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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57화 (457/849)

〈 457화 〉 #67. 고민 상담 (1)

* * *

“후배 그룹이 이번에 데뷔하기로 했으니까 그럼 그쪽 일을 돕게 되는 건가?”

“그렇겠지?”

“나 쫌 질투나려고 해. 우리 팀인데!”

“하하하!”

아예 다른 그룹을 위해 일을 하는 건 아니다.

휴식기에도 우리가 아예 활동을 쉬는 게 아니지 않은가?

“소속사 후배 그룹인데 챙겨줄 생각을 해야지.”

우리도 아주 초반에는 회사 소속 선배 그룹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가끔 회사에서 만나면 잘 챙겨주고, 바깥에서 나갔을 때도 인맥적으로 도움을 받기도 했었다.

우리도 이제 후배 그룹에게 받은 것을 베풀 때가 된 것이다.

“아무튼 우리가 레이블로 옮기게 되면 휴식기에도 팀이 다른 쪽 일을 하느라 제대로 못 쉬는 일은 없앨 수 있거든. 개인적으로 그 시간에도 직원들이 우리한테 집중해줬으면 좋겠어. 비활동기라고 우리가 아예 쉬는 게 아니잖아.”

“오~ 좋은데?”

멤버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한 명이라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면 레이블은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멤버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전담팀 크기를 키웠으면 좋겠다고 한 것도, 지금은 전담 팀은 아무리 키워봤자 결국 회사에선 부서 중 하나 일 뿐이잖아? 나는 그걸 넘어설 만큼 덩치를 크게 키우고 싶어. 전문 인력화 하는 거지. 근데 그건 회사 안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니까 레이블을 만들자고 한 거고.”

내가 오늘 제시한 의견에 살을 붙이고, 어느 부분은 떼어내기도 하며, 이쪽 저쪽 옮기는 등 많은 수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레이블을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불어 만든 레이블을 제대로 운영해줄 유능한 선장도 필요했다.

아직 산재해 있는 여러 어려운 일들이 걱정되긴 했지만, 그런 어려움을 자처해서라도 해볼 가치가 충분했다.

‘회사에서 과연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자회사가 모회사보다 커지는 사태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후배 그룹이 문제없이 데뷔하고, 자리를 잡을 필요가 있었다.

여태까지 허니 엔터와 재계약 할 생각만 하던 멤버들에게도 레이블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썩 나쁘지 않게 다가왔는지 표정이 좋았다.

“이건 우리 의견도 중요하지만, 팀원들 의견도 중요할 것 같은데.”

우리가 레이블을 만들어도 팀원들이 오고 싶지 않다고 하면 소용없는 짓이다.

“당연하지. 우리 팀원들한텐 내가 슬쩍 운을 띄워놓은 상태야.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어. 전혀 생각 못해 본 일이라서 당황하긴 했는데 솔깃해 하는 눈치야.”

“그럼 난 레이블 찬성할래요!”

“솔깃해 한다면야 우리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봐도 되겠네.”

“응. 다들 가능성 중 하나로 띄워놓고 생각해봐.”

“오케이.”

멤버들이 저마다 생각에 깊게 잠겼다.

나 또한 레이블에 관련 된 일은 고려할 게 많았기에 생각이 깊어진다.

‘다들 재계약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나보네.’

기왕 자리가 마련 된 거, 이대로 끝내기엔 아쉬웠다.

나는 좀 더 멤버들의 솔직한 얘기를 듣고 싶어져서 운을 띄었다.

“그나저나 다들 좀 어때?”

“뭐가?”

“재계약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주변에서 말이 나왔을 거잖아. 오늘 내가 레이블 얘기를 꺼낸 것처럼 말이야.”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솔직히 주변에서 더 난리에요.”

“성공하면 주변에서 사기꾼들이 들끓는다던데, 나는 그게 내가 될 줄 몰랐어. 특히 부모님이 곤란하셨던 적이 많대.”

애들의 나이가 어리다 보니 가족을 건드는 경우가 많나 보다.

가족들도 사정을 알기에 중립을 지키려고 애를 쓰지만, 입에 기름칠을 해온 사기꾼들의 접근을 평범한 사람들이 견디는 건 어려움이 많았다.

“자기도 모르게 솔깃해지는 거지. 사람 속여서 돈 버는 사람들인데, 얼마나 말빨이 세겠어.”

“우리 엄마는 이미 돈을 여럿 빌려줬어.”

“헉! 진짜?”

