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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77화 (477/849)

〈 477화 〉 #71. 휴식 겸 충전 (1)

* * *

밥을 먹고 나서 민영 누나가 먼저 집을 나섰고, 주아 누나는 태양이를 데려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평소라면 태양이를 데리러 내가 가겠지만, 오늘은 정화씨에게 볼 일이 있었기에 주아 누나에게 순순히 다녀오라고 손 인사를 날려야 했다.

“혹시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거니?”

정화씨는 밥을 먹은 후, 후식으로 차를 타왔다.

“뭐에요?”

“호박팥차. 한 번 마셔 봐. 나쁘지 않을 거야.”

호박팥차?

아는 차라고는 녹차밖에 없는지라 정화씨의 말을 순순히 듣고 한 모금 했다.

호로록­

“독특하네요. 부드러우면서 팥향도 나고.”

“그렇지? 후후. 내가 좋아하는 맛인데, 임신한 이후로는 못 마셔서 대리 만족하는 거야.”

임신을 하게 되면 음식을 조심해서 먹어야 했고, 평소 즐기던 것도 그럴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차도 카페인이 있고, 디카페인이 있으니 알아보고 마시면 되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차를 꼭 마셔야겠다는 생각은 없는지라 임신 기간 동안에는 차 종류를 마시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이렇게 임신을 하게 되면 여러모로 평소 생활과 달라져서 주변에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는데, 주아 누나를 임신했을 때 정화씨는 그런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던 것 같았다.

“혹시 아까 내가 했던 말이 걸리니?”

“제 마음을 들여다 보시네요.”

“나도 말해놓고 뒤늦게 아차 싶더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다 지난 일인 걸.”

“그분을 흉보는 건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제가 그때 정화씨 곁에 없었다는 게 아쉬워요.”

“그때 널 먼저 만났으면 주아가 네 딸이 됐을 텐데. 그래도 좋아?”

“주아 누나를 임신한 정화씨를 만나면 되죠. 일찍 만나서 정화씨 외롭지 않게 듬뿍 사랑해줬을 거에요.”

내 말을 들은 정화씨가 감동을 받았는지 슬며시 손을 잡아왔다.

손을 거절하지 않고 내가 오히려 더 힘줘서 잡았다.

“내가 널 사랑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내가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봐.”

“나라는 제가 구했을 거에요. 그러니까 정화씨를 제 여자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죠.”

평소였다면 단숨에 그녀를 번쩍 들어서 침대로 데려갔을 것이다.

어제 불알이 텅텅 비도록 뽑아냈으면서, 분위기가 잡히자 또 다시 설 것 같은 녀석을 억지로 억누르고 이어서 말했다.

“근데 이혼 후에 전남편 쪽에선 아무 연락도 없는 거에요?”

“…그건 왜 묻니?”

정화씨가 선뜻 대답을 하지 않고 맞잡은 손에 힘을 줬다.

내 단단한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말이다.

그 손놀림에서 어떤지 초조함이 느껴졌다.

“그냥 걱정이 돼서요. 아이를 낳고 결혼을 해서 한 집에서 살았던 추억이 있는데 그게 이혼이라는 걸로 단숨에 칼 같이 잘려질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만약 그분께서 좋지 못한 이유로 정화씨를 괴롭히면 어쩌지 하는 못된 생각도 들고요.”

“그런 사람 아니야.”

“그럼 정말 문제 없는 거에요?”

“솔직히 말하면….”

정화씨가 말하기 어려운 문제인지 자꾸만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내 숨길 일이 아니라는 듯 이어서 말했다.

“연락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야. 주아랑은 따로 연락을 하고 지내는 걸로 알고 있기도 하고. 주아가 연예인으로 데뷔하고, 태양이를 숨긴 게 아니다 보니까 우연히 알게 됐나봐.”

정화씨에게 마음이 남아서 연락을 한 게 아니라 주아 누나 때문에 연락이 왔다라….

솔직히 정화씨 전남편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됐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기에 정화씨가 이혼을 하잔다고 순순히 한단 말인가?

지금은 임신 때문에 안지 못하지만, 농염한 정화씨의 몸을 안을 때 느꼈던 쾌감을 몸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왜 나한테 말을 안 했냐고 서운해 하더라. 그래서 주아 관련 된 일은 주아랑 하라고 했어. 주아가 미성년자인 것도 아닌데, 아이 핑계로 연락하지 말라고 말이야.”

