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3화 〉 #66. 컴백 (3)
* * *
“피규어 덕분에 이렇게 된 거 아닐까?”
“야. 너희도 그 소리야?”
“그치만 나도 그 피규어 갖고 싶었단 말이야.”
“퀄리티 짱이었지.”
사전 예약 앨범 판매가 대박을 쳤다.
국내외 팬이 많은 우리 그룹은 앨범 판매가 제법 잘 되는 편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직원들도 이례적이라며 놀랄 정도로 많은 량이었다.
부랴부랴 앨범을 더 찍어내느라 직원들과 공장 쪽에서 난리가 났다고 한다.
일을 빠르게 처리하려다가 앨범 제작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더불어 계획에서 벗어난 양의 앨범 판매는 즐겁고 기쁜 일이었지만, 부작용도 심심치 않게 터져 나왔다.
“팬카페에서도 다 형이 만든 피규어 얘기들이야.”
“나는 그냥 에어한테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마땅한 게 없어서 만든 건데.”
“퀄리티가 너무 좋으니까. 에어들이 전문가가 만든 줄 알았는데 형이 직접 만들어서 더 놀랐다잖아. 특히 영상 찍은 게 제대로 먹힌 것 같아.”
“형이 손재주 좋은 건 알았지만, 피규어는 진짜 깜짝 놀랐어요.”
“다시 생각해봐도 하나씩은 남겨둘 걸 그랬어. 진짜 귀여웠는데.”
“형은 직업을 잘못 찾은 것 같아요. 손재주 쓸 수 있는 쪽으로 갔으면 대박났을 것 같아요.”
멤버들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하고 있었는데, 기우연의 한술 더 뜬 칭찬을 내뱉었다.
나는 머쓱함을 숨기고 넉살 좋게 대답했다.
“이 얼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윽!”
“이야~”
“반박불가지, 이건. 푸하하!”
우연이가 두 팔을 들어 올려 항복했다.
“확실히 손재주도 좋지만, 미모가 더 압도적이긴 함. 아이돌 승!”
“그나저나 다들 정말 앨범 판매량이 최고로 뛴 게 내 피규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기사에서 형이 만든 피규어 때문이라던데?”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야, 너희들은 그 믿어도 기사를 믿냐? 그거 악플 믿는 거나 다름없어. 우리들이 그동안 열심히 노력해서 활동하고 이번에 곡 잘 뽑혔잖아. 그래서 앨범이 잘 나간거지, 내 피규어 때문이 아니라고. 애초에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거 아니야?”
괜히 내가 피규어를 제작해서 애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만든 앨범의 가치가 평가절하 당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댓글에서 우리를 ‘피규어팔이’라고 말하며 비아냥대는 악플들이 심심치 않게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기사는 당연히 무시하는 게 맞겠으나 멤버들도 내 피규어 덕분에 앨범이 잘 판매되고 있다고 말을 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피규어 때문에 우리 노력이 평가 절하 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너희들도 앞으로 그런 생각 다신 하지 마. 알겠지?”
“에이, 뭐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요? 그럼 그냥 형 피규어 덕분에 잘 된 것도 있고, 우리가 잘 해서 앨범이 잘 된 것도 있다고 하면 되죠.”
기우연의 시니컬하면서도 명쾌한 말에 멤버들이 다들 오우~? 하며 기우연을 바라봤다.
사생팬 납치 사건 이후, 회복에 대한 의지가 가득하던 우연이는 지금까지 노력한 게 헛되지 않았는지 큰 호전을 보였다.
그리고 컴백에 가까워진 지금, 혼자서 외출을 해도 될 정도로 상태가 안정 되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나름 깨달음(?)을 얻었는지 성격이 좀 변했는데….
‘인생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보면 되려나.’
우연이의 변화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았다.
원래 사람이 건강을 잃은 후에야 관심을 갖게 되기 마련이지 않은가?
실제로 우연이는 이번 사건으로 심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심리학책에 조금씩 손대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그런 우연이의 변화가 낯설면서도 기특해서 심리학을 배우는 것에 적극적으로 찬성해주고 있었다.
