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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20화 (420/849)

〈 420화 〉 #62. 하나 얹고 하나 더! (6)

* * *

흔들리는 란나씨를 닦달해서 프러포즈를 해주겠다고 확답을 받아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여자가 프러포즈 하는 게 이곳 문화라지만 여기 문화는 문화인 거고 나는 나이지 않은가?

내가 하고 싶으니까 란나씨한테 따로 프러포즈를 할 생각이었다.

거창하게 이벤트를 준비할 생각은 아니고, 그녀에게 결혼 선물을 줄 거다.

내가 비싸 보이는 걸 주면 부담스러워하겠지만 결혼 같은 특별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하는 선물이라고 하면 그녀도 어쩔 수 없이 받지 않을까 싶다.

더욱이 이제 란나씨가 내 재력 상태를 자세히 알게 됐으니 눈치 볼 이유가 없었다.

‘란나씨한테 주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내 여자들이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아이템들도 란나씨는 제대로 누리질 못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다른 여자들처럼 하나씩 선물이라고 하면서 물건을 줬는데, 란나씨가 계속 이런 걸 받는 게 부담 된다며 정중하게 거절해 더 이상 선물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마도 내가 주는 물건들이 효과가 좋은 것을 보고 비싼 물건이라고 생각해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안 비싸다고 하면 직접 알아 볼 기세여서 그동안 시도도 못해봤다고.’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결혼을 해서 생활공간이 같아진다면 내가 굳이 선물로 주지 않아도 된다.

그냥 집에 가져다 놓으면 되는 거다.

본인이 쓰지 않으면 물건이 방치 당하다가 유통기한이 다 해서 버려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될 테니 어쩔 수 없이 쓸 수밖에 없어질 거다.

‘생각해보면 란나씨가 제일 고집이 센 것 같네.’

내 여자들 모두 자신에게 귀한 코인을 쓰지 말라며 아껴 쓰라고 조언을 하지만, 미용에 관련 된 아이템들은 차마 거절하지 못한다.

그러나 란나씨는 미용 용품조차도 내게서 받지 않으려고 했다.

‘나한테 받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가 나한테 뭔가를 해주는 걸 더 좋아했지.’

내게 받은 게 많다 보니 그녀 쪽에서 뭔가를 해주면 더 뿌듯해 했다.

그래서 그동안은 많이 자제를 했는데, 프러포즈를 핑계로 그동안 해주지 못했던 선물을 정성 담아 준비할 생각이었다.

더불어 앞으로 있을 미래를 준비할 필요도 있다.

아무리 당장 내 여자들에게 소개시켜주지 못한다고 해도, 결국 언젠가는 알게 될 일.

여자와 사귀는 것도 아니고 무려 ‘결혼’을 하는 건데 주아 누나에게 말을 아예 안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매우 진지하게 주아 누나에게 상담을 신청했다.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응.”

“컴백 준비 때문에 바빠질 거라는 건 알고 있어.”

“그것 때문에 바빠지긴 할 거야. 근데 내가 말하려는 건 그거랑 상관없는 일이야. 근데 누나도 나한테 할 말 있다면서?”

“응. 할 말 있지. 네가 먼저 할래, 내가 먼저 할까?”

“음, 누나가 먼저 할래? 나는 좀 진지한 얘기인데.”

“내 얘기도 만만치 않게 진지한 얘기야. 내가 보기엔 네가 먼저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내가 개인적으로 느낀 건데, 여자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주아 누나가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진지한 얘기라고 하니 좀 쫄린다.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것이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아닌가? 지금 말하려는 게 잘못한 건가?’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마음을 다 잡았다.

지금 고백하지 않고 미뤘다간 언제 말을 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결심 했을 때 저지르는 게 미래의 나를 위해서라도 좋다는 걸 안다.

“알았어, 그럼 내가 먼저 하지 뭐.”

“응.”

“너무 놀라지 말고, 또 중간에 화내지 말고 끝까지 들어줘야 돼. 내가 전부 빠짐없이 다 설명할 거니까. 알겠지?”

“도대체 뭔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여? 여자라도 데려오니?”

“…!!”

순간 너무 정곡을 찌르는 말에 입이 꾹 다물어졌다.

내 표정을 본 주아 누나는 귀신같이 상황을 깨닫고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섰다.

