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7화 〉 #64. 웨딩 (6)
* * *
“실례일 것 같은 질문이긴한데,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있거든요.”
“물어봐요! 괜찮아요.”
조안나는 기분이 좋았는지 뭐든 다 들어보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왔다.
“결혼식은 왜 오겠다고 한 거에요? 해솔이한테 꼭 참석하고 싶다고 했다고 들었어요.”
“음, 별 중요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아니, 중요한 이유가 맞나?”
나도 이 부분은 궁금하던 일이었기에 조안나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보고 싶었거든요. 해솔이의 가족들.”
“우리가 보고 싶었다고요?”
“네! 매우 중요한 거에요! 나는 해솔이랑 헤어질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까 가족이 어떤 사람들인지 보고 싶었던 거에요. 해솔이랑 한 번 헤어지고 나서 많이 힘들었어요. 저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요.”
“헤어진 적이 있다고요?”
주아 누나에게 조안나와 관련 된 얘기를 해준 적이 없었기에 내 말을 듣고 깜짝 놀라했다.
“네! 그땐 해솔이가 말 안 해줬어요. 장거리 연애는 힘드니까 서로를 위해 헤어지는 게 낫다고 본 거에요. 그리고 운명처럼 다시 만나게 됐을 때, 우리는 아직도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어요.”
“흐응~ 그랬구나. 헤어진 적이 있다는 게 놀랍네요. 해솔이가 좀 특별하잖아요.”
“맞아요! 마성의 남자야. 해솔이랑 섹스하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쿨럭!
조안나의 노골적인 단어 선택에 나도 모르게 기침이 나왔다.
엎친데덮친 격으로 주아 누나가 조안나의 말에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쟤가 섹스를 너무 잘하긴 하죠. 아마 쟤랑 한 번 잔 여자는 다른 사람으로는 절대 만족 못 할 거에요.”
“자기랑 섹스를 하면 영감이 떠올라요! 우리 브랜드가 남성들한테 인기가 많은 것도 해솔이 덕분이 커요.”
조안나가 운영하는 브랜드 ‘안나’는 20대~30대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브랜드 ‘안나’에서 나오는 옷들은 나를 모티프로 삼아서 그런지 유난히 섹시한 매력이 있었다.
여자가 봤을 때 남성에게 설레는 부분을 은근하게 자극해주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여자가 아쉽지 않은 남자들이지만,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을 싫어할 남자는 없었다.
“섹스를 하면서 영감을 받아서 옷이 그렇게 야했던 거에요?”
주아 누나는 저도 모르게 필터링 없이 말해버렸고, 조안나는 꺄르륵 웃으면서 그 말에 반응했다.
“맞아요. 그래서 인기 있는 거에요. 남자들도 여자한테 어필이 되는 걸 마냥 싫어하지 않거든요. 진한 관심은 사양하지만, 내 매력 있는 모습에 관심이 있는 건 좋아! 라는 게 요즘 트렌드에요. 주아씨 혹시 패션에 관심이 있어요?”
“없다고는 못할 것 같아요.”
아름다운 외모에 그녀 is 뭔들이긴 하지만, 그녀는 여배우들 중에서도 옷 잘 입는 패셔니스타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스케줄을 정할 때도 패션에 관련 된 일은 거절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아쉬워요! 패션 위크가 끝난지 얼마 안 됐는데. 다음에는 주아씨 초대할게요! 해솔이는 이번에 못 왔어요.”
“아~ 얘가 요즘 좀 바빴거든요.”
“응, 그렇다고 해서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주아 누나와 조안나 사이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흐른다.
나는 그 흐뭇한 분위기에 더 이상 걱정 할 필요가 없겠구나 싶어 안도감이 들었다.
주아 누나가 조안나를 좋게 봤다는 건 내 집으로 태양이를 부르면서 확실하게 증명이 되기도 했다.
나의 미니미라 볼 수 있는 태양이의 등장에 조안나가 써드 뮤즈로 태양이를 삼아 버리는 예상 외(?)의 사건이 일어나긴 했지만, 조안나는 우리 가족들 사이로 무사히 합류하게 되었다.
? ? ?
결혼식.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 행복한 시간.
그리고 여기에, 결혼식을 올리는 남자가 있다.
하객이 없고, 주례도 없는 다소 빈 곳이 많아 보이는 결혼식.
다만 그 빈 곳을 신부로 채워 넣으려고 하는지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성의 숫자가 무려 셋이나 됐다.
