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0화 〉 #63. 축하 파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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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 준비가 착실하게 되고 있는 만큼, 여자들도 파티장에 입고 나갈 드레스를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파티가 시작 되는 날까지도 어떤 드레스를 입을지 결정하지 못해서 2~3개를 갈아입으면서 고민하다가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드레스를 고르는 만행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왔다.
나는 여자들에게 받은 ‘이게 나아, 저게 나아?’ 라는 무의미한 질문들에 질려서 백기를 든 상태였다.
파티 준비가 잘 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명분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여자들 일은 여자들끼리 해결하고 오라고 하고 먼저 파티장으로 출발을 한 나는 푸올 쉐프를 만났다.
푸올 쉐프는 이번 파티의 헤드쉐프였기에 주방에서 열정적으로 쉐프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 열기가 대단해서 내가 끼어들 틈이 없어보였다.
‘알아서 잘 하시겠네.’
외부에서 초청해서 온 쉐프였기에 기존에 있던 요리사들이 배척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돼서 살피러 온 것이었는데, 이미 이곳 쉐프들을 사로 잡은 듯 했다.
‘600살이 넘는 분한테 너무 과한 걱정을 했구나.’
괜히 주방에 들어가서 방해를 하기보단 조용히 주방을 빠져나와 다른 곳을 살피기로 했다.
본래였다면 내가 하는 것을 파티장 관계자가 했어야 하겠지만, 내 쪽에서 그 부분을 거절했기에 직접 움직여야 했다.
파티에 대한 기대감이 대단한 참석자들 덕분에 코인을 좀 더 써서 사람을 고용한 상태였다.
다만 고용인들을 직접 이곳으로 부르는 건 내가 직접 해야 했다.
나는 인적이 없는 대기실로 이동해서 미리 챙겨뒀던 아이템을 사용했다.
다른 차원에서 대기 중인 용병들을 이곳으로 부르는 아이템이었다.
슈우우우웅!
푸올 쉐프를 불렀을 때도 한 번 경험한 적 있는 묘한 소리와 함께 화려한 금색 정장을 입고 있는 8명의 연주자가 나타났다.
“아아 안녕하십니까? 고용주님 맞으십니까?”
“네, 맞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몇 가지 확인을 하겠습니다. 통역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 같으십니까?”
“네, 정상적으로 되고 있네요. 이상한 부분 없습니다.”
“곡은 총 9곡으로 예약이 되어 있는데 맞으십니까?”
“네.”
“연주해주시길 바라는 곡으로 4개의 곡 악보를 미리 받았고, 나머지 5곡은 저희 쪽에서 준비해주길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다른 부분이 있습니까?”
“제가 의뢰한 그대롭니다.”
“확인 절차가 무사히 끝났군요.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 사람들도 언 듯 보면 평범한 연주자들로 보이지만, 많은 코인을 주고 부른 유명한 연주자였다.
그들의 연주에는 특별한 힘이 담겨 있다고 하니 기대가 됐다.
‘푸올 쉐프의 음식도 특별했으니 음악도 특별하겠지.’
파티에 참여하는 고용인들까지 모두 챙기고 나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리고 마침 주아 누나로부터 연락이 왔다.
파티장 근처에 다 왔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들의 이목을 고려해서 내가 미리 지하 주차장에 가 있어야 했다.
내 안경의 힘이 없다면 그녀들의 드레스 차림이 일반인들에게 고스란히 보여질 테니 말이다.
“슬슬 준비해야겠구나.”
사실 파티를 계획했던 초반에는 내 여자들과 근사한 곳에서 파티를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점점 스케일이 커졌고, 각자 가족들에게 파티 얘기가 전해지면서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본래 계획 때보다 많아진 상황이었다.
관심을 보인 사람들 모두 내 여자들의 가족이었기에 참석을 반대 할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음식이든, 파티장이든 모두 넉넉하게 준비했기에 더 그랬다.
오히려 참석해서 파티를 즐겨준다면 이번에 열심히 준비했던 내가 보람을 느낄 수 있을 테니 좋았다.
다만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보안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주의를 주긴 했다.
그나마 참석자들 모두 어느 정도 나이대가 있으신 분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신기하게 내 여자들이 형제가 없네.’
