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73화 (473/849)

〈 473화 〉 #69. 아빠 (5)

* * *

‘그래서 상점 쇼핑은 언제나 즐겁지.’

얼마나 검색을 자주 했고, 꼼꼼히 살펴보았는지가 정말 중요하다.

비슷한 기능을 가진 아이템들이 수 천 개가 올라와 있는 상점이라서 그렇다.

어떤 A 기능을 가진 아이템이 100코인인데, 나중에 살펴보니 A기능과 Z기능 두 가지를 가진 아이템이 100 코인인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상점은 수시로 살피고, 쓸 만한 것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언제 내게 필요한 기능의 아이템이 올라올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다행이 그동안 나는 안경의 유용함에 새로운 안경이 나올 때마다 유심히 상점을 살펴두고, 구매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물건들은 체크를 해둔 상황이었다.

직업상 자주 대기 시간을 갖기에 상점 상품들을 매일 체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루에 올라오는 몇 십 만개의 물건들을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관심있는 능력의 상품들은 평소에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회식이 끝나고 호텔로 돌아 온 뒤.

몸을 씻고 침대에 누워서 상점창을 켰다.

“딱히 더 좋은 물건이 나온 것 같진 않네.”

안경이라는 물건의 종류는 같으나 그걸 사용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인지라 내게 필요 없는 능력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물건만 새로 나온 상황이었다.

미리 골라 둔 안경 중에서 어떤 걸 살지 고민할 차례가 왔다.

내가 주의 깊게 보고 있는 안경들의 공통 된 능력은 이렇다.

1. 외형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가.

2. 인식저하 기능이 있는가.

3. 분실 할 경우 회수 기능이 있는가.

여태까지 내가 쓴 안경은 오로지 2번인 인식저하 기능만 있었다.

그래서 기왕 새로운 안경을 맞출 거면 평소에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걸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안경을 구매하고 싶었다.

일단 이 세 개의 능력을 기본으로 검색하고, 부가 기능들을 선호에 맞춰 고를 예정이었다.

“이게 낫나?”

상점에서 아이템을 고를 때는 항상 여러 시간을 사용해서라도 고민하고 또 고민해가며 구매를 진행했다.

평소에 구매하면 좋을 것 같았던 안경을 미리 봐뒀어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내가 고민하는 안경은 두 개였다.

“에이, 그래. 이걸로 하자.”

두 가지 안경을 두고 고민하던 나는 마음을 결정하고 구매 버튼을 눌러버렸다.

내가 선택한 안경은 추가 부가 기능이 없지만 인식 저하 부분에서 한층 성능이 좋은 안경이었다.

여태까지 인식저하는 나라는 존재를 아예 사라지게 만들어주는 기능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안경은 내가 원한다면 나라는 존재를 인식할 수 있음에도 나라고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어주는 기능이었다.

즉, 그 연예인과 비슷하게 생겼구나 라는 생각만 들뿐, 내가 진해솔이라는 사실을 절대 인식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사진 같이 영상 매체에 얼굴을 남겼을 시 나중에 확인은 가능하다고 했지?’

아예 얼굴을 바꿔 버리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날 더 흡족하게 했다.

얼굴이 아예 바뀌어버리면 나중에 태양이 아빠가 나라는 게 밝혀졌을 때 이상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의 인식에서 아예 사라지게 만들어 주는 인식 저하 기능도 사용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안경은 태양이와의 약속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게 해서 매우 끌렸고, 내가 나중에 사실을 밝히고 나서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

“오~ 좋다.”

내가 지금까지 쓰던 안경은 갖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보관을 해두기로 했다.

중고 상점에 올려서 되팔 수 있기는 하지만, 분명 내 여자들 중 이 안경을 필요로 하는 이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주아 누나나 민영 누나가 필요하겠지?’

평소에도 내 안경을 탐내던 사람들이니 가지라고 하면 사양하지 않을 거다.

안경을 구매하고 어떤 디자인의 안경으로 사용할지 인터넷을 보면서 디자인을 뒤적였고, 그 중 몇 개를 ‘형상기억’을 해두었다.

참고로 ‘형상기억’은 외형을 미리 저장해두고 불러오기를 하는 기능을 뜻했다.

‘슬슬 어린이 집 끝날 시간인가?’

해외와 국내의 시간이 다르기에 시차를 미리 계산해두고 좀 이른 시간에 움직였다.

태양이가 한껏 기대하고 있을 텐데, 실망시킬 순 없지 않겠는가?

아들을 위해 아빠가 뭔들 못하겠나?

일단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멋들어지게 옷을 차려입고, 백화점에 들려 아이들의 장난감과 먹을 것들을 구매했다.

그리고 어린이 집에 가기 전 주아 누나에게 연락을 했다.

철저하게 보안을 중시하는 곳이다 보니 누나가 미리 어린이집에 연락을 넣어줘야 출입을 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디서 오셨습니까?”

어린이 집에 도착하니, 덩치 좋은 경비원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내가 안에 볼 일이 있는 듯 다가가자 곧장 내게 정체를 물었다.

