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9화 〉 #69. 아빠 (1)
* * *
나와의 관계를 한 번 거절한 적 있는 과거의 비비안이었다면 미미가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미가 날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했다.
‘이거 100% 추파인데.’
그 뜻은 그녀가 나와의 관계를 진척 시켜보고 싶다는 의미였다.
미미가 날 진짜 보고 싶어 할 수도 있겠지만, 미미를 보러 가는 겸사 그녀와도 만나게 될 것이 분ㅁ
그녀도 자신의 속마음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싶었는지 목소리가 어색해지고 소심해졌다.
잠시 동안 나는 비비안에게 뭐라고 대답을 할지 고민했다.
미미를 만나러 가겠다는 건 그녀와 좋은 관계를 만들 생각이 있다는 걸 밝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가 잠시 말이 없는 것에 조급함이 들었는지 비비안이 다시 한 번 말하며 대답을 재촉했다.
미미를 보러 와주실 수 있나요?
“네. 그럴게요.”
아! 그리고 이번에 제가 해솔씨한테 큰 도움을 받았잖아요. 그래서 제대로 식사 대접을 해드리고 싶어서요.
“괜찮아요.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너무 감사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제가 앞으로 해솔씨를 어떻게 보겠어요? 대단한 걸 대접해드리는 것도 아니고 고작 해봐야 식사일 뿐인 걸요.
비비안의 간곡한 요청에 거절을 하면 안 되겠다 싶었던 나는 초대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마 당장은 안 될 거에요.”
웬만하면 미미를 만나기 위해 잠깐이라도 시간을 낼 텐데, 지금은 그럴 여유조차도 누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네, 알고 있어요. 콘서트로 바쁘죠?
그렇다.
현재 나는 멤버들과 함께 콘서트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콘서트를 하고 있는데 잠깐 시간을 내겠다고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고, 시간상도 말이 안 되는 이동경로였다.
저는 괜찮으니까 언제든 시간 되실 때 연락해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날짜는 현재 활동이 없는 비비안보단 활동하고 있는 내 스케줄을 맞추는 걸로 말을 맞췄다.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죠?”
네, 사실 저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여론은 가라앉았지만, 집안 문제가 남았으니까요.
기자 회견 때, 그녀는 자신이 아이를 숨길 수밖에 없었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가문에서 강제로 아이를 숨기도록 했다는 것.
기자들은 본능적으로 그 부분을 파고들어서 기사를 생산해냈다.
노블리즈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가문이라며 명예가 드높던 가문에서 생긴 추문.
결코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지금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 그녀에게 손을 대지 않았으나 부모님에게 꾸준히 연락이 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혼자서 잘 할 수 있겠어요? 내가 여러 번 얘기했지만,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나한테 말해요. 도와줄게요. 제가 생각보다 유능하다는 거 알고 있죠?”
남자를 처리해주겠다고 했고, 실제로 그의 회사를 휘청거리게 만들면서 결국 그가 도주하게 만든 내 활약상을 잘 알고 있는 그녀가 순순히 알겠다고 대답했다.
가문에서 미미한테 해코지를 하면 어쩌나 걱정이 많이 돼요.
“혹시 미미가 걱정 돼서 하루종일 병원을 지키고 있는 거였어요?”
어차피 따로 할 일도 없는 걸요.
일단 당분간은 모녀끼리 계속 붙어 있도록 두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었기에 별다른 조취를 취하지는 않기로 했다.
서로 이번 일로 크게 상처를 받아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위로 받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다만 콘서트 일정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그녀와 미미의 상황을 도울 생각이었다.
‘일단 미미 몸부터 낫게 하고, 비비안이 다시 활동할 수 있게 해야겠어.’
사실 비비안을 다시 활동시키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에게는 회사 대표인 비앙카과 멜리사 그리고 칸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운영하는 회사의 광고로 비비안을 쓰기만 해도 성공적으로 복귀했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비비안은 이번 일로 자존감을 많이 잃어서 복귀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꼴을 가만히 내버려둘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 남자가 비비안에게 남긴 흔적은 깔끔하게 치워버릴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 ? ?
