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64화 (464/849)

〈 464화 〉 #68. 비비안 로랑 (5)

* * *

지이이잉­

“…….”

비비안은 지긋지긋해질 정도로 울려대는 문자와 전화 소리에 이마를 짚었다.

무음으로 만들어주고 지내길 며칠 째.

받아야 하는 연락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진동으로 해놓으니 또 다시 그녀를 괴롭히는 문자가 이어졌다.

[난 여러 번 기회를 줬습니다. 내 호의를 거절한 건 당신이에요.]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든 내 탓이 아니라 당신 탓인 겁니다.]

[실망스럽네요. 우리가 좋은 관계가 될 거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아무래도 차단해야겠어.’

남자의 후환이 두려워 차마 차단까지는 하지 못했던 그녀도 계속 된 질 나쁜 문자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어버렸다.

비비안은 남자의 번호를 차단하고서야 지긋지긋한 두통이 조금 가시는 것을 느꼈다.

집안에서 결혼을 하라며 이어 준 남자는 미미를 진심으로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해서 집안의 강요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남자를 거절했다.

그리고 어르신들도 싫다는 걸 억지로 시킬 순 없다고 봤는지 결혼을 없던 일로 마무리하겠다고 해주셨다.

그래서 상황이 모두 끝났구나 안심했던 것 같다.

이 남자의 성격이 치졸하고 스토커적인 기질을 갖고 있음을 몰랐던 과오였다.

비비안이 자신을 거절했다는 소식을 전달 받게 된 남자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 것 같았다.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기에 비비안은 처음에 연락을 받고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잠깐의 대화였지만 아이를 키우는 관점이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이와 관련해서 이렇게 맞지 않는다면 결혼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혼을 거절한 이유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서 말이다.

하지만 남자는 생각보다 끈질겼다.

자기 앞에서 갑처럼 굴던 남자가 돌연 태도를 바꿔서 매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비비안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잠깐의 겉치레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짓을 하는 걸 보면 내 예상이 맞았던 거지.’

남자는 그녀가 감언이설에도 넘어오지 않자 악질로 변해갔다.

그동안 남자에게 좋은 감정이 들었던 적이 굉장히 적었는데, 이번 일로 남자라면 더 학을 뗄 것 같았다.

그 남자의 인상이 이보다 더 최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비비안 로랑, 모두를 감쪽같이 속였다!]

[18살의 나이에 낳은 아이가 있다? 알음알음 소문으로만 알던 찌라시였는데….]

[아이와 아이 아빠의 존재를 숨긴 이유가 뭘까? 비비안 로랑의 두 얼굴을 파헤치다.]

기사가 떴다.

그동안 철저하게 숨겼던 미미의 존재를 적나라하게 밝힌 기사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비안이 실수를 해서 아이의 존재가 밝혀진 건 아니었다.

집안에서 남자를 잘못 소개시켜준 탓이었다.

비비안을 결혼시키려면 그녀의 치부를 미리 말을 해둬야 했고, 결혼이 파토 날 거라 생각 못한 부모님이 비비안의 치부를 함부로 남자에게 알렸기에 생긴 일이었다.

[청순과 순수의 대명사였던 비비안 로랑, 사실 갑질의 대명사였다?]

[비비안 로랑은 팜므파탈? 그녀를 거쳐간 남자들.]

그리고 시작 된 끔찍한 루머와의 전쟁.

비비안이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악의였다.

? ? ?

먼저 선을 그어서 나와의 관계를 거절한 비비안.

나는 미미의 병실을 찾아갔던 날 이후에는 비비안을 완전히 잊고 살았다.

잠깐 그녀에게 홀려서 두근거렸던 마음도, 관심에서 멀어지니 언제 그랬냐는 듯 잊혀졌다.

애초에 그녀에게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닌지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다만 내가 그녀를 완전히 잊기 전, 그녀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내 귀에 들려와 관심을 끌었다.

“아이가 있었대.”

“어쩜 감쪽 같이 처녀 행세를 했담?”

“진짜 연예인 이미지는 믿으면 안 되는 구나.”

“왜 애를 숨겼지?”

“그땐 무명 여배우였으니까 숨긴 거 아닐까?”

워낙 유명한 해외 사건이라 그런지 바깥에 나가면 비비안 로랑의 일을 얘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멀쩡한 애를 병원에 가둬서 키웠다는데?”

