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1화 〉 #63. 축하 파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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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늘 부른 연주자들은 당연히 평범한 연주가가 아니다.
그들도 푸올 쉐프처럼 용병 음악가로 활동하며 여러 차원을 돌아다녔고, 그때 경험한 환상적인 광경들을 관객들에게 음악으로 보여주는 것을 좋아했다.
‘음악을 통해 환상을 만들어내는 연주자들.’
여기서 환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단순히 표현이 아니라 진짜 환상을 보여주는 걸 뜻한다.
상상을 해봐라.
음악이 들려오고, 그 음악에 집중한 순간 자신이 거대한 숲 속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상상을.
여전히 사방에서 음악이 들려오고, 우리의 눈앞에는 압도적인 풍경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강력한 환상은 그 광경을 실제처럼 느끼게 만들어서, 잠깐이지만 여행을 떠나 온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줬다.
‘문제는 우리 차원이 마법이 없는 곳이라는 거지. 환상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은 기겁하지 않고 느긋하게 즐기겠지만, 우리들은 그렇지가 않다고.’
그래서 아쉽게도 연주자들에게 환상을 가장 낮은 단계로 걸어달라고 한 상태였다.
아예 안 걸 거면 비싼 코인 주고 그들을 부를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 정도면 진짜 스스로가 그 자리에 있는 기분이 아니라 마치 영화 속에 잠깐 들어온 느낌을 받을 것이다.
내 여자들과 나만 파티에 참석했다면 제대로 환상을 걸어달라고 했겠지만, 가족까지 초대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일을 진행할 순 없었다.
연주자들은 상황을 알기에 납득을 했으나 자신들의 연주를 100% 즐길 수 없는 상황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들의 환상은 시각, 촉각, 후각까지 모두 생생하게 재연이 가능하단다.
현실적인 문제로 가보고 싶지만 포기했던 여행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
‘더군다나 저 사람들은 여러 차원을 다니면서 지구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을 봤겠지.’
때를 잘 맞췄는지 드디어 푸올 쉐프의 야심작이자 시그니처 요리가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와…. 예쁘다.”
“향기도 독특한데?”
“어떤 맛일지 넘 기대되요.”
푸올 쉐프의 요리를 이미 맛본 적 있는 사람들 모두 시그니처 요리의 등장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으으음~!!!!”
“히야~”
“와…이것도 녹네, 녹아.”
그리고 푸올 쉐프의 시그니처 요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죠?”
“생전 처음 먹어 보는 맛이야.”
“아무리 처음 먹어 보는 요리라도 비슷한 맛이 생각나야 정상인데, 이건 정말 처음 먹어보는 맛이네.”
이 차원에서는 나오지 않은 향신료를 썼으니 그럴 만도 하다.
“다들 괜찮아?”
“말해 뭐해. 괜히 이 요리가 메인이 아니네. 네 말 듣고 먹을 배를 좀 남겨두길 잘했어.”
“난 이제 더 들어갈 곳이 없어. 너무 배부르다.”
“해솔이가 준비를 단단히 했네.”
“그나저나 이렇게 먹기만 해도 되나 모르겠네. 축하 파티라고 하지 않았어? 나는 케이크 자르는 것만 생각했지 이런 진수성찬을 먹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요.”
명분 없이 파티 하는 것만큼 재미없는 일이 없는 법.
이 파티가 열린 근본적인 이유는 정화씨의 쌍둥이 임신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앞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스케줄을 끝내고 파티에 오기로 한 민영 누나가 그 주인공이다.
“미안~! 내가 많이 늦었지?”
양반은 못 되려는가.
민영 누나 얘기를 해서 그런지 때마침 민영 누나가 파티장에 도착했다.
급하게 와서 그런지 민영 누나는 다른 여자들처럼 꾸미고 오지는 못했다.
“어서 와요. 누나 몫은 따로 준비해뒀으니까 이리 와서 앉아요.”
“고마워. 완전 배고팠는데…! 냄새가 너무 좋은데? 나 완전 많이 먹을래! 앗! 안녕하세요, 어머님. 한민영이라고 합니다.”
