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9화 〉 #63. 축하 파티 (6)
* * *
“안녕하십니까. 혀 위의 오르가즘을 위해 살아가는 푸올이라고 합니다.”
“푸올 쉐프라고 불러도 괜찮을까요?”
“예, 충분합니다.”
“근데 통역 아이템을 갖고 계신 것 같네요? 말이 통하는 걸 보니.”
“물론입니다. 다양한 차원을 돌아다니다 보니 통역은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입니다. 그나마 이 차원은 통역 데이터가 있어서 다행인 겁니다.”
어떤 오지의 차원은 통역 데이터가 아예 없어서 통역 아이템이 있어도 효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고 한다.
“신기하네요.”
“차원을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용병들은 필수로 소지하고 다니는 물건이기도 하죠. 좀 비싸긴 해도 꾸준히 업그레이드를 해줘서 두고두고 계속 쓸 수 있으니까요.”
지금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은 파티장에서 우리들에게 맛있는 시그니처 음식을 만들어 줄 요리사였다.
차원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재료를 구하고 다닌다는 요리사.
아직 파티가 시작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요리사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의뢰 비용으로 받은 식재료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이 차원은 굉장히 발전 된 곳이군요.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푸올 쉐프가 여러 차원을 다니면서 식재료를 모아오셨다고 들어서 걱정이 되긴 하네요. 그래도 제가 구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 해 모아봤습니다.”
“제가 바라는 게 없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이 차원의 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제겐 큰 공부가 될 테니까요.”
“그럼 식재료 모아둔 곳으로 갈까요?”
“네.”
푸올 쉐프와 함께 창고로 향했다.
이 창고는 급하게 식재료들을 모으면서 잠깐 빌린 냉동고였다.
구하기 시작하면 많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더라.
돈을 주고 의뢰를 맡기지 않고 혼자서 식재료를 구하려고 했으면 기간 내에 불가능했을 거다.
“관리를 잘 해주셨군요!”
식재료가 들어 있는 냉동고를 본 푸올 쉐프의 안색이 밝아졌다.
기껏 의뢰를 받고 가도 말라비틀어진 것을 내놓고 뻔뻔하게 구는 의뢰인이 한 둘이 아니었다며 이렇게 제대로 된 식재료를 구해다준 의뢰인은 정말 오랜만이라고 말했다.
“대단합니다. 이렇게 많은 종류를 준비하셨을 줄이야.”
“여기에 있는 재료들은 우리들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수준의 식재료들이에요. 그리고 이쪽으로 좀 들어와 보시면 가격이 비싸고 구하기 힘든 것들이 있고요.”
“천천히 살펴봐도 괜찮을까요?”
“얼마든지요.”
“이 정도 식재료라면 좀 더 본격적으로 손을 풀어볼 수 있을 것 같군요. 아! 그리고 이따가 참석자들 중에 먹지 못하는 식재료가 있다면 꼭 알려주십시오.”
“아~ 그럴게요.”
민영 누나는 오이를 먹지 않는 편이고, 복순 누나는 땅콩 알러지가 있다.
그 외에 다른 여자들은 먹지 못하는 음식이 없어서 그 부분만 알려줄 생각이다.
한참 후, 식재료를 모두 둘러 본 푸올 쉐프가 상기 된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이 근처에 요리 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손님 분들에게 보여드리기 전에 확인을 받고 싶습니다.”
나라가 다르면 식문화도 달라지는 법.
그런데 푸올 쉐프는 다른 차원에서 이곳으로 온 사람이다.
푸올 쉐프에겐 자부심 가득한 요리도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 과한 요리가 될 수 있기에 미리 확인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가시죠. 요리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근데 식재료는 거기다 둬도 괜찮은 건가요?”
푸올 쉐프가 가져 온 가방.
그 가방에는 내가 준비해둔 식재료가 모두 들어가 있었다.
창고를 빌려야 할 정도로 많았던 식재료가 고작 해봐야 캐리어 크기도 되지 않은 가방에 전부 들어간 것이다.
당연하지만 저 가방이 평범한 가방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없습니다. 식재료를 저장하기 위해 산 가방이거든요. 이 가방을 사느라 부모님께 물려 받은 유산이 바닥났을 정돕니다. 뭐 대신 성능 하나는 죽여주죠.”
상점 물건이 워낙 범상치 않았기에 손바닥만한 물건이 상상도 못할 가격을 갖고 있는 게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회색빛 가방 때문에 유산이 바닥이 났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닐 게 분명했다.
“잃어버리면 큰일나겠어요.”
“도난 방지 효과도 당연히 들어가 있죠. 이 가방은 제 인생이나 다름없습니다.”
푸올 쉐프는 가방을 애인 보듯이 보고 있었다.
나는 쉐프를 데리고 차를 타고 이동했다.
“정말 특이한 곳입니다.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종족은 인간뿐이고요.”
“네. 맞아요.”
