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2화 〉 #65. 조폭 처제의 유혹 (3)
* * *
“범인은 어떻게 처리하십니까?”
그때까지도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악질팬들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그들이 우리에게 하는 범죄 행동들을 말했으니 이후로 범인이 어떻게 되었는지 묻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법적 공방 중이야. 대상이 누가 됐든 합의하지 않고 끝까지 법적으로 죄를 묻겠다는 게 회사 방침이거든.”
“그게 전부입니까? 법적으로 죗값을 받는 건 너무 쉬운 벌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한 입장에선 부족하게 느껴지는 처벌이지만,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피해를 입은 사실을 바깥으로 알리는 것조차도 조심해야 하는 연예인이다.
소문이 나면 그 소문이 커지고 뒤틀려서 엉뚱하게 번지곤 하니 말이다.
“…그렇게 솜방망이 처벌을 하면 또 같은 일이 일어날 겁니다.”
“회사가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걸 알아서 우리 그룹은 좀 나은 편이야.”
다른 회사는 그럴 힘이 없으니까 제대로 해결을 못 해준다고 하더라.
이후로 함께 식사를 끝내고 현오가 있는 집으로 이동했다.
처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갔는데, 운전 솜씨가 생각보다 과격하더라.
‘덕분에 엄청 빨리 오긴 했네.’
집에 들어가니 칸나와 아이들이 먼저 도착해서 쉬고 있었다.
“다녀오셨어요.”
처제를 의식해서 주인님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만, 썩 쓸모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메이드복을 입고 있어버리면….’
칸나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모습이어서 메이드복이 매우 이상한 의복에 속한다는 걸 까먹은 눈치였다.
이미 처제가 메이드복을 입은 칸나를 본 상황.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졌다.
그런데 처제가 날 배려해주려는 것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칸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최관입니다. 현오를 돌봐주는 유모님이시라고요. 우리 현오,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어서 오세요.”
낯선 사람이 와서 그런지 칸나가 제법 정갈한 메이드 모습을 꾸민 채로 인사를 나눈다.
나는 칸나에게 간단하게 과일을 가져다 달라고 말한 뒤, 현오와 지현이가 있는 소파 쪽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지현아~ 현오야, 아빠 왔는데?”
“세상에, 언제 이렇게 자라셨는지….”
처제가 현오를 보며 격한 감동에 빠진다.
현오는 처제를 기억하지 못하는지 낯선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잘 먹고 잘 자라나서 그런가?
옹알이만 해대던 아이들이 어느덧 종알종알 말문이 트이더니 어느새 단어를 알아듣고, 스스로 원하는 바를 말로 요구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잘 크고.
기특하게도 지현이와 현오는 아프지 않고 잘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현오랑 지현이, 이제 말도 잘 해.”
“말을 한다고요? 옹알이밖에 못했을 텐데….”
“말을 좀 더 빨리 한 건 지현이에요. 지현이가 말문이 트이고, 얼마 안 있어서 현오도 지현이가 하는 말을 따라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이젠 곧잘하게 됐죠.”
태양이도 또래보다 빠르게 말을 시작했는데, 지현이와 현오는 훨씬 빠르게 말을 텄다.
칸나의 짐작에 따르면 쌍둥이처럼 함께 큰 지현이와 현오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쳐 말을 빠르게 배운 것 같다더라.
태양이는 집 근처 또래 아이들과 놀긴 했어도, 많은 시간 붙어서 쌍둥이처럼 지내는 또래는 없었지 않은가?
“현오야, 이 누나는 현오 이모야. 이모라고 부르면 돼.”
“이모?”
“그래, 이모.”
대모라는 게 그다지 활발하게 쓰이는 단어다 보니 ‘대모’보다는 ‘이모’로 불리는 게 낫다고 봤다.
현오도 이모라는 단어가 쉬워서 그런지 곧잘 따라했다.
“이모!”
“그래, 현오야. 이모야. 이모 기억나니?”
현오가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
역시 기억 안 나는 게 맞나보다.
“기억 안나? 아니야? 기억 나?”
“헤헤, 아니!”
“아니야, 맞아! 기억 나는 거야. 응이야!”
현오는 히죽 웃으면서 아니라고 하는데, 도리어 지현이가 나서서 처제가 기억이 난다고 말해왔다.
“진짜? 지현이는 이 누나 기억 나?”
현오와 대부분 생활을 함께 하는 지현이었기에 처제를 본 적이 꽤 될 것이다.
