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3화 〉 #65. 조폭 처제의 유혹 (4)
* * *
“그럼 마음에 드는 남자가 생겨도 만나지 않겠다는 뜻이야?”
“그런 사람이 생길 리 없습니다.”
내가 미래를 어떻게 장담하냐며 설득하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이후로도 그녀는 결심을 바꿀 생각 없다는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처제가 보스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오의 미래가 어두운 것은 여전한 것이다.
이 사실을 연주 누님에게 알리고 상의를 할 필요가 있었다.
연주 누님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니 그녀는 두통이 왔는지 이마에 손을 얹은 후 한숨을 푹 쉬었다.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는데….”
“어떡하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연주 누님이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누님은 오래지 않아 방법을 꺼내들었다.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으면, 우리가 짠 계획도 바꾸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겠니?”
“네?”
“관이가 섣불리 남자를 만나지 못하는 건, 총애를 등에 업고 행동 하는 걸 볼 수 없어서일 거다. 이제 겨우 보스로 인정받고 자리를 다지고 있는 상황인데, 괜히 남자한테 눈을 돌렸다가 좋지 않은 소문을 만들면 그건 전부 관이의 책임이 되는 거지.”
그게 싫으니 아예 사람을 안 만나겠다는 거다.
“더군다나 그 아이에게 접근한 남자가 정상적인 인물이 아닐 확률도 높고 말이다.”
조직 보스의 자리에 오른 젊은 여성.
다른 의도로 접근하는 남자가 없을 리가 만무하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곳이다 보니 오가는 돈의 단위가 어마어마하지 않겠는가?
처제가 평소에 생활하면서 돈을 아끼는 모습도 본 적이 없었다.
우리 그룹 보디가드로 일하면서 받았어야 할 돈을 여태까지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것도 그 정도 돈은 처제에게 티끌도 되지 않은 수준이어서 일거다.
“지금 누님 말은, 저한테 처제를 임신시키라는 뜻이 되는 거에요.”
“설마 그걸 모르고 한 말이겠니. 아…관이한테서 낳은 자식이 조폭을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너무 나만 생각한 건가? 관이가 나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이런 짓이나 계획하고 있고….”
현오를 조폭으로 만들기 싫어서 처제를 유혹하고 아이를 낳아 그 아이에게 물려받도록 한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이보다 이기적이고 나쁜 짓이 없다.
처제의 아이는 무슨 죄냔 말이다.
그 아이가 조폭이 되길 원할지, 원하지 않을 지도 모르지 않은가?
“현오를 위해서 한 말이잖아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저도 솔깃했던 게 사실이니까요.”
아이를 위해 부모가 뭔들 못하겠는가?
그렇게 처제를 유혹해서 아이를 낳게 한다는 계획은 뒤늦은 반성을 불러일으키며 흐지부지 되는 듯 했다.
“정 아니다 싶으면 괜찮아 보이는 남자를 수소문해서 소개 시켜주면 되겠지.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관이한테 맞는 남자 한 명이 없겠니.”
뭐지?
“…처제가 소개팅을 받으려고 할까요?”
연주 누님의 말을 듣자마자 내 마음이 좀 미묘하게 변했다.
“당연히 안 받는다고 하겠지. 그래도 어머니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듣는 아이잖니. 아마 어머니도 언제까지 걔를 혼자 둘 순 없으니 옆에 괜찮은 남자를 붙여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면 덥썩 물 거다. 그런 거 참견하기 좋아하는 노인네니까.”
그냥 내버려두면 늙을 때까지도 남자는 근처에 두지 않고 살아 갈 사람이라는 걸 장모님이 모를 리 없었다.
아마 처제도 장모님의 말이라면 순순히 만나보겠다고 할 거다.
그러다가 남자가 마음에 안 들어도 장모님 마음에 든다면 처제는 그 남자를 받아들일 거다.
‘그런 사람이니까.’
처제가 그런 뻔한 미래를 살아도 괜찮은 걸까?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봐줄 만큼 처제가 나에게 소중하지 않았나?
‘그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내가 거두는 게….’
낫지 않을까?
비록 시작이 현오를 위해서라는 다소 이기적인 이유를 갖고 있다고 해도, 장모님에 의해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다가 마음에 없는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는 끝을 맞이하는 것보단 내 여자가 되는 게 더 나을 거다.
