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6화 〉 #63. 축하 파티 (3)
* * *
포니가 호언장담을 하고 돌아가고 일주일 후.
의뢰를 올렸고, 꽤 많은 곳에서 접수를 해왔다며 내게 서류를 가져다 줬다.
“야, 너는…하아~.”
[왜! 내가 얼마나 열심히 가져온 건데!]
“이걸 가져만 오면 끝인 거냐?”
서류를 잠깐 확인했는데도 아무런 검수도 걸치지 않은 서류라는 게 보였다.
[가져만 오다니! 내가 엄선해서 인재만 골라 온 거라고!]
“이게 네 딴에 고른 거라고? 그게 더 심각한데. 여기 사진 봐봐. 이 사람인지 외계인인지 모를 사람이 여기 와서 일을 해도 괜찮을 것 같냐?”
[…!!]
그걸 깜빡 했다는 게 방금 생각난 눈치다.
얘는 지난번에 뭘 들은 거람?
내가 분명 이 부분에 대해 말했던 적이 있다.
“내가 저번에 말했잖아. 외형이 같은 사람들로만 고용할 거라고. 그럼 너도 작업을 할 때 그 부분을 고려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대충만 추슬러도 여기서 외형이 우리랑 똑같은 사람만 빼도 서류의 반이 사라지잖아.”
[나, 나도 기억하고 있었거든? 외형은 바꿀 수 있잖아! 그런 걸로 탈락시키기엔 능력이 너무 아까웠단 말이야!]
이력서를 보면 포니의 변명도 아예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 녀석도 아예 생각 없이 이력서를 받아 온 게 아닌 것이다.
다만 이 화려하기 그지없는 이력서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이력서가 아무리 좋으면 뭐해. 내가 시킬 일은 잡일인데!”
고작 음식 서빙하는 일에 딱 봐도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고급 인력을 왜 쓴단 말인가?
인사가 만사다(人???) 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얘한테 설명을 해줘야 할까?
그걸 설명해준다고 이놈이 나한테 고맙다고 할 리가 없다.
‘팔이 네 개가 있는 근육질 괴물이라니….’
이 사람을 괴물이라고 부르는 건 큰 실례라는 걸 알지만, 솔직히 종족이 다른 탓에 내 눈에 괴물로밖에 보이지가 않는다.
판타지 세계관에서 나오는 몬스터 말이다.
아마 이 사람을 적절하게 쓰려면 건설 현장에 데려다 놓으면 될 것이다.
혼자서 거뜬히 10명의 몫은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과한 힘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이가 14살? 이게 거짓말인 거야, 아님 진짜야?”
[그 종족은 미성년자라는 개념이 없어. 태어나서 한 달만 지나면 성인 취급 받아서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해. 14살이면 꽤 오래 산 성인인 거지.]
결국 14살인 건 맞는다는 거잖아.
“걔네들은 상관이 없겠지만 나는 있어. 적어도 20살은 넘어야 성인으로 치고 그 이하는 받지 않을 거야.”
그나마 나은 게 14살이다.
이력서 나이란에 무려 9살이라고 적은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걸 단호하게 탈락 이력서 쪽으로 넘겨버렸다.
[네가 뭘 몰라서 이러는 거야. 이건 나이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니깐? 일하는데 아무 문제 없다구.]
“다른 이력서 보니까 멀쩡한 얼굴에 나이도 성인인 사람이 있던데, 굳이 나이 어린 이 사람을 뽑을 이유가 있어?”
[아까워서 그렇지, 아까워서! 걔는 마법도 가능하단 말이야.]
“여기서 마법 쓸 일 없으니까 상관없어.”
마법은 부디 자기네 동네에서 써주길 바란다.
괜히 여기서 썼다가 영상이라도 찍히면 어쩐단 말인가?
그런 일이 아예 생기지 않도록 쓰지 못하는 사람을 고용할 거다.
그렇게 나이까지 거른 후 많이 얇아진 서류를 좀 더 세밀하게 확인했다.
“이 여자는 경력이 끊이질 않네. 경력란만 해도 두 장이 넘어?! 내가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을 시킨다고….”
쓸데없이 오버 스펙인 사람은 내가 부담 돼서 거르기로 했다.
내가 바라는 건 엄청난 이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하루 일꾼으로 쓰려는 건데, 183개 국어 가능자에 정체 모를 자격증들을 줄줄이 따놓고,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를 차원의 마탑 소속 마법사라거나 어디 대회 우승자 같은 스펙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나는 그냥 신체 건강하고 눈 코 입이 이질적이지 않아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 그리고 일을 시키면 적당히 알아들어서 해낼 줄 아는 평범한 아르바이트생이 필요했을 뿐이다.
‘얘한테 맡겨놓으면 유모 구해오는 것도 난리 나겠는데?’
그런데 포니도 내 신랄한 평가에 억울한 부분이 있었나보다.
