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6화 〉 #65. 조폭 처제의 유혹 (7)
* * *
나는 차에 타서 문을 꽉 닫고 실내 에어컨을 켰다.
좋은 차라 그런지 에어컨을 틀어놔도 소리가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나는 손목에 감긴 붕대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놀랍게도 나는 자리를 피하기 위해 차에 오자마자 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혼자 온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녀가 타고 온 차 옆에 조직원들이 대기하고 있더라.
아마 내가 둘째 처제를 제압하지 못했다면 이들이 나를 구하기 위해 한 손을 보탰을 것이다.
아무튼 그들은 내가 나타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극진하게 돌봐주었다.
심지어 의사까지 대기하고 있어서 바로 치료까지 받을 수 있었다.
다만 내 신분이 신분인지라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는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일 도와주는 전담 의삽니다. 입 무거운 걸로 많은 돈을 받고 있죠. 세어나갈 일 없을 겁니다.”
조직원이 내가 걱정하는 게 뭔지 알았는지 먼저 말을 해줘서 안심할 수 있었다.
다만 조폭들의 일을 돕는 의사라는 건 결국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되는 거라 신기하긴 했다.
‘의사가 되려면 정말 빡세게 공부했을 텐데, 뭐 때문에 이런 불법적인 일을 돕지?’
의사가 되면 돈에 아쉬울 거 없어지는 거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사람 사정은 다양한 법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의사는 내 얼굴을 알아본 눈치였으나 크게 동요하지 않고 치료에 열중했다.
굳이 내게 말을 걸지도 않았고, 호기심을 보이지도 않는다.
정확히 자기 할 일만 하겠다는 태도.
의사의 깔끔한 행동 덕분에 다시 한 번 안심하게 된 나는 치료를 받은 후 심신의 안정을 위해 차 안에서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처제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처제’는 둘째 처제가 아닌 최관을 말한다.
결국 나는 차문을 열고 나와 대기하고 있는 조직원에게 물었다.
“처제는요?”
“아직 별다른 소식이 없으십니다.”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형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혹시 배고프진 않으십니까? 드시고 싶은 거 말씀해주시면 바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처제는 걱정이 안 되고 나는 걱정이 됐는지 조직원들이 하나같이 내 몸만 걱정을 한다.
그들의 관심이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였는데, 솔직히 이들이 나를 이렇게까지 걱정해주는 이유를 모르겠더라.
나는 이들에게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일 뿐이지 않은가.
처제의 신변이 훨씬 중요할 텐데도 그녀를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얼굴이 창백하신데, 피곤하신 거 아닙니까? 먼저 돌아가시는 건 어떨까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아뇨, 기다릴 거에요. 아직 처제랑 끝내지 못한 얘기가 있어서요.”
“의사! 뭐 영약 주사 같은 거 못 놔드리냐?”
“…수액 한 대 놔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수액을 맞으라고?
“괜찮습니다. 그 정도로 피곤하지 않아서요.”
“그래도 한 번 맞으시면 몸이 편해지지 않겠습니까?”
조직원의 말에 재차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지금 처제가 무슨 일을 하러 갔는지 아는데 한가하게 수액을 맞고 있을 순 없었다.
나는 부담스러운 시선을 주는 조직원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차에 들어갔고, 갑자기 내가 사라져 당황했을 이들에게 연락을 넣었다.
납치에 연루 되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다른 사정이 생겨서 약속에 나가지 못했다고 말이다.
“스케줄 가던 길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그랬으면 이 사건이 우리들끼리만 아는 일로 끝내지 못했을 것이다.
소속사에서 갑자기 사라진 나를 찾느라 온갖 곳을 다 들쑤시고 다녔을 것 아닌가?
‘그나저나 저 의사, 아까부터 되게 거슬리네.’
떡대 좋은 조직원들 사이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의사.
가뜩이나 몸집이 왜소하고 마른데다 키까지 작아서 떡대 좋은 조직원들 사이에 있으니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좀 앉을 곳이라도 찾아 주지.’
사지 멀쩡하고 튼튼한 나는 안절부절 못하면서 챙기더니, 정작 챙겨야 할 것 같이 연약해 보이는 의사는 알아서 하라는 눈치였다.