“그래도 엄마가 간이 작아서 큰돈은 아니고 오백 선 안에서 빌려줬대. 처음에는 사정이 너무 딱하니까 빌려줬는데, 슬슬 이러면 안 되는 구나 아시더라.”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의 마음조차도 달라지는 법이다.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땐 온갖 현란한 말들로 동정심을 사더니, 돈을 받은 이후에는 철면피처럼 태도를 바꿔버릴 수 있는 것이다.

“제일 어이없는 건 빌린 돈을 줄 생각을 안 해서 받으러 가니까 사정이 너무 안 좋다면서 오히려 돈을 더 꿔달라고 했다는 거야.”

그 사람 입장에서 정말 사정이 좋지 않아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기한을 좀 더 늘려주겠다고 하고 가려고 했는데, 아들이 돈을 그렇게 잘 버는데 고작 몇 백 빌려준 걸로 사채 놀음 하냐고 적반하장으로 나온 거지.”

“너무 화나셨겠다.”

“배신감 느꼈겠는데?”

“응. 집으로 돌아와서 엄청 우셨어. 나는 그걸 나중에 알았거든. 너무 화나서 내가 직접 그 사람 집에 찾아가서 돈 내놓으라고 했지.”

“형이 직접!?”

경태 형의 놀라운 얘기에 멤버들이 입을 떡! 벌렸다.

“돈 안 내놓으면 법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하니까 찍소리도 못하던데? 사정사정하면서 기한을 조금만 늘려 달라고 하더라고. 진짜 돈이 없긴 했나봐. 그래서 마지막이라고 경고하고 돌아갔지.”

“그럼 돈은?”

“아직 다 갚은 건 아니고 꼬박꼬박 달에 몇 십 만원씩 갚아가고 있는 중이야. 울 엄마는 친구 한 명 잃었고. 진짜 지인 돈 빌려주는 건 하지 말아야 돼. 인연 다 끊겨.”

경태 형의 뼈 아픈 경험담.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재계약을 하게 되면 회사에서 억 소리 나는 돈을 계약금으로 줄 거야. 문제는 다른 회사에서도 우리를 위해 억 소리 나는 계약금을 준비해놨다는 점이거든.”

“돈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솔직히 지금 벌고 있는 돈이면 평생 먹고 살 걱정 안 해도 되는 걸요.”

“맞아. 나는 게임 하는데 쓸 돈만 있으면 돼.”

멤버들의 말은 결국 막대한 계약금을 들고 온다 해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말이었다.

“내가 걱정하는 건 그거야. 준이 같은 경우에는 연기 쪽에 관심이 많잖아. 그쪽에 노하우랑 인맥이 많은 회사에서 우리 회사에 오면 연기 쪽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겠다고 했을 때 마음이 어떨까 하는 거지. 경태 형은 래퍼로서 좀 더 이름을 알리고 싶어하고.”

각자 능력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돌’이라는 이름에 묶여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 부분을 다른 회사에서 긁어주며 꼬신다면?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허니 엔터와 계약을 하면 개인 활동보단 그룹 활동에 더 집중을 해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개인 활동도 물론 좋고, 꼭 필요한 일이라는 건 알지만 그룹에 피해를 끼치면서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리고 우리 아직 젊잖아!”

“맞아. 아직도 창창한 20대인데 굳이 개인 활동에 목 말라 할 이유는 없지.”

“그리고 해솔이 형 말대로 레이블을 만들면,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관리를 받을 수 있는 거 아니야?”

“레이블도 잘 운영해야지, 잘못하면 주먹구구식이 돼서 지금보다 더 제대로 관리 못 받을 수도 있어.”

“에이~ 형 또 괜히 약한 척 하네.”

멤버들이 내 말에 우우~ 하면서 비난을 했다.

“내가 뭐.”

“난 형이 레이블 대표를 한다고 해도 찬성할 거야. 형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거든.”

“저도요!”

“날 뭘 믿고 레이블 대표를 맡긴데? 그게 어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냐?”

“그동안 네가 보여준 걸 생각해보면 안 믿는 게 이상하지 않아?”

“내가 뭘 보여줬는데.”

“우리가 힘들 때, 어려울 때, 문제가 생겼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등등! 전부 다 네가 움직여서 해결했잖아.”

아무래도 남들에겐 없는 특별한 힘을 갖고 있다보니 무슨 일이 생기든 주도적으로 해결하려고 행동하는 편이었다.

사람이라는 게 능력이 있으면 자꾸 쓰고 싶어지는 법이 아니겠는가?

남들에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그룹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꽤 자주 위기를 극복해 나갔다.