[종족은 내가 미처 생각을 못한 게 맞는데 고작 그 가격에 그 정도 스펙 가진 사람을 고용할 수 있게 만들어 놓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냐?! 원래 이 사람들 고용하려면 이 가격에 안 돼! 근데 내가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단 말이야! 근데 칭찬은커녕 날 무시해?!]
포니가 계속 씩씩거리며 내게 서운함을 표했다.
노력해서 결과물을 가져왔는데 칭찬이 아니라 욕을 들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아니, 칭찬을 받고 싶었으면 제대로 일을 했어야지!
‘얘가 내 부하 직원도 아닌데…참자. 얘 나름대로 잘 해보려고 하다가 이런 오버 스펙들을 받은 거잖아.’
나는 화를 억누르고 말했다.
“자, 내가 1차로 걸었으니까 다음은 네가 한 번 봐봐. 이 중에 내가 고용해도 괜찮을 것 같은 사람으로.”
[내 의견이 필요하긴 해?]
삐진 포니는 쉽게 마음을 풀 생각이 없어보였다.
“파티할 때 한 번, 결혼할 때 한 번 그리고 유모까지 네가 사람들을 구해 와야 하잖아. 네가 이번에 제대로 못한 게 맞으니까 가르쳐주려는 거야. 다음에는 잘 해보라는 의미로.”
가르쳐 줄 때 잘 받아먹을 생각을 해야지, 단순히 기분 상했다고 삐딱하게 나오니까 아직도 일을 못하는 거 아닌가?
[치잇…. 말은 잘 하지.]
포니가 내 말을 듣고서야 귀를 쫑긋 세운다.
“빨리 골라봐. 내가 무슨 일 시킬 거라고 했지?”
[잡일. 서빙 같은 거 시킨다며.]
“그래, 그런 거 하는데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능력이랄 게 필요해? 팔 다리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
“맞아. 대신 서빙 쪽으로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
그런 일도 아예 해본 적 없는 사람과 경력이 있는 사람 간의 차이가 있다.
[내가 가져 온 이력서에 그런 허접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네가 너무 과한 인력을 가져왔다는 걸 인정하지?”
[인정은 하겠는데…, 능력이 뛰어나면 좋은 거잖아. 솔직히 지금도 이해가 안 돼. 이 대단한 사람들을 떨어트리고 고작 그런 경력을 가진 사람을 고용하겠다고?]
“뭐 그럼 가격을 좀 더 깎아주던지.”
[그건 안 돼. 지금 네가 건 의뢰 지급금이 거의 최소란 말이야. 그 이하는 받아주질 않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기왕 같은 돈 쓰는 거 대단한 사람을 고용하는 게 좋지 않나.]
“아니지. 과한 인력을 쓰면 문제가 생긴다고.”
능력이 좋은 사람일수록 대단한 프라이드를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런 사람이 여기에 와서 고작 하는 일이 잡일이라면?
‘열심히 하기는커녕 시간이나 때우다가 가려고 하겠지.’
그런 대단한 사람들에게 내가 주는 코인이 매력적인 보수도 아닐 게 분명하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고용 돼서 시간이나 때우려고 와서 우리의 파티와 결혼식을 망치는 일을 두고 보고 싶지 않았다.
[잡일 맡기는 일꾼 쓰는 건데 참 복잡하게도 한다.]
“네가 아직 사람을 쓰는 위치가 안 되어 봐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사람을 잘못 썼을 때 오는 피해가 얼마나 큰데….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여기와서 사고를 치면 그거 수습하느라 얼마나 곤란하겠냔 말이다.
그러니 사고 안치고 얌전히 일만 하고 돌아갈 사람이 필요했다.
포니에게 내 뜻을 정확하게 알리니 제법 진지하게 이력서를 살폈다.
아무래도 파티는 결혼식 같은 것보단 훨씬 쉽게 준비가 가능하기에 내가 잡은 일정 중에 가장 빠른 시일로 잡혀져 있었다.
늦게 잡아봐야 스케줄 잡는데 문제만 생긴다.
[이 사람은 어때?]
“어, 괜찮아 보이네. 또 골라봐.”
포니가 내 말을 듣고 생각을 달리 했는지 이력서를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사람을 뽑기 시작했다.
내가 괜찮다고 하니 축 늘어졌던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서 기가 좀 살은 눈치였다.
그렇게 기가 사니 이젠 스스로 나서서 내게 제안도 한다.
[이 사람은 요리사래. 자기 시그니처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데, 어떡할래?]
“요리사?”
요리는 장소 섭외할 때 그곳 사람에게 맡겼기에 요리사를 따로 고용할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그니처 메뉴라고 하니 관심이 생겼다.
[요리 쪽으로 되게 유명한 대회에서 준우승한 적이 있다고 해. 근데 이 사람은 보수로 이 지역 특산물을 원한다고 하네.]