우연이가 어른스러워지는 건 좀 서운할지도 모르겠지만, 언제까지고 행님행님 하면서 철없는 장난을 치고 다닐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아직은 스물 초반이지만, 눈 깜짝 할 사이에 중반이 되고 30대가 되는 게 사는 이치가 아니겠는가?
나이는 먹으면 먹을수록 더 빨리 먹기 마련인지라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조금은 늦게 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아이는 그런 소망을 먹고 훌쩍훌쩍 커버리곤 한다.
‘우리 태양이처럼.’
태양이는 어찌나 멋진 신사가 되었는지, 엄마들이 태양이만 보면 예뻐 죽으려고 한다.
어떤 컨셉을 잡았는지 모르나 존댓말을 제대로 배워 와서는 신사인 척 구는데….
‘솔직히 졸귀긴해.’
내 자식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태양이는 많이 귀엽다.
그런 녀석도 슬슬 사춘기가 오고, 뼈대가 자라면 귀여운 모습이 사라지고 멋진 남자가 될 것이다.
그때쯤이 되면 나는 연예계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느긋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아무튼 내가 아이를 키우는 아빠다 보니 팬들도 자연스럽게 ‘아이’처럼 보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컴백 무대 잘 하자. 벌써부터 기자들은 우리 그룹이 나락 떨어지길 입 벌리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엿 먹여주려면 우리가 잘 하는 수밖에 없어.”
“예압!!”
다음부터는 피규어 같은 건 만들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다.
어떻게 앨범이 잘 되는데 내 피규어 때문일 수 있냔 말이다.
괜히 팬들을 위하겠다고 행동했다가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참 별의 별 걸로 사람들이 뭐라 한단 말이지.’
피규어를 핑계로 우리 그룹을 까는 곳이 있다 해도 이번 앨범 반응이 좋은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피규어로 논란이 있다고 해서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피규어를 만들어서 팬들에게 준다는 기특한 아이디어를 낸 나를 칭찬하거나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은 있었어도 말이다.
그렇게 한참 칭찬을 쏟아내다가 이내.
“피규어 좀 어떻게 못 얻을까요? 남는 건 없겠죠?”
내가 만든 피규어를 탐내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경우가 많았다.
“만들어 놓은 건 전부 팬들한테 주기로 해서요.”
때때로 그보다 더 황당한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혹시 주문 제작은 안 받아요?”
“하하, 죄송합니다. 곧 컴백이라서 준비로 바쁜지라….”
내가 피규어를 만드는 사람도 아닌데, 자기 피규어를 제작해달라니.
어처구니없는 소리였다.
그 피규어 값을 얼마로 해서 받아야 하는지도 확신할 수 없거니와 내가 왜 멤버도 아닌 다른 사람의 피규어를 제작하는데 시간을 쏟아야 하냔 말이다.
그 시간에 멤버들 피규어를 하나라도 더 만드는 게 이득이었다.
아니면 안무 연습을 하던지.
“앗, 카메라다.”
“어제 얘기 했었지? 다큐 카메라 오는 거.”
“네엥~”
“오래 촬영하진 않을 거야. 너희들 컴백 준비로 연습하는 것만 짧게 찍을 거래. 땀 흘리는 모습으로 인터뷰도 하고.”
하루 종일 촬영을 해도 TV에 방영할 때는 편집 되고, 또 편집 돼서 2시간이 나올까 말까 한다.
“그럼 우리 오늘 연습은 어떻게 해요?”
“미리 연습하고 있으라고 했어. 오히려 그게 촬영 컨셉에 맞거든. 노력을 해서 지금의 명성을 얻어냈다! 뭐 그런 느낌. 대충 알겠지?”
“아~ 그럼 어차피 촬영 내용이니까 평소처럼 연습하면 되는 거구나.”
“촬영 한다고 해서 머리 하고 왔는데….”
촬영 내용이 연습하는 걸 찍는다는 건 알아서 화장을 하진 않았지만, 머리는 신경 써서 멋을 내고 온 남은규가 허탈하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나름 예쁘게 차려 입고 나온 옷을 갈아입는다.
연습실에서 익숙하게 입고 다녔던 트레이닝 복.
촬영팀이 오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다소 붕 떴던 연습실 분위기가 다시 평소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컴백이 정말 가까워진 상황이었기에 우리 안무는 이미 완성이 된 상태였다.