의사도 딱히 조직원들에게 배려를 받을 생각이 없는 것 같고 말이다.
‘옆에 앉아 있으라고 하는 게 나으려나.’
티를 내진 않았지만, 저 의사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던 여자라면 무서운 장면도 많이 봤을 테니 함부로 입을 놀리진 않을 것이다.
“계속 거 있으실 거에요? 안으로 들어와서 쉬는 게 어때요?”
“…괜찮아요.”
“언제까지 서 있어야 하는지 모르잖아요.”
“예, 형님! 바로 데려가겠습니다!”
그때, 조직원 중 한 명이 전화를 받더니 우렁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의사는 조직원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곤 말했다.
“마침 제가 필요해진 모양이네요. 그래도 호의는 고마워요. 기억할게요.”
의사가 조직원의 손짓에 쪼르르 달려간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묵직한 치료 도구들이 들려 있었다.
저걸 들고 가는 걸 보면 둘째 처제를 치료하기 위함이 분명했다.
‘정말 손가락을 자른 건가?’
이제 정말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왔다.
사실 말려야 하나 엄청 고민을 많이 했다.
그치만 이미 단단히 각오를 한 처제를 내가 뭐라고 막나 싶어 길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피해자로서만 행동하면 돼. 괜히 참견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욘 없지.’
사실 그럴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사라지고 얼마나 지났을까?
“형님, 오셨습니까!”
조직원들이 어떤 곳을 향해 일제히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워낙 우렁차게 소리를 쳐서 절로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
조직원들이 고개 숙인 사람은 역시나 처제였다.
그리고 처제를 본 순간 내 심장이 크게 두근! 하고 뛰었다.
저 피가 단순히 영화에서나 나오는 분장이 아님을 알고 있는데도, 피 묻은 모습에서 무서움이 아닌 매력을 느낀다는 게 참 아이러니 했다.
‘내가 그만큼 처제한테 끌리고 있다는 건가?’
여자에게 멋지다는 느낌을 받아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일단 연주 누님이 일을 할 때 비슷한 느낌을 받아 본 적 있고, 능숙하게 아이들을 돌보는 정화씨를 보며 대단하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좀 달랐다.
‘…좀 멋있달까.’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날카로운 눈매를 한껏 부릅뜬 채로 걸어오고 있는 처제는 그야 말로 느와르 영화 주인공 그 자체였다.
내 앞에서는 항상 예의 바르고 정중하기만 하던 그녀.
하지만 내가 아는 모습이 특별했을 뿐.
그녀의 진짜 모습은 지금 보고 있는 저 모습이 맞을 것이다.
“급하게 수술 중이다. 깨어나기 전에 데려가서 가둬둬.”
“예, 형님.”
“의사가 필요하다고 하는 건 전부 지원해주고.”
“예.”
“형부는?”
“저쪽에 아직 계십니다.”
“아직 계시다고?”
처제가 조직원의 말에 깜짝 놀라 주변을 살핀다.
곧 차문을 열고 나오고 있던 나와 시선이 마주친다.
“큰일 치르셨는데, 병원에라도 모셔갔어야지.”
“내가 싫다고 했어. 처제를 기다릴 생각이었으니까. 의사 분이 잘 처지해주기도 했고.”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나중에 후유증이 올 수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느와르 주인공처럼 카리스마가 진하게 묻어나왔던 사람은 어디로 가고, 내가 평소에 알고 있던 사람이 됐다.
“나 그렇게 안 약해. 그나저나 처제야 말로 괜찮은 거야? 다친 곳은 없어?”
그녀에게 압도 되었던 마음을 뒤로하고, 몸을 살폈다.
처제의 몸에 묻어 있는 피중에 혹여 그녀의 것이 있을까 걱정이 됐던 것이다.
“아…! 이거 제 피가 아닙니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처제가 설명했다.
“그래, 다행이네. 저번처럼 또 그런 일이 있을까봐 걱정했어.”
다 잡아 놓은 범인을 일부러 풀어주고 1:1로 붙었다가 수술까지 했어야 했던 지난날을 말하니 처제가 울상을 지었다.
“그땐 죄송합니다. 심려를 끼쳐드렸습니다.”