“누구야?”

“음,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주절주절.

변명하는 식으로 말 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저절로 무릎을 꿇게 된다.

나는 자세를 바로하고 침을 한 번 크게 삼킨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든 걸 다 얘기해줄 수는 없었기에 몇 가지는 제대로 말을 해주지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아 누나는 대충 내 상황을 이해했는지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차분하게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칠리와 포니라는 특별한 존재를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았으나 그쪽과 내가 거래를 했고, 그 거래 내용이 내 여자들에게 내 능력을 설명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꼭 필요한 일이었어. 누나도 내가 가진 능력을 알고 나서 많이 편해졌잖아. 이걸 얘기하지 않으면 지난 2년 동안 그렇게 자주 만나지 못했을 걸?”

내가 특별한 능력들을 쓸 수 있다고 해도 떠나는 마음을 조정할 수는 없다.

‘아예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여자를 잡아봤자 뭐하겠나.

“그래도 그렇지, 그런 식으로 여자를 만나?”

“그쪽에서 여자를 계속 만나라고 하진 않았어. 거래 조건에 임신만 있었으니까. 근데 나는 끝까지 책임지고 싶어서 계속 만난 거야.”

“그렇게 만나다 보니 이젠 그 여자랑 결혼을 하게 될 것 같다?”

“응.”

“…그게 전부야? 더 숨기는 건 없고?”

“응, 없어.”

포니와 칠리의 존재를 설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녀를 납득시키는 게 가능할까 걱정이 많이 됐는데, 의외로 누나는 크게 반발하지 않고 넘어가줬다.

내가 이쪽 얘기를 구체적으로 묻는 걸 곤란해 한다는 걸 알고 궁금해도 참는 게 분명했다.

‘역시 주아 누나라니까.’

주아 누나가 배려해준 덕분에 어쩌다가 란나씨를 만나야 했는지부터 시작해서 내 진짜 신분을 쓰지 못했던 사정, 그리고 아이를 임신시키고 무책임하게 사라지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는 내 소신까지 전달할 수 있었다.

내 설명을 전부 들은 주아 누나는 잠시 침묵하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녀의 눈치를 보며 사과부터 했다.

“미리 말 못해서 미안해, 누나.”

“아냐. 네가 사정 다 들었는데 내가 어떻게 뭐라고 하겠어.”

“누나랑도 못한 결혼식을 다른 여자랑 먼저 하게 되는 게 마음에 많이 걸리네.”

“…그건 솔직히 나도 기분 좋다고는 못할 것 같아.”

남다른 의미를 가진 결혼식이 아닌가?

그때, 주아 누나가 뭔가 생각났는지 내게 말했다.

“그럼 있잖아.”

“응.”

“다른 사람한테 알리지 않고 작게 결혼식을 올리는 건 어때? 스몰 웨딩 말이야.”

“스몰 웨딩?”

지구에서는 스몰 웨딩을 올리는 부부도 많았지만 이곳에선 남자와 결혼을 한다는 게 인생 최고의 축복이자 자랑이었기에 스몰 웨딩이 발달 되어 있지 않았다.

널리 알려도 부족할 판에 굳이 왜? 자랑거리를 숨기겠나.

하지만 남들에게 알리지 못하는 유명인인 나와 그 외 여자들.

어쩔 수 없이 스몰 웨딩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스몰 웨딩을 할 때 조건도 있다.

란나씨와 내가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식을 올려야 했다.

그래야 의미가 있는 것이니 말이다.

“정말 그걸로 되겠어?”

“제대로 된 결혼식은 나중에 한 번 더 하면 되니까. 난 두 번 할 거야. 거절은 거절이야!”

주아 누나가 최대한 타협해서 제안한 의견이었기에 거절은 선택지에 놓지 않았다.

“난 당연히 좋지. 두 번 아니, 세 번해도 괜찮아!”

“너는 세 번도 하고 네 번도 하겠지! 다른 여자들이랑. 아! 말이 나온 김에 말하는 건데, 다른 애들 차별 할 생각 없어. 이기적이게 나 혼자만 너랑 결혼식 하자는 거 아니야. 애들한테 물어보고 같이 하고 싶다는 사람 있으면 다 데려다가 합동 결혼식으로 진행 할 거야. 다른 애들이 착해서 티를 안내는 거지 질투가 없는 게 아니거든.”