“허억, 허억! 후우….”
“괜찮아?!”
“네. 하아, 하아….”
“너무 덥다아~”
“여기 선풍기!”
미니 선풍기가 웨엥웨엥 돌아간다.
멤버들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땀 범벅이 되어 있어서 우리 스태프가 서둘러 땀을 닦고 우리에게 이온음료를 건네주고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체력을 회복시켜야 했다.
그래야 또 무대 위에 올라가서 팬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제 몇 곡 남았어요?”
“3곡 있고, 앵콜 한 곡이야. 근데 너희들이 앵콜을 한 곡으로 만족할 리가 없잖아.”
“헤헤.”
“앵콜 너무 많이 하면 안 돼. 저번 콘서트 때 너희 목 때문에 고생한 거 잊었어?”
“그땐 팬들이 너무 아쉬워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오늘 팬들은 안 아쉬워할 것 같아? 저렇게 좋아하는데?”
에어! 플레인! 에어! 플레인!
꺄아아아아!!!!
무대 VCR을 보고 있을 텐데도 사람들이 우리를 연호하는 걸 멈추지 않는다.
우리를 연호하는 목소리에 간간히 쇳소리가 섞여 있는 걸 보면 관객들의 목소리도 멀쩡하진 않은 상태로 보였다.
“흐흐.”
“지금 분위기 쩔긴 하다.”
“팬들이 호응을 너무 잘 해주니까.”
“맞아, 목이 아픈데도 열정적으로 소리를 질러주고 있는데 어떻게 몸을 사리겠어.”
“그래도 안 돼. 너희들 콘서트 아직 엄청 많이 남았어. 몸 사려.”
“우우!!!”
“저렇게 애타게 우릴 찾고 있는 팬들이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난 혹사 당하고 있는 너희들 목이랑 건강이 더 불쌍해.”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스태프의 논리에 멤버들이 항복을 했다.
“으으~ 오늘 진짜 느낌 좋았는데.”
멤버들이 아쉬워하고 있는 만큼 나도 마찬가지로 아쉬움이 남았다.
이제 많아봤자 5곡, 최소 4곡이 우리가 무대 위에서 보여줄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콘서트장에서 보여주는 관객들의 열정은 고작 4~5곡으로 해소할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차라리 상점에서 목 회복 캔디를 하나 먹을까?’
스태프가 아무리 안 된다고 했어도 우리가 무대 위에서 앵콜을 더 하겠다고 하면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랬다간 좀 과장을 보태서 콘서트에 참석하는 관객들이 스태프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스태프가 막는 건 애초에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니 넘겨놓는다 해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5곡 이상을 했을 때, 멤버들한테 올 부담.’
이건 내가 상점 아이템을 멤버들에게 먹이면 깔끔하게 해결이 된다.
그러고 나면 목 걱정 없이 노래를 마음껏 불러도 안심할 수 있었다.
빠르게 결론을 내린 나는 스태프가 보지 않는 타이밍을 노려서 애들한테 사탕을 돌렸다.
멤버들도 자주 내게서 뭘 얻어 먹어봤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입에 덥석덥석 넣어버렸다.
“고마워, 형!”
“앵콜 잔뜩 하자.”
“야, 쉿쉿! 걸리면 큰일 나.”
내가 준 것을 먹으면 얼마든지 무리를 해도 다음날 문제가 없다는 걸 아는 멤버들이 다시 무대 위에 올라가서 날뛰기 시작했다.
지친 기색을 내보이던 우리들이 잠깐 휴식 시간을 갖은 후, 콘서트를 방금 시작한 것처럼 날뛰니 당황하던 관객들은 지친 기색을 내보이지 않고 더 큰 에너지를 우리들에게 보내주기 시작했다.
‘진짜 오늘 콘서트는 대박이다.’
오늘은 실수가 거의 없었던 날인 것 같다.
관객들의 호응도 최고였다.
날다람쥐가 된 것도 아닐 텐데, 몸에 기름칠이 된 것처럼 움직여졌다.
