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8화 〉 #67. 고민 상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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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굳이 밝힐 필요가 있을까? 지금처럼 숨긴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게 아니잖니. 그리고 너는 충분히 숨길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내 사정을 모두 말하고 연주 누님이 가장 먼저 한 말은 나를 만류하는 것이었다.
들키지 않을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는데도 굳이 그 사실을 먼저 밝혀서 논란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이게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태양이가 이제 제법 자랐잖아요. 언제까지고 숨길 순 없다고 생각해요. 재계약하기 전에 알려서 정리하고 가고 싶어요.”
만약 이번에 내 개인적인 문제가 잘 수습 되지 않는다면 그룹에서 빠지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
“다른 멤버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어. 걔네들이 밝히는 걸 바라지 않는다면?”
“그룹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선택한 거에요. 제가 잘 설명하면 멤버들도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언제까지 태양이의 존재를 숨길 순 없잖아요. 정화씨 말을 들어보면 이제 태양이가 TV에 나오는 제 얼굴을 알아본데요.”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애야. 지금 당장 말하는 것보단 좀 뒤로 미루는 건 어떻겠니? 여러 번 생각해봐도 시기가 너무 안 좋아.”
“조금 뒤로 미루고 재계약을 해버리면 그룹에 피해 끼치지 않으려고 계속 미루게 될 거잖아요. 재계약 기간 동안 말하는 건 엄두도 못 내겠죠.”
“적어도 지금은 아니야. 너희들이 좀 더 개인 활동에 초점을 맞춘 후에 밝히는 게 맞아. 더군다나 네가 지금 말하면 재계약을 할 때 불리해질 거다.”
연주 누님의 설득은 계속 이어졌다.
지금은 너무 오랫동안 그룹 활동 성향이 강해서 내 이미지가 훼손이 되면 멤버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그녀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기에 동의하는 바였다.
“재계약에 불이익을 받아도 상관없어요. 저한테 중요한 건 멤버들한테 피해가 가지 않게 제 비밀을 밝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지금 활동이 끝나고, 개인 활동 할 때 밝히겠다고 한 거에요.”
사실 그룹으로 묶인 이상 멤버들의 이미지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내가 바라는 건 최대한 멤버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내 비밀이 세상에 밝혀지는 거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재계약을 앞둔 상황에서 내 비밀을 말하는 게 최선이었다.
계약을 할 때 내 이미지를 하락시키는 건 내 가치를 떨어트리는 일이라 연주 누님이 우려를 표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 시기에 밝히려고 한 거다.
‘이걸 숨기고 재계약하면 사람들이 날 욕할 빌미를 만들어주는 거나 다름없지 않나.’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하긴 싫지만, 연예인으로서 여러 여성과의 관계를 숨기고 있다는 건 큰 약점을 숨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 가족들을 밝힘으로써 내 가치가 조금 훼손 된다고 해도 기꺼이 인내할 만큼 그들이 소중했다.
연주 누님에게 이러한 내 생각을 밝히니 아니라곤 못하겠는지 입을 다문다.
난감한 듯 이마를 손으로 만지며 생각에 잠겼던 연주 누님이 정리를 끝냈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이미 밝히겠다고 생각을 굳힌 것 같구나.”
“네, 연주 누님한테 여쭤보고 싶었던 건 어떤 식으로 밝히면 좋을지에 대해서였어요.”
“네 결심이 그렇게 확고하다면 차라리 후유증을 최소화 할 방법을 찾아야한다는 건데….”
“쉽지 않겠죠?”
“아마 밝히게 되면 당분간 인터넷은 보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나을 거다.”
연주 누님도 내가 한 고집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인지라 더 이상 설득을 하려고 하진 않는 것 같았다.
다만 내 비밀을 대중들에게 밝히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생각이 복잡해 보였다.
내가 괜히 그녀에게 상담 요청을 한 게 아니다.
연예계를 깔끔하게 은퇴하고 싶었다면 쉬운 일이었겠지만, 현재 나는 무대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일단 다행인 점은 그룹 네에서 여자관계를 밝히는 게 처음이 아니라는 거다. 연애를 하고 있는 멤버가 있다는 게 오히려 너한테 유리한 일이 된 거지. 더군다나 대중들은 이미 남자 아이돌이 결혼한다면서 은퇴하겠다고 말하는 거에 익숙해져 있어.”
