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65화 (465/849)

〈 465화 〉 #68. 비비안 로랑 (6)

* * *

아이를 둘러싼 의혹들.

본인에게 쏟아지는 비난.

네가 잘못한 것이니 네가 스스로 책임지라는 떠넘김.

비비안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의기투합하여 자신을 공격하는 것만 같았다.

사실 그게 맞기도 하다.

자신을 보며 쯧쯧 혀를 차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상태이니 말이다.

숨을 곳을 찾고 싶은데, 숨을 곳도 없거니와 숨을 수도 없었다.

그녀에겐 지켜야만 하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었다.

‘미미를 어떻게 해야 하지?’

미미는 이번 일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는 아이인데,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위험할 뻔 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이 오해한 거야. 아니라고 엄마가 말하면 되는 일이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거짓말!!! 나도 이제 다 알아. 어린애 아니라구! 엄마가 사람들이 욕하는 거 나 때문이잖아. 내가 엄마 딸이라서!

­!!

애가 알아도 얼마나 상황을 알겠나 싶어서 낙관하고 있었던 비비안은 생각보다 미미가 상황을 다 알고 있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됐다.

10살이라는 나이는 이제 순진하게 엄마 말만 철썩 같이 믿을 나이가 아닌 것이다.

비비안은 미미의 말에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미미!!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어디서 그런 못된 소릴 해!

속상해서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려버릴 것만 같았던 비비안이 억지로 목소리 크기를 높였다.

그래야 눈물을 참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들 엄마가 나빴다는데, 어떻게 모르는 척을 해? 나는 왜 엄마한테 짐이기만 한 건지 모르겠어. 건강하지도 못하고, 항상 엄마 걱정만 끼치잖아. 이번 일도 그래. 나만 없었으면 엄마가 이렇게 나쁜 말을 들을 이유도 없…!

­그만!! 네가 속상한 마음에 한 말이라는 건 알지만, 절대 그런 거 아니야. 미미가 왜 엄마한테 짐이야? 엄마한테 와준 천사인 걸! 네가 내 곁에 있어줘서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아니? 엄마한테 가장 소중한 건 미미 너야!

누군가가 그녀의 심장을 쥐어뜯는 것 같았다.

미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엄마 자격 미달이다.

참담한 마음을 아이에게 티낼 수 없어서 억지로 목소리에 힘을 줬다.

불안해하는 미미를 겨우겨우 달래고 병실을 나온 비비안이 털썩 바닥에 주저 앉았다.

‘용서 못해.’

자신을 욕하는 건 넘어갈 수 있어도, 아이를 힘들게 한 것은 용서 할 수 없었다.

비비안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이 상황을 만든 남자를 떠올렸다.

앞으로 일어나는 일이 모두 자신의 탓이라고 말했던가?

이게 어떻게 내 탓인가?

그 남자의 치졸한 집착 때문이지.

미미에게 이런 상처를 준 남자를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지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복수를 도울 수 있는 존재인 가문은 이번 일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일은 자기네들이 만들어놓고!’

물론 그녀가 결혼 제안을 거절하면서 문제를 만든 게 맞기는 하다.

하지만 가문에서 섣불리 미미의 존재를 알리지만 않았어도 일이 이렇게 어렵게 되진 않았을 거다.

그 부분을 지적하고 어머니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해봤으나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냉대였다.

‘그러니까 애초에 그 애를 낳질 말았어야지. 걔 때문에 네가 지금까지 받은 피해가 얼마니? 진작 치워버렸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 하아, 이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지긋지긋하니까.’

어떻게 멀쩡히 살아 있는 아이를 치워버린다느니 피해를 끼친다느니 하는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아마 그녀의 어머니는 미미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조차 못할 것이다.

그 아이를 보러 병원에 찾아오는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 아이만 없었어도 네 결혼 상대도 그런 급 떨어지는 남자가 아니라 좀 더 번듯한 남자를 붙여줄 수 있었겠지! 네가 사과만 하면 더 이상 언론을 부추기지 않는다고 하니 만나 봐.’

집안끼리 얘기가 되어 있던 결혼을 거절해서 큰 실례를 저질렀으니 그녀가 사과를 하는 게 맞는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어떻게 이런 짓을 저지른 사람한테 사과를 하라고 말할 수 있냐며 따지니 어이없는 대답만 돌아왔다.

‘마음이 상해서 투정을 좀 부린 걸로 과하게 화를 내는구나. 여자가 돼서 남자가 부리는 투정을 속 좁게 받아들이는 건 좋은 태도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한 없이 너그럽고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정작 가족들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강요하는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말이 좀 통하는 동생도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는 눈치였다.

낯선 여성이 남자에게 이와 같은 일을 당했다면 부모님은 감싸주고 도와주려 애쓰셨을 거다.

그것이 사회적 명예를 드높이는 일일 테니 말이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미미 건강이 위험해. 가뜩이나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되는 아이인데….’

미미에게 스트레스는 건강을 위협하는 일이 된다.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순 없었다.

미미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바짝 정신을 차리고 야물딱지게 행동해야 한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이용하기로 했다.

애초에 남자에게 사과를 해서 마음을 풀게 하는 건 선택지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일이었다.

물론 사과를 하고 일을 끝내는 게 훨씬 쉬운 일이라는 걸 안다.

마녀 사냥을 하고 있는 언론도 잠잠해질 것이고, 뒤늦게 그녀의 변명을 주목하기 시작할 거다.

