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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50화 (450/849)

〈 450화 〉 #65. 조폭 처제의 유혹 (11)

* * *

“아니, 둘이서 무슨 일이냐? 현오는?”

“아…장모님. 현오는 못 데려왔어요.”

“연주도 같이 온 것 같지 않아 보이는구나.”

“예, 어쩌다보니 둘이 왔습니다.”

처제에게 약속한 것처럼 나는 그녀와 함께 장모님을 만나러 왔다.

처음에는 우리끼리 온 것에 의아해 하던 장모님.

곧 우리의 설명을 듣고 점점 표정을 굳히셨다.

“그래서 그 년이 기어코 사위를 건드렸다 이거냐?”

“다친 곳은 없습니다.”

“형부께서 스스로 벗어나서 제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하!”

장모님이 처제의 말에 할 말을 잃었는지 입을 벌린 채 굳으셨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려는 듯 마른 세수를 하고서 말했다.

“그 씨…후, 그년 지금 어딨니?”

내 앞이라서 그런지 욕을 하시려던 장모님이 자제를 하면서 물었다.

“제가 데리고 있습니다.”

“당장 여기로 데려와라. 그런 짓을 한 년을 등 따시고 배부르게 지내도록 둘 순 없지! 몸을 사려도 부족할 판에 감히 가족을 건드려?!”

쿵!

장모님이 분노를 담아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놀랍게도 테이블이 쩌적! 하고 움푹 파였다.

“왜 안 데려왔니?”

장모님은 이곳을 방문한 이가 둘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처제에게 의문을 표했다.

“제가 이미 보스께 허락받지 않고 먼저 손을 댔기 때문입니다.”

“…이미 손을 댔어? 네가?”

“예.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방에 갇혀 있습니다.

“크흠, 뭐 화가 났으면 그럴 수도 있지.”

의외로 장모님이 처제의 말에 별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

포커페이스에 능한 장모님의 생각을 표정만으로 읽기엔 어려움이 많았으니 말이다.

“보복은 제대로 한 거겠지? 난 이미 걔와 혈연을 끊었다. 걔가 저지른 일은 죽어도 싼 일이었어.”

“예. 저지른 일 만큼 대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그래, 잘했다. 그리고 우리 사위! 고생했네. 내가 자넬 볼 면목이 없어. 그치가 자네한테까지 손을 뻗을 줄은 몰랐단 말이지. 만약 그 아이 때문에 다치기라도 했다면 내가 연주를 무슨 면목으로 봤겠나.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네.”

“저는 괜찮습니다. 다만, 저 때문에 처제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 그년 상대하느라 관이가 고생이 많았지. 내가 진작 미련을 끊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어. 이번에 또 사고를 쳐서 걔를 해외로 보내려고 했었네. 근데 그세를 못 참고 또 사고를 친 모양이네. 아마 자네를 납치해서 나랑 거래를 하려고 했겠지. 내가 걔를 해외로 보내버리려고 했거든.”

처제에게 설명을 들었던 내용인지라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몸만 회복시키면 바로 해외로 보내버려! 꼴도 보기 싫구나.”

“예, 보스.”

“내 자식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군. 부끄러워. 건드릴 사람이 따로 있지…! 오늘 일로 확실해졌구나. 걔를 치우지 않고 계속 두면 우리 가족들한테까지도 손을 뻗을 망나니라는 게.”

이번에는 나였지만, 나중에는 가족 중 누가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연주 누님이 될 수도 있고 또 다시 나를 노릴 수도 있으며 최악의 상황에서는 현오를 노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나는 둘째 처제가 확실하게 해외로 떠나서 다신 우리 가족 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했다.

“해외로 떠나면 다신 국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실 거라고 들었습니다. 정말인가요?”

“당연히 그래야지. 그년이 여기에 들어와 봤자 하는 일이라곤 사고치는 것 밖에 없는데 뭐 한다고 국내에 들이겠나! 만약 국내로 다시 들어온다면 관이가 알아서 잘 처리할 걸세. 나는 이제 그년이 숨을 쉬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을 생각이니까.”

지금 장모님의 기세를 보면 둘째 처제는 평생 국내로 들어오지 못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방금 장모님의 목소리에선 소름끼치게도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 자식을 죽인다는 말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거 아닌가?’

이게 조폭 두목만이 보여줄 수 있는 냉정함일까?

내 생각에는 말로는 저렇게 냉정하게 말해도 속은 다를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사과하겠네. 그년한테 사과하라고 해도 할 리가 없으니 나라도 해야지 어쩌겠나. 그래야 자네가 좀 위안을 받지 않겠는가. 미안하네.”

지금도 봐라.

둘째 처제가 저지른 일을 장모님이 대신해서 사과하고 있지 않은가?