“진짜 끔찍하다.”

“경찰서가 안 잡아가나? 외국은 아동학대 쪽으로 형량 엄청 세잖아.”

그녀와의 인연은 끝이 났지만, 미미가 건강을 회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랐기에 마음이 좋지가 않았다.

지금까지 잘 숨겨오고 있던 아이의 존재가 뜬금없이 언론에 의해 밝혀진 것이 나를 찜찜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필 내가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비비안이 결국 못 참고 밝힌 건가?’

사실 처음에는 갑자기 밝혀진 미미의 존재가 의심 돼서 비비안이 한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곧 그녀가 의도한 바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나오는 기사들이 비비안을 비난하는 어조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왜 집안에서 커버를 안 해주지? 이거 괜찮은 거 맞아?’

내일이 되면 여론이 좀 잠잠해지겠지 싶어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비비안 로랑에 관련 된 여론이 잠잠해질 기미가 안 보였다.

아이의 존재를 숨기고 처녀 행세를 했으니 비난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비비안을 둘러싼 여론을 보면 마녀사냥을 떠올리게 할 만큼 과열 되어 있었다.

미미가 계속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것을 멀쩡한 아이를 가둬둔 거라고 와전이 되어 소문을 만들었고, 비비안이 만나는 남자만 한 트럭이라는 소문도 사실처럼 퍼져나갔다.

[비비안 로랑의 내연남이라고 밝힌 남성 등장!]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사실인 것 마냥 지껄여 놓은 기사가 제일 큰 문제였고 말이다.

순식간에 비비안은 명문가 출신의 기품 있는 여성이 아니라 창녀보다 문란하고, 악마처럼 아이를 학대한 마녀가 되었다.

‘미미는 괜찮을까?’

단순히 소문이 와전 됐다기엔 너무 과했다.

문득 누군가가 손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비안에게 악의를 가진 누군가가 그녀를 무너뜨리기 위해 언론을 움직인 거라면 이런 과열 된 상황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걱정 되는데….’

미미의 병실에 방문했을 때, 아이는 핸드폰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러니 엄마의 상태를 모르고 있을 확률이 매우 낮았다.

가뜩이나 아픈 아이에게 엄마의 불행이 자신으로 인한 것임을 알았을 때, 아이가 느낄 감정은….

‘충격적이겠는데.’

결코 가볍지 않은 충격일 것이다.

미미의 병실 위치는 이미 한 번 다녀왔기에 당장 이동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미미를 찾아간다고 해서 아이가 진정 기뻐할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내 팬이라고 해도 이런 상황까지 위로가 될 만큼은 아닐 걸.’

결국 나는 미미를 찾아갈 생각을 접었다.

내가 끼어들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혹시 저번에 같이 촬영했던 비비안 로랑 기억하니?”

혼자서 비비안 로랑의 일을 주시하고 있을 무렵.

의외의 사람이 나에게 비비안 로랑에 대한 일을 질문해왔다.

“알죠. 얼마나 됐다고 잊었겠어요.”

바로 연주 누님이다.

“지금 그 사람이 딸을 숨기고 있었다는 게 밝혀져서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이야. 혹시 알고 있니?”

“네, 알고 있어요. 저랑 상황이 비슷하잖아요. 그래서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 나도 그래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중이었어. 그런데 보아하니 좋게 수습이 될 것 같지가 않더구나.”

“근데 그 일이 누님까지 신경 써야 할 정도로 큰일이에요?”

“당연하지.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는 건 너한테 좋지 않아. 너도 아이를 밝혀야 하는 상황인데, 안 좋은 선례가 남을 거다.”

연주 누님이 비비안 로랑에게 관심을 보인 건 나 때문이었던 것 같다.

비비안은 아이를 밝히고 비난을 받았는데, 같은 상황을 고백한 내가 비난을 안 받는 건 이상하지 않겠는가?

“근데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요.”

문제는 비비안의 일이 좋지 않게 끝이 난다 해도 우리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돕고 싶어도 제 3자가 나서서 돕는 건 우스운 일이며, 당사자가 그걸 바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돕는다고 해도 도울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래도 가만히 보고만 있는 건 성미에 안 맞아서 말이다. 이런 상황이 왜 갑자기 벌어진 건지 조사를 좀 해봤다.”

