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59화 (459/849)

〈 459화 〉 #67. 고민 상담 (3)

* * *

연주 누님과의 상담이 있고 며칠 후.

우리 쪽에서 아직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내가 한 여자와 얽히는 일이 생겼다.

엉뚱한 스캔들이 터진 것은 아니고, 해외 유명 스타가 나를 이상형으로 꼽았다는 것이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비비안 로랑, 무거웠던 입을 열다! 그녀의 이상형은 에어플레인 진해솔?]

비비안 로랑이 드디어 수줍게 이상형을 고백했다.

그녀의 집안은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꾸준히 실천해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명망 높은 집안의 자재이다.

이례적으로 연예계 배우로 데뷔한 그녀는 각종 사회적 문제를 꼬집는 영화에 출연하여 명성을 높여나갔고, 꾸준한 봉사활동으로 연예계에서 깔 게 없는 청정 연예인으로 손에 꼽혔다.

다만 보수적인 집안 때문일까?

아름다운 외모와 성품과는 달리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그녀에게 선택 받을 남자는 과연 누구일지, 귀추가 주목 되는 가운데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로랑이 드디어 이상형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녀의 마음을 빼앗아간 첫 남자는 다름 아닌 K­POP 스타 아이돌로 유명한…….

유명 연예인들이 나를 이상형으로 꼽은 것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이번에는 상대가 좀 특별해서 이렇게 난리가 난 거였는데, 비비안 로랑은 집안 자체가 굉장히 좋은 명문가 자녀인데다 배우로서도 명성이 매우 높은 여자였다.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아간 그녀는 배우로 활동하는 내내 남자와 스캔들을 내지 않았다.

주변에서 이상형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도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라는 싱거운 답변만하던 여자.

그런 그녀가 돌연 인터뷰에서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 말을 했으니 화제가 안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사람이 이상형이라며 말한 남자가 있다?

둘 사이에 뭔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나라도 그렇게 오해했을 것 같으니까.’

비비안 로랑이 했던 인터뷰 하나로 온갖 기사가 생상 되었다.

[핑크빛 로맨스 시작 되나? 재벌 3세 녀의 뜨거운 고백!]

[촬영 앞둔 두 사람, 세기의 커플 되나?]

[안나의 화보 촬영을 맡게 된 비비안 로랑, 진해솔. 촬영장에선 어떤 일이?]

언론에는 이미 그녀와 내가 사귀는 사이일 거라며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곳도 있었고, 비비안 로랑과 내 사진을 나란히 놓고 잘 어울린다며 칭찬을 하는 기사도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당사자는 아무런 생각도 없는데, 주변에서 잘 어울린다고 난리를 치는 걸 보니 말이다.

예전이었다면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고 딱 잘라 언론에 알렸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연주 누님과의 상담으로 여자와 얽히는 것에 너무 단호한 태도를 취하지 않기로 한 상태였다.

그리고 회사의 무대응이 이번 사건을 더 크게 만드는 연료가 되어주고 있었다.

‘예쁘긴 한데….’

여자로서 비비안 로랑이 매력적이지 않은 건 아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금발과 영롱한 에메랄드 눈동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너무 이미지가 좋단 말이지.’

내가 다년간 연예계에서 생활하면서 연예인 이미지는 정말 꾸며진 것에 불과하다는 걸 뼈 저리게 느꼈다.

이미지가 정말 그대로인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으며,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평소 알려진 성격과 많이 달랐다.

그러니 비비안 로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꾸준한 봉사활동과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보여주는 명문가라는 점이 오히려 의심을 더 부추겼다.

‘비비안 로랑이 어떤 여자인지는 며칠 후 있을 스케줄에서 알게 되겠지.’

비비안 로랑이 이상형으로 나를 꼽으면서 곧 함께 촬영을 하게 되는데 기대 중이라고 인터뷰를 한 것처럼 그녀와는 곧 만나게 될 예정이었다.

문제는 비비안 로랑과 함께 촬영하기로 한 게 조안나가 운영하는 패션 브랜드라는 점이다.

­괜찮겠어? 거북하다고 하면 촬영을 좀 늦출 수 있어.

“이런 일로 촬영 늦추는 게 더 번거로워.”

소식을 들은 조안나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괜찮은지 물었다.

이미 계약이 맺어 있었기에 촬영을 없던 일로 할 순 없어도 여론이 좀 잠잠해질 때까지 시간을 좀 늦추는 것은 가능하다며 내게 의향을 물은 것이다.

­촬영할 때 내가 같이 있을까? 내가 옆에 있으면 로랑도 자기한테 노골적으로 접근하진 못할 거잖아.

조안나는 내가 여자들의 추파를 피곤해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당신이 촬영장에 있으면 다들 긴장해서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하지 마. 이런 적이 뭐 한 두 번인가.”

날 위해서 하는 제안하는 거라는 건 알지만 사장님이지 않은가?

