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67화 (467/849)

〈 467화 〉 #68. 비비안 로랑 (8)

* * *

미미에게 호언장담을 해놨고, 나는 그걸 허풍으로 만들 생각이 없었으니 입 밖에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있었다.

비비안이 내 설득에 넘어가서 도움을 받겠다고 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녀가 그 남자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지 모르겠으나 생각보다 위세가 대단한 남자라는 걸 조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 남자의 뒷조사를 맡긴 것은 단연코 사람 괴롭히기를 즐겨하고 잘 하는 비앙카였다.

“주인님~ 조사 끝내왔어용.”

사람을 작정하고 괴롭힐 계획이라고 하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비비안이 한껏 들떠있는 상태로 서류를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뭐 좋은 일이라고 그렇게 신나해?”

“헤헤. 주인님이 저를 필요로 하시는 게 좋아서 그렇죠~”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 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자기 입술을 섹시하게 핥았다.

그냥 입술을 핥는 것과 남자를 유혹할 의도를 담아 핥는 것은 명백히 차이가 있었고, 비앙카는 후자에 해당하는 모양새였다.

“하여튼 밝히기는.”

“주인님이 요새 바쁘다고 저랑 안 놀아주셨잖아요. 이런 일이라도 생겨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독수공방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요.”

“멜리사 데리고 잘 놀고 다니잖아. 누가 보면 내가 소박이라도 놓은 줄 알겠다.”

비앙카는 평소 그녀만의 방법으로 귀여워하는 멜리사와 그녀만 보면 고양이를 본 쥐처럼 행동하는 칸나를 이용해 재미를 봤다.

그녀들의 밤놀이에 남자가 끼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별 다른 제제를 가하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비앙카는 자신의 행동을 허락 받았다 생각했는지 제 세상처럼 날뛰었다.

만약 칸나와 멜리사가 진심으로 질색을 했다면 나도 자제하라고 했겠지만, 아무래도 첩에 해당하는 메이드들이다 보니 서로 외로운 밤을 달래주는 것으로 위안을 많이 받는 듯 했다.

“생각보다 나쁜 짓을 많이 했네.”

“평소 행실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보이는 법이죠. 어찌나 철없이 행동하고 다녔는지 캐기 시작하자마자 이곳저곳에서 불법적인 증거가 튀어나왔어요. 집안에서 정말 오냐오냐하면서 키웠나 봐요.”

일단 이 남자의 뿌리는 제법 대단했다.

가문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엄청난 재력을 가문이 툭! 하고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무려 세계 최대 부자 금융 재벌로 유명한 가문이었다.

그러니 자기 멋대로 사는 안하무인이 되었을 것이다.

비앙카가 조사해 온 자료를 보면서 남자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쓰레기임이 확인 됐다.

이놈을 무너트리는데 죄책감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진짜 쓰레기네.”

“악질도 이런 악질이 없죠?”

“비비안씨가 이 남자랑 결혼했으면….”

“엄청 힘들었을 거에요.”

일단 이놈은 중증 약쟁이다.

약쟁이라는 것부터 심상치 않은 내력인데, 남자가 운영하는 회사도 문제가 아주 많았다.

회사 돈을 횡령하는 건 기본에, 온갖 불법적인 일을 통해 이익을 갈취하며 다녔던 것이다.

그리고 굉장히 의외였던 것은 남자가 여성편력이 대단하다는 점이었다.

‘여자를 역강간하고 다녔다? 이쪽에선 좀처럼 없는 일인데….’

더 심한 짓을 많이 해댔지만,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역겨워서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 남자의 성벽이 굉장히 더럽고 추잡하다고만 표현하겠다.

문제는 범죄를 저지르고 다녀도 남자라는 이유로, 가문이 대단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가문은 나도 들어 본 적 있어. 우리가 건드릴 수 있는 거 맞아?”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호언장담 했는데 비앙카도 안 된다고 하면 상점 아이템을 이용해서 남자에게 보복을 하는 것밖엔 방법이 없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 가문이 저 가문보다 못한 건 사실이지만, 이 남자가 가문에 중요한 사람인 건 아니거든요.”

