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62화 (462/849)

〈 462화 〉 #68. 비비안 로랑 (3)

* * *

병실에 도착했을 때, 미미는 비비안의 앞에 앉아서 머리를 예쁘게 땋고 있었다.

준비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됐는지 꽤나 다급하게 빨리 땋아달라며 미미가 비비안을 재촉했다.

­빨리빨리.

­좀 차분하게 기다려. 아직 시간 많이 남았다니까?

­검사 받느라고 여태까지 아무것도 준비 못했어! 이대로 진을 만나면 실망할 거야.

­아니, 그럴 리 없어. 미미를 보면 분명 예쁜 공주님이라면서 환하게 웃어줄 걸?

­그래도 난 더 예뻐질 거야! 진을 반하게 해야 한다고.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는 공주님이셨군.

내게 예쁘게 보이고 싶다는 마음에 미미는 병원복까지 벗어 던지려고 했다.

­옷까지 갈아입겠다고?

­응. 저번에 엄마가 사온 걸로 입을래.

­엄마가 예쁘게 머리 해줬는데?

­이걸로는 부족해! 진한테 예쁘게 보여야 한다구! 병원복은 칙칙하고 냄새나서 실망할 거야.

­미미, 전혀 그렇지 않아. 미미는 병원복을 입어도 충분히 예뻐. 그리고 분홍색 귀여운 곰돌이가 그려져 있는 걸?

­난 곰돌이 싫어. 제일 싫어!

지금 들어가면 무척 실례일 것 같아 병실 앞에서 좀 기다리기로 했다.

안경을 끼고 있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수상하다며 간호사가 뭐라고 했을 거다.

옷을 다 갈아입은 것을 확인하고 서야 나는 병실 문에 노크를 했다.

‘이제 들어가도 되겠지?’

똑똑똑­

­앗! 어떡해! 벌써 왔나봐.

­그럴 리가. 너무 빠른데. 누구세요?

­접니다.

­꺄악!! 진짜야! 진짜 진이야!!

내 목소리를 듣고 정체를 금방 눈치 챈 미미가 비명을 지른다.

­너 그렇게 펄쩍펄쩍 뛰면 안 된다고 엄마가 그랬지!! 엄마가 열어 줄 거니까 얌전히 앉아 있어. 흥분해서 쓰러지면 만나는 것도 바로 끝나 알고 있어?

­핫! 나 흥분 안 했어. 빨리 열어줘! 진이 기다린단 말이야.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란이 수습되길 기다리길 잠시.

드디어 병실 문이 열렸다.

VIP실이라서 그런지 병실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병실이었다.

다만 이곳이 결국 병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병원에서만 맡을 수 있는 묘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미미, 안녕.

나는 비비안에게 눈인사를 하고, 등 뒤에 숨기고 있던 꽃을 꺼내 들어서 미미에게 내밀었다.

­헉! 정말 진이잖아!

미미는 분명 내가 온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얼굴이 어찌나 귀엽던지.

­꺅! 꽃이잖아.

­응, 미미한테 주는 선물이야. 미미랑 잘 어울리는 꽃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튤립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사왔어. 어때? 마음에 들어?

­당연하지! 고마워 진. 정말 예뻐. 근데 이런 꽃은 나보단 진이 더 잘 어울리는 걸.

­하하, 그럴 리가. 나보단 미미가 더 잘 어울려.

노란색 튤립이 잘 어울릴 것 같았지만, 꽃말이 별로 좋지 않아서 붉은색 튤립으로 바꿨다.

다행히 미미는 내가 준 꽃을 수줍게 받아줬다.

­이거 잠깐 진이 들고 있어줄 수 있어?

­물론이지.

미미에게서 꽃을 받아들고 서 있으니 미미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찰칵 찍었다.

내가 꽃을 들고 있는 걸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보다.

다만 나에게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아서 비비안이 재빨리 미미의 행동을 막아 세웠다.

­미미! 함부로 사진을 찍으면 어떡해? 양해를 구했어야지.

­왜? 연예인은 찍어도 되는 거잖아.

­그럴 리가! 어디서 배운 예절이야? 그런 일은 없어.

­엄마 사진은 맨날 함부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잖아!

­그건…!

미미의 반박에 할 말을 잃은 비비안의 입이 막혔다.

나는 딸을 이기지 못하는 비비안을 보며 알만 하단 생각이 들어서 말했다.

­미미, 누군가가 미미 사진을 함부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면 기분이 좋을까, 나쁠까?

­당연히 기분 나쁘지!!

미미가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대답했다가 깜짝 놀라서 내 손을 확 잡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혹시 기분 나빴어?