직원들이 바짝 긴장해서 제대로 일을 못할 게 분명하다.

우리 전담팀도 연주 누님이 나타나면 평소에 잘만 하던 것도 긴장해서 못하고 실수하는 사람이 생긴다.

­그 정도도 못할 만큼 멍청한 직원들 아니야. 혹시 로랑이 마음에 들어?

“아니. 내가 알아서 잘 거절할 수 있다는 뜻이었어.”

­정 귀찮게 굴면 말해. 내가 당장 달려갈 테니까.

“보니까 굉장히 착한 사람이라고 하던데, 설마 질 나쁜 여자처럼 행동하겠어? 사람들 시선이 있는데.”

비비안은 꾸준히 봉사 활동을 하고, 거액의 기부금을 내면서 착한 이미지를 고수한 연예인이다.

이미지와 전혀 맞지 않은 성격을 가졌다 해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착한 척은 해야 할 터.

그 정도면 내가 알아서 요리를 할 수 있었다.

‘촬영날 바짝 긴장해야겠어.’

비비안 로랑과 내가 조금이라도 친해지려는 기미를 보이면 엮으려고 난리가 난 사람들이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거다.

내가 이상형이면 이상형인 거지,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사람과 당장 사귀기라도 할 것처럼 설레발을 치는 건 너무 어이없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까지 이상형을 밝히지 않고 남자와 거리를 두던 여자가 갑자기 나를 이상형으로 언급한 것도 수상쩍은 느낌이 났다.

정말 순수하게 나를 마음에 둬서 한 말이었다면, 언론에 미리 말해서 문제를 일으키기보단 나와 만났을 때 조심스럽게 마음을 전하지 않았을까?

어떤 꿍꿍이를 감추고 있는지는 직접 만나봐야 알 일이었다.

? ? ?

아름다운 외모와 기품 있는 자태.

금실을 짜놓은 듯 유난히 아름답게 반짝이는 금발과 영롱한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남자들로 하여금 그녀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내게 한다.

그리고 현재 그런 그녀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이렇게 만나 뵐 수 있어서 정말 기뻐요. 팬이에요.

­네. 반갑습니다.

­혹시 제 인터뷰 기사 보셨나요?

­네, 봤습니다.

­죄송해요. 저는 일이 이렇게 커질 거라곤 생각을 못했어요. 저 때문에 많이 곤란하셨죠?

지금도 충분히 곤란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녀와 내가 대화를 시작하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훔쳐보고 있지 않은가?

촬영 준비도 뒤로 하고서 말이다!

­좀 놀라긴 했습니다.

­제가 사실 해솔씨가 예전에 나왔던 어메이징 스타를 보고 있거든요. 무대를 보고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인터뷰에서 이상형이라고 말을 했던 거고요. 그때까진 일이 이렇게 커질 거라고 생각 못했던 것 같아요.

­사실 이상형을 말한 것뿐인데, 너무 과할 정도로 주목을 받긴 했죠.

비비안 로랑의 첫 인상은 정말 착해보인다는 거였다.

청순하고 순수한 외모와 분위기가 찰떡처럼 잘 어울렸다.

저렇게 화려하게 생겨놓고 청순한 분위기가 난다는 게 의외였는데, 그것이 이질적이지 않고 잘 어울려서 참 예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러니까 천사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던 건가?’

비비안씨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들여서 내게 인터뷰 때문에 생긴 소란을 재차 사과했다.

주변에서 우릴 구경하던 사람들은 달달할 줄 알았던 분위기가 오히려 경직되고 딱딱해지자 실망하는 눈치였다.

나는 주변 사람들을 의식해서 더더욱 딱딱하고 예의 있게 그녀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사과 받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여기서 더 하시면 부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런가요. 그래도 괜히 저 때문에 큰 피해를 입으신 것 같아서…. 말로만 사과드리면 너무 죄송해서요.

­아닙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가라앉을 일이잖아요?

물론 내가 말했던 대로 수습이 되려면 그녀와 내 사이가 조금의 접점도 없어야만 했다.

그래야 기자들도 포기할 테니 말이다.

나는 그렇게 되길 바란다는 의미를 담아 비비안씨를 바라봤다.

다행히 그녀가 눈치 없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저도 잘 부탁드려요!

내게 했던 실수의 대가는 촬영을 잘 하는 걸로 보답해주길 바란다.

‘그래도 이미지가 아예 불 안 뗀 굴뚝은 아니었나보네.’

비비안씨는 내게 보여주었던 예의를 주변 스태프들에게도 보여주고 있었다.

단순히 사람을 대하는 것으로 성격을 다 알았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자기 사람을 대할 때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그러지 않는 연예인들이 워낙 많으니까. 아무튼 이미지가 아예 거짓말이 아니라는 건데…. 정말 인터뷰는 실수였나보네.’

그녀가 설명했던 것이 사실이고 단순한 헤프닝으로 넘어갈 만한 일이라면,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마침 내가 얻어야 할 이미지에 이번 루머가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 상황은 걱정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편하게 흘러갔다.