남자의 뿌리가 대단하다 한들 본인이 나무뿌리에서 많이 떨어져 나온 잔뿌리에 불과하다는 점이 비앙카가 낙관하는 이유였다.

“애초에 성부터 다르잖아요? 물론 핏줄이 섞여 있기는 하니 아예 무시할 수는 없겠죠. 워낙 돈이 많은 가문이라 영향력이 강해서 그 후광만으로도 이득을 볼 게 많아요. 인맥이 넓게 펼쳐져 있어서 서로 도울 수 있는 건 돕는 편이죠. 다만 일방적으로 도움을 준다기보단 서로 도움을 주고받거나 거래를 하는 식이에요.”

도움을 청하면 그 남자가 갖고 있는 재력 때문에 외면하지 않겠지만, 그 남자가 곤궁에 처하면 곧장 모르는 척 외면할 사이.

편의는 봐줄 수 있으나 본인이 손해를 보는 걸 감수하고까지 도와줄 이가 없는 위치인 것이다.

“그럼 우리가 공격을 해도 그쪽 가문에서 손을 쓸 이유가 없겠구나.”

“네. 더군다나 그 남자는 여자아이를 너무 많이 낳았어요. 여자 한 명이 그렇게 낳았으면 여자 잘못이지만, 여러 여자들한테서 본 아이가 전부 여자라면 결국 씨가 잘못인 거잖아요? 그래서 남자를 보호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적을 만큼 피해가 크다면 망설이지 않고 버릴 거에요.”

“좋아, 그럼 지금부터 이걸 어떻게 써서 남자한테 응징을 할지 생각해보자.”

비앙카에게 조사를 시켜놓고 비비안에게 그 남자가 어떻게 됐으면 좋겠는지 물어봤었다.

피해를 본 건 비비안이니 그녀의 의견을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대답이 내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저랑 미미한테 해코지만 하지 않으면 만족해요.’

그렇게 당해놓고 고작 바라는 것이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라니?

미미가 들었으면 뒷목을 잡았을 얘기였다.

참고로 미미는 엄마가 이런 일을 당한 것이 집안에서 붙여 준 남자 때문임을 알고 무척이나 분개했다.

그리고 내게 꼭 패가망신 당하게 해달라고 앙큼한 요청을 해오기도 했다.

솔직히 미미의 부탁이 내 성정에 맞아 나를 기쁘게 했고, 비비안의 바램은 속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다만 그녀의 그런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지켜야 하는 존재가 있다 보니 너무 과한 응징이 혹여 나중에 문제를 일으킬까 두려웠을 것이다.

‘기왕 손쓰는 거, 후환이 두렵지 않도록 확실하게 처리해야지.’

미미가 먼저 부탁을 해서 이미 요청을 접수한 상황이니 비비안의 부탁을 후순위로 밀어두는 것에 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남자를 치우는 건 너무 쉬워요. 제가 손 한 번 쓰면 툭 나가떨어질 거에요. 근데 그렇게 끝내는 건 좀 아쉽지 않나요? 비비안씨가 경험했던 마음고생에 비해 너무 간단하잖아요. 제게 맡겨주시면 완전 나락으로 떨어트릴게요. 함부로 사람한테 악의를 가지면 안 된다는 걸 깨닫고 처절하게 과거를 후회하면서요.”

“이 일에 너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겠지. 수위는 죽지 않을 정도로. 후환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해줘.”

“꺄악!! 감사해용! 실망시켜드리지 않을게요!!”

비앙카가 기쁨을 참지 못하고 환호성을 터트렸다.

‘새삼스럽지만 내가 쟤한테 적응했다는 게 신기하네.’

사람을 괴롭혀 달라는 요청을 받고 좋아하는 녀석이다.

애초에 사람이 아니니까 그러려니 하고 있지만….

‘반은 인간 아닌가? 원래의 비앙카랑 합쳐졌잖아.’

처음에는 마치 이중인격처럼 성격이 왔다 갔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어느새 한 사람과 한 인형의 성격이 적절하게 융합 되었는지 성격이 하나로 고정이 됐다.

