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72화 (472/849)

〈 472화 〉 #69. 아빠 (4)

* * *

태양이는 아빠와의 통화를 끊고 친구들에게 보라는 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빠가 온대!”

“우와아~ 그럼 태양이 아빠 볼 수 있는 거야?”

여자아이가 배시시 웃으면서 태양이의 득의양양해 하는 기분을 맞춰주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 지켜보고 있던 남자 아이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이가 어릴 적부터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봐야 나중에 사회생활을 할 때 문제없이 사람과 어울릴 수 있다고 해서 보내기 시작한 어린이 집.

고작 아이를 몇 시간 정도 맡기는 것에 불과하지만 엄청난 돈을 받아가는 대신 철저하게 아이의 안전을 보호해주는 곳이었다.

철저하게 안전을 지켜준다는 점에서 이 어린이 집은 남자아이가 유난히 많았다.

물론 성별의 불균형 때문에 여자 아이가 압도적으로 많기는 했지만 말이다.

“우리 아빠 짱 잘생겼어. 나보다 더!”

“우와아~ 부럽다. 나도 아빠가 태양이처럼 잘 생겼으면 좋겠는데.”

엄마들과 할머니도 아는 일이긴 하지만, 태양이는 자기 얼굴에 굉장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남자 아이로 어화둥둥 키워진 점도 있지만,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이쁜이라는 말과 끊이지 않는 인기는 태양이가 자기 얼굴에 자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이는 자기보다 아빠가 훨씬 더 잘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친구들에게 숨김없이 자랑했는데, 그로인해 태양이 친구들은 그의 아빠를 꼭 한 번 보고 싶었다.

태양이가 말한 것처럼 본인보다 아빠가 훨씬 잘 생겼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진짜 아빠 있었네.”

“그래! 내가 있다고 했잖아.”

“맞아! 태양이가 있다고 했잖아!”

여자 아이들이 태양이를 편드는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태양이가 처음 어린이 집에 왔을 때부터 시작 된 여자 아이들의 편애.

남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태양이를 질투할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잘생긴 얼굴에 귀티가 좔좔 흐르는데, 여자 아이들의 인기를 다 뺏어가니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태양이가 없었을 때 어린이 집은 참 평화로웠었다.

아니, 오히려 남자아이들은 자신에게 치대는 여자아이들을 귀찮아했었다.

그런데 관심을 주는 여자아이들이 모조리 태양이에게 넘어가버렸다.

놀랍게도 태양이는 치대는 여자아이들을 귀찮아하지 않고 굉장히 잘 대해줬던 것이다.

관심을 잃은 남자아이들은 뒤늦게 허전함을 느끼고 아쉬워졌다.

너무 어릴 때부터 남자 아이들이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의 뜻을 이해해버린 것이다.

“그럼 언제 볼 수 있는데? 오늘 볼 수 있어?”

“아냐. 아빠 일해야 돼.”

“너희 아빠는 일도 해? 우와~!”

여기 아이들은 비싼 돈을 낼 수 있을 만큼 넉넉한 형편을 가진 가정이었다.

다만 아빠가 직업을 갖는 경우는 매우 드문 편이었다.

“근데 일하면 좋은 거야?”

“멋지잖아!”

“맞아. 우리 아빠는 맨날 집에서 놀아. 나랑 놀아주지도 않으면서.”

“태양이 아빠는 너랑 잘 놀아줘?”

“우리 아빠? 바빠서 일할 때는 못 놀아주지. 근데 집에 오면 나한테서 안 떨어져.”

태양이는 자기 아빠가 얼마나 팔불출처럼 행동하는지 자랑스레 떠들었다.

사실 태양이는 굳이 자랑을 하지 않아도 굉장히 사랑 받고 자라났다는 것이 티가 났다.

“나도 아빠가 자주 놀아줘!”

“지우 너도 아빠가 잘 놀아줘? 부럽다. 나도 아빠랑 놀고 싶은데.”

“우리 아빠는 나 보러 안 와. 내가 딸이라서 그렇대.”

“아니야. 나도 딸인데 아빠가 자주 보러 와.”

“그럼 우리 아빠는 왜 그럴까?”

“얘들아~ 이제 낮잠 자야 하는 시간이에요~ 별님반 여기여기 모여라~”

애들끼리의 대화는 선생님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끊어졌다.

방금 전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더 이상 아이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태양이도 친구들의 말을 자세히 듣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헤헤헤.”