촬영하는 동안 비비안씨는 좋지 않은 의도를 품은 채 내게 접근하는 일이 없었고, 오히려 깔끔하게 거리를 둬서 다른 루머를 만들지 않도록 하는 배려심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너무 거리를 두는 바람에 내가 머쓱해질 지경이었다.

­너무 긴장한 것 같은데, 좀 분위기를 풀어보는 게 어떨까요?

그리고 비비안의 심리적인 거리감은 커플 촬영에 들어서자 문제를 만들어냈다.

­좀 더 가까이 붙어봐요. 비비안!

­아…이렇게요?

­아니, 너무 멀잖아요! 남자랑 손도 안 잡아 본 처녀처럼 왜 그래요? 이거 커플 촬영이에요. 지금 두 사람, 연인 관계여야 한다고요.

­이, 이 정도면 될까요?

­하…. 정말 그 정도가 연인으로써 최선인가요?

점점 까칠해져가는 포토그래퍼와 점점 기가 죽어 목소리가 내핵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비비안.

이대로면 촬영이 너무 길게 늘어질 것 같았기에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촬영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요. 이제부턴 제가 리드해도 될까요?

­네, 네???

어리둥절해 하는 비비안의 옆구리에 팔을 서슴없이 두르고 포즈를 취했다.

찰칵­!

­그렇지! 그거야! 비비안씨! 표정!!

포토그래퍼가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누르면서 비비안씨의 표정을 지적했다.

그녀도 어디서 빠지지 않는 프로인지라 재빨리 표정을 바꿨다.

내가 촬영을 리드하기 시작하자 지금까지 느껴지던 거리감이 언제였냐는 듯 사라지고 한 쌍의 아름다운 커플이 완성 됐다.

비비안이 정말 못해서 포토그래퍼에게 지적을 받은 게 아니라는 것이 지금 이 순간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찰칵­

­아~! 좋아요. 두 사람 정말 잘 어울린다. 친구처럼! 친근하게! 좀 더 붙어도 좋아요. 비비안씨가 어깨에 손 올려볼게요. 그렇지!! 이거거든! 이렇게 잘 할 수 있으면서 왜 뺐던 거야? 이상형이라서 부끄러움 탄 거에요?

­아앗! 작가님!

비비안이 얼굴을 붉히며 귀엽게 항의했다.

주변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스태프들이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방금 그 얼굴, 귀여운데? 청순하기만 한 줄 알았더니 이런 표정을 숨기고 있었네. 더 해봐요. 부끄러워하는 것 좀 찍어보자.

­짓궂으세요!

촬영 진도가 쭉쭉 빠지다 보니 옷도 자주 갈아입어야 했다.

­다음 옷 촬영 갈게요!

우리 두 사람이 커플인 촬영이었기에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커플로 된 옷이었고, 우리 두 사람은 여러 사람들에게 잘 어울린다는 말을 계속해서 들어야 했다.

­두 사람 왜 안 사귀는 거야? 이렇게 잘 어울리는데.

­해솔씨가 부담스러워하세요. 그러니까 그 말은 좀….

­아! 미안미안. 알았어요. 사과할게요.

­아닙니다. 잘 어울린다는 건 그만큼 촬영이 잘 되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역시! 해솔씨는 프로라니까. 굿! 좋아! 얼굴만큼 실력도 완벽해.

나는 포토그래퍼에게 쏟아지는 칭찬을 덤덤하게 받아내면서도 딱히 부끄러워한다거나 부담스러워 하는 기색을 내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나까지 저 칭찬들에 동조하면 주변에서 우릴 또 엮으려는 분위기를 잡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내가 덤덤하게 반응해서 그런지 포토그래퍼도 점점 우리를 엮는 말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오늘 정말 좋았어요!

그렇게 촬영이 무사히 끝나고.

“오늘 잘 했어. 이 정도면 이번 루머는 깔끔하게 정리 되겠더라.”

매니저가 내게 엄지를 치켜든다.

“저쪽도 이번 사건은 단순히 실수였나봐. 덕분에 나도 대처하기가 편했어.”

“비비안은 진짜 성격이 이미지 그대로인 것 같지? 저렇게 천사같은 여자가 실제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뭔가 행동 하나하나에 기품이 철철 흘러 넘치던데? 역시 태생이 달라서 그런가?”

매니저와 나는 이 정도면 헤프닝이 깔끔하게 해결 되겠구나 생각하며 흡족해 하고 있었다.

촬영 장소가 해외였기에 매니저와 단 둘이 해외로 나와야 했고, 내일 당장 다른 국내 스케줄이 있는지라 곧장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관광 못해서 어째?”

“어쩔 수 없죠. 스케줄이 바쁜데.”

­저, 저기!

매니저와 대화를 나누며 촬영장을 빠져나오려던 찰나.

내 옷깃을 붙잡는 미약한 손길이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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