“오! 저도 그게 좀 궁금했는데 알려주세요. 제가 좀 봤는데 누가 일부러 비비안씨를 몰아가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구나.”

연주 누님이 내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어서 설명을 해주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건 가문에서 비비안에게 주선해준 남자 때문이라고 한다. 그 남자를 비비안 로랑이 어떤 이유에선지 거절을 했고, 자존심이 상한 남자가 이런 짓을 벌인 거지.”

남자?

비비안씨한테 남자가 있었다고?

“설마 정략결혼이에요?”

“그래. 맞아.”

“아이를 비밀로 하고 만나게 할 순 없었을 테니, 남자 쪽은 비비안씨 딸의 존재를 미리 알았겠네요.”

그러다가 비비안에게 거절을 당해 악의를 갖고 언론에 터트린 것이고 말이다.

“남자가 좀 심했네요. 차인 걸로 이런 짓을 하다니.”

사람 속이 얼마나 좁으면….

더군다나 아이가 평범한 것도 아니고, 병원에서 평생 살아야 할지도 모를 만큼 많이 아픈 아이가 아닌가?

괜히 얼굴도 모르는 남자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이는 건드리지 말지.’

연주 누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재벌 가문 남자이니 콧대가 오죽 높겠니? 그리고 그런 자리를 거절하려면 요령있게 굴었어야 했는데 비비안 로랑이 서툴게 행동했던 모양이다. 화가 풀릴 때까지 비비안 로랑을 비난하는 기사가 계속 올라 올 것 같아.”

결국 이번 사건을 해결하려면 남자와 단판을 지어야 할 모양이다.

그런데 비비안씨한테 그럴 정신이 있을진 모르겠다.

“계속 이런 식으로 여론이 몰아지면 불편하긴 하겠네요. 제가 하필 후발주자여서….”

잘 수습이 돼서 좋은 선례가 남게 된다면 후발주자인 내 부담이 좀 덜할 텐데, 지금 같은 상황에선 기대하기 힘들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날카로운 팬대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누군가에겐 기억에 남지도 않을 악플, 확인 되지도 않은 사실을 진실인 것 마냥 거짓말해서 올린 글 등에 상처를 받아서 말이다.

아무리 미미라는 소중하고 지켜야 하는 존재가 있다지만, 비비안이 그런 압박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엄마니까 강하긴 하겠지. 근데 그게 상처를 안 받는다는 뜻은 아니잖아.’

더군다나 미미가 이번 일을 견딜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미미가 무너지면 비비안도 무너지게 될 거다.

“이대로 계속 여론이 안 좋아지면 어떻게 될까요?”

“만만치 많은 집안에서 깽판을 치고 있으니 집안 힘으로 일을 수습하긴 쉽지 않을 거다. 결국 두 가문이 합의를 해야겠지. 비비안이 결국 백기를 들고 그 남자랑 결혼을 하든, 아니면 배우 은퇴를 하든. 둘 중 하나가 되지 않겠어?”

“…뭐가 됐든 비비안씨한테는 최악이겠네요.”

비비안이 사회적으로 명예가 높은 곳 출신이었기에 이번 사건에 사람들이 더 달려드는 것 같다.

콧대 높던 집안 출신의 몰락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사람들이 쓴 댓글을 확인해보면 지금 상황을 꼬셔하는 이가 꽤 많았다.

└그렇게 고아한 척을 해대더니, 뒤에서 호박씨 까고 있었네ㅋㅋㅋ

└이래서 연예인은 믿으면 안 된다니까.

└연예인 방송 이미지 절대 믿으면 안 되지.

└나 비비안 로랑 정말 팬이었는데, 진짜 실망했어 :(

└솔직히 좀 꼬시지 않음? 이거 한 터졌으면 계속 순진한 척 굴다가 사기 결혼 했을 거 아냐 ㅋㅋ

└애를 병원에 가둬두고 키웠다는데 소름 아님?

└결혼했으면 애는 쥐도 새도 모르게 치워버리지 않았을까?

└무섭다, 무서워~ㅋㅋㅋㅋㅋㅋㅋ

무섭다고 말하는 댓글들.

하지만 나는 남의 불행에 낄낄 웃고 떠들고 있는 모니터 너머의 사람들이 더 무섭고 끔찍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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