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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78화 (478/849)

〈 478화 〉 #71. 휴식 겸 충전 (2)

* * *

그동안 쌓인 유모 이력서들을 다시 꺼냈다.

‘능력은 진짜 기가 막힌 사람들이 많긴 한데….’

정확히 이 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마음에 쏙 드는 조건을 가진 유모는 없었지만, 근사치에 도달해 있는 사람까지 없었던 건 아니다.

이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날 수 있기에 좀 더 지켜보고 있자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제 활동기가 끝나고 시간이 넉넉하게 남게 되었으니 슬슬 유모를 고용할 시기가 온 것 같았다.

‘이 사람은 너무 과해.’

할 줄 아는 게 많다고 해서 다 좋은 게 아니다.

아이 100명을 케어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여러 개의 손을 갖고 있다는 유모.

능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고용하는데 드는 비용은 당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내가 아이 100명을 키워달라고 유모를 고용하는 게 아니니 굳이 비싼 코인을 주고 이런 능력을 가진 유모를 고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과하게 좋은 능력을 갖고 있는 유모는 탈락시키고, 내가 지불 할 수 있는 코인을 요구한 유모들의 이력서를 살폈다.

“이 사람이 제일 괜찮긴 해.”

성별도 맞고, 생김새도 이곳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대단한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닌지라 요구하는 코인 요구 조건이 적었다.

하지만 이 유모를 선택할까 고민하게 만든 건 평범함과 적은 월급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도 나름 이세계인이라고 특별한 능력을 하나 갖고 있었는데, 바로 정령을 다룰 줄 안다는 거였다.

내가 주목한 것도 바로 그 정령이라는 능력 부분이었다.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정령’을 다룰 줄 안다는 것이 신기했는데, 그 정령이 24시간 동안 아이를 지켜보면서 위험하지 않도록 지켜준다는 점이 솔깃했다.

‘24시간 동안 아이 케어라니. 이걸 어떻게 놓치냐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잠깐 시선을 뗐다가 큰일 날 뻔한 경험을 갖지 않은 부모가 없을 것이다.

잠깐 시선을 돌린 사이에 아이가 다쳐서 으아앙! 하고 울고 있을 때면, 누가 나대신 24시간 아이를 지켜보고 있어주면 안 되나 싶은 마음도 들곤 했다.

그런데 이 유모는 단순히 상상으로만 하던 바램을 실제로 이뤄질 수 있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나는 포니를 불러서 이 유모에 대해 상의를 하기로 했다.

“이 사람을 고용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

[고작 이런 사람 고용하겠다고 그동안 날 그렇게 괴롭힌 거야? 고작 이런 능력이면 지불 할 코인이 아깝겠다.]

포니는 이 유모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아니, 나는 중급에서 최상급까지만 이력서를 받았는데, 왜 이런 하급이 이력서 중간에 끼어 있었던 거지? 당장 버려!]

“이 사람은 하급이 아니라 중급이야.”

내가 이 유모를 선택한 것이 능력 때문이긴 하지만, 한 가지 더 끌리는 점이 있다면 경력란에 적혀져 있는 것들이었다.

이 유모는 엄청나게 많은 아기들을 건강하게 키워낸 배태랑이었다.

능력이 보잘 것(?) 없어서 유모로 일을 할 때는 하급 딱지를 갖고 있었지만, 꾸준히 성공적으로 의뢰를 수행해서 경력란을 하나씩 채워나가며 등급을 올린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 큰 점수를 주고 싶었다.

성공적으로 의뢰를 많이 했다는 것은 그만큼 신뢰해도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를 키우는데 대단한 능력이 필요한 건 아니야. 이 정도 되는 경력에 상대적으로 가성비 있는 급료면 충분하다고 보거든. 다만 내가 걱정하는 건 이 이력서를 전부 믿어도 되는지야. 이 사람이 정말 이력서에 나와 있는 대로의 사람이라면 난 얼마든지 고용할 의향이 있어.”

[그래서 나보고 확인해오라는 거야?]

“응. 너는 그쪽으로 연결을 해서 알아볼 수 있는 창구가 있잖아. 확인만 해줘.”

이 이력서가 진짜라면 당장 고용할 의향이 있었다.

포니에게 고용 전 마지막 확인 절차를 맡기고 난 뒤.

나는 회사에 연락을 넣었다.

­정말 아무 것도 안 할 거야?

“네, 푹 쉬고 싶어요. 스케줄 전부 빼주세요.”

­휴식기 끝나고서는? 연화정 감독님 작품 어떻게 할 건데.

우리가 국내로 들어왔다는 소식에 섭외가 물밀 듯이 들어왔고, 회사는 휴식 이후의 스케줄을 따져보고 있었다.

“그거 아직 시간 많이 남지 않았어요? 적어도 1년은 더 걸린다고 들었는데요? 그리고 출연하겠다고 말한 적도 없고요.”