“신부들이 심상치가 않게 예쁘더라.”
“신랑 얼굴은 더 미쳤어.”
결혼식 진행을 돕기 위해 하루 파견 된 일꾼들은 신부가 셋이라는 사실에 놀라기보단 하나같이 미인인 신부와 놀라울 정도로 미남인 신랑의 얼굴에 놀라고 있었다.
다른 차원에서 파견 된 일꾼이지만, 미의 기준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탓이다.
“근데 결혼식 맞는 거지? 왜 하객이 저것밖에 없어?”
“몰라. 걍 일해. 돈만 주면 됐지. 챙겨야 할 사람이 얼마 없어서 편하잖아.”
극소수의 하객들만 있는 결혼식장.
축의금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결혼식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철저하게 준비가 되어 있었다.
흰색 융단이 깔린 웨딩 로드, 그 주변에 아름다운 꽃들이 장식 되어 있고, 웨딩 홀에서 가장 압도적인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외형물이 천장에 달려 있었다.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는 샹들리에다.
하늘에 있는 은하수를 이곳에 가져다 놓은 것처럼 화려한 샹들리에.
일을 하는 직원들도 압도되어 넋을 놓고 구경을 할 정도였다.
결혼식이 시작 된다.
이곳저곳 빈 곳은 많지만, 다행이 사회자까지 없는 건 아니었는지 무대 앞에 누군가가 선다.
“사회자도 예쁘네?”
“오우씨, 쌔끈하구만.”
무대 위에 나타난 여자는 남자라면 침을 꼴깍 삼키게 만드는 섹시한 매력을 갖춘 여성이었다.
섹시함은 언 듯 잘못 매치하면 천박해 보일 수 있지만, 사회자로 나온 여성은 천박하기보단 고급스러운 기품이 묻어나왔다.
섹시하면서도 기품있는 여자라니.
“귀족 마나님 같구만.”
“흐흐….”
무언가 생각이 난 게 있는지 사회자를 보며 침을 꼴깍 삼키는 일꾼들.
“잡담하지 말고 일해! 새끼들이 빠져가지고. 짤리고 싶어?!”
그때, 일꾼 반장이 와서 잡담을 나누고 있는 일꾼을 향해 도끼눈을 떴다.
“이크! 죄송합니다!”
“죄, 죄송합니다.”
일꾼들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일을 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식이 시작 되었다.
“신부 진주아 양과 신랑 진해솔 군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신랑 신부 입장곡이 틀어지고, 사회자가 신랑과 신부의 입장을 선언한다.
신부 진주아와 신랑 진해솔이 팔짱을 낀 채로 함께 걸어간다.
얼마 없는 하객들이 박수를 쳐주면서 저마다 결혼식을 축복해주었다.
입장이 끝난 신랑은 신부를 잠시 두고, 다시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두 번째 신부가 신랑을 맞이한다.
“이번에는 신부 로즈양과 신랑 진해솔 군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같은 과정이 다시 한 번 반복된다.
“마지막으로 신부 남정화양과 신랑 진해솔 군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그렇게 세 명의 신부가 모두 웨딩로드를 걸어 도착하고나서야 신랑도 신부들이 있는 곳에 설 수 있었다.
신부들은 고생한 신랑을 기꺼이 환영해준다.
이후로는 대단히 특별할 것 없는 결혼식이 진행 됐다.
세 사람이 잘 살겠다는 혼인서약, 성혼선언문을 낭독하고 축가로는 지인인 이아현과 한민영이 준비한 무대가 있었다.
두 사람 다 가수 뺨치는 실력을 보여준 덕분에 결혼식 분위기는 점차 무르 익어갔다.
부모님께 인사하는 순서는 넘어갔고, 내빈들에게 찾아줘서 감사하다는 인사 또한 넘어갔다.
이곳에 참석한 소수의 인원들은 모두 신랑의 여자들이어서 그렇다고 들었다.
그리고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는 지금부터였다.
본격적으로 일꾼들이 준비 되어 있던 음식을 테이블에 나르기 시작한 것이다.
하객이 많은 게 아니었기에 뷔페를 준비하지 않고 코스 요리를 준비했다.
사실 뷔페보다 코스 요리가 훨씬 퀄리티 좋은 건 당연한 일.
더욱이 이 요리는 엄청 유명한 요리사를 고용한 거라고 들었다.
‘향기부터가 엄청나구먼. 크, 한 입만 먹어봐도 소원이 없것는디.’
