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7화 〉 #65. 조폭 처제의 유혹 (8)
* * *
“혹시 술 마시기 좋은 곳 알아?”
나는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술을 마시기 좋은 가게를 몰랐다.
“예, 있습니다.”
처제가 알려준 곳을 내비게이션에 등록하고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재즈 음악이 흐르는 조용한 바였다.
“…손님이 한 명도 없네?”
남들 의식하지 않고 술 마시기엔 이보다 좋은 조건이 없긴 하지만, 손님이 아예 한 명도 없으니 가게가 문을 닫은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내 걱정을 읽은 처제가 말했다.
“저희 조직이 운영하고 있는 가게입니다.”
조직이 운영하고 있는 가게라고?
“설마 나 때문에 손님들 다 보낸 거야?”
“원래 조직 간부가 오면 가게 문을 닫는 곳입니다.”
“…그랬구나.”
원래부터 그런다는데 내가 뭐라 할 바는 아니었다.
“분위기가 정말 좋긴 하네.”
“만족스러우시다니 다행입니다.”
바텐더는 나보다는 처제에게 시선을 주며 정중하게 우리를 맞이했다.
바텐더에게 능숙하게 주문을 끝낸 처제는 금방 준비 된 술과 안주를 마시며 잔잔하게 대화를 나눴다.
다만 처제는 내가 술을 마시려고 하자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병원에 안 가보셔도 되는 겁니까?”
“납치를 당한 놈 치고 너무 덤덤한가?”
좋지 않은 일을 당했는데 술을 마시는 게 좋아 보이진 않을 거다.
하지만 나는 눈곱만큼도 이번 일에 영향을 받은 일이 없었다.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몸은 괜찮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충격이 있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처제는 나를 툭 치면 죽어버리는 개복치처럼 여기고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기보단 술잔을 들어 올려 처제를 향해 내밀었다.
“그래서 그거 회복하려고 처제랑 술 마시러 가는 거잖아. 마시자고.”
“저랑 술을 마시는 걸로 회복이 되는 겁니까?”
“당연하지. 미인이랑 술 마시는데 회복이 안 될 리가 있겠어?”
“!!”
일부러 꼬시려고 한 말이다.
그리고 다행히 내 유혹이 처제에게 제대로 들어간 모양이다.
차갑기만 하던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옅은 홍조가 돌았다.
“저 같은 거랑 술을 마시는 걸로 회복이 된다고 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처제가 뭐 어때서. 미인이고, 돈 많고, 건강하고. 어디 하나 빠지는 곳이 없는 여자인데.”
“불편한데 아닌 척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각오하고 있었던 일입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니, 처제가 이어서 설명했다.
“오늘 일로 저에 대한 생각이 바뀌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혹시 둘째 처제 손가락 자른 거 때문에?”
“…일반인이시니까요.”
확실히 충격을 받기는 했다.
솔직히 평범한 사람이라면 쉽게 경험할 만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제가 불편해지셨을 텐데도, 술을 마시자고 제안해주셔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덕분에 충분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제 괜찮으니 형부는 형부 본인을 신경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무기력하게 당할 만큼 약한 사람이었으면 오늘 일이 꽤 충격이긴 했을 거야. 근데 보다시피 난 스스로 일을 해결 했을 만큼 튼튼해. 몸이 튼튼한 것처럼 정신도 튼튼하고. 이런 일에 충격 받아서 앓아누웠을 거면 아이돌 절대 못하거든.”
멘탈 약한 사람은 아이돌 절대 못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의 욕을 먹고, 수십 번의 성희롱 말을 들으며, 개인 사생활이 파헤쳐지고 스토킹을 당한다.
“그런 일을 당해도 멀쩡하게 잘 살고 있어. 그러니까 처제가 생각하는 것만큼 내가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 오늘 일도 그래.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납치를 당하긴 했어도 나 혼자서 빠져나와서 해결했어.”
그래서 둘째 처제가 선을 넘기 전에 해결할 수 있었던 거다.
만약 내가 밧줄을 끊을 힘이 없었다면, 둘째 처제는 선을 넘는 짓을 했을 거다.
그땐 손가락 하나 정도로 해결 되지 않았을 것이고 말이다.
“아직도 사생 때문에 불편한 일이 생기십니까?”