이번 일로 장모님에게 어떤 억하심정도 없었기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따.

“괜찮습니다. 이미 처제 덕분에 다 풀었습니다.”

“그래? 관이가 제대로 처벌을 했나보구만.”

장모님이 처제를 바라봤다.

어떻게 처리했는지 묻는 눈치다.

처제가 무겁게 입술을 떼었다.

“손가락을 잘랐습니다.”

“음…그랬군. 그게 제일 깔끔하지. 내가 아는 관이 너라면 분명 나 때문에 또 봐줬겠지. 몇 개나 잘랐니? 다섯 개?”

“미수에 그친 일이고, 곧 해외로 떠날 분이시니 경고 차원에서 하나만 잘랐습니다.”

“…고작 하나를?”

장모님이 한 개를 잘랐다는 말에 못 마땅해하기 시작한다.

처제와 나는 손가락을 잘랐다는 것에서 장모님이 속 상해 하실까봐 걱정했는데 말이다.

사실 이 정도는 우리도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처제가 걱정했던 것도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장모님의 태도를 걱정한 게 아니니까.

‘처제가 두려워한 건 장모님 속마음이지.’

핏줄을 가장 중요시 여기던 분이다.

아무리 절연하기로 한 상대라지만 처제가 손을 댔으니 감정이 미묘할 터.

처제는 장모님의 신뢰와 총애를 잃고 싶지 않았으니 둘째 처제에 대한 일처리가 무를 수밖에 없었다.

“쓸데없는 걱정으로 잔정을 부렸구나. 나는 네가 적어도 다섯 개는 잘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 개는 걔가 저지른 죄에 비해 너무 가볍잖니. 분명 또 문제를 일으키려고 할 거다. 걔라면 오히려 너에 대한 원한만 깊어졌겟구나.”

“어차피 국내로 들어오지 못할 분이잖습니까? 저는 한 개만 잘라도 충분히 경고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개로는 정신 못 차린다. 다시 불러와라. 나 때문에라도 너는 제대로 응징을 못할 테니 내가 나서야지.”

처제가 가장 바라지 않던 일이 생길 것 같다.

장모님의 선언에 처제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말했다.

“이미 의사에게 보여서 처치가 끝났습니다. 이미 대가를 치른 상황에서 또 다시 대가를 받아가겠다고 하는 건 저희 신념에 어긋납니다. 보스.”

신념?

“끄응, 이제보니 그걸 노리고 일부러 손가락을 잘라놓고 나한테 말을 한 거로구나.”

“죄송합니다. 보스.”

“아니다. 날 위해서 그런 거라는 걸 아는데 내가 뭐라 할 순 없지. 제 얼굴에 침 뱉는 일이 될 테니 말이야. 그나저나 우리 사위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못 알아들은 눈치구만.”

“법률에 나와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한 가지 죄에 대해 대가를 치렀다면 같은 죄로 두 번 대가를 받아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사부재리.

어떤 사건에 대하여 일단 판결이 내리고, 그것이 확정되면 그 사건을 다시 소송으로 재판하지 않는다는 원칙.

그것을 장모님과 처제도 따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네한텐 웃기지도 않을 일이겠지만, 법 없이 사는 년들인지라 우리끼리 이것만큼은 지키자는 뜻으로 만든 규칙이 있다네. 이거 참 사위 보기 부끄럽구만.”

“아닙니다. 장모님. 제가 뭐라 평가 할 위치는 아니지만, 좋은 규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있는 것들 전부 무식한 년들이야. 제때 배울 기회를 놓쳐서 내가 이런 걸 정해두지 않으면 한없이 유치하고 치졸해지지. 그나마 자랑할 수 있는 게 주먹질밖에 없는지라 목숨이 오가는 상황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

조폭끼리 감정싸움으로 주먹질을 했을 때.

쟤가 날 때렸다고 법적으로 고소를 할 순 없지 않겠는가?

본인도 법으로 걸릴 게 한두 가지가 아닐 테니 말이다.

결국 이런 식으로라도 규칙을 정해놓고서야 조직이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했단다.

장모님은 과거 자신이 조직을 어떻게 키웠는지 얘기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셨다.

오늘도 어김없이 과거 일을 꺼내와서 내게 열심히 이야기 해주었다.

장모님의 곁에 항상 있었으니 이 얘기를 모를 리 없는 처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처음 듣는 것마냥 귀를 활짝 열고 장모님의 말을 경청했다.

나도 느와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들에 흥미가 돋아 장모님의 말을 경청했다.

“그렇게 키운 조직이 그년 때문에 흔들릴 뻔 했지.”

과거 얘기로 한참 잘 나가다가 갑자기 드리프트를 하시더니 둘째 처제를 욕하기 시작했다.