“응.”
“대단하네, 우리 지현이.”
“기억해줘 고마워. 지현아.”
처제는 현오와 함께 지현이한테도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는 사람이었다.
“오늘 밖에 나가서 놀았다며. 뭐하고 놀았어?”
“유모랑 물노리 해써.”
“물놀이 했어? 그럼 우리 지현이 이제 수영할 줄 알겠네?”
“응!”
대답은 참 잘한다.
지현이가 진짜 수영을 할 수 있어서 응이라고 대답한 건 아니다.
사실 처제를 진짜 기억하고 있어서 응이라고 대답한 것도 아닐 거다.
요즘 지현이와 현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놀이가 있어서 그렇다.
그들 사이에서 하는 놀이인데, 어떤 질문에도 현오는 ‘아니’, 지현이는 ‘응’이라고 대답을 하는 게 바로 놀이다.
누가 ‘응’을 할지, 누가 ‘아니’를 할지는 그날그날 다른데, 어른 입장에서는 그게 어떻게 놀이일 수 있냐고 하겠지만 아직 천진난만한 애기들한테는 이보다도 재밌는 놀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너희들 또 응아니 놀이 하고 있는 거지?”
“헤헤.”
“들켜따!”
칸나는 이 황당한 놀이를 교육으로 승화시켰는데 하루에 얼마나 많은 ‘아니’와 ‘응’을 했는지 숫자를 세놓고 다섯 번 이상 하는데 성공하면 칭찬 스티커를 하나 받을 수 있었다.
이 놀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숫자라는 개념을 알려주고, 칭찬 스티커를 모으면서 성취감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다만 이 놀이는 가족들끼리만 하는 놀이라서 다른 사람에게는 하면 안 되는 것임을 확실하게 주지시켰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이런 놀이를 하는 건데, 자칫 버릇을 잘못 들였다가 평소에도 거짓말로 대답을 하게 만들 순 없지 않은가?
“그리고 유모가 뭐라고 했었지? 이 놀이는 가족들만 하는 놀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앗!”
“앗!”
지현이와 현오가 쌍둥이처럼 똑같이 닮은 표정으로 깜짝 놀란다.
물론 처제는 가족 구성원 중 하나로 보는 게 맞기는 하다.
근데 얘네들이 이모라는 게 가족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해서 나는 그 부분을 천연덕스럽게 지적했고, 아이들이 안타깝다는 듯 박수를 치며 한탄했다.
“빼기야. 빼기!”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응아니’ 놀이를 하면 그동안 모은 ‘응아니’ 횟수를 하나 빼야 한다.
아직 셈이 뭔지 잘 모르지만, 자주 접하는 놀이다 보니 이런 상황을 뭐라고 하는지는 알았다.
현오의 외침에 지현이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다.
“지현이 이번에 다섯 개였는데 실수해서 하나 빼야 되는 거죠?”
왜 삐죽 나왔나 했더니 칭찬 스티커를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무효가 됐다는 걸 알게 돼서 그런 듯 했다.
“네에.”
“그럼 지현이 응아니 4개였는데 실수했으니까 몇 개가 된 거죠?”
칸나가 익숙하게 지현이에게 교육을 시작한다.
옆에서 현오도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칸나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나 알아! 세 개야!”
“나도 알거든!”
씩씩!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됐을 걸 현오가 먼저 말하는 바람에 설움을 토해낸 지현이가 짜증을 냈다.
하필 그 짜증이 손을 움직이는 것으로 표출이 됐고, 현오가 지현이의 솜털 주먹에 허벅지를 맞았다.
하지만 현오는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멀뚱멀둥 눈만 깜빡이고 반응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지현이는 더 짜증이 났는지 다시 한 번 때리려고 손을 휘두르려는데, 칸나가 잽싸게 지현이의 손을 잡아챘다.
“어허, 그러면 안 되죠. 사이좋게 지내야 해요! 유모가 현오 때리면 된다고 했어요, 안 된다고 했어요?”
“!”
“…….”
칸나에게서 여태까지 잘 보지 못했던 엄한 목소리가 나온다.
당연히 이어진 것은 주먹(데미지가 0%인)을 휘두른 지현이에 대한 훈육의 시간이었다.
? ? ?
잠시 지현이와 현오의 남매 교육 시간이 지나고….
처제와 나는 진정 된 분위기에서 다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처제는 현오가 벌써부터 뺄셈을 해내 3개를 대답한 게 신기했는지 그 부분을 다시 언급했다.