“여기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진태양 아빠입니다. 미리 연락을 해뒀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아, 그러시군요. 죄송하지만 저희가 따로 확인하는 절차가 있어서 말입니다.”

“예. 하십시오.”

아빠라고 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는 아이들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킬 수 없었다.

워낙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나는 세상이지 않은가?

경비원은 굳이 주아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와 통화를 통해 확실하게 아빠임을 확인시키고 나서야 안으로 들여보내줬다.

그 과정이 다소 번잡하긴 했어도 아이들이 진짜 제대로 보호를 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고생 많으십니다. 이렇게 확인 절차를 까다롭게 거치는 걸 보니 한결 더 마음이 놓이네요.”

“불편해 하지 않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끔 확인 절차를 불편해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곤란할 때가 있거든요.”

“전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그만큼 아이들이 안전하다는 뜻이 되니까요.”

경비원에게 먹을 것을 조금 떼어서 나누어주고 어린이 집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자마자 아이들에게 닿기도 전에 선생님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를 맞이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단순히 아이를 데리러 온 것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바로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진태양 아빠입니다. 태양이를 데리러 왔습니다.”

“아~ 얘기는 미리 들었어요. 처음 뵙는 분이라서 긴가민가했는데. 태양이가 참 예뻐서 인기가 많거든요. 어머님이 아름다우셔서 그런가 했는데, 이제 보니 태양이가 아빠를 많이 닮았네요. 호호호!”

“하하, 감사합니다.”

안경의 성능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는지, 내 얼굴을 보고 태양이가 아빠를 닮았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좀 쫄리네.’

“여기 잠시 앉아 계셔주시겠어요? 태양이를 불러올게요.”

“예.”

아이를 데리러 온 학부모라 해도 다른 아이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았다.

직접 선생님이 안으로 들어가서 태양이를 불러왔다.

“진짜 아빠가 왔어요? 어?! 진짜 아빠다! 아빠아아!!!!”

태양이가 우다다다 소리를 내며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어이구!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태양이를 안아들었다.

묵직한 무게감이 안 본 사이에 또 튼튼하게 자라버린 듯했다.

“태양이! 잘 놀고 있었어?”

“응응! 보고 싶었어, 아빠!”

쪽쪽쪽!

아들의 폭풍 애교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린다.

“아빠두 우리 태양이 보고 싶었엉~ 아구 이쁜 내 새꾸.”

“푸훗!”

나도 모르게 평소 태양이를 대할 때처럼 혀 짧은 소리를 냈는데, 선생님이 그걸 들었는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려버렸다.

나는 민망함에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하하, 태양이가 워낙 귀엽다 보니 저도 모르게….”

“아휴, 그럼요. 이해하죠. 저도 아이들이 귀여워서 자주 그러거든요.”

“아빠아빠! 내 친구들! 만나러 가야 돼!! 빨리!!”

“태양아~ 아빠는 어린이 집 안으로 못 들어오셔. 선생님이 안전을 위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했죠?”

“아! 그럼 여기서 기다려! 내가 친구들 불러오께!”

마음이 급한 태양이가 발을 동동 구르면서 꾀를 냈다.

당연하지만 이조차도 선생님의 제지를 받았다.

“안 돼요. 친구들은 부모님이 오셔야 여기로 올 수 있는 거야. 태양이도 알고 있는 거죠?”

“네에…. 근데 선생님 그럼 우리 아빠는 어떻게 보여줘요? 친구들한테 약속했어요!”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게 맞긴 하죠. 그럼 여기 앉아서 친구들 부모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려볼까요? 친구들이 집에 가려고 나오면 그때 아빠 소개시켜줄 수 있잖아요.”

선생님의 제안에 태양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태양이는 ‘어떻게 그런 기발한 생각을?!’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아직 어린 태양이는 문제를 뚝딱뚝딱 해결해내는 선생님이 신기하고 대단한 모양이다.

“선생님.”

“예, 태양이 아버님.”

“이거 아이들한테 나눠주고 선생님들도 나눠서 드시면 좋을 것 같아서 사왔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아이들 장난감을 기부할 수 있다는 것도 들었거든요.”

“그렇긴 한데….”

내가 내민 장난감과 음식에 선생님이 난감한 표정이 된다.

“이 장난감들은 모두 새 거 같은데요?”

“태양이 친구들이 이걸로 재밌게 놀았으면 해서요.”

“음, 아버님. 장난감은 정말 감사합니다만, 이 장난감을 누가 기부했는지는 아이들에게 알리지 않을 거에요. 이런 걸 자꾸 받다보면 부모님들 사이에서 미묘한 경쟁심리가 생기게 되거든요. 그리고 장난감 기부를 받는 건, 아기들이 커서 더 이상 갖고 놀지 않게 된 장난감을 버리기 아까우니까 어린이 집에서 나눠 쓰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거고요.”