“손가락 하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한 일이다. 나한테 데려왔으면 두 손이 다 잘렸어야 한 년인데. 너무 약하게 처리했어. 네 형부가 얼마나 섭섭하겠니?”

“아뇨! 전혀 안 그렇습니다. 전 아무 피해도 안 입었으니까요.”

장모님의 살벌한 말에 황급히 고개와 두 손을 모두 함께 저었다.

“그렇다면야 다행이지만은…. 고것이 손 잘리고 독이 잔뜩 올라와 있을 텐데, 어떻게 감당할 생각이니?”

“해외로 나가시기 전까지 제가 직접 관리할 생각입니다.”

“정말 잘 다룰 수 있겠어?”

“예. 믿어주십시오.”

“…흠, 이번 일은 잘 했다. 처벌이 좀 약했던 게 아쉽긴 하지만 그건 나 때문일 테니 넘어가마.”

“보, 보스.”

“이제 정말 네게 조직을 맡겨도 괜찮을 것 같다. 앞으로도 오늘처럼 맺고 끊는 걸 확실히 해야 한다. 내가 그 부분에선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질 못해서 마음이 쓰이는구나.”

“아닙니다, 보스! 아직 부족한 게 많습니다.”

수술을 받은 이후로 장모님은 회춘을 한 것처럼 젊어지고 건강해지셨다.

이 정도 건강함이라면 적어도 5년 이상은 현장을 뛰어도 괜찮을 정도다.

때문에 처제는 장모님이 슬슬 은퇴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기겁하며 대답했다.

“쯧쯧쯧! 붙잡을 사람을 붙잡아야지! 나도 마지막 인생은 즐기면서 살아야지 않겠니? 평생 조직에 묶여서 살았는데, 노년에는 남들처럼 여행도 다니고, 즐기면서 살아볼 생각이다.”

“보스께서요?”

“그래.”

“그럼 제가 모시겠습니다!”

“이놈아, 넌 여길 맡아서 관리해야지! 거기가 어디라고 따라 온다는 게야?”

“제가 모시지 않으면 누굴 보스께 믿고 맡기겠습니까?”

처제의 말에 장모님의 얼굴이 굳었다.

“자리에서 내려 온 나를 도대체 누가 노린단 말이냐! 쓸데없는 걱정이다. 그리고 된다면 현오도 자주 보고 싶구나.”

“…….”

장모님이 슬쩍 나를 바라보며 마지막에 소망을 털어놓는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오가 좋아하겠네요.”

“허허, 그럴까? 날 기억하고 있을지가 걱정인데 말이야.”

한편, 처제는 아무 말이 없었다.

힐끔 쳐다보며 얼굴을 확인하니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장모님이 은퇴하고 돌아와도 처제가 계속 장모님을 모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장모님이 그걸 거절하니 마음이 졸여지는 모양.

“관아.”

장모님이 그런 처제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다.

나보다 더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나눴던 사이가 아닌가?

“예, 보스.”

“이젠 네가 이끌어가야 할 조직이다. 네 명령에 자기 목숨도 기꺼이 바칠 애들이 수두룩하다. 그 아이들이 너를 믿고 의지하고 있는데, 정작 너는 조직은 뒤로하고 날 모실 생각만 가득하니 마음이 좋지 않구나.”

“죄송합니다, 보스. 제가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렸어야 했는데….”

“네가 앉게 될 자리의 무게를 알아야 한다. 외로워하지 말거라. 네가 진심으로 외로워진다면 언제든지 널 만나러 와주마. 다만 의지하지는 말거라.”

“…….”

“강해지거라.”

장모님의 마지막 말에 처제가 버티지 못하고 눈물을 떨궜다.

처제와 내가 괜한 걱정을 했음을 깨달았다.

굳이 우리가 말을 하지 않아도 장모님은 처제의 사정을 모두 읽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 자리에 올 필요도 없었다.

장모님은 처제와 둘만 있었어도 지금처럼 그녀를 다독여주고 이해해줬을 거다.

‘장모님이 여행을 다니시겠다는 것도 결국 처제 때문이겠구나.’

처제 옆에 있으면 처제는 끝까지 독립하지 못하고 휘둘렸을 것이다.

장모님이 관심을 주면 주는 대로 휘청거리고, 관심을 주지 않으면 않는 대로 휘청거리면서 말이다.

그런 처제를 위해 장모님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예 그녀의 곁을 떠나버리는 것이었다.

남은여생을 평범하게 즐기면서 살아보겠다는데 처제가 안 된다고 반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은퇴하시면 앞으로 내가 잘 모셔야겠네.’

연주 누님이 질색을 하시겠지만, 은퇴하신 장모님을 외롭게 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사위노릇 잘 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지 고민에 휩싸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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