“벌써 셈을 아는 건가요?”
“칸나가 잘 가르치고 있는 것 같아. 애들이 머리가 좋아서 놀이하면서 가르쳐주면 잘 기억하고 응용도 한다고 하네.”
자식 칭찬만큼 흐뭇한 게 없는 법.
내 자랑에 처제가 자기 아이의 칭찬을 들은 것 마냥 행복해한다.
“아까 보니까 맷집이 제법이더군요. 역시 언니의 핏줄을 이은 아이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현오가 지현이한테 맞는 걸 보면서 맷집을 떠올리고 있었다니.
범상치 않은 직업을 가진 처제 다운 감상이었다.
“운동신경은 좀 어떻습니까? 물놀이를 곧 잘 하시던가요?”
또 슬그머니 현오를 ‘도련님’처럼 대하는 처제.
칸나도 맷집 얘기를 들었기에 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물놀이라고 해봤자 애들 허벅지 정도의 풀이에요. 거기다가 물에 들어가 있을 땐, 제가 옆에서 항상 붙어 있었고요.”
“운동신경을 알기 어려운 환경이었다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현오의 운동신경이 핏줄에 의해 타고 났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면 좀 더 클 필요가 있다는 것을 납득한 듯했다.
“현오 교육 얘기는 끝난 일 아니었어? 아직 관심이 남아 있는 것 같네.”
“제가 분에 넘치는 자리를 이어받았지만. 여전히 이 자리의 주인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리 주인이 현오라는 거야?”
아직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줄 몰랐다.
“도련님은, 아직 어리신대도 언니를 연상시키는 특유의 포스를 갖고 있으세요.”
“내가 보기엔 그냥 평범한 아이일 뿐인데.”
어떻게 지현이한테 얻어맞고 멀뚱멀뚱 앉아 있는 현오의 모습에서 연주 누님이 갖고 있는 특유의 포스를 연상시켰는지 의문이다.
“현오 도련님의 진면목은 아무나 엿볼 수 없죠. 하지만 저는 알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보스를 모셔온 저는요.”
처제의 목소리에서 흥분이 섞인다.
“현오 도련님에게 어떤 것들을 가르쳐드릴지 벌써부터 기대 되네요. 어서 자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보스의 뒤를 이어서 전설을 쓰실 겁니다.”
그녀의 바램은 내 의견도, 연주 누님의 의견도, 심지어 현오의 의견조차도 들어있지 않은 소망이었다.
“아직 덧셈 뺄셈 겨우 배우고 있는 아이야. 그리고 처제도 남자 만나서 아이를 낳으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겠어?”
처제의 현오에 대한 관심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방법은 한 가지다.
그녀에게 장모님과 현오보다 더 소중한 존재를 만드는 것.
하지만 처제의 직업상 남자와 연애 분위기를 내는 게 힘들긴 할 거다.
“제가 아이를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는지 처제의 동요가 크다.
“왜 그렇게 놀라? 마음 가는 남자 없어?”
“그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왜 불가능해? 처제가 뭐가 부족해서.”
“…제 직업이 뭔지 아시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그런 쪽이면 남자가 더 접하게 되지 않아?”
조직의 보스가 남자를 원한다는데, 감히 거절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양한 이유로 그녀의 옆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처제가 직업 핑계를 대는 건 정말 핑계 그 자체였다.
“평생 장모님 곁을 지키느라 편하게 못 지냈다며. 보스 자리에 올랐으니 이제라도 못 누렸던 거 누리면서 지내야 하는 거 아니야?”
“보스께서는 평생 본인의 몸가짐을 확실하게 하신 분이십니다. 큰 아가씨와 작은 아가씨를 낳으신 배우자 분을 잊지 않으셨죠.”
장모님이 그렇게 사셨다면 그분을 존경하는 처제도 본받고 싶어 할 것이 분명하다.
“처제는 아직 평생을 바칠 남자를 만나지 못한 거잖아. 일단 남자를 만나볼 생각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제가 남자를 만나는 건 단순하게 끝날 일이 아닙니다. 아무나와 만날 수 없어요. 남자를 잘못 들였다가 끝이 좋지 않았던 이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저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결국 남자를 만날 생각이 전혀 없고, 얌전히 보스의 자리를 지키다가 현오가 크면 녀석에게 넘기는 것이 그녀의 계획인 듯 싶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