물론 체력이 닳아서 콘서트 처음처럼 빠릿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느려진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방금 애들한테 목을 보호할 수 있는 사탕을 준 것도 잘 한 일이었다.
초반에는 애들 실력을 늘리는 게 급해서 자주 상점용 물건들을 멤버들에게 베풀었지만, 지금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다.
너무 자주 아이템을 써줬다가 내가 챙겨줄 수 없을 때 무리를 해서 건강이 상할까 걱정이 됐던 것이다.
더욱이 꼬리가 길면 밟힌다지 않은가?
멤버들이 알아서 자제를 하고 있지만, 녀석들에게 아이템을 주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었다.
오랜만에 멤버들은 아이템 효과를 받아 콘서트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전력을 다 해서 무대를 해도 후유증이 없다는 걸 알고 있을 때, 우리들은 한층 더 대단한 무대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를 관객들은 몰라주지 않았다.
“오늘 콘서트 미쳤어!! 꺄아아악!!!!”
“저러다가 몸 상하면 안 되는데…. 아 몰랑! 그냥 즐겨!! 꺄아아악!!”
콘서트를 순수하게 즐기는 팬도 있고 우리들이 너무 힘을 팍팍 주면서 무대를 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챈 팬이 우리 몸을 걱정하기도 한다.
남들보다 뛰어난 신체 능력은 환호성으로 가득한 콘서트 안에서도 간간히 대화 나누는 것을 엿들을 수 있었다.
두 번의 무대를 해내고 난 이후.
우리들은 잠시 토크 타임을 가졌다.
멤버들도 좋아하는 시간이지만,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있었던 간단한 에피소드를 얘기하거나 팬들의 질문을 뽑아서 대답해주기도 하는 시간이었다.
“토크 마무리로 사진을 찍어 볼까요?”
팬들을 배경으로 하고, 우리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모두들 오늘 콘서트가 기억 속에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했다.
김치~
그렇게 사진 촬영까지 끝나고 나면 우리에겐 마지막 무대가 딱 하나 남아 있었다.
팬들도 콘서트가 곧 끝난다는 걸 알아차리고 아쉬움이 담긴 눈빛을 쏘아낸다.
우리들은 천연덕스럽게 팬들의 눈빛을 외면했다.
‘아직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인데.’
마지막 무대는 부드러운 음악으로 준비했다.
이 곡은 제키가 만든 곡으로, 멤버들의 음색이 너무 좋아서 그 음색을 살려보고자 만든 곡이다.
멤버들이 가장 아름답게 낼 수 있는 음색을 찾아서 곡을 만들고, 파트를 분배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엄청난 기교를 보여주는 곡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팬들이 콘서트에서 듣길 바라는 베스트 곡 탑 10에 들어갔다.
또한 팬들이 따라부르기도 쉬워서 우리가 곡을 부를 때 자연스럽게 떼창이 흘러나오는데, 다 함께 곡 하나를 모두와 함께 마무리 하게 되면 뿌듯함과 기쁨이 차오르곤 했다.
관객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던 공연이라서 그런지 마지막 곡도 굉장히 호흡이 잘 맞았다.
“자~ 이제 끝이네요. 오늘 정말 열심히 놀았어요, 우리. 그렇죠?”
“관객 분들이 다 땀으로 흠뻑 적셔져 있으세요. 엄청 뿌듯하네요.”
“관객 분들이 주는 에너지가 너무 대단해서 마지막 곡을 불렀는데도 아직 힘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멤버들끼리 천연덕스럽게 대화를 나누자 관객들도 눈치를 챘는지 재빨리 앵콜을 외쳤다.
““앵콜! 앵콜! 앵콜! 앵콜!””
“아~! 앵콜이요? 하하하!”
그렇지. 이렇게 앵콜 요청이 나와 줘야 우리가 노래를 더 부를 수 있지 않겠는가?
멤버들이 환하게 웃으며 무대 아래에 대기 중인 스태프에게 신호를 주었다.
오늘 콘서트의 앵콜곡이자 다시 콘서트가 시작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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