평소에는 냉철한 커리어우먼였던 비앙카의 성격을 보여다가 우리 그러니까 내 가족들 앞에서는 실비아(인형)이었던 성격을 주로 드러냈다.

문제없이 적응하기 위해 대외적인 성격을 비앙카로, 가족들에게 보여주는 내부적인 성격은 실비아로 정립을 한 게 분명했다.

아직 내 여자들한테는 내숭을 떨고 있지만, 언젠가는 내면에 숨겨져 있는 비앙카의 진짜 모습을 가족들도 알게 되지 않을까?

“일단 그 남자가 비비안씨한테 신경을 쓸 수 없게 혼란스럽게 만들 거에요. 그 남자를 무너트리는데 시간을 끌면 피해가 비비안씨한테 계속 갈 수 있잖아요? 아마 그 남자는 얼마 안 있어서 비비안씨가 누구였는지 기억도 못하게 될 걸요?”

비앙카가 그 남자에게 무슨 수를 쓰려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꽤 잔혹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를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자기 배경을 믿고 날뛰는 것들은 가진 걸 공격당하기 시작하면 정신을 못 차리곤 하거든요.”

비앙카가 벌써 어떻게 할지 생각을 다 해놨는지 내게 차분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부분을 공략해서 남자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만들지.

그동안 얌전하게 성격 죽이고 살다가 오랜만에 성격대로 굴 수 있게 됐으니 제 세상 만난 것처럼 행복해진 것이다.

여전히 비비안을 곤란하게 만드는데 정신이 없는 남자인지라 더 이상 손쓰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빠른 행동이 필요했다.

그리고 비앙카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 ? ?

‘좀 이상한데. 설마 해솔씨가 도와준 걸까?’

진해솔이 그녀에게 남자 일을 해결해주겠다고 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주변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음을 느꼈다.

뭐 그렇게 대단한 잘못을 했다고, 그녀가 큰 죄를 지은 것 마냥 공격하던 언론의 공격이 눈에 띌 정도로 시들해졌던 것이다.

언론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녀의 기자회견이 무사히 성사 되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동안 비비안은 기자회견을 열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잘못한 부분은 책임지고 싶었었다.

그런데 이미 남자가 손을 써둬서 그런지 기자들이 그녀가 바랐던 기자 회견을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참 권력이라는 게 무섭다고 느꼈던 것 같다.

요즘 같은 세상에 기자 회견을 하겠다고 했는데도 일방적으로 무시를 당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인터넷 방송을 이용하려고 했는데.’

인터넷 방송을 하면 기자들이라고 해도 그녀의 발언을 막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자들이 퍼 나르는 소식보단 빠르게 퍼지지 않겠지만, 대중들에게 자신의 말을 전달할 수 없는 상황인지라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불과 며칠 만에 상황이 달라져버렸다.

어디서 온지 알 수 없는 기자들이 비비안에게 직접 연락을 해서 기자 회견을 할 생각 없냐고 의향을 물어왔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지가 비비안은 바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만 기자 회견 날짜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비비안은 초조해졌다.

그 남자가 이번 일을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피 말리는 기분으로 기다리던 비비안은 어느 날 진해솔의 연락을 받았다.

[오늘자 기사인데, 한 번 봐보세요. :) 전 시작했어요.]

인터넷에 올라 온 기사를 링크한 문자였다.

비비안은 시작했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링크를 띄웠다.

기사는 자신을 괴롭히던 남자의 회사를 저격하는 기획 기사였다.

그리고 기사 내용을 꼼꼼히 살핀 그녀는 한동안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내가 조사한 내용보다 훨씬 자세하고 적나라해.’

어떻게 사람이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추악한 범죄 행각이 증거까지 첨부 되어 있었다.

이 기사는 진해솔이 보내줘서 알게 된 것이니 그가 한 일이 맞을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이 정도로 적나라하게 폭로 당했으니 아무리 가문의 후광을 입고 있어도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동안 비비안을 지긋지긋할 정도로 괴롭히던 남자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우면서도 아직 현실감이 와 닿지 않아 안도보다 얼떨떨함이 더 크게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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