“진심으로 뭔가 다른 뜻이 있어서 가져 온 게 아닙니다. 이 장난감들을 어떻게 쓰시든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제가 괜히 주책을 부려서 곤란하게 해드린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예의를 다해 사과를 드리니 선생님의 표정이 조금은 펴졌다.

“다음부턴 조심해주세요. 오늘은 처음 실수하신 거니까 받겠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겠네요. 참고로 장난감이 너무 많아지면 장애전담 어린이집에 기부 될 수 있어요.”

“좋은 일 많이 하시네요. 예, 상관없습니다.”

인형 가게에서 요즘 아기들 사이에서 제일 유행하는 장난감으로 꽉꽉 채워달라고 했으니 좋아하긴 할 거다.

내가 건넨 간식은 아이들에게 나눠졌다.

일찍 온 덕분에 아이들이 집에 가기 전에 간식을 하나씩 쥐고 하교할 수 있었다.

“우리 아빠야!”

그리고 나는 어린이 집 문에 앉아서 태양이가 집에 가기 위해 온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자랑거리로 남아줘야 했다.

“어?! 진짜? 안녕하세요! 태양이 친구 유나라에요!”

똘망똘망하게 생긴 여자아이가 나에게 꾸벅 90도 인사를 했다.

“응, 안녕~ 나라구나. 태양이랑 친구로 잘 지내줘서 고마워.”

“헤헤. 태양이가 자랑했던 것처럼 진짜 멋지세요! 근데 저 태양이랑 커서 결혼할 거에요!”

뜬금없는 칭찬과 뜬금없는 프러포즈.

당황할 만한 상황이지만, 이미 익숙해진 일이라서 덤덤하게 반응 할 수 있었다.

“그렇구나, 아저씨가 응원하고 있을게.”

“네! 근데 아저씨랑도 결혼하고 싶어졌어요.”

“으응?”

“좀 고민해보고 알려드릴께여.”

“그, 그래.”

나라에겐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태양이랑 결혼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여자애만 해도 벌써 넷이 넘어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나는 나이 차이가 너무 심해서 결혼할 수 없는 몸이고 말이다.

‘나라는 성격이 많이 특이하네. 그나저나 이 녀석, 어린이 집에다가 자기 하렘(?)을 만들어놨을 줄이야.’

태양이는 자신과 결혼하겠다는 여자 아이들의 당찬 포부에 배시시 웃을 뿐 거절의 말도, 동의의 말도 하지 않았다.

나라가 배신(?)을 해서 나한테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음에도 여전히 반응은 같았다.

“아버님 정말 잘 생기셨네요. 태양이가 잘 생긴 게 아버님 때문이었을 줄이야.”

태양이는 자랑하는 대상을 친구들로 끝내지 않았다.

친구를 데리러 온 부모님들에게도 나를 자랑했다.

“우리 아빠 잘생겼죠! 내가 아빠 닮았어요!”

“그래그래, 태양이 아빠 정말 잘 생기셨다.”

아이를 데리러 온 사람들 대부분은 아이 할머니들이었다.

아이들 엄마는 일을 하느라 데리러 오지 못하고, 할머니들이 자연스럽게 하교를 돕는 일을 맡게 된 것 같았다.

가끔 나처럼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아이를 데리러 오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우리 곁에서 한참동안 떨어지지 않고 엉뚱한 매력을 뽐내던 유나라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돌아가고, 나는 아직도 문 앞을 지키고 있는 태양이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 물었다.

“너 정말 저 여자애들이랑 다 결혼할 거야?”

“응? 헤헷. 몰라.”

벌써부터 하렘을 차린 것에 당당하던 태양이가 갑자기 내 질문에 부끄러움을 탔다.

“왜? 솔직하게 말해봐. 아빠잖아.”

“으응…커서도 결혼하자구 하면 할려고.”

“정말? 여자애들이 결혼할 만큼 좋은 거야?”

“아니~?”

“근데 왜?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이랑 하는 건데.”

“그치만 엄마들 많은 게 좋은 걸?”

“…….”

“그래서 나두 아빠처럼 엄마들을 잔뜩 만들고 싶어!”

태양이가 내 맏이라서 그런가?

내 여자들이 유난히 태양이를 예뻐하긴 했다.

태양이도 딱히 낯을 가리지 않고 엄마들을 따르는 편이었는데, 그게 이런 부작용을 만들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더니.’

결국 오는 여자 안 막는 태양이의 성향은 내 탓이 큰 것 같았다.

“아빠는 엄마들 다 사랑해서 결혼하기로 한 건데. 태양이처럼 결혼하고 싶다는 친구랑 한 거 아니야.”

“!!”

태양이가 내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뭔가 잘못 됐다는 건 알았는지 심각해진다.

“그럼 어떡해?”

“널 좋아하는 여자애를 짝으로 삼는 게 아니라 태양이가 좋아하는 여자애를 짝으로 삼아야지.”

“아빠도 그랬어?”

“응.”

“알겠어. 그럼 나도 그럴게!”

태양이의 눈이 반짝였다.

오늘 내가 태양이에게 한 말이 잘한 짓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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