“그런데도 이런 발전을 이룩하다니…. 인간이란 종족은 정말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종족이 맞는 것 같습니다.”
푸올 쉐프는 인간처럼 생겼지만, 나와 똑같은 인간은 아니었다.
그가 인간이었다면 이미 죽어서 흙이 됐어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그의 나이가 무려 603살이기 때문이다.
“짧은 삶을 살아서 이토록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걸까요?”
“대단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것도 맞지만, 이렇게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건 탐욕 덕분이지 않을까 싶네요.”
더 잘 살고 싶다, 더 편리하게 살고 싶다, 죽지 않고 오래 살고 싶다 등등.
발전은 탐욕이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먹고 자라나 꽃을 피웠다.
푸올 쉐프는 우리 세계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이렇게 식문화가 발전 된 차원은 찾기 힘듭니다. 특히 저는 새로운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다니는 사람이다 보니 더 그렇죠. 제가 가는 차원 대부분이 오지이고, 이렇게 큰 발전을 이룬 차원을 다니는 건 손에 꼽습니다.”
“식문화가 발전 된 곳을 다니는 게 더 도움이 되는 거 아닌가요?”
“사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음식을 조리하는 방법은 거기서 거기가 됩니다. 더욱이 저는 마법을 사용해서 요리를 하는지라 제가 모르는 방식의 조리법을 찾는 게 더 어렵죠. 그래서 제가 식재료를 찾아 다니기 시작 한 겁니다. 새로운 식재료는 새로운 조리방법이 아니라도 특별함을 선사해주니까요.”
그의 나이가 603살.
그 많은 시간동안 요리에 올인을 해왔으니 어떤 기발한 요리 방법이라 해도 낯설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엄청난 경력의 쉐프가 만들어 준 음식을 먹게 될 예정인 거다.
그가 만들어준 음식의 맛이 얼마나 황홀하고 대단할지 기대감에 벌써부터 침이 삼켜졌다.
“여깁니다.”
“오호, 아름다운 집입니다.”
내가 푸올 쉐프를 데리고 간 곳은 내 집이었다.
저 사람은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관심도 없고, 알리도 없는지라 가족이 있는 집으로 선뜻 초대를 할 수 있었다.
위험할 수도 있는 사람을 가족들이 있는 곳에 데려가는 게 섣부른 일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이미 안전장치가 다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포니가 말을 해준 것인데, 차원을 입국하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일용직을 뛰는 일꾼이라 해도 예외는 없었다.
신분이 확실한 사람만이 여권을 만들 수 있는데, 그 여권도 1년마다 갱신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범죄 이력이 있는 순간 자격이 박탈당하게 된단다.
푸올 쉐프는 그런 점에서 신분이 확실하게 보장이 된 사람이었다.
용병 생활을 까마득한 시간부터 지금까지 쭉 해온 사람이니 말이다.
푸올 쉐프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주방으로 가서 집에 있는 주방용품을 확인했다.
불의 세기를 체크하고, 어떤 요리 도구가 있는지 체크하는 등의 일이었다.
그렇게 주방을 모두 확인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옷을 갈아입고 요리에 들어갔다.
“저 사람이 유명한 쉐프라고요?”
“응, 대단한 사람이야.”
집에서 현오와 지현이를 돌보고 있던 칸나는 애들을 재우고 잠깐 짬이 났을 때 주방으로 왔다.
푸올 쉐프는 아이들 몫의 음식도 만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한 상태였다.
칸나는 호기심 반 경계심 반으로 푸올 쉐프가 요리하는 걸 구경했다.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기는 하네요.”
칸나는 푸올 쉐프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고 했지만, 사실 저건 진짜 실력의 반도 보여주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 차원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곳이라서, 마법을 쓰면서 요리하는데 제약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요리를 할 때 사용하는 푸올 쉐프의 조리도구에 걸린 마법 덕분에 요리의 퀄리티가 일정 이하로 내려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집으로 이동하는 내내 나에게 이 차원의 선호와 불호에 대해 조사를 했다.
가령 벌레 종류의 음식을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하며, 이곳에서 주로 쓰는 향신료는 어떤 것들인지에 대한 입맛 관련 된 조사였다.
꽤 많은 대화를 나눈 것 같긴 했지만 이 정도로 차원의 다름을 메꾸기엔 무리가 있어보였다.
물론 전문가인 푸올 쉐프는 입장이 다른 것 같긴 했지만 말이다.
“완성 됐습니다.”
“와~ 향이 너무 좋아요!”
“주로 쓰이는 식재료를 참고해서 만들어봤습니다. 부드러운 살코기가 입안으로 들어가면 색다른 경험을 가져다 줄 겁니다. 맛 보시죠.”
특별한 조리 도구로 만들어진 요리는 압도적인 향기를 내뿜으며 완벽하게 플레이팅 되어 우리 앞에 놓여졌다.
