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1화 〉 #65. 조폭 처제의 유혹 (2)
* * *
“아니, 넌 거기 앉아 있어. 아직 볼 일 안 끝났으니까.”
“…네, 언니.”
조직의 보스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관씨는 연주 누님의 말에 거부하지 않았다.
최관씨가 다시 자리에 앉는 사이, 연주 누님이 나에게 물었다.
“오늘 타이틀곡 최종 결정 회의 있었던 걸로 아는데.”
“네, 결정 됐어요.”
아무래도 연주 누님이 사장으로 직위를 옮겼다 보니 현장 일에 끼어드는 게 쉽지 않은 위치였다.
사장님이 오늘 우리가 하는 회의실에 들어왔다고 생각해봐라.
나한테나 연주 누님이 편한 거지, 직원들에겐 나라님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나는 잠시 연주 누님에게 회의에서 결정 되었던 일을 얘기했다.
“아현이 곡은 나도 들어봤어. 실력이 점점 는다 싶더니 이젠 우리 회사가 품기엔 어려울 정도로 커져버렸더구나. 슬슬 아현이가 작곡했던 곡이 나오기 시작하면 금방 유명해질 거야.”
“저는 아현이가 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봤으면 좋겠어요. 제가 봤을 때 아현이는 더 클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거든요.”
지금 아현이는 내가 선물해준 재능에 휘둘리고 있었다.
갑자기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영감에 허겁지겁 곡을 만드는 게 전부였다.
내가 바라는 건 그 영감을 기본으로 받아서 더 퀄리티 높은 음악을 완성했으면 하는 거다.
나는 아현이가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아현이한테 제안을 해보려고요. 유학 가볼 생각 있냐고요.”
어차피 유학을 간다 해도 아현이의 얼굴을 못 보는 건 아니다.
만나는 빈도수는 같을 것이고, 그녀가 바랄 때면 잠깐잠깐씩 국내로 이동시켜줄 생각도 있다.
아마 그렇게 해주면 고향에 대한 향수병도 앓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유학에 걸림돌이 되는 유일한 방해는 언어 뿐.
다행스럽게도 언어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었기에 아현이가 음악을 좀 더 배우고 싶어할지 의향만 밝혀주면 되는 일이었다.
“회사 입장에선 너무 아쉬운 일인 걸. 전속 작곡가는 아니다만 아현이는 거의 전속 작곡가처럼 우리와 거래를 자주 했잖니. 유학을 떠나면 유능한 작곡가 한 명을 잃는 거나 다름없는 거야.”
“그래도 제대로 배워야 더 좋은 곡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사장 입장에선 어떻게 해서든 붙잡는 게 맞는데….”
연주 누님이 돌연 피식 웃음을 터트리곤 이어서 말했다.
“어쩐지 그럴 기분이 안 드는구나. 항상 일이 가장 중요했었는데 말이야.”
연주 누님의 말에 나도 모르게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진다.
아현이를 붙잡을 생각을 안 한다는 건, 그만큼 누님이 아현이를 ‘가족’처럼 여긴다는 뜻이 되는 거다.
“무례한 말일 수 있지만, 지금 그 모습이 더 보기 좋아요, 언니.”
최관씨의 말에 연주 누님이 고맙다는 듯 어깨를 두드린다.
“요즘 잘 지내고 있어요?”
저번에 파티에 참석했을 때, 워낙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대화를 나누는지라 최관과 오랫동안 터놓고 이야기를 나눠볼 틈이 없었다.
조직을 잇기로 하면서 그녀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요즘은 개인적인 생활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습니다.”
“잘 됐네요! 이럴 게 아니라 식사라도 하는 거 어때요? 그동안 잘 지내고 있는 건지, 힘들지는 않은지 많이 궁금했었거든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언제 한 번 현오를 만나볼 수 있을까요?”
“당연히 좋죠. 누님도 괜찮죠?”
“그럴 게 아니라 아예 지금 현오를 보러 가는 건 어떠니? 오늘 딱히 할 일 없다고 했었잖니.”
“지금요?”
“해솔이 너도 이후로 스케줄 없지?”
“네.”