“음….”

그럼 스몰 웨딩이 아니지 않나?

한두 명이 아니라 넷 혹은 다섯 아니면 그보다 더 많은 인원과 한 번에 결혼하게 생겼다.

“스몰 웨딩이긴 한데 스몰 웨딩이 아니겠네.”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고, 좀 늦어도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테니까 전부 다 할 거라고는 생각 안 해. 근데….”

근데?

주아 누나가 말을 잇지 않고 머뭇거린다.

그러고 보니 오늘 누나가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했었지 않나?

누나가 고민하다가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결혼식 올리는 명단에 엄마도 껴줬으면 좋겠어.”

“정화씨? 당연히 정화씨가 원한다면 그래야지. 근데 그걸 왜 이렇게 비장하게 말해?”

누가 보면 안 되는 걸 해달라고 말하는 줄 알겠다.

“내가 오늘 중요하게 할 말이 있다고 했잖아. 기억해?”

“응.”

“내가 엄마랑 결혼식을 올려줬으면 한 이유가 그것 때문이야.”

“정화씨한테 무슨 일 있어?”

“응. 있어.”

있다고?

정신이 번쩍 든다.

정말 큰일이 아니고서야 주아 누나가 저렇게 말을 할 리 없지 않은가?

“뭔데?”

“…놀라지 말고 들어. 엄마가 임신을 했어.”

“어? 뭐라고?”

임신???

임시이인?!

뜬금없이 듣게 된 폭탄 발언.

놀랍긴 하지만, 기뻐해야 할 일이었기에 나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뭐야, 언제 알았어? 그런 줄 알았으면 정화씨도 불렀을 텐데! 축하 파티 하자.”

“야. 넌 그냥 좋기만 해?”

“어? 그럼 싫어해야 하는 거야?”

아이가 생기는 걸 싫어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정화씨가 임신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 아이를 가졌다는 게 왜 슬퍼하거나 싫어해야 한단 말인가?

“애가 태어나면 우리 관계가 복잡해지잖아!”

“복잡할 게 뭐가 있어? 다 가족인 거지.”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끝내겠다고?”

“그럼 왜 복잡해야 하는데? 누나, 우린 그냥 가족인 거야. 그 외에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게 살면 되는 거지.”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거야?”

“남의 시선 같은 거 신경 안 쓰여. 우리들만 서로 문제없다고 생각하면 돼. 누나는 정화씨가 아이를 낳으면 관계가 복잡하다고 싫어 할 거야?”

“내가 그럴 리 없잖아!”

“거봐. 그럴 거면서 왜 쓸데없는 걱정을 해. 누나가 낳은 아이도 내 자식이고, 정화씨가 낳은 아이도 내 자식인 거야.”

정화씨가 아이를 낳으면 주아 누나가 현오와 지현이를 대하는 것보다 그 아이를 더 좋아할 거라 확신한다.

누나 말대로 관계가 좀 복잡해지긴 하지만,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을 건데 무슨 상관이겠나.

…사실 그렇게 여겨야 하기에 본능적으로 한 말이었다.

‘후, 연기력을 올려둬서 진짜 다행이다. 이렇게 도움을 받는구나.’

이 문제는 심각해지면 안 되는 문제다.

최대한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넘겨야 한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힘이 쭉 빠져. 나는 엄청 심각했단 말이야.”

나는 주아 누나의 어깨를 잡아 당겨서 품에 안았다.

“가족이 한 명 더 늘어나는 일이야. 축하하고 기뻐해야 하는 일이잖아. 누나가 그렇게 마음이 안 좋으면 지현이랑 현오랑 같은 거라고 생각해. 태양이도 새로운 동생이 생긴 거니까 좋아 해줄 걸?”

“호칭부터 골치 아파. 태양이가 엄마를 할머니라고 부르는데, 엄마가 아이를 낳으면 그 애는 뭐라고 해야 되냐고.”

“동생이니까 이름 부르면 되지.”

“나중에 애들이 커서 호칭이 왜 이러냐고 하면?”

“뭐가 이상해.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고 할머니를 할머니라고 부른 건데.”

“하아~ 난 모르겠다. 애들이 혼란스러워하면 네가 설득해. 그럼 나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게.”

주아 누나의 말에 냅다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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