“응. 많이 놀랐었어. 다신 그러지 마.”
“예.”
나는 믿음직스럽게 대답하는 처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뗐다.
사실 아까부터 물어 볼 게 있었는데 워낙 꺼내기 어려운 말이어서 쉽게 입이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끝이 났는지는 알아야 했기에 어렵게 입술을 뗀 것이다.
“그…둘째 처제는?”
“예고했던 것처럼 처리했습니다.”
“!!”
정말 손가락이 다섯 개나 잘린 건가?
“다섯 개를 전부 자르진 않았습니다. 엄지손가락 하나를 잘랐죠.”
다행이다.
둘째 처제를 걱정해서 안도한 게 아니다.
둘째 처제의 손가락 다섯 개를 잘랐을 때, 그녀가 감당해야 할 것이 너무 무겁고 많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손가락 다섯 개를 자른다고 겁을 줬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하나가 잘려도 안도하고 복수하려 하지 않을 테니까요. 물론 그런다고 아가씨가 제게 억하심정을 갖지 않을 린 없겠지만요.”
“둘째 처제도 둘째 처제지만, 장모님은 어떻게 할 거야?”
장모님이 이 사실을 알게 되셨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다섯 개가 아니라는 점에서 안심하긴 했는데….
내 말에 처제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하지 않았으면 더 날뛰셨을 겁니다. 손가락 한 개로 막을 수 있던 일을 방치하다가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했겠죠.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제 선에서 끝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보스는 자기 손으로 자식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됐을 겁니다.”
나를 납치한 철없는 둘째 처제다.
가만히 내버려둔다면 더 큰 사고를 치기 충분한 성격.
처제의 목소리에 깃든 씁쓸함에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오늘 기어코 제 손으로 피를 본 이 여자를, 나는 두려워하기 보단 위로해주고 싶었다.
“처제는 정말 모든 일을 장모님을 위하는구나.”
장모님은 처제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었기에 그녀가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지.
나는 처제에게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술 한 잔 하러 가지 않을래?”
“…술이요?”
뜬금없는 제안이라 생각했는지 처제가 어리둥절해 한다.
“지금 말씀이십니까?”
“응.”
웬만하면 둘째 처제의 일을 수습하기 위해 처제를 놓아줬겠지만, 지금은 욕심을 부려보기로 했다.
내가 아는 처제라면 오늘 일로 무슨 일이 생기든 묵묵히 책임을 지려 할 거다.
마치 미련한 곰처럼 우직하게.
처제의 다친 마음을 위로해주고, 상황을 좀 더 가까이에서 지켜보기 위해서라도 혼자서 돌아갈 순 없었다.
‘내가 돌아갔으면 어떻게 일이 진행 되는지 절대 안 알려줬을 테니까.’
처제가 갈등하는 표정을 짓자 지켜보던 조직원 중 한 명이 말했다.
“남은 일은 저희에게 맡기시지요. 다녀오십시오, 형님.”
“말도 안 되는 소리. 너희들이 저 치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손가락이 잘렸는데 기가 좀 꺾이지 않았겠습니까? 제가 책임지고 커버 치고 있겠습니다. 오늘 많이 심란하실 텐데, 즐기다가 오시지요.”
“그래도, 인마. 작은 아가씨가 돌발 행동을 얼마나 잘 하는지 알잖아.”
“제 목에 칼이 들어와도 버티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부디 오늘 하루만이라도 마음 편히 쉬십시오.”
“맞습니다, 형님. 저희 한 번만 믿어주십시오.”
그녀가 얼마나 심란할지 알고 있기에 조직원들은 오늘 하루만이라도 휴식을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큰일을 치른 처제에게 위로와 휴식이 필요해 보인다 생각한 게 나 혼자만이 아니었던 거다.
조직원들의 끈질긴 설득으로 결국 처제가 백기를 들었다.
오늘 일로 피곤이 갑자기 밀려왔는지 처제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알았다. 너희들이 그렇게 바란다면 따르는 게 맞겠지.”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형님!!”
“여긴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다 오십시오!”
“가자, 내가 운전할게.”
운전도 자기가 하겠다고 우기는 처제를 꾸역꾸역 조수석에 태우고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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