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2화 〉 #66. 컴백 (2)
* * *
“콘서트 할 때 체력 관리가 중요한 거 다들 알고 있지? 저번에 목 나가서 큰일 날 뻔했잖아.”
“맞다, 준이가 콘서트 때 너무 흥분해서 무리하고 다음날 아예 목소리가 안 나왔었지?”
“윽! 그걸 언제까지 우려먹을 셈이야?”
지금은 웃으면서 말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심각했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다보니 콘서트를 취소해야 하나 싶었던 것이다.
당연하지만 준이 목은 내가 낫게 했다.
“아직 얘기 안 끝났어, 얘들아.”
대화가 딴 길로 세려는 걸 느꼈는지 직원이 지적을 했다.
“넵,”
“네에.”
하여튼 깐족댈 건 다 깐족대면서도 말은 잘 듣는다니까.
남은규가 잽싸게 입을 다무니 덩달아 말이 많아졌던 준이도 입을 딱 다물었다.
“콘서트 진행 하면서 카메라가 따라다닐 거야.”
“카메라요? 웬 카메라?”
“리얼리티 촬영이라도 하나보지.”
“그보다 더 대단한 거야. 이번에 한류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데, 그 중에서 KPOP 스타로 너희들이 뽑혔어.”
한류.
좁게는 음악, 영화,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부터 시작해 넓게는 패션, 화장품, 음식, 관광, 산업 등등 나라의 전반적인 문화가 세계에 알려지는 현상을 말한다.
케이 팝도 한류하면 빠지지 않은 요소이다 보니 섭외가 온 것 같은데…….
결국 우리가 메인은 아니라는 뜻인데 굳이 나올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굳이 찍어야 하는 거에요?”
“원래 다른 선배 아이돌 그룹을 촬영했어야 하는 건데, 너희가 요즘 잘 나가서 섭외 온 거야. 여기에 출연했다는 것 자체가 대세라는 걸 확인 받는 거나 다름없거든.”
“우리 잘 나가는 걸 굳이 확인까지 받아야 해요?”
그런 걸 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지금 잘 나가는 게 맞다.
해외에서 콘서트도 성공적으로 치렀고, 앨범도 내는 족족 잘 되고 있는 중이다.
“웬만하면 협조해주는 게 좋겠지? 상징성이라는 게 붙으니까. 방송국에서 최고 케이 팝 스타는 너희들이라고 땅땅땅! 못 박아주는 거라고.”
거래한 곳이 방송국이니 그거 뿐 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우리의 출연을 미끼로 이익을 많이 봤을 거다.
“알겠어요. 대신 콘서트에 방해하면 안 돼요! 우리 콘서트할 때 예민한 거 아시죠?”
우리를 만나기 위해 비싼 돈을 주고 찾아와 준 팬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콘서트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조금이라도 만들어두고 싶지 않았다.
“콘서트 도중에 말을 시키거나 그러지 않을 거야. 촬영만 얌전하게 하고 간다고 했어. 우리 쪽 직원이 따라다니면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할 거고.”
방송쟁이들은 믿을 수 없는 법.
안 하겠다고 해놓고 당장 콘서트를 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직원이 확실하게 전담을 하겠다며 호언장담을 했다.
‘믿어도 될까 싶긴 한데….’
한류 문화의 대표 케이 팝으로 우리 그룹이 소개 되는 건 확실히 매력적인 일이었다.
잦은 회의와 연습이 계속 되는 생활이 이어지고.
드디어 뮤직비디오를 찍는 전 날이 밝았다.
“오늘은 머리 하러 갈 거야.”
“와~ 드디어 머리한다!”
아이돌답게 머리색은 활동할 때마다 화려하게 바꿔봐서 여한이 없었다.
그래도 기왕 할 거라면 안 해본 색을 해보고 싶단 생각도 드는데….
“안 해본 색이 없는 것 같은데 이번에 무슨 색으로 염색하면 좋을까?”
“너는 금발할 거야.”
그때, 오늘 내 헤어를 해줄 헤어디자이너 누나가 금발로 딱 잘랐다.
“엥? 벌써 정해진 거에요?”
“응. 너 데뷔 때 금발로 하고 이후로는 안 해봤잖아.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금발로 하라네?”
“다른 애들은요?”
“다른 애들은 몇 가지 선택지 중에 고를 거야.”
왜 나만….
물론 금발이 싫다는 건 아니다.
‘팬들이 천사라고 불러서 좀 난감할 뿐이지.’
