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28화 (428/849)

〈 428화 〉 #63. 축하 파티 (5)

* * *

“아직도 힘들어?”

얼굴이 새빨개진 신애는 아까부터 나와 대치중이었다.

나를 오빠라고 부르는 게 힘들었는지 붕어처럼 입만 벙긋벙긋 거리고 말을 못하지 않는가?

여태까지 깨발랄한 모습을 보여줘서 오빠라고 부르라는 말에 이렇게 숙맥 같은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으우….”

“하하하!”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는 신애가 어찌나 귀엽던지.

나는 피식피식 웃음이 나와서 그녀의 손을 놓지 않고 계속 만지작거렸다.

신애도 내 손길을 피하고 있지 않은 걸 보면 오빠라고는 못 부르는 게 부끄러움 때문이 맞는 것 같았다.

“그럼 다음에 만났을 때는 불러줄 거지?”

“그때까지 연습해올게요!”

부끄러워서 못 부른다는 아이에게 계속 강요를 하기 보단 기회를 줘보기로 했다.

그러자 신애가 살았다는 듯 덥석 내 제안을 받았다.

“그…런데요.”

“응.”

“선배님은 여자친구분이 계시잖아요.”

“그렇지.”

“제가 어…김칫국을 마시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괜찮을까요? 그분이 불쾌해 하시면 어떡해요?”

다른 여자로부터 남자를 빼앗으려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세상에서 신애의 말은 너무 순진하고 순수한 것이었다.

“글쎄다. 만약 내 여자친구가 불쾌해 하면 나랑 다신 안 만날 거야?”

“네?! 그건 안 돼요! 저 그림 가르쳐주셔야죠!”

“와~ 우리 그런 비즈니스 사이였어? 그림 안 가르쳐주면 나랑 안 만나는 거야?”

“아잇! 선배니임!! 장난치지 마세요오! 아닌 거 아시면서!”

“흐흐흐, 알았어. 장난 안 칠게.”

내가 장난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신애가 안절부절 못하기에 빠르게 사과를 하고 넘어갔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평소라면 헤어질 순간이 왔다.

그러나 신애도 나도 이대로 헤어지고 싶지가 않아 자꾸만 미적이게 된다.

이 산책로 근처에는 신애의 숙소가 있었는데 만약 거기서 혼자 살았다면 나를 숙소로 초대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 가야지?”

“그래야죠.”

신애가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푹 숙인다.

누가 봐도 헤어지기 싫은 눈치다.

처음 산책가자고 했을 땐 사람들이 보면 어떡하냐고 호들갑을 떨더니, 나랑 다니기 시작하면서 멤버들이 느꼈던 안경의 위력을 체감하고 이젠 아예 즐기는(?) 수준까지 와 있었다.

이렇게 서슴없이 손을 잡고 가까이에 달라붙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할 정도로 말이다.

“좀 만 더 있다가 가시면 안 돼요?”

“우리 딱히 갈 곳 없지 않아?”

“음…카페는….”

“아까 다녀왔잖아.”

“그, 그러엄…그…어…저, 저기요! 저기! 저리로 가는 건 어떠세요?!”

이대로 헤어지긴 싫은데, 아무곳에나 갈 수 없는 우리였기에 장소를 결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신애가 눈알을 굴리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는 표정으로 아무 곳이나 가리켰다.

‘나랑 정말 헤어지기 싫은가보네.’

그 귀여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는데, 신애가 가리킨 건물을 확인하다가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너 진짜 나랑 저기 가고 싶어?”

“네!! 어…근데 싫으시면…어쩔 수 없고요.”

“아냐. 좀 당황스럽긴 한데 나는 너라면 괜찮을 것 같아.”

“네? 그게 무…어헉!”

내 말에 어딘가 이상함을 느낀 신애가 어리둥절해 하다가 자신이 가리킨 곳을 확인하고 놀라 굳어버렸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은 으슥한 산책로 근처에 있는 건물이 정상적일 리 없지 않은가?

신애가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러브모텔’!