이젠 안무를 배우는 게 아니라 몸에 익혀서 어떤 상황에서도 문제없이 안무를 출 수 있게 기억에 새겨 넣는 과정이었다.
끼익끼익!
척척 조금의 틈도 없이 맞아 떨어지는 안무는 우리가 얼마나 빡세게 연습을 해왔는지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온 몸이 땀으로 목욕을 했다시피 하게 연습에 집중하고 있던 중.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흘러 촬영팀이 연습실에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어서 오세요!”
“야야, 창문 열어. 창문.”
스탭들 전부 여자들이었고, 연습실 안에는 우리 땀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우리야 여태까지 계속 여기에 있어서 코가 마비 되었지만, 방금 들어온 촬영 팀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하하하!”
“향기로워요!”
“야, 그건 좀 변태지!”
“험험! 그나저나 연습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들었는데, 정말 열심히 하고 계셨네요. 평소에도 이렇게 연습을 하시나요?”
“네. 이렇게 하죠.”
“이야~ 정말 대단하시네요. 바로 촬영에 들어가도 되겠어요.”
“어…잠깐 세수 좀 하고 와도 괜찮을까요? 저희 상태가 너무 초췌해서….”
“아뇨아뇨아뇨! 그대로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이 정말 꾸밈없는 모습 그 자체라서 보기가 아주 좋거든요.”
지금 이 모습이 보기 좋다고?
우리들은 서로의 초췌한 모습을 확인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누가 봐도 우리 모습은 정상으로 보기 힘들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사람 몰골로는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음, 그럼 세수만 살짝하고 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한 분씩 바로 인터뷰 따도 괜찮을까요?”
“네엡.”
멤버들이 차례대로 화장실로 들어가서 세수를 하며 엉망이 된 얼굴을 정리했다.
“우리가 좀 미련했나? 적당히 연습할 걸 후회되네.”
“그러니까. 카메라를 보니까 나도 아차 싶더라.”
“내 얼굴, 좀 어때?”
“어떻긴 머리는 물에 젖어서 엉망이고, 시뻘겋지.”
“아놔! 부채에~~!”
카메라에 담길 얼굴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필요해 보인다.
나는 멤버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하기로 했다.
“내가 먼저 인터뷰하고 있을게. 최대한 시간 끌어볼 테니까 그때까지 정리해봐.”
“형이요?”
“헉! 완전 감사지.”
“고마워, 형!”
“고맙다. 해솔아.”
사실 현재 내 얼굴 상태도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괴물 같은 얼굴은 좋지 않은 상태마저도 새로운 매력으로 승화시키고 있었기에 카메라에 담겨도 괜찮았다.
적어도 다른 멤버들보단 상황이 나은 것이다.
세수를 해서 땀만 적당히 닦아내고 옷을 갈아입고 어느새 마련되어 있는 인터뷰석에 앉았다.
“아이고, 씻고 오시니까 더 멋지시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촬영팀은 나와 간단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어떤 방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될 것인지 상의했다.
“그럼 이제 인터뷰 시작해도 괜찮을까요?”
“네.”
카메라에 빨간색 불빛이 들어갔다.
“한류 스타로 발돋움 하면서 다양한 나라를 돌아다니게 되셨는데요. 각 나라의 팬들 특징이 있다면 어떤가요? 기억에 남는 나라의 팬이 있다면?”
“음, 가장 기억에 남는 팬은 좀 의외일 수 있는데, 남팬이었어요.”
“남팬이요? 확실히 독특하네요.”
“저희 그룹이 남팬도 은근히 많거든요. 제키나 경태 형이 되게 카리스마 있잖아요. 그래서 남팬이 익숙한 편인데…….”
나름 재밌다 싶었던 일화도 일부러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주면서 시간을 끌었다.
그렇게 시간을 끈 덕분에 멤버들이 카메라에 담겨도 괜찮을 만큼의 상태를 회복하고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모두의 인터뷰를 모두 딴 후, 촬영팀은 우리가 연습하는 모습까지 야무지게 촬영을 해갔다.
그리고 예고했던 것처럼 깔끔하게 물러나서 안심할 수 있었다.
저렇게 깔끔하게 떨어지는 방송국 직원들은 거의 처음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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