내가 금발로 활동을 했을 때, 천사가 강림했다며 주접을 떠는 팬들이 많았었다.
이 얼굴에 뭔들 안 어울리겠냐만은 솔직히 남자가 돼서 천사냐는 주접을 듣는 게 무척 머쓱한 일이긴 했다.
신인들은 회사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회사마다 상황이 다르긴 하겠지만, 우리는 컴백 준비를 할 때 의견을 내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어? 이번에 흑발도 있네요?”
“넌 머릿결이 너무 많이 상해서 휴식기를 거쳐야 할 필요가 있어서 흑발이야.”
“오예! 좋아요.”
그렇게 멤버들이 하나 둘 화려한 머리색으로 변신을 시작한다.
나는 이번에 좀 특이한 염색을 했다.
투톤염색이라고 하는 건데, 오른쪽은 금발로, 왼쪽은 검은색으로 염색을 했다.
“와~ 염색 진짜 잘 됐다.”
“염색이 잘 된 건지, 얼굴이 캐리한 건지 정확하지 않긴 해.”
“형, 멋져요!”
“몇 년 째 이 얼굴을 보고 있지만 볼 때마다 새롭긴 하다.”
내 머리를 해준 헤어디자이너도 매우 흡족했는지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 이 직업으로 남의 머리를 셀 수 없을 만큼 보고 다녔는데, 네 머리카락이 제일 잘 생겼어.”
“하하.”
외모로 칭찬을 받는 건 익숙한데, 머리카락이 잘생겼다며 칭찬을 받은 건 색다른 기분이 들게 했다.
이런 투톤 염색조차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얼굴에 경이를 표한 후 염색을 끝낸 멤버들과 함께 숙소로 돌아왔다.
“나 좀 잘생긴 듯.”
“응, 해솔 형 미만 잡.”
“…….”
남은규와 강준이 투닥거리는 걸 배경음으로 나는 인터넷에 우리 그룹 이름을 검색했다.
컴백 날짜가 떡하니 적힌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컴백 기사가 나서 그런지 팬카페는 꽤 활발하게 글이 생성 되고 있었다.
우리가 휴식기에 들어가면 팬카페도 조금은 침잠해질 수밖에 없는데, 컴백 기사로 팬카페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팬들의 주접을 보다보면 기쁨에 입꼬리가 멈추지 않고 올라가곤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 열심히 하자.’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말이다.
? ? ?
“드디어!!!! 꺄아아악!!! 너무 행복해!”
에어플레인 정규 앨범 예약 판매가 시작 됐다.
에어플레인은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은 지라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에어플레인이 처음 데뷔했을 때부터 입덕하여 지금까지 휴덕 1번의 위기만 있었을 뿐 진성 팬순이로 활동해온 그녀는 에어플레인의 컴백을 가장 환영하는 팬이었다.
아이돌 덕질하다보면 소속사 욕을 안 할 수가 없는데, 다행스럽게도 허니 엔터는 앨범 구성 부분에서 팬들의 기대감을 배신한 적이 없었다.
항상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혜자스럽게 구성품을 넣어주고, 포카도 넉넉하게 챙겨주는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보통 아이돌의 앨범 판매는 포카 가챠 시스템을 이용한다.
앨범 하나 당 아이돌 멤버의 포카 사진 몇 장을 넣어두고 판매를 하는데, 이런 경우 자기가 좋아하는 최애 멤버의 포카 사진을 얻기 위해 여러 차례의 앨범깡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허니 엔터도 어김없이 가챠 뽑기 시스템을 빌려와 앨범팔이를 하고 있긴 하지만, 팬들이 느끼기에 이 정도 구성으로 가챠 뽑기를 하는 거면 괜찮지 않나 싶을 정도로 구성이 좋았다.
이번에도 역시나 구성품은 알찼다.
문제는 구성품 안에 팬미팅권과 더불어 아이들의 피규어 굿즈 추첨권까지 함께 들어가 있다는 점이었다.
“꺄악! 귀여워! 이걸 뽑기로 준다고? 허니 엔터, 이번에 앨범 작정하고 팔 생각인가?”
이걸 포기할 거냐는 듯 앨범 구매하는 사이트에는 멤버들의 피규어 굿즈를 소개하는 참고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어떤 금손에게 의뢰를 했는지 모르겠으나 놀랍도록 멤버들과 닮아 있는 피규어가 그녀를 유혹했다.
이건 반드시 손에 얻어야만 한다는 의욕이 활활 불 타오르고 있을 무렵.