­아무래도 연예인이다 보니 익숙해서 괜찮았어. 근데 미미가 다른 사람한테도 이런 말을 하고 무례하게 사진을 찍을까봐 좀 걱정이 돼.

­진이 싫어하는 거면 안 할 거야! 절대 안 해! 믿어줘.

­그래, 미미가 약속한 거니까 믿을게. 그리고 엄마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는 사람들은 무례한 사람들인 거야. 아무리 연예인이라고 해도 허락을 받지 않고 함부로 사진을 찍으면 당사자는 기분이 나쁘거든.

­미안해.

­그래, 앞으로 실수하지 않으면 된 거야. 그나저나 미미 그동안 잘 지냈어?

­응! 근데 진이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 하루하루 진을 기다렸어.

꼬마 비비안의 수줍은 고백에 웃음이 나온다.

비비안도 굉장히 마른 편에 속하는데, 미미는 그보다 훨씬 마른 몸을 갖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우리 태양이보다 더 작아서 마음이 안 좋네.’

남녀의 차이가 있다지만, 어릴 때는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의 발육이 더 빠르지 않은가?

그러니 태양이보다 나이가 많은 비비안이 더 커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영상 통화를 하면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병색도 직접 가까이에서 보니 확연하게 드러났다.

‘어디가 아픈 걸까?’

사실 그렇게 안타까우면 코인을 쓰면 되는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나와 상관없는 사람에게까지 코인을 써서 치료를 해주는 일은 할 수 없다.

치료 아이템을 구매하는데 드는 코인이 한 두 푼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내가 가진 능력을 내 지인이 아닌 사람에게 쓰는 걸 지양하겠다고 다짐한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미미가 아픈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정을 들여다 보면 이 아이보다 더 딱하고 동정심을 들게 만드는 사연이 수두룩했다.

‘적어도 미미는 치료 받을 때 돈 걱정 안 해도 되니까.’

집안에 돈이 많기에 최고의 의료진으로부터 케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아이가 심각하게 아픈데도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끔찍한 경우도 있는데, 미미에게 생긴 동정심에 아이템을 주는 건 오지랖이 너무 심한 거였다.

더욱이 내가 코인을 많이 갖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기에 오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할 생각이었다.

아이가 오늘 만남으로 힘을 내서 계속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잠깐이라도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말이다.

‘벌써 목적을 달성한 것 같긴 해.’

미미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만큼 나와의 만남이 아이에게 큰 기쁨이 된 것 같았다.

­아참! 사인! 사인 받아야 해. 엄마가 사인을 안 받아와서 얼마나 실망했는지 몰라!

­미미…! 하아~

미미는 너무 ㅎ으분해서 비비안을 엄마라고 부르면 안 된다는 사실도 잊은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비비안과 미미의 사이를 이미 알고 있다는 거다.

비비안은 뭐라고 한 마디 하려다가 미미의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혼을 내더라도 나중에 내는 게 맞다고 본 것 같았다.

나는 미미가 주섬주섬 꺼내드는 우리 앨범들을 보다가 미리 준비한 선물을 꺼냈다.

­사실 선물이 하나 더 있어. 나도 나중에 사인을 안 해줬다는 게 기억이 났었어. 그래서 미리 사인한 앨범을 준비했지.

­앨범!

­응, 여기다가 이렇게 멤버들 사인까지 다 받아왔어.

­기뻐!

­그리고 이건 내가 미미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깜짝 선물.

­꺄아아악!! 어떡해!! 귀여워, 진 피규어잖아!!

내가 준비한 2등신 피규어를 본 미미가 기절할 듯이 비명을 질렀다.

저게 행복한 미소라서 정말 다행이다.

­미미한테만 준 거니까 다른 곳에 자랑하는 건 안 돼. 다른 팬들이 부러워할 거야.

­응! 마음 같아서는 사람들한테 전부 자랑하고 싶은데 꾹 참을게. 소중하게 보관할게.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야! 근데 내가 이런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는 걸까?

­충분히 있지. 미미가 나를 사랑해주는 팬이니까.

내 피규어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은 단 하나다.

에어플레인의 팬이라는 것.

미미는 조건이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로 갖고 있었다.

­그걸로 된다고?

­당연하지.

미미는 이후로도 내게 딱 달라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나는 미미의 요청으로 팬송을 불러주기도 하고, 함께 미미가 가장 좋아하는 무대를 보면서 비하인드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미미, 이제 그만 쉬어야 해.

­싫어! 가지마. 진, 제발~

미미에겐 영원하길 바랐을 시간이 지나고 이제 나도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됐다.

미미는 이미 자야 할 시간에 가까워져 있었다.