정작 누님은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오늘 현오를 만나러 가려면 우리 둘이서 이동을 해야 했다.
“근데 너희들 언제 말 편하게 할 거야? 아직도 너무 깍듯하게 대하는 거 아니야?”
“아…형부가 예전에는 말을 좀 편하게 해주셨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는 다시 딱딱하게 거리를 두시더군요.”
“…제가요?”
그랬…었나?
솔직히 최관씨가 평범한 일반인도 아니고, 무려 조폭 보스인데다 연주 누님과 피가 섞인 친 자매 사이가 아니라는 점에서 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그녀와 나의 사이가 굉장히 애매모호하다는 점도 거리감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이고 말이다.
‘더군다나 일단 내가 나이가 어리기도 하잖아?’
내 진짜 나이에 이곳에서 보낸 시간까지 합친다면 내가 나이가 더 많긴 할 거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이 세계에 적응을 한 상태였고, 현재 내 나이에 대한 적응을 마친 상태였다.
“편하게 대해주세요. 전 그냥 연주 언니 동생일 뿐입니다.”
“그래요.”
“존댓말 말고 말도 편하게 해버려. 내외는 이제 그만하자고.”
“나만 편하게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아무리 처제라지만….”
“흠, 그건 해솔이 말이 맞지.”
“언니! 전 못해요. 애초에 보스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런 거에도 어머니 허락이 필요한 거니? 너는 어디까지 허락 받고 행동할 셈이야? 보스 자리를 이어 받았으니 독립할 준비를 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영 달라진 게 없구나.”
“…언니.”
“하라면 해. 보스가 된 녀석이 뭐가 무섭다고 형부한테 말 놓는 것도 못해? 너 그렇게 겁쟁이야?”
연주 누님의 거침없는 지적에도 최관씨 아니, 처제는 고개를 젓지 않았다.
“보스께서는 나이로 서열 따지는 분이 아니라는 거 아시잖습니까?”
“그 나이 먹고서도 여전히 서열 놀이 하는 게 뭐 그리 자랑이라고 이해해달라는 거니? 이래서 내가 그 양반이랑 대화를 안 하는 거다. 노인네가 나이를 먹어서 자기 고집을 꺾을 생각을 안 하고 남한테 강요만 하니까.”
“…….”
“어머니 욕을 하기 시작하면 언제나 그랬듯이 침묵하는구나.”
“죄송합니다.”
연주 누님의 불만에 동조하지 않는 처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침묵하는 것과 입을 무겁게 하는 것 외에는 없는 듯했다.
“아무튼 그래서 말을 편하게 하는 건 못하겠다는 거지?”
“…예.”
“그렇다니 해솔이 네가 이해하렴. 얘도 누굴 닮아서 고집이 이만저만 센 게 아니거든. 예전에도 내가 한 번 교통정리 해준 것 같은데, 둘 다 답답하구나.”
처제를 만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한 때는 현오를 두고 경계를 하던 사이였다가 뭐라 정확히 말 할 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가 흘렀을 때도 있었다.
‘내가 처제를 꼬시려고 했으니까.’
현오를 위해서 처제를 유혹하는 것 정도는 나에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그 계획을 실천하기 직전, 장모님이 습격을 받으면서 상황이 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현오가 클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닌, 처제를 보스로 삼기로 하자 굳이 처제를 유혹해야 할 이유가 사라져버렸다.
결국 내가 계획했던 일은 시작한 것도 아니고, 안 시작한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에서 끝이났다.
‘그래서 우리 사이가 애매해진 걸지도.’
확실히 무언가 결실을 맺은 게 하나도 없이 끝나버렸지 않은가?
그래서 마치 모든 게 없었던 일처럼 서먹서먹한 사이가 된 것 같다.
“오늘 둘이 아니, 현오까지 있을 테니 셋이서 좀 친해지도록 해. 그게 너희 둘한테 내주는 과제다.”
“과제요?”
“그래, 숙제 안 해오면 혼낼 거니까, 둘 다 잘 실천하도록 해.”
연주 누님이 곧 비서가 올 때가 됐다며 처제와 나를 방에서 내쫓아버렸다.
“…….”
“…….”