태양이의 머릿속에는 온통 친구들에게 아빠를 자랑할 생각뿐이었다.

어린이 집이 끝나고.

촬영이 끝난 엄마가 태양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왔다.

엄마의 차에 타서 집으로 이동하고 있는 사이, 태양이가 오늘 어린이 집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털어놓았다.

“아빠가 오기로 했다고?”

태양이 엄마는 당연히 아빠와 그런 약속을 했다는 부분에 깜짝 놀랬다.

“으응…. 안 돼?”

태양이가 슬쩍 엄마 눈치를 봤다.

뭔가를 알고 있어서 눈치를 보는 건 아니겠지만, 태양이의 그런 반응이 주아의 심장을 날카롭게 후벼팠다.

“아니야. 안 되는 게 어딨어. 친구들한테 아빠 보여주고 싶은 건데.”

“그럼 아빠 보여줘도 돼?”

태양이가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 금세 밝아져서 물었다.

“응. 그래도 돼.”

“이야!!!”

태양이가 좋았는지 몸을 흔들흔들거리면서 행복해했다.

한편, 태양이와 집으로 돌아 온 주아는 곧장 진해솔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조금 늦게 연결이 됐고, 전화 연결이 되자마자 시끌거리는 소란이 가장 먼저 들려왔다.

­여보세요?

“해솔아. 지금 바빠?”

­어~ 아니. 괜찮아. 회식 중이야. 잠시만.

???

나는 주아 누나로부터 전화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이 없는 곳으로 움직였다.

콘서트가 끝나고 스탭들과 회식을 하는 중이었기에 자리를 피해도 괜찮았다.

다들 먹느라 바빴으니 말이다.

­목소리가 좀 취한 것 같다?

“으응~ 가볍게 맥주를 좀 마셨어.”

­즐기고 있는데 미안. 내가 오늘 태양이한테 얘기를 좀 들은 게 있어서.

누나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단숨에 눈치 챘다.

“아~ 어린이집 친구들한테 나 소개 시켜주기로 한 거?”

­응. 태양이가 나한테 그거 말해주면서 내 눈치를 보더라고. 애가 사정을 모르는 눈치기는 한데,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나봐.

“아이구, 우리 누나, 또 마음 아파했겠네.”

태양이한테 뭐든 다 해주고 싶어 하는 누나이다.

우리들 사정 때문에 태양이의 존재를 숨겨야 하는 상황이 달갑지도 않은데, 아이가 그것 때문에 눈치를 본다?

부모 입장에선 눈물이 쏟아질 만큼 속이 쓰린 일이었다.

“조금만 참아. 응? 나 이번 활동 끝나면 밝힐 거야. 전부 다.”

­응, 알았어. 근데 정말 괜찮을까? 말해야 할 게 두 가지가 아니잖아.

“밝히고 나면 당분간 욕을 좀 많이 먹긴 하겠지. 그래도 상관없어.”

아이돌보다 가정이 훨씬 중요하다.

“누군가가 날 불러줄 때까지 계속 쉬면 돼. 그동안 열심히 일했잖아. 정화씨 쌍둥이 태어나면 좀 곁에서 직접 아이를 돌봐서 키워보고 싶어. 내가 계속 일 때문에 바빠서 아이들 크는 걸 자세히 못 봤으니까.”

애초에 연예인을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계약을 어기면 안 된다는 포니의 협박에 못 이겨 한 것이었을 뿐.

이 얼굴에 아이돌을 안 하면 뭐해 먹고 사나 싶어서 순응한 점도 있다.

연예인이라면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선 선망하게 되는 직업이기도 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게 가족보다 소중하냐고 묻는다면 절대 그렇지 않다.

나는 내 가족들이 훨씬 소중하고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정말 은퇴까지 생각하고 있는 거였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도 연주 누님이 누나랑 민영 누나한테 최대한 피해 안 가는 쪽으로 신경 써주겠다고 했으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마. 근데 당분간은 욕을 좀 먹긴 할 거야. 미안.”

­네가 왜 미안해해! 태양이 낳을 때부터 전부 예상하고 결심했던 일이야. 솔직히 나는 네가 계속 알리기 싫다고 뒤로 미루면 어쩌지 고민하고 있었어. 근데 오히려 네가 먼저 나서서 밝히고 싶다고 말해줬지. 나 속으로 엄청 안심하고, 기뻤어.

전혀 몰랐던 주아 누나의 속마음이었다.