나는 그때그때 문제를 해결하는 걸로 모든 것을 털어버렸는데, 멤버들은 그런 내 행동들을 쌓아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신뢰와 믿음이 레이블 대표라는 황당한 자리를 제안 받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활동하느라 바쁜데 레이블을 어떻게 내가 직접 운영해? 주먹구구식으로 키우려고 레이블 차리자고 한 거 아니야. 내가 제대로 된 전문 경영인을 찾아볼게.”

“뭐가 됐든 우리는 너한테 맡길래. 네가 지금까지 우릴 실망시킨 적이 없잖아. 이번에 네가 제안한 레이블도 솔직히 네가 말한 거 아니었으면 안 한다고 했을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도 안 했을 거고.”

“맞아맞아.”

“내가 그 정도로 너희들한테 신뢰가 있는 거야?”

“응.”

“난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전혀 몰랐던 거야?”

“본인만 모르고 있었나 보네.”

솔직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멤버들이 날 저렇게까지 철썩같이 믿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고마워서라도 진짜 제대로 알아봐야겠네.”

“우리한테 시킬 거 있으면 시켜. 형을 믿는다는 거지, 짐을 전부 떠넘기겠다는 뜻은 아니니까.”

“맞아요! 제가 아는 게 없는 꼴통 대가리긴 한데,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잖아요! 아예 도움이 안 되진 않을 걸요?”

이게 바로 자식 잘 키운 아빠의 마음인 걸까?

절로 마음을 흐뭇하게 만드는 말을 골라 하는 멤버들 덕분에 그룹 차원에서 큰 위기에 속하는 재계약 문제도 어렵지 않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룹 초반에 내 마음을 떠올려보면 나도 많이 달라졌다.

술에 취해서 얼떨결에 하게 된 아이돌 생활.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당장 활동을 그만두고 본래 나의 생활로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하던 나다.

나와 가족이 된 여자들과의 관계성도 있다 보니 재계약을 굳이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었던 것이다.

‘근데 정작 내가 재계약에 더 적극적이게 됐잖아.’

솔직히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서는 게 좋았다.

개인 활동보다는 그룹 활동을 하면서 좀 더 세계를 주유하고 싶었다.

무대에 선다는 게 생각보다 중독성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미 무대의 짜릿함을 알게 된 이상, 이곳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내게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재계약 문제에서 꽤 중요한 걱정이 남아 있었다.

바로 내 가족들에 관한 거다.

태양이가 제법 자랐기에 더 이상 숨기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까지는 뭐가 뭔지 몰랐기에 숨겨도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지만, 슬슬 머리가 굵어져서 태양이도 뭐가 뭔지 알만한 나이가 됐다.

더 이상 숨기는 건 불가능한 때가 된 것이다.

혼자서 생각해서는 답이 안 나오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상담할 것들을 잔뜩 만들어놓고 연주 누님을 찾아갔다.

“도와 주세요~! 누님!”

“무슨 소리야, 갑자기.”

“제가 지금 상담할 게 잔뜩이에요.”

“상담할 거?”

“공적인 일 아니고, 사적인 일로 상담 요청 한 거에요.”

허니 엔터의 사장에게 상담 요청을 한 게 아니라 내 여자 조연주 누님에게 하는 상담 요청이라고 밝혔다.

내 말을 들은 연주 누님이 다소 딱딱했던 표정을 부드럽게 풀었다.

“사적인 부분이라…. 말해보렴. 무슨 일인데?”

허니 엔터 사장님이 하필 내 여자라서 상담하기가 참 뭐한데, 현재 내 일과 관련해서 가장 조언을 잘 해줄 사람은 연주 누님이었다.

“일단 우리가 곧 재계약 시즌이잖아요?”

“그렇지.”

“그래서 제가 멤버들한테 제안을 했어요.”

“무슨 제안? 아직 회사에서 구체적으로 제안한 적 없는 걸로 아는데.”

“저희가 회사에 제안할 거에요.”

“…좋아. 먼저 바라는 걸 말해주면 회사는 편한 게 사실이지. 근데 이 일은 사적인 일이 아니라 공적인 일 아니니?”

“아뇨. 저는 제 여자한테 상담하는 건데요?”

“내가 이 회사 사장이라는 건 알고 있지?”

“그래도 누님은 제 여자니까 저를 위해서 상담을 해주지 않을까요?”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하니 연주 누님이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포옥 쉬었다.

“내가 얼마나 중립을 잘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일단 해보렴.”

연주 누님의 허락이 떨어지자 나는 냉큼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을 설명했다.

재계약 전에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로 내 여자들을 세상에 밝히는 것.

그리고 레이블 문제까지 전부 다였다.

두 문제 모두 우리 그룹의 미래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었기에 내용을 들은 연주 누님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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