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35화 (435/849)

〈 435화 〉 #64. 웨딩 (4)

* * *

“고마워. 덕분에 다들 만족스럽게 골랐어.”

­후후, 좋아했다고 하니 보람이 있네. 항상 도움을 받는 입장이라서 뭐라도 해주고 싶었거든.

나와 다시 사귀기 시작한 조안나는 여전히 바쁘게 자기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적어도 이주일에 한 번은 그녀와 꼭 만나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을 했다.

그것도 최악의 상황에서야 그렇지, 우리는 꽤 자주 만나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녀가 내 여자가 됨으로서 내 능력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장거리 연애가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걸 알고 한 번 헤어졌던 우리이기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만나려고 애를 쓰는 편이었다.

“패션 위크는 어땠어?”

­환상적이었지. 널 꼭 초대하고 싶었는데 아쉬워.

“미안해. 다음에는 꼭 갈게.”

패션 위크(Fashion week)는 패션 업계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로, 1주일 동안 각종 패션 디자이너 및 브랜드의 패션쇼가 집중적으로 열리는 기간이다.

각종 미디어와 바이어들에게 다음 시즌의 신상을 선보여주는 큰 행사인데,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 그녀가 진행하는 패션 위크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내가 보내주는 옷은 꼭 입어줘야 해.

“그럼. 항상 잘 입고 있어. 덕분에 옷 잘 입는다고 팬들한테 칭찬받아.”

­너한테서 영감을 받아서 만들어진 옷이니까 안 어울릴 수 없지. 내 새로운 꿈 알잖아.

조안나의 브랜드가 안정화에 접어들고 있는 요즘.

그녀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다.

“내가 입는 모든 옷이 자기가 만든 거였으면 한다는 거?”

­응!

조안나는 옷에 관련 된 영감을 받을 때마다 모두 내 덕분이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조안나가 워낙 천재라서 가능한 일인데 말이다.

만약 내가 조안나에게도 아현이처럼 없는 재능을 선물해줬다면 그녀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안나는 그런 경우가 아니지 않은가?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진정한 천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조안나를 서슴없이 손에 꼽을 것이다.

주아 누나와 민영 누나도 자기 분야에서 대단한 실력자지만, 조안나처럼 천재성이 돋보이는 건 아니었다.

­자기가 다른 사람 옷 입고 있는 걸 보면 기분이 안 좋아져.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 옷을 입어야 한다는 건 알지만 말이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은 조안나가 만들어 준 옷이야.”

­흐흥,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까 기분 좋네.

“평소에 조안나가 준 옷 입으면서 불편하다고 생각해본 적 한 번도 없어.”

내 체형을 잘 아는 조안나가 만들어준 옷이라 맞춤옷이나 다름없었다.

그 중에는 정말 잘 뽑힌 옷은 그녀의 패션쇼에 올라가기도 한다.

브랜드에서 판매도 하고 말이다.

­요즘은 계속 트레이닝 복만 입는 거야?

“연습 아니면 밖에 잘 안 나가. 멤버한테 좋지 않은 일이 생겨서 경호원이 항상 따라 붙거든.”

조안나는 내 옷장에 자신의 옷들로 꽉꽉 채우는 걸로 부족했는지 하루에 한 번씩 내가 입는 옷을 사진으로 찍어서 확인 시켜달라고 했다.

‘혹여나 미스매치한 게 있으면 고쳐주겠다는 취지인데….’

요즘에는 연습 때문에 입는 옷이 트레이닝 복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안나도 탐탁치 않아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조만간 내 전용 트레이닝 복을 만들어서 보내주지 않을까 싶다.

‘턱시도까지 만들어주는 여자인데 트레이닝 복쯤이야….’

그녀가 이번에 웨딩드레스와 함께 온 목록 중에는 내가 입을 턱시도도 준비 되어 있었는데, 그 턱시도는 조안나가 직접 만든 옷이었다.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누가 보면 호구 아니냐고 물을 행동인데, 조안나는 내가 다른 사람이 만든 턱시도를 입는 게 더 싫다고한다.

‘그런 정성을 보여주는데, 매일 사진 찍는 걸 귀찮아하면 사람이 아니지. 더군다나 조안나한테 확인받으면서 팬들 반응도 좋았고.’

내 입으로 말하기 뭐하지만, 옷을 못 입으면 그걸로 기사가 나는 놈이 바로 나다.