“어머! 민영씨! 실물이 훨씬 예쁘네.”
“나 민영씨 팬이에요! 싸인 해줄 수 있어요?”
민영 누나를 처음 본 가족들이 그녀의 등장에 난리가 났다.
나한테는 사랑하는 누나일 뿐이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톱스타 여배우다 보니 그랬다.
민영 누나가 한동안 부쩍 인기를 끌고 배고픈 그녀를 테이블에 앉혀 푸올 쉐프의 시그니처 음식을 먹였다.
“어머,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
민영 누나도 푸올 쉐프의 음식을 먹고 깜짝 놀라 토끼 눈이 됐다.
나는 민영 누나가 적당히 배를 채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모두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식사 중에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와아~!!
사람들이 내가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환호하며 박수를 쳐준다.
“오늘 파티는 가족들끼리 즐기기 위해서도 있지만 쌍둥이를 임신한 정화씨를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아~ 맞다. 그렇네~!”
“축하해요, 정화씨!”
사방에서 축하 인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정화씨가 나에게 하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젓는다.
“겸사겸사 서로 이렇게 얼굴 보고 만날 일이 거의 없을 것 같아서 이 자리를 만들어봤습니다. 가족이잖아요. 자주 만나지는 못하겠지만, 만났을 때 화기애애하게 웃으면서 지낼 수 있는 관계가 됐으면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사자가 싫어하겠지만 쌍둥이를 임신해준 정화씨한테 박수와 함께 축하 인사 한 번씩만 부탁드립니다.”
짝짝짝짝짝!
와아~~~
“축하해요!”
“언니, 오늘 너무 예뻐요!”
“하으으….”
정화씨는 빨개진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결국 자기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한 마디 하세요, 정화씨.”
“그치만….”
가족들 앞인데 뭐가 부끄럽냐고 열심히 설득했다.
기운을 북 돋아 주고자 예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정화씨의 손을 내려서, 그 손을 꼬옥 잡았다.
“괜찮아요. 다들 축하해주고 있잖아요.”
“…하여튼 짓궂다니깐. 내가 곤란해 하는 걸 재밌어 하고 있잖아.”
“하하. 티 났어요?”
정화씨가 곤란해 하는 걸 재밌어한다기 보단, 응원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가족 모두가 있는 앞에서 당당하게 얼굴을 내밀고 쌍둥이 엄마로서 선언을 한다면, 그녀의 부족한 자존감과 자신감을 채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내가 계속 용기를 내라고 응원을 해준 보람이 있는지 정화씨가 겨우 고개를 들어 내 옆에 섰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모두에게 말했다.
“다들 축하해줘서 고마워요. 나이 많은 제게 왜 이런 축복이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찾아온 기적을 소중하게 지키고 행복하게 키워내 보일게요. 그리고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준 해솔이한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항상 고마워, 해솔아. 그리고 사랑해.”
짝짝짝짝짝!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박수가 터진다.
예상하지 못한 정화씨의 용기 있는 고백에 나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실 내 여자의 가족 분들에게 정화씨와 주아 누나 그리고 나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게 쉽지 않았다.
정화씨는 아내의 엄마를 여자로 삼았다는 점에서 내 평판이 깎일까 걱정했고, 나는 정화씨가 그들에게 욕을 먹을까봐 걱정이 됐으니 말이다.
특히 내 여자들의 가족 반응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서 이 자리는 정화씨가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곳이었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제가 더 고맙죠. 용기내줘서 감사해요.”
정화씨의 축하 인사가 끝나고 테이블 의자에 다시 앉은 그녀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수줍게 웃는 모습이 왜 이렇게 예쁜 건지.
장인어른, 장모님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그녀에게 찐한 키스를 했을 것이다.
‘계획한대로 정화씨한테 도움이 되긴 한 것 같은데….’
이번 파티의 경험을 계기로 정화씨가 어떻게 변화 된 모습을 보여줄지 예의 주시 할 필요가 있었다.