남자 아이돌이 재벌 딸과 결혼을 한다며 연예계를 은퇴하는 일은 이곳에서 굉장히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팬들 입장에선 열심히 활동하던 내 돌이 하루아침 사이에 사라져버리는 것인지라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었지만, 대중들은 남자 아이돌이 아이돌 했다라고 생각할 일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 비밀을 밝히는 것은 대중들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있었다.
“네가 비밀을 밝히게 되면 대부분 은퇴를 할 거라고 생각할 거다. 보통 여자와 관계를 밝히고 나면 은퇴를 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관계를 밝힌다고 해도 굳이 은퇴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냐고 묻는다면, 맞는 말이기는 하다.
남자 아이돌이 굳이 관계를 밝힌 후 은퇴를 하는 것은 여자의 입김이 들어가서였다.
가뜩이나 일부다처가 합법인 세상에서 여자들이 우글거리는 연예계에 자기 남자를 풀어두고 싶어 하는 여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저는 은퇴할 생각 없어요.”
“당연히 그래야지. 다만 그걸 바로 밝히지는 말자. 내가 보기에 네가 비밀을 밝히면 팬들은 네가 은퇴할까봐 전전긍긍할 거다. 네가 여자랑 무슨 짓을 했는지보다 은퇴에 초점이 맞춰지겠지.”
“은퇴 생각이 없다고 바로 말하면 혼란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요?”
굳이 대답을 미뤄서 팬들을 괴롭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내가 의문을 표하자 연주 누님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설명했다.
“아니, 은퇴에 대한 걱정이 없어지면 네 여자 관계를 집요하게 따져들 거다. 차라리 네가 은퇴할지 말지 전전긍긍해 있는 게 나아. 그 부분에 초점이 맞춰지면 오히려 여자 관계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을 거다.”
“!!”
내 은퇴 여부가 여자관계를 덮어줄 거라고?
이건 전혀 생각 못해본 일이었다.
“팬들은 널 완전히 잃고 싶지 않아 할 거다.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은퇴하지 않겠다고 발표한다면 네 가정 문제는 팬들한테 큰일로 다가오지 않을 거다. 은퇴하지 않아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하는 입장이니 말이야.”
팬들에게 너무 못할 짓을 하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연주 누님이 엄한 눈빛으로 나를 혼냈다.
“네 일은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내용이다. 그런 나약한 마음으로 대중들에게 비밀을 밝힐 생각이면 지금이라도 그만 두는 게 나아.”
“윽, 죄송합니다.”
내가 말한 것도 아닌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번에 알아차리는 연주 누님이시다.
“근데 팬들이 정말 제 여자관계보다 은퇴를 더 심각하게 생각해줄까요?”
“심각하게 생각하도록 여론을 만들어야지.”
“여론을 만든다고요?”
“그래.”
“설마 돈 주고 댓글작업 하는 그런 거 말씀하시는 거에요?”
“자세한 걸 네가 알 필요는 없어. 너는 모르면 모를수록 좋은 일이야. 그리고 주아씨랑 민영씨한테 양해를 구해서 몇 가지 스케줄을 같이 뛰는 게 어떻겠니?”
“갑자기 누나들이랑 스케줄은 왜요?”
“팬들도 네 비밀을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니까. 네가 그녀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자주 노출시켜서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만드는 거다.”
TV에서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팬들끼리 사귀면 좋겠다, 잘 어울린다 등의 댓글이 올라오곤 하는데, 연주 누님이 그 부분을 사전에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고 본 것 같았다.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주면 충격이 좀 덜할까요?”
“아무래도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떨어지는 것보다야 훨씬 덜하겠지. 덩달아 소문도 좀 퍼트리면 낫겠구나.”
“소문이요?”
당연하지만 주아 누나와 민영 누나 그리고 내가 사귄다는 소문을 만들겠다는 소리였다.
“그래, 네가 두 사람과 동시에 사귄다는 소문을 만들어낼 거다. 다만 너무 대놓고 증거를 주는 건 안 돼. 소문이라는 게 한 번 나기 시작하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니 빌미를 주면 안 되는 거다. 정확한 사실 확인은 안 되는데, 소문은 있는. 안 뗀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는데 정작 불길은 찾아 볼 수 없는 거지. 그렇게 소문을 이용해서 천천히 충격의 역치를 올려보자.”
“팬들이 들으면 난리 날 소리네요.”