“그건 내가 은퇴하지 않는 이상 계속 될 걸? 이게 정말 일상적인 게 연예계야. 나이 어린 팬들은 자기가 한 짓이 심각한 범죄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거든. 그래도 요즘엔 좀 나아졌어. 회사에서 꾸준히 법적으로 처분을 내린 게 효과가 있나봐.”
스토킹이 심할 때는 일주일에 핸드폰을 두 번이나 바꿔야 했던 적도 있다.
요즘에는 아예 핸드폰을 두 개 사용 중이다.
다른 사람의 명의로 된 것 하나로 내 여자들과 연락을 하고, 내 명의로 된 핸드폰은 일적으로 관계를 맺은 사람과 연락을 나눌 때 사용하는 거다.
그렇게 하고 나니 내 명의로 된 핸드폰은 뚫려도 다른 사람의 명의로 된 것은 안 뚫리더라.
“이 얘기는 지금이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만하고. 둘째 처제는 이제 해외로 나가게 되는 거야?”
손가락이 잘린 처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오늘 일을 연주 누님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고민이 됐다.
다른 여자들에겐 숨겨도 관계자인 연주 누님에겐 거짓말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예, 그리고 해외에 나갈 때까지 저희가 관리를 할 겁니다.”
“장모님한테 오늘 일 말할 거고?”
“말해야죠.”
처제의 덤덤한 대답에 의아해졌다.
“무섭지 않아?”
“이미 말했다시피 어떠한 처분이라도 받아들일 겁니다. 보스께서 화를 내실만한 일이니까요.”
“처제가 그렇게 한 건 결국 장모님을 위해서였잖아.”
만약 둘째 처제를 장모님에게 데려가서 처벌을 내려달라고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장모님이 조직원들에게 한 말이 있으니 속수무책으로 잔인한 처벌을 내려야 했을 것이다.
자기 손으로 자식의 손가락을 자른다?
그보다 끔찍한 일이 없다.
만약 내가 장모님이었다면 기절해버리고 말았을 거다.
그런 일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오늘 처제가 무리를 한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모님이 화를 낸다면 억울하고 서운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처제는 그런 개인적인 감정으로 감정이 상하기엔 장모님을 너무 사랑했다.
미련하게 장모님에게 호통을 들을 처제가 가여워서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다.
“내가 도와줄게.”
“예?”
“같이 가서 말씀드리자. 둘째 처제가 나를 납치해서 처제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면 아무리 장모님이라고 해도 처제한테 심한 말 못하실 걸?”
사실 장모님이 처제한테 뭐라 할 입장도 아니다.
하지만 자식의 손가락을 잘랐으니 부모 마음으로 처제가 원망스러우실 수 있다는 걸 이해한다.
“아닙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나는 그러고 싶은데? 처제가 장모님을 위해 그런 생각 하듯이 나는 처제를 위해서 그러고 싶어. 그리고 이번 일은 내가 피해자인 거잖아. 처제는 날 도와준 사람이고. 근데 처제가 이번 일로 혼나는 걸 그냥 두고 보라고? 날 은혜도 모르는 놈으로 만들 셈이야? 나는 처제가 다치는 게 싫어. 두 번 다시 그날 같은 모습 보고 싶지 않아.”
더불어 처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장모님의 신뢰를 잃는 것도 볼 수 없었다.
그게 처제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강해보이는 사람이지만,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연약한 사람이야.’
수술실로 들어가는 처제의 축 늘어진 손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나는 탁자 위에 올라 와 있는 처제의 손 위에 내 손을 얹고 힘주어 잡았다.
“그날, 처제 손이 엄청 차갑더라고. 이 손에 온기가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날이요?”
“응. 처제가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었어.”
“그때 제 손을 잡아주신 게 형부였습니까?”
“그때 기억이 나?”
처제가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예, 분명 기억합니다. 그때 잡아주셨던 따듯한 온기가 수술 받고 나온 이후에도 남아 있었어요.”
내가 처제에게서 이상함을 느낀 것은 그 대화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지금도 여전히 처제는 나를 장모님을 대하듯이 대했지만, 거기에 더해 묘한 유혹이 깃들기 시작한 것이다.
‘술 때문인가?’
재즈가 흐르는 바에서 오직 처제와 나 둘만이 있는 가게 안.
납치라는 스펙타클한 일까지 경험했으니 아드레날린이 분비 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런 와중에 처제 쪽에서 묘한 스킨십을 해오기 시작한다.
술을 따라주면서 교환 되는 시선과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손길.