물론 알고 가리킨 건 아니겠지만, 참 공교로운 순간이었다.

“서, 서 선배님! 그게 아니고….”

“에? 뭐야, 먼저 유혹해놓고 이렇게 빼기야? 나는 부끄러움도 참고 같이 가겠다고 한 건데.”

평소였다면 신애는 내가 짓궂은 장난을 치고 있다는 걸 눈치 챘을 것이다.

하지만 러브 모텔의 위용에 정신이 반쯤 나간 신애는 내 장난을 장난으로 여기지 못했다.

“네에?! 제가요?! 아니, 그런 거 아닌데요!”

“저렇게 떡하니 러브모텔이라고 적혀 있는 건물을 가리키면서 가자고 했으면 유혹 아닌가?”

“아니, 그건 맞긴 한데…근데 그게 제가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그게 우연히…하….”

상황을 보면 아니라고 할 수 없는지라 신애가 또 다시 붕어가 돼서 입을 벙긋댄다.

제대로 말도 안 나오는지 횡설수설하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심호흡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배님은 정말 저기에 들어가도 괜찮으신 거에요? 같이 가는 사람이 전데도요?”

“너니까 괜찮다고 한 건데. 다른 사람이 저기에 같이 들어가자고 했으면 욕했을 거야.”

“으읏…!!”

내 말을 들은 신애가 벌게진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쥔다.

무언가를 참는 듯 주먹이 부들부들 떤다.

나는 터질 듯하면서도 끝까지 터지지 않고 참아내는 신애를 느긋하게 구경했다.

“정말 저랑 가는 게 괜찮으시다고요? 저 지금 진지하게 묻는 거에요.”

입술을 앙 다문 신애가 눈을 부릅뜨며 아니, 정확히는 가오를 잡으며 물었다.

목소리를 낮게 까는 걸 보니 내가 너무 장난을 심하게 쳐서 이대로 물러나기에 자존심이 상했나보다.

‘화들짝 놀라서 도망칠 거라 생각했는데.’

신애가 예상 외의 반응을 보이니 오히려 더 흥미로웠다.

여기서 나도 세게 나오면 얘가 어쩔 생각인가 싶기도 하고.

“진지하게 말하는 거면?”

“못 들어 갈 거 없죠! 저도 여자에요! 차려진 바, 밥상을 엎을 생각 없다고요. 갑시다! 못 갈 게 뭐가 있어요! 저도 이제 성인인데.”

신애가 터프하게 내 손을 잡아챈다.

그리고 앞서서 모텔을 향해 걸어갔다.

‘진짜 저길 가겠다고?’

반항 할 이유가 없었기에 일단 따라갔다.

내가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뒤를 따라가자 신애가 불안한지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삐걱삐걱­

‘아이고, 다리랑 팔이 같이 나가네.’

나는 덤덤하게 신애의 뒤를 따라갔지만 제대로 마음을 먹고 내 손을 잡아끈 신애의 몸에는 문제가 많았다.

걸어갈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것 같았고, 같은 방향의 팔과 다리가 함께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풋, 내가 반항할 줄 알았나봐.’

연하라서 나한테 듬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인데, 애석하지만 나는 내 여자를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성향을 가진 편이었다.

신애가 당황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고 있는데 내가 먼저 장난을 멈출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대로 진짜 모텔에 들어가서 섹스를 하게 되어도 내가 당황하는 일은 없을 거야.’

반면 신애는 당차게 나를 러브모텔로 이끌고 있기는 하지만 엄청나게 긴장을 하고 있었다.

내 손을 쥔 신애의 손에 축축한 땀이 느껴진다.

우리가 있었던 거리에서 모텔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얼마 걷지 않아 모텔 근처에 도달했다.

“…진짜 들어가는 거에요. 장난하는 거 아니고.”

신애가 모텔 건물 앞에서 멈춰서 내게 다시 물었다.

신애의 눈동자를 보니 애가 정신이 쏙 빠져 있더라.

내가 애를 너무 못되게 놀렸나 싶어 걱정이 돼서 물었다.