“코인으로 사면 되는 걸 굳이?”
[코인으로 뭐든 살 수 있긴 한데, 단점이 있다는 건 알지? 스스로 찾아서 구매해야 한다는 제약.]
포니가 말하는 단점을 설명하자면 워낙 다양한 물건들을 파는 상점이다 보니 스스로 원하는 걸 찾는 게 쉽지가 않다는 점이었다.
본인이 원하는 걸 찾는 건 검색으로 가능하지만, 아예 모르는 건 평생 구매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요리사는 전 차원을 다니면서 새로운 식재료를 구하고 다닌데. 자기가 모르는 맛을 찾아서.]
“와…이건 좀 멋진데?”
차원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맛을 찾아다니는 요리사라니.
그런 요리사의 시그니처 메뉴라면 한 번쯤은 경험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근데 그 사람이 마음에 들만한 재료가 있나?”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이 아닌지라 이곳에서 자라나는 식재료들이 그 요리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지 모르겠다.
[그 요리사도 그걸 모르고 의뢰를 받는 건 아니야. 아무리 차원을 넘나든다고 해도 매번 결과가 좋을 리 없잖아.]
“그건 그렇지. 아무튼 알았어. 그 사람 고용해줘.”
코인이 아니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사람을 고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대신 요리사가 만족할 만한 식재료를 구하는 게 좀 까다롭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인터넷에서 시키면 배달 안 해주는 곳이 없는 세상이니까.’
분명 요리사가 흥미를 보일 만한 식재료가 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포니가 직접 추천하는 요리사까지 고용하면서 본래의 고용 인원에서 1명 더 추가 된 6명의 일꾼을 일단 고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1명은 요리사로 자신의 시그니처 요리를 만들어줄 것이고, 나머지 5명은 파티를 진행하는데 필요한 잡일을 맡아줄 것이다.
정확히 파티장에 들어올 수 없는 요리사들의 요리와 음료를 옮기는 정도의 일이 될 것이다.
그 정도 일에 5명이나 고용하는 건 너무 과한 인력인거 아닌가 싶을 수 있으나 그 중 2명은 파티장 밖을 지킬 예정이었다.
‘누가 실수로라도 들어오면 안 되니까 말이야.’
파티장 직원이라 해도 파티장 안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5명이라는 인원을 고용한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타이틀곡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일정 하나를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기뻤다.
내가 마지막으로 할 일은 참석할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었다.
? ? ?
“축하드려요.”
“쌍둥이라니. 대단하다. 언니.”
“부끄럽네, 다들 축하해줘서 고마워.”
내 여자들이 정화씨의 임신 소식을 듣고 모두 순수하게 축하를 해줬다.
특히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점에서 감탄을 하더라.
정화씨는 부끄러움이 컸는지 발그레해진 두 볼로 어쩔 줄 몰라 하며 축하 인사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축하 파티를 하기로 했다 이거지?”
“응.”
“나쁘지 않은데? 연말 느낌 날 것 같고.”
“연말에 엄청 재밌었지!”
아현이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떴다.
연말에 다 함께 집에 모여서 파티를 했었는데, 그때 보냈던 시간이 제법 즐거웠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집에서 하는 게 아니라 가게 하나를 아예 빌렸어.”
“오~ 가게를?”
“그럼 진짜 파티네?”
“누가 보면 어떡해?”
“그건 얘가 어련히 잘 하겠지.”
복순 누나의 태연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응, 그 부분은 나한테 맡겨. 이미 다 방법을 마련해뒀으니까.”
“그럼 우리 거기가서 맛있는 거 먹고 편하게 놀면 되는 거야?”
“그렇지.”
“우왕! 난 좋아! 완전 좋아! 기대 된다!”
“언니,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임신 기념으로 선물 사줄게.”
“없어, 정말 하나도 필요없어. 그러니까 하지마.”
다행이 누구도 파티에 불참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우, 왜 하필 그때인 거야….”
다만 민영 누나는 오전에 스케줄이 있어서 가장 나중에 파티장에 합류하기로 했다.
모두가 파티를 환영하는 걸 본 나는 거보라며 정화씨에게 눈짓을 했다.
아까 전부터 쏟아지는 축하 인사에 정신을 못 차리던 정화씨는 내 눈짓을 보고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누구도 그녀의 임신 소식을 싫어하는 이가 없었다.
혼자서 자격지심으로 몸을 사렸으나, 이미 내 여자들 모두 정화씨를 가족의 울타리에 넣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정화씨와 내 사이를 알고 꺼려하던 복순 누나도 정화씨를 ‘언니’라고 부르며 살갑게 대해주고 있었다.
부디 이번 일로 정화씨의 자존감이 올라갔기를 바라며 남들 모르게 슬쩍 그녀의 손을 꽉 힘주어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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