‘다들 반응이 좋기는 한데…. 사람 속을 어떻게 단숨에 알겠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
내 여자들은 상관없지만, 오늘 함께 동행한 그녀들의 가족이 문제인 거다.
내 여자들은 정화씨를 받아 들인지 오래지만, 그녀의 가족은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내가 없는 곳에서 정화씨를 뭐라고 할지 알 수 없으니 이런 식으로라도 보여줘서 정화씨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가장 중요한 일까지 모두 끝나고 나자 슬슬 연주자들을 대기시키기로 했다.
다들 식사를 끝내고 디저트와 주류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기에 지금 타이밍이 적절해보였다.
“오, 뭐에요?”
“악기? 연주자들이네?”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한 공연이에요.”
“아! 그때 좋아하는 노래 있는지 물었던 게 이거 때문이었어?”
생각나는 게 있었는지 아현이가 물었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대답을 해줬다.
“응. 정답이야.”
평범한 사람들이 클래식을 자주 듣지는 않다보니 연주자들에게 이곳 클래식을 연주해 달라고 할 이유가 없었다.
누구도 즐기지 못할 파티가 어떻게 파티일 수 있겠는가?
때문에 나는 내 여자들에게 좋아하는 곡이 있는지 물었고, 목록 중에서 파티장에서 연주하기 알맞은 4개의 곡 악보를 연주자들에게 미리 제공했다.
선택 된 곡 모두 길게는 4분이 넘지 않은 곡들이었기에 전부 듣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악기로 연주하는 걸 직접 귀로 들으니까 다르긴 하다.”
“나는 이런 식으로는 처음 들어봐.”
내가 악보를 제공했을 때가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었는데도 연주자들은 몇 년은 연주해온 곡처럼 능숙하고 완벽하게 연주를 해줬다.
모두들 귀에 익은 노래들이었기에 관심도도 최고였다.
클래식을 연주해달라고 했다면 이렇게까지 관심을 얻을 순 없었을 거다.
‘역시 곡 선택을 잘 했단 말이지.’
연주자들의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건 내가 요청한 4개의 곡이 지나고 난 이후였다.
연주를 시작하기 전, 악단장으로 보이는 연주자가 무대 앞에 서서 모두에게 말했다.
“저는 과거에 시한부였습니다.”
말의 첫 시작이 꽤 경악스럽다.
그는 관객의 반응에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이어서 말했다.
“지금은 다 나아서 멀쩡하니 걱정해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시한부였던 놈이 어떻게 이 자리에 있는 거냐고 묻는다면 제게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시작부터 사람들이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는 주제였다.
우리들은 어느새 눈앞에 있는 음식도 잊고 악단장의 말에 집중했다.
“그날의 기억은 애매모호합니다. 꿈을 꿨던 건지, 아니면 정말 신께서 제게 기적을 내려주신 건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 거대한 나무를 봤고, 그 경이로움에 눈물을 흘렸죠. 그리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광경이 제 생의 마지막이 될 테니까요.”
익숙한 반전이 일어났다.
“정신을 잃었던 제가 깨어났을 땐 병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갉아먹고 있었던 병이 씻은 듯이 나았죠. 저는 지금도 이렇게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중입니다.”
시한부였던 사람이 기적과도 같은 경험을 했다는 말에 사람들은 긴가민가한 반응을 했다.
쉽사리 믿기엔 너무 허황된 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연주할 곡은 제가 봤던 기적과도 같은 광경을 영감으로 작곡한 곡입니다.”
짝짝짝짝짝!
악단장의 말에 사람들이 그제야 박수를 쳤다.
왜 이런 설명을 했는지 이해가 된 것이다.
“이 곡을 감상하시면서 부디 여러분들에게도 기적이 찾아오길 바라겠습니다.”
짝짝짝짝짝짝!!
연주가 시작 된다.
환상을 곁들인 그들의 ‘진짜’ 연주가.
나는 자세를 바로하고 찾아 올 기적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
우리의 앞에 악단장이 말했던 거대한 나무이자 기적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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