연주 누님과 시간을 보내려고 온 거였는데, 엉뚱하게 처제와 시간을 보내게 생겼다.
계획 되지 않은 일이긴 하다만 마음에 들지 않은 계획은 아니었다.
“어…일단 현오가 뭐하고 있는지 확인해볼게.”
“네.”
현오를 맡고 있는 칸나에게 연락을 했다.
칸나는 기다리고 있었었던 사람 마냥 곧장 전화를 받았다.
네에~ 전화 받았습니다앙~
“응, 칸나. 뭐하고 있어?”
지현이랑 현오 데리고 산책 나왔어요!
“손님이랑 같이 집에 갈 것 같아.”
앗! 손님이요? 집에 아무도 없는데…. 저 그럼 바로 집으로 갈게요!
“아니, 애들 오랜만에 산책하러 나온 걸 텐데, 그럴 필요없어. 손님이랑 저녁 먹고 들어갈게. 편하게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걸릴 거야.”
그러면 충분히 산책하고 돌아가도 괜찮겠네요.
칸나와의 통화를 끝내고, 처제에게 말했다.
“저녁 안 먹었지?”
“네, 형부.”
“그럼 먹으러 가자. 좋아하는 음식 뭐 있어?”
“저는 신경쓰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음식으로 드십시오. 저는 뭐든 다 잘 먹습니다.”
누님이 서로 편하게 지내라고 한지 얼마나 됐다고, 처제는 여전히 깍듯하고, 거리감 있는 모습으로 나를 대했다.
그러다가 문득.
‘거리감이 맞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를 대하는 처제의 태도가 누군가와 함께 있었을 때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마치….
‘그래, 장모님을 대할 때랑 비슷해 보여. 그때도 저렇게 과할 정도로 정중한 모습을 보였으니까.’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걸 처제한테 말하면 아마 주먹질은 아니어도 째림을 받지 않을까 싶다.
처제에게 장모님이 어떤 존재인가?
감히 다른 사람이 비슷한 대상으로 비교 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신앙적 존재다.,
‘근데 진짜 비슷한데? 왜 비슷하지? 사람 불안하게.’
예전에도 그랬나 떠올려보면 분명 아니다.
정중하긴 했으나 나를 향한 시선에 진심이 섞이진 않았었다.
그저 내 위치가 위치다 보니 예의를 지켰던 것뿐.
그런데 오늘 만나 본 처제는 어딘가 좀 달라져 있었다.
장모님을 대하는 것처럼 나를 대하면 좋은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라고 대답할 거다.
‘장모님은 이 시선을 어떻게 견디신 걸까.’
그녀의 태도가 이상해졌음을 확신하는 건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뚜렷해졌다.
처제는 나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은지 평소 과묵하던 모습을 버리고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물론 그 행동이 딱히 이상할 건 없긴 했다.
이번에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 친해지라는 숙제를 줬던 연주 누님이 있지 않은가?
“아이돌이라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습니다. 대단하십니다.”
“힘들어도 그만큼 많은 보상을 받으니까.”
“연예인들은 댓글 때문에 고통을 많이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악플보다 무플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잖아? 근데 그렇다고 해서 악플이 무섭지 않은 건 아니거든. 이번에 악성팬 때문에 멤버 중 한 명이 큰일 날 뻔한 적이 있어.”
그리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말하지 않아도 될 걸 말하게 되는 경우도 생겼다.
요 근래에 우연이에게 있었던 일을 처제에게 말해버린 것이다.
“악성팬 때문에요? 형부는 괜찮으십니까?”
“완전히 괜찮다고는 못하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우릴 귀찮게 구니까. 근데 그게 정신적으로 힘들만큼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아. 당하면 기분 나쁘고 불쾌한 게 전부야.”
회사에서 악성팬 관련 된 문제를 매우 단호하게 해결해주고 있어서 말이다.
소속 아티스트들이 허니 엔터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 단호한 일처리 덕분이 크다고 들었다.
“언니가 잘 해주시고 계시는군요.”
“연주 누님이 사장으로 올라가고 나서 대응팀 인원을 더 늘렸다고 들었어.”
이번에 우연이의 일이 있고나서 가장 화를 많이 냈던 사람이 연주 누님이라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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