“그렇게까지 하셨다고요?”

“이 정도는 해야 그 사람이 또 애 핑계로 나한테 연락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이후로 서운했는지 몇 번 문자를 보내더니 끝났어. 원채 무심한 사람이야. 자기중심적이고.”

남에게 불편을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보다 남이 나한테 불편을 끼치는 걸 걱정하는 스타일이라는 정화씨의 설명에 전남편에 대한 이미지가 잡혀왔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우연히 내가 임신한 걸 알게 됐어.”

“!!”

임신 얘기라면 근래에 벌어진 일이 된다.

“그 사람 지인이 나를 우연히 보고 축하인사를 그 사람한테 했더라고. 이혼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야.”

“아~”

“전화가 와서 도대체 언제 재혼을 한 거냐, 왜 자기한테 말을 안 했냐, 주아는 어떻게 살고 있는 거냐, 도대체 누굴 만나고 다니는 거냐. 이상한 소릴 해대서 그냥 끊어버렸지. 내가 그걸 왜 들어주고 있어야 돼? 그럴 의무 없다고 생각했어.”

이후로 계속 연락이 왔지만, 귀찮아서 스팸차단을 해버렸다고 한다.

“그게 끝이야. 너 덕분에 좋은 곳으로 이사를 해서 찾아오지도 못할 테니까 신경 쓸 이유가 없는 거지. 솔직히 찾아 올 것 같지도 않아. 나한테 그렇게까지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었는 걸?”

정화씨의 얘기를 들으니 안심이 되기는 했다.

그래도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남자는 남자가 제일 잘 아는 법이라서….’

이미 이혼으로 선을 그은 사이라 해도 자기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자라면.

그것도 본인만 생각하는 이기주의 성향의 남자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찾아와서 깽판을 칠 것 같았다.

‘그래야 불편한 마음이 풀어질 테니까.’

정화씨를 사랑해서 깽판을 치려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더 괘씸하다고 볼 수 있다.

남에게 여자를 빼앗겼다는 불편함.

그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전남편은 무언가 행동을 할 것이다.

콘서트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정화씨 곁에서 아이를 낳을 때까지 지켜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질투도 살짝 있지만, 정화씨가 혹여나 그 사람 때문에 곤란해진 건 아닌가 걱정이 돼서 물어본 거였어요. 오늘 제가 한 말이 불편했으면 죄송해요.”

“아니야. 이런 부분은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는 게 마음이 편한 것 같아. 덕분에 나도 홀가분해졌어. 나중에 그 사람이랑 우연이라도 마주치면 말해줄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전부.”

남자를 편하게 만들어주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정화씨의 내조력에 속으로 연신 감탄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먼저 부탁을 할 수 없는 부분을 먼저 언급하며 시원하게 긁어준 것이다.

이런 태도로 전남편을 대하는 걸 알았으니 괜히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오히려 그 남자가 찾아오면 정화씨한테 호되게 당하겠는걸.’

얌전히 내조를 해주던 정화씨라고 생각하면 큰 코 다칠 게 분명했다.

이제 씩씩이가 튼튼하게 자라서 나와주는 것만 걱정하면 될 것 같았다.

? ? ?

드디어 오랫동안 이어지던 콘서트 투어가 끝났다.

다큐멘터리 팀은 이미 촬영을 끝낸지 오래고, 편집에 들어간 상태였다.

아마 우리가 휴식기에 들어가면 그때쯤 편집이 끝나 방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콘서트까지 끝내고 나니 멤버들은 혼이 쏙 빠진 것처럼 축 늘어졌다.

“돌아가고 시퍼. 우리 집에서 내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고 싶어어~~”

너무 오랫동안 해외를 돌아다녀서 그런지 멤버들은 향수병에 걸려 있었다.

좀 쉬었다가 국내로 들어가도 됐지만, 누구도 이곳에서 더 시간을 보내며 여행을 즐기고 싶어 하는 이가 없었다.

콘서트는 정말 행복했지만 사람의 체력을 엄청나게 갉아먹는 일임은 확실했다.

“우리 얼마나 쉴 수 있어요?”

우연이의 질문에 강태 형이 말했다.

“글쎄다. 적어도 느긋하게 여행 다녀올 수 있을 정도는 쉴 수 있지 않을까?”

“으욱! 여행 지겨워요. 난 그냥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종일 쉬고 싶어요.”

멤버들이 집돌이 스타일이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활동적인 우연이라면 며칠이 무색할 거다.