아무리 VIP실이라지만 면회 시간이 있는 병원에서 지금 이 시간까지 머무르고 있는 건 민폐였다.

­미미, 설마 고집 부리려는 거야?

­지금이 아니면 다신 진을 못 보는 거잖아. 오늘 하루만 욕심 내면 안 돼? 엄마는 내가 바라는 거 다 해주겠다고 했으면서 진짜 바라는 걸 들어 준 적은 없어! 뭐든 다 해줄 수 있다며. 근데 왜 자꾸 안 된다고만 해. 엄마는 거짓말쟁이야!

미미가 결국 엉엉 눈물을 터트렸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미미, 왜 우리가 마지막일 거라고 말해? 미미가 보고 싶다고 하면 다시 올게.

­그러지 말아요. 미미가 안 되는 일을 고집 부리는 거잖아요. 네가 그렇게 행동하면 네 소중한 진이 어떤 마음이겠어? 고집 부리지 말고 보내주기로 했잖아.

­나 다 필요 없어. 진이 계속 내 옆에 있기만 하면 돼. 그럼 병원에 있는 것도 투정 안 부릴 거고, 약도 잘 먹을 거야.

­엄마가 많은 걸 해줄 수 있지만, 그건 못하는 거야. 엄마도 못하는 게 있다고.

자식에게만은 슈퍼우먼이 되고 싶었을 비비안의 고백에 미미가 충격을 받았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이건 고집을 부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눈치 챈 듯했다.

­미미는 걱정하지 말고 가세요. 지금 이렇게 시간 내준 것만으로도 저한테는 못 갚을 은혜였어요. 나중에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꼭 연락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그럼요. 이 정도도 못하면 아이 엄마 못해요.

촬영장에서 봤던 비비안은 영락없는 여배우였는데, 지금 내 앞에 있는 여자는 여배우가 아니라 한 아이의 엄마로 보였다.

미미가 아파서 오냐오냐 애지중지 하는 줄 알았는데 제법 단호하게 말을 할 때도 있는 모양이었다.

울고 있는 미미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왔다.

비비안은 나를 배웅하겠다며 우는 미미를 간호사에게 맡기고 나를 따라 나왔다.

­미미한테 한 말, 거짓말 아니었어요. 아이가 저를 많이 보고 싶어 하면 연락하세요.

­…정말 또 연락을 하라고요?

­네. 저도 미미랑 함께 한 시간이 즐거웠거든요.

비비안은 내 말에 부담을 느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미미한테 이렇게까지 신경 써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런데 아이를 위해서라도 계속 연락하는 건 안 될 것 같아요. 저희가 따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일방적으로 빚을 너무 많이 졌어요.

미미는 한도 끝도 없이 나를 보고 싶어 할 것이고, 그런 바람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서로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거라는 게 비비안의 생각이었다.

­저는 미미한테 뭐든 다 해주고 싶은 사람이지만, 해솔씨는 그럴 이유가 없는 사람이죠. 그러니 이번 일은 정말 특별했던 이벤트로 남겨두고 싶어요. 혹시 기분 나쁘신가요?

­아뇨. 비비안씨 마음 충분히 이해 갑니다. 미미한테는 만나서 좋았다고 전해주세요. 덕분에 힘을 많이 받고 간다고요. 미미가 저를 만나서 좋아한 만큼, 저도 미미를 만나서 좋았거든요. 앞으로도 응원해줬으면 좋겠네요.

­물론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포옹 한 번만 해도 괜찮을까요?

­어…네?

내 대답을 허락으로 들었는지 비비안이 나를 향해 와락 달려들었다.

얼떨결에 품에 안았지만, 솔직히 미인을 품에 안은 게 기분 나쁘진 않았다.

­정말 고마웠어요. 난 언제든 당신 편일 거에요.

쪽!

내 볼에 가볍게 키스를 남긴 그녀가 미미의 병실로 들어갔다.

홀로 남은 나는 삐뚤어진 안경을 고쳐 쓰기 위해 잠깐 벗었다가 손으로 눈을 비볐다.

‘치명적인데….’

비비안의 포옹이 생각보다 꽤 치명적인 효과를 냈기 때문이었다.

순간 심장이 크게 두근거렸고, 내가 그녀에게 큰 매력을 느꼈음을 부정할 수 없어졌다.

처음에 미미를 위해 병실까지 왔던 건 정말 흑심 없이 순수하게 팬을 위해서 한 행동이었는데 말이다.

내 행동이 의도치 않게 비비안에게 큰호감을 사버린 모양이었다.

다만 방금 전의 행동으로 보아아이를 위해서 자기 마음을 단호하게 끊어낸 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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