말하면 내 말의 신뢰도가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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