그녀를 욕하던 사람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관심을 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남자가 바라는 대로 된다는 뜻이었기에 그녀가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였다.

‘지금 당장 시작할까?’

남자가 자신의 약점을 쥐고 흔들었으니 자신도 똑같이 되돌려주면 됐다.

그녀가 알고 지내는 인맥을 총 동원에서 남자에게 통할 약점을 알아 온 것이다.

‘연기하듯이 하면 되는 거잖아. 할 수 있어, 비비안!’

그녀가 핸드폰을 꺼내 차단 목록에서 남자의 번호를 삭제했다.

차단이 풀렸으니 이제 남자에게 연락할 수 있어졌다.

하지만 선뜻 손이 안 가는 건 욀까?

속으로 할 수 있다고 연신 대뇌이며 의지를 다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비비안? 왜 그러고 있어요?

­꺅!

그때,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깜짝 놀란 비비안이 핸드폰을 허공에 던져버렸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돌발 상황.

그녀에게 갑자기 말을 걸었던 남자가 핸드폰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액정이 완전히 나가버렸을 것이다.

­미안해요. 놀라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세상에! 당신이 왜 여기에…?

비비안은 망가질 뻔한 핸드폰보다 그것을 무사히 구출을 해준 남자에게 더 관심을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미의 병원에 있으면 안 될 사람이 나타난 탓이다.

­미미가 잘 있는지 궁금해서요.

­아무리 그래도….

분명 그의 호의를 거절함으로써 관계를 끊은 건 비비안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다시 그를 만나게 되자 왜 이렇게 반가운지 모르겠다.

갑자기 왈칵 눈물까지 난 비비안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런, 울릴 생각도 없었는데….

물론 그게 그녀의 울음을 효과적으로 감춰주진 못했지만 말이다.

남자가 아니, 진해솔이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와 울고 있는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과 어깨 근처에 얹어주었다.

조심스럽고 배려 넘치는 움직임에 비비안은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의 행동에서 그녀를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잘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지만, 의지할 곳이 없었던 비비안은 자신을 위로해주는 존재를 만나자 급격히 무너져버렸다.

­흑, 흐흑….

펑펑 쏟아지는 눈물을 닦아낼 생각도 못한 채.

비비안이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 ? ?

며칠 사이에 얼굴이 반쪽이 된 비비안.

그동안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초췌한 얼굴이 증명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말랐어요? 저번에 보고 얼마나 지났다고.

겨우겨우 눈물을 닦아낸 비비안이 내 질문에 머쓱한 듯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제 상황 알고 계시죠? 도저히 잘 지낼 수 잇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너무 힘든 상황이라 제가 어떤 말을 해야 위로가 될지 모르겠네요.

­아니에요. 이렇게 찾아와주신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됐어요.

­미미는 어때요?

­미미는….

미미라는 말에 비비안의 안색이 더 안 좋아졌다.

아까 좀 울었던 게 마음을 푸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았는데, 미미를 언급하자마자 다시 안색이 초췌해진 것이다.

‘좀 조심스럽게 물어볼 걸 그랬나?’

­좋지 않아요. 아직 어려서 상황을 이해 못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미미가 지금 상황을 거의 대부분 다 이해하고 있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건강이 상할까 걱정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제가 미미를 만나 봐도 될까요?

예민한 상황에서 내가 미미를 만나는 걸 못 마땅하게 생각할 수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내 방문이 아이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얘기를 좀 나누다 보면 스트레스를 풀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비비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줄 수 있나요? 미미가 당신을 보면 좋아할 거에요.

비비안은 곧장 나를 미미의 병실에 들여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비비안에게도 위로가 필요한 순간임을 알았기에 말했다.

­잠깐만요, 미미는 좀 나중에 만날게요. 그보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물어보고 싶은 거요?

­제가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필요한 일이 있을까 싶어서요.

­…도움을 주신다고요? 저를요?

내 사정이 좀 복잡하다는 걸 비비안에게 구구절절 설명할 순 없었고, 그냥 돕고 싶다고만 말했다.

그런데 내 말을 들은 비비안의 표정이 좀 이상하다.

­왜 그래요? 제가 실례 되는 말을 했나요?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그녀를 대하는 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비비안은 울적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했다.

­도와주겠다는 말을 처음 들어서 그래요.

­처음 들었다고요?

이렇게 난리가 났는데?

­그러게요. 아무도 도와주겠다는 말을 안 하더라고요.

비비안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그동안은 없었던 애정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점수를 제대로 따버린 것이다.

나한테 나쁜 상황은 아니었지만, 한편으로는 비비안이 걱정 됐다.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가혹한 상황에 몰려 있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도와주겠다는 말을 해주셔서 감사해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힘이 됐어요.

나는 내 제안을 겉치레로 끝내려는 비비안에게 말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제가 생각보다 할 줄 아는 게 많거든요. 도움이 될 겁니다.

­이번 일은 단순히 기자가 미미에 대한 걸 알아내서 생긴 일이 아니에요.

­알고 있습니다. 정략결혼을 하려고 했던 남자가 거절을 당하고 일부러 저지른 짓이라는 거.

­!!!

비비안은 내가 그걸 알고 있을 줄 상상도 못했는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 할 줄 아는 게 많다고요.

비비안의 사정을 알아냈다는 건 말로만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님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비비안도 그걸 알았는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정말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내 가치를 다시 가늠해보는 눈빛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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