적어도 나는 사고치지 않을 거고, 처제의 권력으로 이득을 보려하지 않을 거다. 그뿐인가? 처제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도 있었다.
‘심보가 좀 못 됐나?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는데.’
한 번 유혹하기로 했던 사람이라 나도 모르게 내 여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걸까?
이미 처제에 대한 소유욕을 느끼고 있는지라 그냥 물러날 수 없었다.
처제까지 가질 생각을 하는 건 욕심일 수 있다.
내 주변에 있는 괜찮은 여자들을 남 주기 싫어하는 욕심.
솔직히 신애와 썸을 타는 관계로 만든 것도 자주 만나면서 그녀에게 소유욕을 느끼게 됐다는 걸 자각했기 때문이었다.
‘처제가 다른 남자와 사귄다는 말을 듣게 되면?’
기분이 나쁠 것 같다.
아니, 것 같다가 아니라 나쁘다.
나한테는 처제라서 그렇지, 여자로 봤을 때 그녀는 상위에 속하는 여성이었다.
일반적으로 몸매가 좋은 사람들이 하는 운동과 처제가 하는 운동은 종류가 달랐다.
그녀는 몸매를 가꾸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실전에서 사용하기 위해 단련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신체는 오밀조밀하고 단단하게 뭉쳐 있는 사람이다.
그런 단단한 몸에 냉랭한 얼굴과 창백한 피부색까지 더해지면….
‘솔직히 좀 무서운 스타일이긴 해. 친해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스타일이랄까.’
미인은 미인인데 접근하기 힘든 미인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여자를 꼬셔 본 적 없는 이곳의 남자라면 접근하는 것도 힘들어서 쩔쩔 멜 테니, 난이도 면에서 특별하다고 볼 수 있었다.
더욱이 그녀 자체가 장모님 이외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도 특별한 일이지.’
친구가 있어 보이지도 않고, 직업이 직업인지라 주변 사람들 모두 인상 험악한 조폭들뿐.
하지만 그런 처제한테도 귀여운 모습은 분명 존재했다.
‘현오를 볼 때, 꽤 귀여운 짓도 많이 했었지.’
현오와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을 분명히 기억한다.
그래봤자 현오가 워낙 어린 탓에 그 노력을 기억하는 이는 나밖에 없지만 말이다.
나는 천천히 처제와 함께 했던 추억들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처제가 병원에 실려 왔을 때를 기억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말이다.
“안 되겠어요.”
“응?”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안 될 것 같다고요.”
“뭐가?”
“처제, 제 여자로 만들게요.”
“…갑자기 왜 생각이 바뀐 거니?”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다른 남자를 붙이는 게 좋은 해결 방법이 아닌 것 같아서요. 만약 처제가 다른 남자를 만나서 가정을 꾸린다고 쳐요. 그 남자 입장에서 우리 현오가 어떤 존재겠어요?”
자기가 낳은 자식보다 예뻐하는 조카.
자식이 있는데도 보스 자리를 물려주고 싶어 하는 조카.
남자 입장에서 눈에 가시일 게 분명하다.
“그러니까 역시 처제는 제가 데리고 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후후, 정말 그것 뿐이야?”
연주 누님이 앙큼한 고양이를 보듯이 바라본다.
나는 어쩐지 코가 길쭉하게 늘어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리고 아예 사심이 1도 없다고는 못하겠어요.”
“관이가 제법 미인이긴 하지. 근데 꼬실 수 있겠어? 네가 아무리 대단해도 걔가 그렇게 쉽게 넘어 올 아이가 아니거든.”
“저 진해솔입니다.”
이 얼굴로 못 꼬실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연주 누님에게 자신 있음을 어필했다.
“그럼 해봐. 사실 어머니한테 이런 얘기 꺼냈다가 관이만 힘들어질 수 있어서 걱정 됐거든. 되도 않는 놈 붙여놓고 만나보라고 하면 걔는 어머니 때문에라도 꾸역꾸역 참고 만날 애니까.”
내가 했던 걱정을 연주 누님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역시 누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네요. 제가 생각해도 그럴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가 결국 장모님이 정해주신 남자랑 결혼하겠죠. 사랑도 없이.”
