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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23화 (423/849)

〈 423화 〉 #62. 하나 얹고 하나 더! (9)

* * *

주아 누나와 한껏 불타오르는 한 때를 보내고 난 후.

나는 잠든 누나를 두고, 정화씨가 있을 집으로 향했다.

아이들이 자주 내 집에 와서 잠도 자고, 놀기도 하다 보니 어디가 누구의 집이라고 표현을 할 필요가 없는 수준에 이르렀는데, 그렇다고 해서 아예 지내던 집을 없앤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주아 누나는 여배우다 보니 주변의 시선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정화씨는 오늘 본가 그러니까 내 집에 오지 않고 본인의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 듯했다.

생각보다 일찍 주아 누나와 불이 붙어서 거사를 치른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거하게 한 바탕 한 이후라서 나라고 쉬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나 임신을, 그것도 쌍둥이를 임신했다지 않은가?

주아 누나에겐 별 거 아니라면서 가볍게 넘어가긴 했지만 당사자인 정화씨의 속은 그렇지가 않을 것이다.

‘지금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뻔해.’

아무리 내 여자들이 착하다고 해도 저마다 욕심을 조금씩 갖고 있다.

그런데 정화씨는 항상 그런 욕망에서 한 발작 뒤로 물러나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는 이유를 굳이 찾을 필요도 없다.

딸아이의 남자를 탐했다는 생각 때문인 거다.

누구도 그녀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데, 굳이 본인이 나서서 첩을 자처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정화씨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리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렇게 조심하던 사람이 갑자기 임신을 하게 됐으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미 내 자식들이 3명이나 있다는 점이다.

굳이 현관문을 통하지 않고 집 안으로 이동한 나는 적막한 어둠이 내려 앉은 집안을 쭉 훑어보았다.

‘태양이는 잠들었나보네.’

이제 막 잠을 잘 시간이기는 했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조용한 집을 걸어가 정화씨의 방에 도착했다.

닫혀 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색색 숨소리가 들린다.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는 정화씨의 얼굴에는 근심 걱정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예쁘게 자고 있구나.’

잠귀가 밝은 그녀가 아직까지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자고 있다는 게 놀랍다.

더군다나 지금 시간이 늦긴 했어도 태양이가 잠을 자고 있을 시간이지, 정화씨가 잘 시간대는 아니었다.

임신을 했을 때 졸음이 많아지는 현상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

몸은 그보다 더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쌍둥이라고 했지? 이 작은 배에 두 명이나 자라는 게 가능한가.’

아직 자리를 잡은 티도 안 나는 잘록한 배.

이곳에 두 명의 아이가 자라날 예정이라고 하니 믿기지가 않는다.

몸에 무리가 가는 건 당연한 것이고, 한 아이를 키울 때보다 두 아이를 키우는 게 배는 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우리는 사정이 좋아서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안전하고 유능한 유모인 칸나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녀는 지현이와 현오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두 엄마들이 모두 일로 바빠서 칸나가 아이를 하루 종일 보살피고 있는 상황 아닌가?

거기에 두 명의 신생아가 더해지는 건 칸나에게 너무 고된 일이었다.

물론 정화씨도 가만히 있지 않고 돌볼 테지만….

‘분명 힘들 텐데.’

어디서 유능한 유모 한 명 뚝 떨어지지는 않으려나.

“우웅…주아니~?”

그때, 내가 기척을 냈던 게 정화씨를 깨웠는지 부스럭거리며 잠투정을 부리던 그녀가 기어코 깨어났다.

“더 주무세요.”

“해솔이야아?”

정화씨가 깜짝 놀라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따끈따끈한 체온을 내뿜는 정화씨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네, 저에요.”

“어쩐 일로 왔어. 주아는?”

“누나는 제 집에서 자고 있어요.”

“피곤했을 텐데 자질 않고….”

“그런 얘길 들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축하한다고 전해주고 싶었어요.”

“…얘기 들었구나?”

정화씨의 표정이 복잡해보인다.

내가 따로 불을 켜지 않아 어두워서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나는 그녀의 볼을 손등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축하해요, 정화씨. 그리고 고마워요.”

“…미안해. 피임을 꼼꼼하게 했어야 했는데.”

