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1화 〉 #69. 아빠 (3)
* * *
배우라고 하더니 확실히 얼굴은 훤칠하게 잘생긴 남자였다.
그 남자 배우는 커피를 줘서 고맙다는 걸 핑계로 차 문 앞에 버티고 서서 계속 주아 누나와 대화를 나눴다.
주아 누나는 대화를 그만하고 싶어서 눈치를 줬으나 남자는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건지, 진짜 못 알아듣는 건지 알 수 없으나 계속해서 수다를 떨어댔다.
같은 남자였기에 그 남자의 태도에서 사심을 눈치 채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호구당하는 법.
“대화중에 실례합니다만, 오늘 주아가 두통이 좀 있다고 해서요. 촬영 전까지 컨디션을 회복하려면 지금 쉬고 있어야 합니다.”
“아! 깜짝이야. 사람이 있었네?”
그 남자는 운전석에 내가 있다는 걸 몰랐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대응했다.
“주아씨 두통 있어요? 예쁜 주아씨, 아프면 안 되는데. 약은 챙겨줬습니까?”
저 사람이 왜 남의 여자 두통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를 참견한단 말인가?
“제가 알아서 챙깁니다.”
삐딱하게 나온 말에 남자 배우가 어처구니 없어 한다.
“매니저 태도가 왜 이럽니까? 이제 보니 남자네요? 에이, 매니저를 남자로 쓰면 불편하지.”
“제가 왜 매니저일 거라고 생각합니까?”
“…….”
내 말에 남배우가 입을 다물었다.
속이 다 시원하네.
내가 매니저가 아니라고 할 거라곤 상상도 못한 눈치였다.
당황한 주아 누나가 발로 앞좌석을 툭 쳤으나 못 느낀 척 시치미를 뗐다.
“그, 그럼 둘이…?”
“저희가 더 자세하게 말씀드려야 할까요?”
“미, 미안합니다. 나는 몰랐어요.”
남배우가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빨개져선 허둥지둥댔다.
주아 누나는 데뷔할 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기도 하거니와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결혼을 한 건 아니다 보니 남자한테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저 남자 배우도 선뜻 주아 누나에게 접근하려 한 걸 거다.
“그리고 커피는 제가 사온 겁니다.”
“아…! 그, 그랬군요. 자, 잘 마시겠습니다.”
“네. 얘기 끝나셨습니까?”
“어…예에.”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남자가 영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 아니었다는 점이다.
같이 차 안에 있는데 매니저가 아니라는 말에 바로 내가 누구인지 짐작이 된 모양이었다.
좋은 시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이니, 민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두 분 좋은 시간 보내세요.”
남배우가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후다닥 도망쳐버렸다.
“이래도 돼? 나 완전 깜짝 놀랐어.”
“누나는 저런 사람을 왜 상대해주고 있어?”
“같은 소속사 선배님이셔. 그래서 매정하게 굴 수가 없었어. 그렇게 거절하고 나서 아예 안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잖아.”
“같은 소속사면 누나 사정을 좀 알고 있었겠네? 그런데도 저렇게 대놓고 추파를 보내는 거야?”
우리 누나가 참 예쁘긴 한가 보다.
남자들이 줄을 서는 걸 보면 말이다.
만약 주아 누나에게 태양이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여유롭게 행동하지 못했을 것 같다.
사방에 누나를 노리는 놈들로 가득했을 테니 말이다.
“회사가 같아도 얼굴을 자주 보는 건 아니니까. 회사에서 내 신상에 관련 된 일은 철저하게 조심하고 있기도 하고.”
주아 누나가 워낙 잘 나가다 보니 회사에서도 특별대우를 해주고 있는 편이었다.
“오늘 네가 확실히 얘기했으니까 앞으로 추근거리진 않겠다. 차라리 잘 됐어. 저 선배가 되게 소심해서 차라리 확 고백이라도 하면 확실히 거절을 할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있었거든.”
내 갑작스러운 등장에 허둥지둥하며 정신을 못 차리는 걸 보면 확실히 남자가 그리 드센 성격은 아닌 걸로 보인다.