재벌 딸인 칸나에게는 익숙할 법한 고급진 식사였지만, 동요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단 푸올 쉐프가 내온 요리가 압도적인 향기를 내뿜고 있었던 것이다.
그 향기에 압도 된 우리는 완벽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름답게 플레이팅 된 요리를 어떻게 먹어야 하나 싶어 선뜻 포크를 가져다대지 못했다.
“너무 예뻐서 먹기가 아까워요.”
“먹어보시면 그 생각이 싹 사라지실 겁니다. 아름다움 이상의 황홀한 경험을 하게 될 테니까요.”
“이 음식들, 사진으로 남겨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푸올 쉐프의 허락을 받은 칸나가 후다닥 핸드폰을 꺼내 요리를 찍기 시작했다.
‘여자들이란….’
나에게는 익숙한 일이었기에 덤덤하게 사진을 다 찍기까지 기다려주고 드디어 접시 위에 놓인 요리에 포크를 가져다댔다.
언 듯 보면 스테이크랑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요리가 알 수 없는 소스에 적셔진 채로 내 입 속에 들어왔다.
그리고.
팡~! 파앙~! 파아앙~!!!
어떻게 이 맛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혀에 닿자마자 고기가 사르르 녹아버리면서 뒤를 이어 입 안 가득을 넘어 몸 안에서 소스가 주는 황홀하고 짜릿한 맛에 압도 되었다.
순식간에 녹아버려서 씹을 것도 별로 없었지만, 씹을 때마다 즙과 향기가 펑펑 입 안에서 터지는데, 폭죽이 터진다는 표현이 그나마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느낌을 줬다.
내가 이렇게 놀랐는데, 칸나라고 멀쩡할 리 없었다.
그녀는 어깨를 움츠리고 황홀한 맛의 파도에 허우적대고 있었다.
우리의 동요를 느낀 푸올 쉐프가 흐뭇한 할아버지 미소를 짓고 있더라.
나는 뭔가 표현을 하고 싶었지만 입만 벙긋거리고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아 괜스레 혀로 입술을 핥았다.
푸올 쉐프는 그런 내 다급한 반응이 익숙한지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허허허! 괜찮습니다. 천천히 즐기시지요. 보아하니 제가 괜찮은 녀석을 보여드린 것 같군요.”
나는 여전히 입 안에 남아 있는 향기의 여운에 취해 있다가 침을 꼴깍 삼키고 나서 겨우 입을 뗐다.
“이게 쉐프의 시그니처는 아닌 거죠?”
믿을 수가 없다.
이보다 더 맛있는 요리가 존재할 수 있을까?
“맞습니다. 이곳 식재료를 보니 제 시그니처 요리를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았지만, 그건 제대로 된 장소에서 맛보시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다른 요리를 만들었죠.”
“이게 시그니처라고 하셨어도 납득했을 것 같네요. 제 생에 최고의 요립니다.”
“저, 저도요! 억만금을 줘서라도 쉐프한테 저희 주방을 맡기고 싶을 정도에요.”
“하하! 그건 참아주십시오. 저는 아직 젊어서 더 넓은 세상을 보며 배우고 싶거든요.”
“하아~ 이런 걸 먹어버리면 평생 쉐프 음식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을 거에요.”
“저도 동감합니다.”
접시에 놓인 음식이 빠르게 사라지는 게 이토록 아깝고 아까울 수가 없더라.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긴 해도 욕심을 가지는 편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다행히 푸올 쉐프는 손이 커서 우리를 위한 요리로 한 가지만 가져오지 않았다.
“저 소화제 좀 주시면 안 되요? 그거 먹고 더 먹을래요.”
그 요리를 차마 배가 부르다는 이유로 남길 수 없었던 칸나가 나에게 코인으로 구매하는 소화제를 부탁했다.
사실 칸나의 마음이 내 마음인 이심전심 상황이었기에 순순히 상점에서 소화제를 구매해서 하나씩 나눠 먹었다.
푸올 쉐프는 잘 먹는 우리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연신 껄껄 웃었다.
“제 요리가 그리우시다면 제 이름을 검색하시면 됩니다. 제가 직접 만든 요리를 가끔 상점에서 판매하고 있거든요. 다만, 제 요리를 바라는 분들이 많은지라 값도 비싸고 선착순에 들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푸올 쉐프가 싼 값에 요리를 하러 와준 것은 새로운 식재료를 구하기 위함이지 그의 인건비가 싼 것이 아니었다.
“이런 맛을 알아버렸으니 구매하지 않을 수가 없겠네요.”
나는 순순히 푸올 쉐프의 음식에 백기를 들었다.
이건 도저히 반항할 수 없는 맛이었다.
현오와 지현이도 마찬가지였는지 푸올 쉐프가 만들어준 어린이 요리를 환장하고 먹고 있었다.
파티에서 그가 해줄 시그니처 요리가 더욱 더 기대가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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