그나마 있는 사람을 말하자면 연주 누님일 것이다.
‘근데 연주 누님 동생은 있으나 마나잖아. 남보다 못한 사이니까.’
연주 누님의 친동생은 절대 내가 준비한 파티에 초대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연주 누님의 친동생 대신 참석한 사람은 최관이었다.
다 함께 온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우르르 차를 타고 오는 모습을 보니 제법 장관이다.
“어서 오세요, 어머님, 아버님.”
내 여자들만 있었다면 아름답게 꾸민 그들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을 텐데, 가족들과 함께 온 탓에 그녀들만 신경 쓰고 있을 수가 없었다.
가장 먼저 차에서 내린 건 아현이네 가족이다.
“아휴, 우리 사위 덕분에 내가 호강을 다 해보네.”
“잘 오셨어요. 두 분 오늘 정말 아름다우세요.”
“허허허! 이 양반이 원래 젊을 땐 지금보다 더 예뻤어. 나이 먹어서 주름 때문에 다 진 줄 알았는데 이렇게 꾸며놓으니 볼만 하드라고.”
“주책맞게 뭐라는 거야. 사위 앞에서.”
아현이가 데려온 가족은 어머님과 아버님이었다.
얼굴을 처음 보는 게 아니었기에 반가움을 담아 인사를 나눴다.
아현이가 누굴 닮아서 귀엽고 예쁜가 궁금하면 부모님을 보면 된다.
나이가 있으신 장인어른과 장모님한테 이런 표현을 하는 게 뭐할 수도 있지만, 두 분 모두 귀여운 매력을 갖고 계신 분이셨다.
특히 오늘은 전문가의 손길을 받아서 그런지 더 매력적인 모습을 하고 계셨다.
아현이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사이가 굉장히 좋은 편이라서 더 기억에 남는다.
“우리 아현이도 이렇게 꾸미니까 참 예쁘죠?”
“아현이는 평소에도 예쁜 걸요.”
아현이는 평소 갖고 있던 귀여움이란 매력이 전문가의 손길에 닿아 폭발하고 있었다.
부드럽게 웨이브진 머리와 허벅지까지 오는 짧은 노란색 미니 드레스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더욱이 새로 염색까지 했는지,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흑색 머리카락이 이미지를 확 달라 보이게 만들어줬다.
“호호호! 알아주니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우리 아현이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물론입니다. 장모님.”
아현이네 가족을 파티장 전용 엘리베이터에 태우고 돌아서자 다음으로 쭉쭉 내 여자들과 가족이 함께 도착했다.
나는 가족들을 모두 한 명 한 명 진심을 다해 반겨주며 엘리베이터를 태워 파티장으로 보냈다.
‘내가 여자를 많이 만들긴 했구나. 끝이 없네.’
잠깐 숨을 돌리는 사이, 마지막 주자로 연주 누님과 최관씨가 나타났다.
“정신없어 보이는구나.”
“오셨어요, 누님.”
“오랜만이에요, 형부.”
“그러게요. 정말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어요?”
최관씨는 조금 멋쩍은 눈치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현오를 후계자로 삼고 싶어했던 장모님이 큰 사건을 겪은 후 최관씨를 조직의 후계자로 삼았고, 그로인해 바빠진 그녀와는 굉장히 오랜만에 만나는 거였다.
“장모님은 안 오셨어요?”
“이런 거 좋아하는 분이 아니다.”
“언니가 오지 말라고 하셨어요.”
장모님과 연주 누님의 관계는 여전히 삐걱대는 중이다.
그래도 아예 예전처럼 연락을 끊고 살지는 않으니 나름 호전 됐다고 볼 수 있기는 하다.
장모님이 현오를 포기하고 최관을 후계자로 삼으면서 연주 누님의 마음이 풀린 덕분이다.
“아무튼 잘 왔어요. 관이씨도 바쁜 와중에 와줘서 고마워요.”
“제가 참석해도 되는 자리인지 걱정이 됐는데,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작스럽게 물려받게 된 조직을 정비하고, 진짜 후계자로 인정받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 참석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살도 많이 빠진 것 같고. 더 단단해진 느낌이네요.”