적어도 그녀에게 확인을 받고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워스트 드레서(Worst dresser)로 기사가 난 적은 없었다.

팬들도 내가 센스있게 옷을 잘 입는다며 칭찬이었고 말이다.

‘옷 핑계로 겸사겸사 연락도 매일 챙길 수 있어서 좋단 말이지.’

아무리 연인이지만, 매일 용건도 없이 연락을 챙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매번 옷을 검수해준다는 이유로 연락을 주고받으면,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하는 서운함이 조금이라도 덜어진다.

괜히 나에 대한 관심이 적어졌다면서 서운해 하는 것도 방지할 수 있고 말이다.

‘내가 진짜 관심이 없어서 방치한 게 아닌데 말이지.’

남자의 로망은 하렘이라는데, 현실성을 곁들여서 생각해보면 마냥 좋은 것도 아니었다.

‘연락이 동시에 3명한테 와봐. 3명이 아니라 4명이면 그때부턴 답이 없다고.’

솔직히 누구 한 명을 까먹어도 내 잘못은 아니지 않나 싶다.

제각기 다른 내용으로 메시지가 오고, 그걸 하나하나 반응을 해줘야 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 시간을 포기한지 오래였다.

‘여기와선 혼자 있었던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네. 남자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매번 예쁜 여자를 만나는 건 행복하고 좋지만, 이렇듯 현실적으로는 버거워질 때가 있다.

만약 상점에서 여러 아이템을 구매하지 못했다면 이미 내 연인 중 누군가와 싸워서 헤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여자들 탓을 할 수도 없다.

‘내 욕심으로 이렇게 많이 끼고 사는 건데 투정을 부리면 강아지 아들이지.’

내가 저질러 놓은 일들이니 책임을 지는 것도, 힘든 것을 내색하지 않는 것도 내 책임이었다.

­트레이닝 복 내가 만들어줘도 돼?

“트레이닝 복을?”

언젠가는 만들어주지 않을까 했던 트레이닝 복을 기어코 조안나가 만들어주겠다고 나섰다.

“이러다가 속옷까지 만들어주겠다고 하는 건 아니지?”

­마음 같아서는 속옷도 만들어주고 싶은데. 아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속옷까지 만들어서 같이 보낼게.

이런.

괜히 속옷 얘기를 했다가 조안나한테 일만 더 만들어줬다.

­그나저나 결혼식에 초대는 안 할 거야?

“결혼식 초대? 설마 오려고?”

­응! 갈 건데? 설마 나 초대 안 해주려고 했어?

“오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 못했어. 바쁘잖아.”

패션위크가 끝났다고 해서 조안나의 일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그녀에겐 또 다른 일이 계속해서 밀려들고 있었다.

­미리 스케줄 정리 다 해놨어. 결혼식은 꼭 참가할 거야. 네 가족들 만나보고 싶어. 아이도 있다며? 그 아이들도 분명 너처럼 반짝반짝 빛나겠지?

“나는 당신이 걱정 돼. 내 가족들에 대해 밝히면서 당신이 상처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

조안나 입장에선 갑자기 뜬금없이 사귀던 남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해야겠다며 웨딩 드레스를 구해 줄 수 없냐는 황당한 말을 들은 거였다.

결혼식을 올리는 대상이 ‘여자’가 아니라 ‘여자들’인 점도 충분히 충격 받을 이유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쿨한 태도라니.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증거가 빈약했다.

‘설마 여자어 같은 건 아니겠지?’

괜찮다고 해놓고 안 괜찮은 그녀들의 화법은 남자들을 식은땀 흘리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No problem! 전혀 아니야. 나는 그런 일로 당신한테 실망하지 않아. 그럴 거였으면 린이랑 당신을 공유하지도 않았을 거야.

“아!”

그러고 보니 이 여자, 메이 린을 침대에 데려 온 전적(?)이 있다.

­나는 당신 아이가 궁금해. 기대감 때문에 일부러 사진도 안 보겠다고 했어. 알지?

“응.”

내게 아이가 있다는 말에 환호성까지 지르면서 좋아하던 조안나.

사진을 보여주겠다고 했는데, 처음은 직접 만나보고 싶다며 거절을 했다.

­네가 내 뮤즈인데 뮤즈의 아이가 있대! 그 아이들이 나한테 어떤 영감을 줄지 설레서 잠도 잘 안 왔다고.