팬카페에 채팅방에 난리가 났다.
“뭐야? 무슨 일이야? 헉! 말도 안 돼!”
깜짝 놀라 채팅방을 확인한 그녀는 유티비에 들어가 에어플레인 채널로 들어갔다.
수십 번 여러 차례 방문한 곳인지라 새로운 영상이 나왔음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새로운 영상을 보지 않고는 못 배긴 그녀가 재빨리 영상을 클릭했다.
화면의 첫 시작은 갈색빛의 책상이었다.
책상을 찍던 카메라가 흔들거리며 움직이더니 이내 한 사람을 화면 안에 보여준다.
“꺅! 해솔아!”
그녀의 최애 진해솔이었다!
안녕하세요, 에어플레인 해솔입니다.
“어쩜! 화장 안 해도 예쁜 내 새끼!”
격하게 사랑하다보면 입이 거칠어지는 법이었다.
이번에 저희가 컴백을 하게 됐잖아요? 그동안 기다려주셨던 팬분들을 위해서 뭘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 자리를 만들게 됐어요. 일단 제가 오늘 보여드릴 건 짜잔~ 바로 피규어 제작입니다!
“헉!”
다시 책상을 비추는 카메라.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파악을 하고 숨을 잠시 멈췄다.
책상 위에는 아직은 뭐가 될지 알 수 없는 정체 불명의 재료와 도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해솔이가 입으로 자기가 하려는 것이 뭔지 말했기에 그녀는 바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이 영상은 앨범 판매 사이트에서 보여주었던 피규어를 제작하는 걸 찍은 영상이었던 것이다!
“해, 해솔이가 직접 만든 피규어라고? 그 퀄리티 좋은 피규어가?”
영상이 아니었다면 꼼짝 없이 전문가가 만든 피규어라고 생각했을 거다.
만약 그랬다 해도 팬들에겐 엄청난 소장가치가 있었고 말이다.
제가 나름 그룹 안에서 손재주 좋은 멤버 중 하나로 손에 꼽히거든요. 그래서 피규어를 제작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컴백 준비를 하면서 틈이 날 때마다 조금씩 제작을 하는 거라 많이 제작을 할 순 없겠지만요. 그래도 팬 분들이 좋아해주시지 않을까 싶어서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영상 초반에만 해솔이가 말을 했고, 이후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피규어를 제작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물론 제작하는 과정은 빨리 감기로 보여줬는데, 해솔이의 옷이 수시로 바뀌며 피규어 제작을 하는데 들인 시간이 하루 이틀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씩 멤버들의 피규어가 완성 되고 차곡차곡 쌓인 피규어들이 멤버들 특유의 표정과 포즈라는 것을 알게 되자 팬은 감동으로 마음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해솔이가 우리를 위해서….”
해솔이의 뒤에 창문이 있었는데, 그 창문으로 피규어 작업을 할 때 시간이 대부분 이른 새벽이거나 늦은 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제작기가 빠르게 보여지고 어느덧 완성 된 피규어가 카메라에 담겼다.
더불어 화장기 없는 얼굴로도 완벽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해솔이의 뿌듯한 얼굴이 피규어의 뒤로 보여지면서 영상이 마무리가 되었다.
제가 만든 피규어는 추첨을 통해 전달이 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어서 빨리 무대 위에서 에어랑 만나고 싶어요. 그럼 그때까지 잠시만 안녕해요. 곧 만날 수 있을 거에요. 그때까지 안녕~
“안녀엉~!!!! 흐어엉…! 해솔아아~!!!”
너무도 짧게 끝나버린 영상.
그녀는 다시 한 번 영상을 틀어놓고 앨범 판매 사이트로 마우스를 옮겼다.
저 피규어를 손에 넣기 위해 몇 장의 앨범깡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럴 가치가 충분하다고 봤다.
“내가 왜 일을 하는데! 덕질하려고 뼈 빠지게 일한 거 아니야!”
팍팍 지르자!
저 피규어 중 하나를 꼭 손에 쥐어야겠다!
안 그러면 나중에 왜 더 지르지 못했는가 후회하며 눈물을 흘릴 게 분명하다.
계획해두었던 예산에서 한참 벗어난 숫자의 앨범을 구매하게 됐지만, 부담은 미래의 나에게 미뤄두기로 했다.
“가즈아!!!!”
그녀는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려 결제 버튼을 연타한다.
꿈에 부풀어 오른 그녀는 자신의 손에 이미 피규어가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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