“너 눈이 동태가 됐는데? 너야 말로 괜찮은 거 맞아?”

“네? 누가요? 제가요?”

“그래, 니가요.”

“아니에요. 저 멀쩡해요!”

“눈동자에 초점이 없어. 부담스러우면 여기서 그만하자. 아직은 돌아갈 수 있어. 문 안 열었잖아.”

“…….”

신애가 모텔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신애와 함께 밤을 보낼 것이다.

다만 그것이 과연 신애에게 좋은 일일까?

‘오늘에서야 겨우 손을 잡았는데, 섹스까지? 너무 급발진이잖아. 딱 봐도 애가 처녀 같은데….’

이런 곳에서 장난 때문에 얼떨결에 싸구려 모텔에서 첫날 밤을 치른다?

‘너무 별론데.’

우리는 오늘에서야 서로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알린 상황이다.

동생과 선배라는 미묘한 관계에서 연인이 될까 말까 하는 밀당하는 시기인 거다.

‘그런데 여기서 섹스를 해버리면, 얘는 나한테 절대 못 벗어나.’

내가 주는 쾌감을 알게 됐는데, 신애가 나를 거부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기회를 주고자 한 것이다.

신애에겐 마지막 연애가 될 텐데, 이건 너무 심하게 건너뛰는 일이지 않은가?

애초에 나는 신애와의 관계를 느긋하게 발전시킬 생각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렇다고 먹어달라고 오는 걸 거부할 생각은 없지.’

나야 빠르게 진도를 빼는 게 큰일이 아니지만, 신애는 다르다.

지금만 봐도 애가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얼굴이었다.

“저, 저는 들어가도 괜찮은데요?”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얼굴이었으면서 결국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린다.

나는 신애에게 진정하라는 의미로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얼굴이 창백하잖아. 저 문을 열면 되돌릴 수 없는 거야. 나도 안 물러날 거니까.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모를 정도로 어린 거 아니잖아.”

“…….”

꿀꺽­

이 시간에 러브 모텔에 들어간다는 건 너무나도 노골적인 목적이다.

내 말에 무언가를 상상했는지 신애가 꿀꺽하고 침을 삼킨다.

“누가 여기 들어가라고 협박하고 있는 거 아니야. 알고 있지? 싫은 걸 억지로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야.”

“…….”

조금만 걸어가도 금방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

내 설득에 신애의 마음이 흔들렸는지 자기 입술을 짓누르며 고민한다.

굳게 닫혀 있는 투명한 모텔 문에 손을 얹을까 말까 고민하던 신애가 결국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으럼요, 선배님…정말 죄송한데, 여기 말고 다른 데로 가도 될까요? 맥주에 치킨 어때요? 저 맥주 맛있는 곳 아는데….”

“산책 전에 많이 먹었는데, 그게 들어가?”

“산책을 너무 열심히 했는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체념해서 말하는 신애의 목소리엔 자존심이 싹 사라져 있었다.

잘 생각했다는 의미로 그녀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그래, 맥주 마시러 가자. 나도 그게 더 좋을 것 같아.”

그제야 신애가 안도하며 창백했던 얼굴에 색이 돌아왔다.

“헤헤! 가요! 제가 맥주 엄청 맛있는 집으로 안내할게요!”

모델로 가는 걸음은 삐걱삐걱 로봇 같더니, 맥주를 마시러 갈 때는 걸음걸음이 깃털 같다.

아직 신애한테는 모텔이 너무 무리인 장소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가 사귀는 사이인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도 이번 일로 아예 소득이 없었던 건 아니다.

우리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지금까지는 풋풋하면서도 산뜻한 연애 초기의 몽클몽클한 분위기가 흘렀는데 지금은 좀 끈적끈적하고 어른스러우면서도 섹슈얼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보통 신애와 그림 수업을 할 땐 스터디 룸이나 카페를 이용했는데 다음에는 제대로 된 장소를 구해둬야 할 것 같았다.

이제 우리는 누가 봐도 친한 오빠동생 사이라고 변명할 수 없는 분위기가 흘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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