“…정말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네.”

일에 진심을 넘어 삶을 갈아 넣고 있는 조안나는 내 아이들이 나처럼 영감을 줄 거라고 기대하는 중이었다.

자기 남자가 아이가 있다는데 그 아이가 어떤 영감을 줄지 기대하는 여자라니….

문득 내가 조안나에게 착취를 당하고 있는 건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 ? ?

조안나가 결혼식에 참석하겠다고 했으니 그녀의 존재를 주아 누나에게 알려야 하는 과제 하나가 더 얹어졌다.

길게 끌 것도 없다는 생각에 주아 누나를 만나러 왔을 때 조안나의 존재를 알렸다.

“너 도대체 여자를 몇이나 숨기고 다니는 거야?”

주아 누나는 자꾸만 툭툭 튀어나오는 내 여자친구 목록에 눈을 흘겼다.

“흠흠.”

“엄마가 이런 걸로 화내지 말라고 해서 참기는 하겠는데! 하아~ 얼굴 값 한 번 제대로 하는 구나, 너. 그래서 그 여자는 또 뭐하는 여자야?”

“이번에 웨딩드레스 구하는데 도움을 준 사람이야.”

“…패션업계 쪽 사람?”

“응. 조안나라고 브랜드 운영하고 있어.”

“설마 네가 매일 입고 다니는 옷 만들어주는 그 브랜드?”

“응.”

“어쩐지…아무리 메인 모델로 계약을 했어도 신경을 너무 많이 쓴다 했더니. 그 브랜드 사장이랑 눈이 맞아서였어. 아무튼 그 여자가 우리 결혼식에 참석하고 싶다고 했다고?”

“응. 그래서 초대할까 해.”

“그 사람이 거길 와서 뭐하려고? 다른 여자랑 결혼하는 거 보는 게 뭐 좋은 일이라고.”

“질투 심하고 그런 스타일 아니야. 그랬으면 초대 해달라고 해도 내가 안 된다고 했을 거야. 이번에 흔쾌히 웨딩드레스 구하는데 도움 준 거 보면 알잖아.”

“흐음….”

“누나가 결혼식 전에 한 번 봐봐. 그래도 불편하면 내가 잘 말해서 거절할게.”

“외국에 있다가 여기까지 온 사람인데 그냥 돌려보내라고? 본된 본처라고 욕 먹을 짓은 안 돼. 그냥 초대하겠다고 해. 그리고 가족들한테 전부 소개시키기 전에 나랑 미리 만나고.”

“그래도 되겠어?”

“그럼 안 되겠니? 으이구!”

주아 누나가 시원하게 허락을 해줘서 다행이다.

이제 누나에게 말하지 못한 여자는 메이 린과 신애 두 명.

신애는 아직 사귄다기 보단 밀당을 하고 있는 ‘썸’ 단계이니 미룬다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거다.

“너 숨기는 여자 더 있지?”

“…몰라.”

“시치미 떼는 것 자체가 더 있다는 거네. 너 밖에서 애 낳고 데려오는 건 안 돼. 그 전에 무조건 말해야 돼. 알겠어?”

“넵.”

“에휴, 이러다가 질 나쁜 여자한테 걸려서 된통 당할까봐 걱정 되네. 호구 같으면서도 여자 좋아해서….”

“에이, 누나 내가 호구 스타일은 아니지.”

이 세상에서 나를 호구에 순딩이로 보는 건 주아 누나밖에 없을 거다.

예전부터 주아 누나는 나를 챙겨줘야 할 동생처럼 여겼다.

침대 위에서는 철저하게 나한테 지지만 말이다.

일명 낮이밤저랄까?

“허이구~ 잘도 그렇겠다. 아무튼 아랫도리 잘 챙기고 다녀. 아무한테나 휘두르다가 진짜 큰일 나. 질 안 좋은 여자 걸리면…알지? 네 능력만 너무 믿고 있지 말라구.”

“네엡. 조심하겠습니다!”

아무한테나 아랫도리 휘두르고 다니진 않지만, 내가 여자를 많이 만나는 것도 사실이었음으로 얌전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언제 온대? 당장 며칠 후가 결혼식이잖아.”

“어…아마 지금쯤 도착하지 않았을까?”

조안나의 행동력은 상상 이상으로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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