“내가 안 밝히겠다고 할 줄 알았다고? 난 오히려 너무 늦게 알리는 것 때문에 미안해 하고 있었는데.”

­그냥 잘 나가는 것도 아니고, 해외에 얼굴을 알릴만큼 잘 나가고 있으니까 말이야. 너에 비하면 별거 아닌 수준으로 인기를 얻은 나도 이 인기가 식을까봐 걱정이 되는데 너는 오죽하겠냐구.

인기?

솔직히 사람들이 나를 대단하게 봐주고, 만나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행동을 보는 게 좋기는 하다.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 말이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상점을 드나들다보면 그런 명성도 결국 바닷물에 흘러가 본 적 없는 촌동네 개울물일 뿐이라는 걸 절절하게 느낀단 말이지.’

상점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들.

그것이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매번이고 알려준다.

그렇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나를 대단하다고 치켜 세워줘도 그러려니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물 안에서나 치켜세워 지는 것일 뿐이니 말이다.

“그런 것보다 가족이 몇 배는 더 소중해.”

­나도 그래. 너 덕분에 나도 중심을 지킬 수 있는 것 같아.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너를 보면서 마음을 자주 가라앉히거든. 이러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도 들고.

“누나도 그런 게 있었어? 난 전혀 못 느꼈는데.”

­가끔은 되게 예민해질 때 있어.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럴 땐 우리 스탭들한테 나도 모르게 화풀이를 하게 되더라고. 나중에 아차 싶어져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선물도 줘서 풀어놓기는 했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그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주아 누나를 어화둥둥 해주는 경향이 심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편하게 대한다는 것이 함부로 대하는 것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주아 누나가 스스로 깨닫고 사과를 해서 다행이었다.

연예계에서 ‘편하게 대한다’는 것과 ‘함부로 대한다’는 것의 차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사는 연예인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런 사람을 보는 게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주아 누나가 자기 사람을 함부로 대하며 갑질하는 걸 보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잘했네. 역시 우리 누나라니까.”

­아잇, 너한테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네. 아무튼 태양이 친구들한테 정말 얼굴 보여줄 거야?

“태양이가 아빠를 자랑하고 싶다는데 못 해줄 순 없는 거잖아.”

­언제 그렇게 쑥쑥 커서 아빠 자랑을 할 나이가 됐는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미리 준비하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리고 태양이 친구들을 만날 땐 안경을 쓰고 있을 거야.”

­네가 평소에 쓰던 안경? 그 안경은 용도가 다르지 않아?

“내가 쓰고 가겠다고 한 안경은 평범한 안경이야. 아직 애들이니까 안경을 쓰는 걸로 나를 알아보지 못할 거야.”

­어머, 얘 좀 봐. 요즘 애들이 얼마나 눈치가 빠른데 그걸 못 알아 볼 거라고 자신 있어 해. 바보야. 만나자마자 어? 이 얼굴 TV에서 봤는데! 라고 외칠 걸?

“…그렇게 애들이 똑똑하다고?”

­태양이가 너 분장하고 와도 척척 알아보잖아. 그런 거랑 똑같지.

“음, 그럼 어떡하지?”

안경을 새로 하나 사야하나?

거의 초반에 구매했던 안경.

특별한 안경이라지만 세월의 힘은 이기기 어려웠고, 안경 이곳저곳에 생활 흔적이 묻어 있었다.

기능 자체로는 문제가 없어서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긴 했지만, 핸드폰이 고장 나지 않았다고 해서 5년이고 10년이고 계속 쓰는 사람이 많은 건 아니지 않은가?

안경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새로운 안경을 장만하는 겸사 여러 기능이 가능한 다용도 안경을 새로 구매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하는 주아 누나에게 괜찮을 거라고 다독이고서야 겨우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쇼핑인가!’

나는 주변을 휙 둘러보고 당장 상점을 켜는 것은 포기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몰래 나왔지만, 언제 자신을 찾으러 오는 사람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상점은 느긋하게 침대에 누웠을 때 켜봐야지.’

솔직히 돈으로 어떤 물건을 사는 건 감흥이 없어진지 오래이다.

돈에 구애 받지 않게 된 삶인지라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구매한다는 지극히 당연하고 시시한 결과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인으로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은 언제나 나를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섹스와 미션으로만 모을 수 있는 코인과 감히 손도 대보지 못할 값어치의 아이템들.

나는 손에 넣기 쉬운 것보단 손에 넣지 못하는 것에 마음이 쓰이고 있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