장모님의 술시중을 자주 들어줬는지, 함께 술을 마시며 배려해주는 행동들이 무척 능숙했다.
“평소에 술 자주 마셔?”
“일부러 마시려고 하진 않지만, 인맥을 다지려다 보니 술자리는 자주 갖습니다.”
“그래서 그렇구나. 술을 같이 마시기 되게 편한 것 같아.”
평소 말수가 적었던 처제는 술자리에서만큼은 과묵함을 지키지 않았다.
그것이 여러 경험을 통해 다져진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기분이 묘해진다.
“평소에도 이렇게 잘 맞춰주는 거야?”
“…아뇨. 형부에게만 이러는 겁니다.”
“응?”
“제가 누군데 아무에게나 술시중을 들겠습니까? 제게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짓 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사람.
단순히 내가 연주 누님의 남자라서 그렇게 말한 게 아닌 것 같았다.
“처제한테 특별한 사람이라는 게 정확히 뭐야?”
“제 인생에서 가장 특별하고 귀한 것은 보스를 향한 제 마음입니다. 그건 제가 죽는다 해도 변치 않을 테죠.”
“처제한테 장모님이 어떤 분이신지 다 아는데, 설마 그 자리를 노릴까. 그것보단 좀 덜 특별해도 괜찮아.”
내 말에 쓰게 웃은 처제가 한참 뜸을 들이다가 입술을 뗐다.
“제게 형부가 특별했던 이유는, 저를 욕망하게 만드는 사람이라서입니다.”
욕망하게 만드는 사람?
“뭔가 의미 심장해 보이는 말이네.”
“제게 연주 언니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보스로부터 독립을 하시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셨죠. 저 같이 멍청한 년은 절대 할 수 없는 대단한 결단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보스께서는 항상 겉으로는 못 마땅해 하면서도 속으로는 연주 언니를 흐뭇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랬구나.”
역시 부모란 다 그런 건가 보다.
자식이 대못을 박아도 부모는 그런 자식을 탓할 수가 없다.
물론 장모님과 연주 누님의 관계는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기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말이다.
“부러웠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보스의 무한한 신뢰와 애정들을 제게 돌리고 싶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연주 언니가 자리를 비워주지 않았다면 제가 보스의 곁에서 수양딸로 살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러니 어떤 면에서 연주 언니는 제게 은인이기도 한 겁니다.”
하지만.
역시 최관도 사람인지라 질투심을 완전히 억누르진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형부를 본 순간, 욕망이 생겼습니다.”
“어떤 욕망?”
“빼앗고 싶다는 욕망.”
술기운을 빌린 처제가 처음으로 내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오늘 둘째 처제 일로 심란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나를 유혹하려고 작정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털어놓고 있는 처제는 아니, 최관은 굉장히 위험해보였고, 아슬아슬했다.
“평소라면 혼자서 삼켜내고 말았을 욕망인데, 형부를 볼 때마다 항상 같은 충동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충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라앉기는커녕 커지기만 하죠.”
“연주 누님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야?”
“그럴 겁니다. 저급한 감정이지만, 그 또한 제 감정이니 받아들일 수밖에요.”
“날 연주 누님으로부터 빼앗는 건 불가능할 거야. 나는 누님이랑 헤어지지 않을 거니까.”
내 말에 처제의 표정이 무너진다.
“예, 그렇겠지요.”
씁쓸하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녀는 발그레해진 본인의 볼은 보이지도 않는지 다시 한 번 술을 들이켰다.
꿀꺽꿀꺽
‘꽤 독한 술이던데….’
도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잔이 모두 비워질 때까지 들이킨 그녀가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고 이어서 말했다.
“그래도 오늘만은, 딱 오늘만은 저를 위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오늘만 위해달라고?”
“예. 이후로는 혼자서 알아서 삭히겠습니다.”
“혼자서 삭히는 거 안 좋은데…. 오늘 내가 처제를 위로해주면 앞으로 그런 감정이 안 들 것 같아?”
“안 되도 그렇게 해야죠.”
역시 처제는 둘째 처제의 손가락을 자른 것에 많은 부담감을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장모님이 핏줄에 대한 집착이 있으신 분이니, 앞으로 그녀가 져야 할 책임이 무거울 것이다.
‘이번 일로 장모님한테 미움 받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래서 갑자기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거고.’
처제가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지 납득이 된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 때문에 생긴 일이니, 오늘 하루 정도야 얼마든지 위로해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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