음식을 나르는 것만으로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나를 어서 맛보라며 유혹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꾼들은 감히 음식에 손을 대지 못했다.
만약 이 사실을 반장에게 들킨다면 일자리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집에 호랑이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으므로, 일꾼은 꾹꾹 충동을 억눌렀다.
“음식 나왔습니다.”
당연하지만 일꾼들이 서빙한 음식을 먹은 하객들은 천국을 노닐고 있었다.
“와~ 파티에서 먹었던 거랑 좀 다른 느낌인데, 이것도 맛있다.”
하객들이 음식을 먹고 있는 사이에 신부들과 신랑은 가벼운 이브닝드레스로 갈아입고 나타났다.
“언니, 너무 예뻐요!”
“와~ 천사다 천사.”
“이건 무조건 사진으로 남겨야겠는데?”
신부들의 등장에 난리가 난 하객들이 저마다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다.
결혼식을 기념할 수 있는 건 사진뿐이라는 걸 알기에 다들 지금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느라 정신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일꾼들의 일은 여기까지였다.
“자, 이제 우리는 돌아가자고. 아, 그리고 이것들 하나씩 가져가게. 고용주님께서 오늘 수고했다고 도시락을 하나씩 제공해주셨네.”
“도시락? 아까 우리가 날랐던 그 요리인 가요?”
“당연하지. 다들 먹고 싶어서 침만 꼴깍꼴깍 삼키던 걸 본 거라고. 내가 그래서 적당히 하라 했지? 으이구! 내가 창피해서 됐다고 사양하려다가 너희들 생각나서 참은 거야. 그러니까 가져가서 고용주님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먹도록!”
“가,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고용주님한테 인사라도 하고 가야 하는 건 아닌지….”
“우리가 괜히 말 거는 게 더 실례다. 이대로 깔끔하게 사라지는 게 도움 주는 거니까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이동하자고.”
반장의 말에 납득을 한 일꾼들이 도시락을 하나씩 들고 차원을 이동했다.
일할 때만 해도 다 가진 채로 잘 먹고 잘 사는 고용주가 부러워서 좋은 소리가 안 나왔다.
치졸한 질투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렇기에 도시락을 받아 든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니 고개를 들 수가 없는 것이다.
일하는 내내 질투만 한 게 아니라 동료와 함께 그의 지인들에게 저질스러운 성희롱 말까지 하지 않았는가?
‘부끄럽구만, 부끄러워. 젠장. 뭐 하나 나은 부분이 없으니….’
고용주가 대인배와 같은 인성을 보여줌으로 자신의 치졸하고 초라한 모습이 대비 되고 있었다.
오늘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일꾼의 어깨가 축 늘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 ? ?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나름 철저하게 준비를 해서 해매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직접 닥치고 보니 그렇지가 않더라고.
'잘 끝난 거겠지? 기억이 잘 안 나네. 어휴~'
솔직히 데뷔 무대 할 때보다 더 떨렸던 것 같다.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심장이 너무 뛰어서 이대로 터지는 거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 혼자만 긴장한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큰 실수는 안 했던 것 같은데. 나중에 잘 했는지 물어봐야겠어.'
나와 함께 식을 진행하는 신부들도 모두 긴장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사실 이번 결혼식은 우리끼리 하는 이벤트성 결혼식이기에 ‘진짜’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일단 하객들 없이 우리끼리만 올린 결혼식이라는 점이 크다.
원래 결혼식이라는 게 이 사람과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겠다는 것을 주변 지인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이 목적 아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이 결혼식을 ‘가짜’로 여기는 이는 없었다.
‘진짜 결혼식은 나중에 다시 할 거긴 한데….’
그렇다고 오늘 우리가 올린 결혼식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여길 수는 없다.
이렇게라도 식을 올린 덕분에 집에 제대로 된 가족사진을 걸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는가?
사진을 찍을 때 신부랑 전부 다 같이 찍은 사진도 있지만 1:1로 둘이서 찍은 사진도 있었다.
그 사진은 각자의 집에 크게 현상해서 벽에 걸릴 것이다.
내 집에는 모두 함께 찍은 사진을 걸어둘 거다.
'좋네.'
그동안 바래왔던 가족의 모습이 지금에서야 제대로 갖춰지기 시작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벤트로 생각하며 가볍게 준비를 시작했던 결혼식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식을 올리자는 말에 거절을 했던 다른 여자들도 오늘 식을 올리는 걸 보고 나서 후회가 들었는지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녀들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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