최관씨는 파티장에 온다고 다른 여자들처럼 화려하게 꾸미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는 포니테일 스타일로 질끈 묶고 몸매가 드러나는 얇은 검은색 목티를 입고 있었는데, 몸매 자체가 워낙 탄탄하고 좋다 보니 특별한 매력이 어필 되고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특유의 매력을 눈치 채는 사람이라면 쉽사리 벗어나기 힘들어보였다.
“관이만 칭찬해주는 거니? 나도 모처럼 제대로 꾸몄는데 말이야.”
연주 누님은 여러 파티를 다녀 본 경험이 있다는 게 티가 났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파티라서 그런지 과한 노출이 없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악세서리로 파티장의 분위기를 흠뻑 낸 것이다.
“누님은 뭐 말 할 것도 없이 늘 완벽하시죠. 그래도 또 말해드릴게요. 말하고 또 말해도 부족할 정도로 아름다우십니다.”
“엎드려 절 받은 것 같긴 하지만, 그 말은 들어도 들어도 기분을 좋게 만든단 말이지.”
“누님이 제일 마지막이에요. 파티장으로 안내해드려도 괜찮죠?”
내가 그녀들 사이로 들어가 팔을 내밀었다.
연주 누님이 먼저 내 팔에 팔장을 끼웠고, 조금 뒤늦게 최관씨도 같이 팔짱을 꼈다.
그녀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파티장에 들어가자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파티장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흘렀다.
물론 이 클래식은 연주자들이 직접 연주한 게 아니라 오디오에서 나오는 거다.
테이블 위에는 푸올 쉐프의 솜씨가 곁들어진 음식들이 올라와 있었다.
“해솔아! 여기!”
내가 파티장에 도착한 걸 가장 먼저 발견한 복순 누나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테이블에는 태양이와 지현이 현오가 함께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칸나가 다소곳하게 앉아서 아이들이 밥 먹는 걸 돕고 있었고 말이다.
“음식 대박이야! 도대체 요리사로 누굴 데려온 거야?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내 생애 처음이야. 봐봐, 애들도 정신없이 먹잖아.”
아이들 중에는 밥을 먹으라고 입 앞에까지 가져다 줘도 안 먹는 애가 있다.
특히 지현이가 입이 좀 까다로웠는데, 저번에 한 번 먹어본 게 기억에 남았는지 정말 열심히 온 힘을 다 해 먹고 있었다.
“아빠, 이거 짱 맛있어!”
태양이도 요리에 흠뻑 빠진 상태였다.
“응, 적당히 먹고 저쪽에 놀이방 있으니까 동생들이랑 같이 놀아. 아이스크림 가져다줄까?”
원래 뷔페처럼 적당한 음식들이 차려놓고 메인 요리는 파티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면 나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뷔페처럼 만들어놓은 음식도 푸올 쉐프의 손길이 닿아서 그런지 인기 만점이었다.
이대로 있으면 사람들이 에피타이져를 메인 요리처럼 배부르게 먹을 듯 싶다.
나는 이따가 주방으로 가서 푸올 쉐프에게 메인 요리를 빨리 내어달라고 말해야겠다 생각하고 다른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다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눴다.
가장 마지막에 들어 온 연주 누님과 최관도 어느새 자리를 잡고 요리를 즐기고 있었다.
“너도 그만 돌아다니고 슬슬 앉아서 먹지 그러니. 요리 정말 맛있어.”
정화씨가 먹지는 않고 계속 돌아다니기만 하는 내가 걱정 됐는지 내 손을 잡아서 자리에 앉혔다.
“괜찮은데.”
“정말 맛있어. 그러니까 어서 한 입이라도. 응?”
“넵.”
정화씨가 아기에게 음식을 먹이려는 엄마처럼 제안을 하니 감히 거부를 할 수가 없었다.
“메인 요리 따로 있으니까 적당히 드셔야 하는 건 알고 있죠?”
“응응, 알아. 다들 메인 요리 잔뜩 기대하고 있어.”
“요리 다 먹으면 공연이 있을 거에요.”
밥을 먹고 나서 공연을 해도 되겠지만, 연주자들을 쫄쫄 굶길 순 없지 않은가?
연주자들은 현재 내가 따로 마련한 대기실에서 푸올 쉐프의 음식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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