사실 그 남자가 뭐라 했어도 이미 밥이 다 지어진 우리한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주아 누나를 노리던 남배우의 등장은 그렇게 웃픈 해프닝으로 남았고, 다시 운전석에서 누나 옆자리로 옮겨와서 일부러 더 누나에게 달라붙었다.
내가 여태까지 저지른 일이 있어서 바람 피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대신 내가 아니고서는 다른 남자로 만족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열심히 애교를 부렸다.
“너 방금 그 선배 때문에 이렇게 애교 부리는 거야?”
“아닌데? 그냥 누나랑 이러고 있는 게 좋아서 그런건데?”
“참나, 이러지 않아도 되거든? 내가 너 말고 다른 남자가 눈에 들어올 리 없잖아.”
주아 누나는 내가 질투를 하는 게 썩 나쁘지 않았는지 킥킥 웃으면서 내 애교를 우쭈쭈 하며 받아줬다.
누나의 허리에 들러붙어서 각종 애교와 진한 스킨십을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고 난 후.
계획했던 대로 좀 일찍 나와서 정화씨를 만나서 배를 어루만져 주고 나서 출국 길에 올랐다.
? ? ?
해외 콘서트 일정을 정신없이 치르고 있는 사이.
나는 비비안씨와 주기적으로 연락을 했다.
처음에는 연락을 하는 걸 좀 부담스러워 했었는데, 내가 부담을 주지 않고 꾸준하게 연락을 주고받자 더 이상 꺼려하지 않고 연락을 해왔다.
그 와중에 비비안과 내가 친분을 쌓아 가는 것을 기뻐하면서도 질투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미미가 그 대상이었다.
해외 콘서트를 치르면서 일정에 잠깐 시간이 날 때 미미의 병원을 방문했었는데, 비비안에게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평소보다 두 배는 더 격하게 반겨주더라.
그리고 눈치가 굉장히 빠른 미미는 단 둘이 남았을 때 내게 몰래 질문을 했다.
‘혹시 엄마한테 마음 있어?’
애기가 어쩜 이렇게 예리한지….
딴 마음이 없을 땐 전혀 물어보지 않더니, 딴 마음이 슬금슬금 생겨오고 있으니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해오더라.
미미의 말똥말똥한 눈빛에 대고 아니라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렇다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니 미미는 좋아하면서도 질투심을 숨기지 않았다.
‘나보다 엄마를 더 좋아하는 건 싫은데.’
엄마만큼 미미도 좋아하겠다고 약속을 하니 그제야 아이는 질투심을 누그러트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미미가 우리 중 제일 진도를 빠르게 빼서 앞으로 아빠라고 부르면 되냐고 물어왔다.
“음….”
당시를 떠올리니 또 마음이 묘해진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너무 빠른 진도에 차마 그러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차근차근 하자고 하니 아쉬워하면서도 납득을 해주긴 했는데….
‘그때부터 비비안한테 엄청 눈치 줬었지.’
아무래도 미미는 팬들 중 하나가 되는 것보다 엄마를 통해 딸이 되는 것이 내게 더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알아챈 것 같다.
비비안과 내 사이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행이긴 한데, 이건 이거대로 좀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미미한테 아빠라고 한 번 불리니까, 진짜 내가 아빠가 된 것 같단 말이지.’
아이한테 아빠라고 직접 불렸던 게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마냥 좋다고 하기엔 마음에 걸렸던 부분이 있으니, 바로 미미의 병.
더 이상 남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까 미미가 아픈 것이 미치도록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벌써부터 내 아이가 아픈 것처럼 마음이 아픈 건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남 일인 것처럼 신경이 아예 안 쓰이는 것도 아니다보니 차라리 후딱 일을 해결하고 마음이 편해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미에 대한 고민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무렵.
나의 진짜 자식인 태양이로부터 전화를 받게 됐다.
“응~ 우리 이쁜이,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해줬어?”