“왜 그런 말을 해요? 임신한 게 싫은 거에요?”

몸에 부담이 될 것 같아서 임신을 한 게 싫은 건 아닐 것이다.

“그럴 리 없겠니? 나한테는 정말 큰 축복이고 행복한 기적이야.”

“그럼 주아 누나랑 관계 때문에 그런 거에요?”

나는 자세를 바꿔 정화씨와 정면으로 마주 앉은 채로 두 손을 하나씩 꼭 잡았다.

그녀는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순순히 잡힌 후 복잡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말했다.

“…응. 주아한테도 들었겠지만, 내가 아이를 낳으면 관계가 복잡해지잖니. 이런 일이 있을까봐 평소에 주의를 했는데 내가 실수를 했나봐. 초반에는 꼼꼼하게 관리했는데 좀 귀찮을 땐 늦게 씻기도 하고 그러긴 했거든.”

“그게 왜 정화씨 잘못이에요? 제 정자가 피임약을 뚫고 임신시킨 건데. 한 명도 아니고 무려 두 명이라면서요? 몸은 좀 어때요? 힘들진 않아요?”

“아직 별 다른 느낌은 없어. 그리고 네가 준 약들 덕분에 젊었을 때처럼 몸이 건강해.”

“다행이네요.”

몸이 괜찮다는 걸 확인했으니 본격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로 했다.

“이 아이를 낳은 이후가 걱정이야. 태양이를 돌보다 보면 하루가 전부 가버리는데, 이 아이들까지 태어나면 어떻게 키울지 모르겠어. 하아~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임신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쓰읍! 그만.”

정화씨가 아이들에게 미안해질 말을 하기 전에 막았다.

“아직 눈코입도 다 안 만들어진 아기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듣겠어요. 그리고 아이들 키우는 문제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누구인지 잊었어요?”

코인으로 못 구하는 게 없는데 유모라고 못 구할까!

“그런 사소한 부분은 정화씨가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리고 태양이도 그 정도면 다 큰 거에요.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유치원 보내면 되죠. 정화씨는 태양이 걱정 때문에 자기 아이들 걱정은 안 하는 거에요?”

“미안, 아직 실감이 안 나나봐.”

평생 주아 누나만 온 힘을 다해 키웠던 정화씨.

그래서 그런지 다른 자식들이 생긴다는 게 영 실감이 나지 않는단다.

“주아를 키웠을 때만큼 사랑을 줄 수 있을지도 걱정이 돼.”

“평생 누나를 키우는데 힘을 다 썼으니 그럴 수 있어요. 아이들한테 정을 주는 건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라고 생각해요. 열 달을 내 몸 안에서 키웠는데 정이 안 붙을 리가 있겠어요?”

내가 아는 정화씨라면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가장 예뻐하고 사랑을 줄 사람은 정화씨일 거다.

다른 여자들에게서 태어난 현오나 지현이도 태양이처럼 예뻐해줬던 사람이 정화씨였다.

정화씨가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데 그런 걱정을 하는 건지….

“주아는 뭐라고 하니? 혹시 내가 임신하는 거 싫어하진 않아?”

“온통 정화씨 걱정 뿐이었어요. 정화씨가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래요.”

“나 그렇게 안 힘들어. 오히려 주아가 임신 소식을 듣고 고민이 많을 거야.”

“제가 보기엔 주아 누나는 정화씨 걱정을 하고, 정화씨는 주아 누나가 걱정 돼서 힘들어 보여요. 두 사람 사이좋은 모녀 사이인 거 잘 알고 있으니까 각자 그만 걱정해요. 그리고 관계가 복잡해질 게 마음 쓰인다고 했죠? 제가 확실하게 정리할게요. 정화씨가 제 아이를 낳으면 태양이한테는 동생인 게 맞아요.”

“지금은 그렇게 가르쳐주면 그러려니 해도 나이가 들어서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태양이한테 제가 잘 가르칠게요. 말 안 들으면 엉덩이 좀 때리죠, 뭐.”

자기 똥오줌 갈아준 사람한테 사춘기가 와서 되도 않은 이유를 들어 반항을 하면 정신을 차릴 수 있게 가르치면 되는 거다.