아마 얼마 버티지 못하고 지겹다면서 튀어나가지 않을까?

“나도 내 애인 보고 싶어….”

“어우~ 닭살 커플!”

“흐흐!”

어떤 이는 연인을, 어떤 이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돌아갈 날을 기다렸다.

그렇게 공식적으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 나는 정화씨의 배가 예전보다 더 부풀어 올라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얘네들은 어디까지 커질 거래요?”

“후후후, 튼튼하게 크고 있다는 거니까 괜찮아.”

“그래도 너무 힘들겠어요. 배가 너무 많이 커져서….”

“몸을 움직이는 게 힘들어지긴 했지만, 처음 임신하는 게 아닌 걸. 엄마라면 이 정도는 감내할 수 있는 거야.”

“그걸 혼자서 다 감당할 필요는 없죠. 이제 당분간 일 안 하고 쭉 휴가니까, 앞으로 제가 옆에서 쭉 보살펴 드릴게요.”

전남편에게 방치 당했던 기억이 있는 사람에게 이번에도 같은 기억을 또 만들어주고 싶지 않다.

“주아가 얼마나 알뜰살뜰 날 챙기는지 보면 내 걱정은 쏙 들어갈 걸?”

“누나가 챙겨주는 거랑 제가 챙겨주는 건 엄연히 다르죠.”

“뭐 얼마나 잘 챙겨주려고 이렇게 장담을 하니? 내가 정말 기대해버리면 어쩌려고.”

“기대하셔도 됩니다.”

그 기대에 한껏 부응할 생각이니까요.

자신만만하게 대답을 한 나는 우선 정화씨 가족을 우리 집으로 모두 이동시켰다.

“이제부터 여기서 다 같이 지내요.”

“우리야 뭐 여기 있으면 편해서 좋긴 한데….”

“지금까지 누나도 고생 많았어. 앞으로 정화씨 돌보는 건 나한테 맡겨!”

“도대체 얼마나 잘하려고 저러는 건지 모르겠네.”

“저도 도와드릴게요.”

칸나가 착하게 옆에서 한 몫 거들어주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칸나는 지금처럼 아이들 돌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래도 도와주겠다고 해줘서 고마워.”

“헤헤.”

칸나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내게서 받는 칭찬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칸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고 하는 편이었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안 해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돈 드는 것도 아닌 칭찬을 아낄 필요도 없었다.

돈이 든다고 해도 칸나가 행복하다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고 말이다.

“칸나랑 놀러 가자고 하면 태양이가 어린이집 가는 것보다 더 좋아하더라. 어떻게 그렇게 애를 잘 돌보는지 모르겠어.”

“쌍둥이도 제가 돌봐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지현이랑 현오도 있는데 쌍둥이를 너 혼자서 어떻게 돌보려고. 내가 따로 유모 구할 거야.”

“그러고 보니 예전에 그런 말 하긴 했었지? 유모 구한 거야? 제대로 잘 알아본 건 맞고?”

“아직 산달이 좀 남아서, 사람 이력서만 꾸준히 받고 있는 중이야. 그러다가 정말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사람이 나타나면 고용하려고.”

포니가 여전히 이주에 한 번씩 찾아와서 유모 이력서를 주고 가는 중이었다.

도저히 포니에게 유모 고용을 믿고 맡길 수가 없어서 결국 모든 이력서를 다 가져오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포니가 하는 일은 이력서를 받고 내가 미리 말해둔 조건을 1차적으로 걸러서 전달하는 게 전부였다.

내가 포니에게 거르라고 시킨 조건은 외형이 인간과 같을 것, 성별이 여자일 것, 범죄 이력이 없을 것.

이렇게 세 가지의 조건이었다.

포니가 1차적으로 서류를 걸러서 내게 전달을 해주면 나는 그 이력서를 세세하게 살펴서 우리와 알맞은 조건의 유모를 선별해야 했다.

‘지금까지 온 이력서는 전부 마음에 안 들어서 빠꾸 먹였는데, 슬슬 구하긴 해야겠구나.’

이력서로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확실히 알 수 없는 법이다.

사람을 미리 고용해서 대화를 좀 나눠봐야 그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인지, 아이를 잘 보호해주고 키워줄 수 있는 사람인지 검증을 해야 했다.

그 정도 발품은 팔아야지 마음이 놓인 채로 아이를 맡길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칸나가 유모와 함께 아이들을 관리할 것이기에 큰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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