태양이는 엄마 아빠를 닮아 여전히 예뻤고, 인기가 아주 많았다.
여자 아이들이 달라붙는 걸 귀찮아하지 않고 은근히 좋아해서 여자친구도 되게 많은 걸로 안다.
아빠아~
“응응.”
바빠?
“아니. 우리 이쁜이랑 통화 할 시간은 충분하지. 왜? 보고 싶어서 그래?”
아니이~ 친구들이 아빠가 보고 싶대. 나는 왜 아빠 안 보여주냐고. 아빠 없는 거 아니냐고 그래.
전화를 받을 때만 해도 귀여운 태양이와 대화 나눌 생각에 기뻤던 나는 아이의 거침없는 고자질에 너무 놀라 심장이 철렁 내려 앉았다.
지구에서는 빈부격차로 아이들이 친구를 놀리고 따돌렸는데, 이 세계에서는 엄마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가정과 아빠가 있는 가정의 차이를 두고 친구를 따돌리고 놀리는 모양이었다.
아빠가 없다는 것은 엄마가 그만큼 경제력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옛날에는 자기 아이를 가진 여자는 거두는 편이었다는데.’
남자의 숫자가 점점 적어지고, 그 사회 현상이 두드러지다 보니 남자로서는 여자한테 아쉬울 게 없다 보니 생기는 현상이었다.
‘솔직히 이걸 내 아이들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단 말이지.’
내가 아이를 많이 낳으면 그 아이들이 남자 부족으로 멸망해가는 세계를 구할 거라고 하는데….
내게는 아이가 소중하고 특별한 것이 맞지만, 세상을 구할 만큼 특이한 구석이 보이는 건 아니었다.
“세상에, 그랬어? 태양이가 섭섭했겠다.”
아빠 보여주고 싶은데…안 돼?
어릴 적부터 똑똑했던 태양이는 자기가 함부로 떼를 쓰면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궁금할 텐데도, 왜 아빠가 TV에 나오는 사람이라는 걸 말하면 안 되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엄마와 아빠가 시키는 대로 얌전히 비밀을 지켜줄 뿐.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태양이가 아빠에 관련해서 부탁을 해왔다.
‘아…마음 아프네.’
솔직한 심정으로는 당장 태양이에게 달려가서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친구들에게 자랑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남자 아이돌로 활동하는 나이니 자랑을 한다면 친구들이 부러워 할 거다.
하지만 욕심대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아직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얼마 안 남긴 했는데….’
해외 콘서트 일정이 끝나면 슬슬 스캔들을 터트릴 준비를 할 거다.
날짜로 계산을 해보면 길어도 6개월이 넘지 않을 시간이었다.
콘서트 투어를 하고나면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잘 알았기에 눈 깜짝 할 사이에 다가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마음이 조급해지고 있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나는 태양이에게 미안함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럼 아빠가 안경 쓰고 가도 될까?”
아빠 안경? 응!
“그래, 그럼 아빠가 안경 쓰고 가면 태양이가 친구들한테 태양이 아빠라고 소개시켜줘. 할 수 있지?”
응! 할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좋다며 꺄악꺄악 웃어대는 태양이와 안부 인사를 좀 더 나눈 후 통화를 끊었다.
통화를 끊고 난 이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몇 번이고 쉬었다.
미리미리 대비를 해놓고 있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는가?
태양이가 훌쩍 커버려서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저질러 놓은 일이었는데, 당장 그 효과를 보게 될 줄 몰랐다.
미리 준비한 게 없었다면 나는 오늘 태양이 친구들 앞에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친구들이 태양이 아빠를 만나면 입을 다물고 있겠는가?
엄마들한테 얘기를 할 것이고, 그럼 그 엄마들은 궁금해질 거다.
여배우 진주아한테 진짜 남자가 있었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 자잘한 말들이 뭉쳐 소문이 되고, 스캔들로 터지게 되는 것이다.
'조금만 더 참자.'
얼마 남지 않았다.
곧 당당하게 태양이 아빠라고 사람들 앞에서 말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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