“어쩔 수 없어. 네가 밝힐 비밀이 워낙 크니까.”
만나고 있는 여자가 한 둘이 아니고, 그 여자들과 사실혼 관계이며 아이까지 낳은 상황을 알려야 한다.
차라리 얼굴값을 하는 놈이라고 미리 말을 해서 팬들에게 충격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게 팬들을 위한 행동이라는 거다.
“큰 거짓말을 들켜야 하는 상황에서 자잘한 거짓말을 계속 해버리면 이미지에 타격이 가니 소문에 대한 건 철저하게 무대응으로 해야 해.”
“그리고요?”
“그러다가 민영씨랑 주아씨와 함께 있는 사진을 터트리면 좋겠지. 연인 미만 친구 이상의 사진으로 세 사람이 사이좋은 모습이 담긴 사진이면 딱일 거다.”
“친구 이상 연인 미만….”
“세 사람의 관계는 딱히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을 거다. 아티스트 개인 사생활이라 확인이 어렵다 라고만 하는 거지.”
“그럼 거의 기정사실이 되는 거 아닌가요?”
사귀는 사이라고 대답만 안 한 거지, 그 정도면 그냥 대답을 한 거나 다름없다.
“그래,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았지만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 될 거다. 그러면 우리가 굳이 부지런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여러 소문들이 만들어지면서 퍼지게 되겠지.”
여기까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다.
굳이 우리가 뭔가를 하지 않아도 기자들이 특종을 잡았다며 우르르 물고 늘어질 터.
다만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이 주아 누나와 내 사이에서 태어난 태양이의 존재를 세상에 밝히는 것이지 않은가?
“소문이 만들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태양이에 대한 얘기도 나오겠네요.”
주아 누나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은 감춰지지 않은 상태다.
그 사실을 누나의 소속사에선 쉬쉬하며 화제에 올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찾아보려고 하면 쉽게 알 수 있는 게 태양이의 존재였다.
남자 아이다 보니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어서 절대 SNS에 태양이의 사진을 올리지 않았는데, 그러다 보니 소속사가 바라는 대로 대중들은 주아 누나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하지만 나와 스캔들로 얽히다 보면 누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기자들이 그 사실을 꼬집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태양이를 보면 누구 자식인지 모를 수가 없을 거다.”
“태양이가 저랑 누나를 많이 닮았죠.”
누나는 태양이가 나를 똑 닮았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누나와 나를 딱 반반씩 닮았다.
모난 구석을 닮은 게 아니라 잘난 구석만 쏙쏙 빼내가서 말이다.
“태양이가 제 아들이라는 걸 밝힐 생각이긴 한데, 그게 아이 신상을 언론에 밝히겠다는 뜻은 아니었는데요.”
가뜩이나 우리를 너무 닮아서 앞으로의 삶이 피곤할 태양이다.
엄마 아빠 때문에 벌써부터 언론에 오르는 건 지양하고 싶었다.
“10살도 안 된 애 신상을 캐서 기사를 내는 년이 나오면 나도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다만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것들만 있는 게 아니라서 주의할 필요가 있어.”
“그럼 태양이한테 따로 손을 써놔야겠네요.”
적어도 태양이 얼굴만은 언론에 오르지 않도록 아이템을 써놔야겠다.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태양이의 구체적인 얼굴이 절대 카메라에 담을 수 없게 만드는 아이템이 존재했다.
“그래? 그럼 일이 좀 편해지겠구나.”
태양이의 신상이 보호가 된다면 좀 더 시간을 끌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상황이 내게 유리해질 거라고 했다.
“제 비밀을 듣고, 팬들이 배신감을 느끼진 않을까요?”
“고작 그런 일로?”
내가 살던 세상과 이 세상이 많이 다른 점이 바로 이거다.
남자 아이돌은 어느 정도 잘못을 저질러도 이해를 해준다는 점이다.
여자와 스캔들이 나도 남자라는 점 때문에 이해를 한다.
물론 속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주아 누나와 민영 누나의 관계로 시작을 해서 점차 다른 여성들과의 관계를 드러내면 팬들도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어진다.
“팬들은 네가 은퇴하지 않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게 될 거야. 이후로 네 여자들과 관계가 드러나도 그러려니 하겠지. 차라리 네가 말한 시기에 비밀을 터트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구나. 재계약을 안 하고 은퇴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떠돌기 시작하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분일 테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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