사람이 좋은 것 같으니 진지하게 만나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들으면 처제는 그 남자와 결혼하라는 말로 곡해해서 들을 거다.
“그런 결혼 생활이 행복할 리 만무해요. 장모님이 괜찮은 사람을 물색해주겠지만, 그게 얼마나 가겠어요?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고, 처제 성격을 생각하면 그 변화는 부정적인 부분이 많을 겁니다.”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라 장모님이 하라고 해서 한 결혼이다.
남자도 처음에는 어떻게 해서든 처제의 마음을 붙잡아보려 하겠지만, 처제가 어디 호락호락한 사람이냔 말이다.
“그리고 우리한테는 뻔히 보이는 비극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거고?”
연주 누님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양심 찾기엔 늦었다.’
모두 갖는다.
처제도, 미래의 행복도.
내 자식들이 조폭 보스가 되는 게 마음에 안 들면 그 조직 자체를 바꾸면 될 일이 아닌가?
애초에 장모님도 양지로 나오기 위해 기업을 세우고 합법적으로 활동하는 루트를 꾸준히 넓혀오고 계시다고 들었다.
처제를 설득해서 그 과정을 좀 더 급진적으로 진행시킨다면 어떨까?
굳이 음지의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면, 음지에서 완전히 손을 뗄 수 있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는 법이다.
뭐든 궁리해보고 시도해보는 게 중요했다.
현오와 나중에 태어날 처제의 아이를 위해서 우리가 조금 고생하는 것쯤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 ? ?
처제와 만났던 그날 이후.
나는 꾸준히 그녀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의외였던 점은 처제가 나와의 연락을 생각보다 나쁘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항상 연락을 먼저 넣는 게 아니라, 가끔은 처제도 나에게 먼저 연락을 주는 날이 생길 정도였다.
직접 만나진 못해도 메시지를 통해, 전화를 통해서 점점 친해진 우리는 어느덧 고민을 이야기 할 만큼이 되었다.
“왜 그렇게 바쁜가 했더니, 둘째 처제 때문에 고생이 많았던 거구나.”
장모님의 후계자가 되어 보스의 자리에 오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로 했던 이유.
놀랍게도 나는 오늘 처제로부터 그 이유를 듣게 됐다.
직접 얼굴을 보고 얘기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친해지긴 했다는 게 실감이 난다.
“…제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굳이 얘기할 필요 없는 거였는데.”
대화를 나누다가 우연히 나온 말이었는지 금방 입을 다물려고 했지만, 내가 그걸 가만히 두고 보진 않았다.
장모님의 집에서 처음 만났던 둘째 처제를 떠올려보면, 상상도 못할 위험한 짓을 저지르기 충분한 사람이었다.
처제는 내가 둘째 처제를 만나본 적 없다고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말을 줄이려고 하는 듯했다.
“연주 누님한테 들어서 알고 있어. 그러니까 편하게 말해도 돼. 솔직히 나한테 처제는 처제 뿐이라고 생각하거든.”
“!!”
처제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내 말이 생각을 바꾸는데 유효했는지, 겨우겨우 무거운 입술을 뗀다.
“안에 맹독을 품고 있는 분입니다. 보스의 핏줄을 이으셨으니 당연한 일이었죠.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라서 큰 문제로 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위험했을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는 무사히 해결 됐으니 괜찮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할 생각이 없었는지 그저 덤덤하게 얘기한다.
지금은 저렇게 덤덤하게 대답해도 당시에는 위험했을 게 분명하기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수술 받은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잖아. 몸은 좀 어때?”
처제는 내가 아이템을 써주지 않았다면 수술실에서 죽었을 확률이 높은 몸 상태였다.
나는 사람이 그렇게까지 다칠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봤다.
장모님의 경우에도 제법 충격적이었지만, 그땐 칼로 찔린 것이고 어느 정도 수습이 된 상태에서 봤던 거였다.
하지만 처제는 워낙 급하게 수술실로 들어가는 상황인지라 제대로 피를 닦지도 못한 채였다.
온 몸이 피투성이었고, 시퍼렇다 못해 시커멓게 멍이 든 채로 부어 있었다.
보자마자 이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 걸 느낄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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