“태양이 교육은 저한테 맡기고, 정화씨는 쌍둥이 키울 걱정이나 해요.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을 키워야 하는 거잖아요. 앞으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재깍재깍 생각나는데로 저한테 말해주세요. 필요한 게 생기면 그것도 알려주시고요. 괜히 저 귀찮게 안 하고 싶다면서 아무것도 말 안 하면 삐질 겁니다.”

주아 누나가 임신했을 때, 누나가 먹고 싶다는 것들을 사다주면 정화씨는 자기가 먹는 것 마냥 흐뭇한 미소를 보여주곤 했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가 된 정화씨는 내가 먼저 이렇게 말해두지 않으면 절대 그런 걸 요구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애도 아니고…. 그 정도는 알아서 챙겨 먹을 수 있어. 임신도 처음이 아닌 걸?”

“제가 아빠잖아요. 아빠가 아이한테 해줄 수 있는 일을 빼앗지 말아주세요.”

아니나 다를까, 정화씨는 역시 그런 일을 시킬 생각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 거 안 해도 충분히 아빠 노릇 할 거 많아. 나는 집에서 놀고먹는데 일하는 사람한테 그걸 왜 시키니?”

“정화씨가 왜 놀고 먹어요? 태양이 키우랴 쌍둥이 키우랴 허리가 휘게 생겼는데. 쌍둥이들! 너희 엄마 너무 괴롭히면 안 된다.”

나는 그녀의 배에 손을 얹고 아직 들리지도 않을 쌍둥이에게 말했다.

“푸훗!”

정화씨는 내 능청스러운 연기에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 처음보는 정화씨의 순수한 미소였다.

“그렇게 웃으니까 좋네요. 아, 그리고 주아 누나랑 상의하다가 나온 말인데 우리 파티해요.”

“파티? 무슨 파티?”

“당연히 정화씨 임신 축하 파티죠!”

“말도 안 돼! 애들한테 알리는 것도 조심스러워 죽겠는데, 파티라니??”

“다들 축하해줄 거에요. 하하, 그리고 더 깜짝 놀랄 일도 있어요.”

오늘 주아 누나랑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떠올리며 정화씨가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하나 더 전해줬다.

“뭐어?!! 그걸 내가 왜 해!! 어머, 얘네들 좀 봐!”

스몰 웨딩.

그 말이 나오자마자 정화씨가 이렇게 펄쩍 뛴 것이다.

“지금까지 정화씨가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줬을 때, 뜻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가만히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잖아요.”

“달라질 게 뭐가 있어? 그냥 임신만 했을 뿐이야. 달라지는 거 없어.”

그건 정화씨의 바램일 뿐.

쌍둥이를 임신한 이상 모든 게 달라질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정말요? 쌍둥이가 태어나서도요?”

“…….”

남자들이 여러 여자를 거느리다 보니 정실과 첩의 갈등이 사회 문제가 된 세상이다.

이젠 아이들조차도 정실이 낳은 아이인지 첩이 낳은 아이인지를 두고 차별을 한다고 한다.

그 뉴스를 봤을 때,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애초에 정실 자식인지 첩 자식인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더불어 내 자식이 그런 문제로 누군가로부터 왕따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직은 그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도 아이들이 태어나면 달라질 거에요.”

정화씨가 주아 누나를 키운 걸 보면 안다.

주아 누나는 딱 봐도 가정교육 잘 받아서 곱게 자란 사람 티가 났다.

없는 놈 시선에서는 그런 게 더 잘 보인다.

‘그렇게 주아 누나를 잘 키운 사람이 쌍둥이를 키울 때 그런 치명적인 결함을 내버려둔다고?’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정실 자리를 취할 수 있는데도?

남녀 역전 세계라 해도 모성애와 부성애는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정화씨는 쌍둥이를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어질 것이고, 자연스럽게 내 정실 자리가 아쉬워지게 될 거다.

나는 그녀가 여태까지 보인 수동적인 태도도 주아 누나를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에 보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모성애에 휩싸인 정화씨가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그리고 그건 주아 누나를 대상으로도 여전히 먹히는 일이었다.

“주아 누나가 꼭 같이 올렸으면 하더라고요.”

“주아가?”

질색을 하던 정화씨의 태도가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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