연화정 감독님이 소속사를 통해 나와 만나고 싶다는 요청을 했었고, 그 요청이 받아들여져서 그녀와 저녁 식사 자리를 한 번 가졌었다.

연화정 감독님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소탈하고 털털한 분이셨다.

대단한 명성을 갖춘 거장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인상이 좋아서 웬만하면 같이 작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솔직히 그녀의 작품을 내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를 만나자고 했던 건 캐스팅 때문이 맞았지만, 내가 정중하게 거절을 하면서 불발이 됐다.

의외였던 것은 연화정 감독님이 오히려 거절한 것을 좋아했다는 점인데, 사실 그녀가 날 만나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 찍으려는 작품에 나를 캐스팅 할 순 없지만, 이번에 영감을 받아 떠오른 이야기는 내가 꼭 출연해주길 바란다며 다소 부담스러우면서도 대단히 영광스러운 말씀을 해주셨다.

그분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도 아니고, 시종일관 정중하게 대우를 해주셨기에 된다면 그녀의 다음 작품에 출연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문제는 그때쯤이 한창 논란이 생길 때라는 거지.’

지금 찍고 계실 작품을 모두 찍고 개봉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보면 본의 아니게 딱 겹칠 것 같았다.

우리가 재계약을 앞두고 있고, 또 내 커다란 비밀을 세상에 밝힐 때의 시기 말이다.

그래서 일단 그때 상황을 보고 결정하겠다며 다시 한 번 연화정 감독의 제안을 고사해야 했다.

그녀는 자기가 쓴 걸 보면 아마 거절할 생각이 쏙 들어갈 거라면서 내 반항(?)을 신선하게 여겼다.

­정말 거절할 거야? 연화정 감독님 작품인데? 여기 출연하면 무조건 배우 활동이 탄탄대로가 된다고. 진지하게 다시 한 번 생각해봐. 우리가 웬만하면 이렇게 적극 권유 안 하잖아. 알고 있지?

“네, 알죠. 그럴게요.”

­그래그래. 푹 쉬어! 다음에 또 중요한 섭외 들어오면 연락할게.

내가 아무런 스케줄도 가지 않겠다는 말을 해서 그런지 직원은 조금 시무룩해진 기색으로 통화를 끊었다.

? ? ?

지금 현재 나는 정화씨의 허리를 팔로 두르고,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쌍둥이 때문에 몸을 가누기 힘들다고 해도 꾸준히 운동을 해줘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정화씨가 이렇게 운동을 해줘야 본인의 건강도 지키고, 쌍둥이의 건강도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하루에 30분씩 꼭 정화씨를 데리고 나와 산책을 하고 있었다.

너무 많이 산책을 하면 하체에 무리가 가서 다리가 퉁퉁 부울 수 있었기에 새심한 조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일부러 옆에 착 달라붙어서 정화씨의 상태를 가늠하고 무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운동을 시키고 있는 중이었는데….

“푸훗!”

“??”

정화씨가 산책을 하던 도중 뜬금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딱히 웃긴 얘기를 한 적도 없었기에 어리둥절해져서 물었다.

“왜 그래요? 뭐 웃긴 거라도 있어요?”

주변을 둘러봤지만 웃을만한 일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정화씨가 웃음기를 가라앉히지 못한 채로 내게 말했다.

“네가 너무 조마조마해 하는 게 느껴져서.”

“아~ 저 때문에 웃으셨던 거에요?”

“응, 누가 보면 내가 바람이 불면 날아갈 정도로 연약한 사람인 줄 알겠어.”

“제가 좀 극성이었나요?”

그동안 정화씨에게 못해준 걸 만회하려는 마음 때문에 좀 과했나보다.

“응, 엄청 극성이었어. 아휴~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지나갔던 건 알아?”

정화씨의 말에 머쓱해져 괜스레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랬어요? 시선 받는 게 익숙하다보니까 이상한 걸 못 느꼈어요.”

안경을 바꾼 이후로, 나는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기능을 쓰기보단 내 얼굴을 봐도 나라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기능을 더 자주 사용했다.

전에 쓰던 안경처럼 아예 인식을 못하게 해버리면 가게를 이용할 때 불편한 점이 있어서였다.

손님이 들어왔는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니, 제대로 주문도 되지 않고 물건을 계산하려고 해도 되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안경을 뺐다가 계산을 하고 난 이후 다시 끼는 식으로 사용을 해왔는데, 나를 알아보지 못하게 하기만 하면 그럴 필요가 없어서 자주 애용하게 됐다.

물론 이 능력에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정체를 못 알아봤으면서도 엄청 시선이 쏟아진단 말이지.’

여자들이 접근해서 번호를 따가려고 하는 건 하루에도 10번은 더 벌어지는 일이다.

싫다고 거절을 하면 아쉬워 하면서도 깔끔하게 떨어지는 사람이 있고, 왜 거절하냐며 끈질기게 달라붙는 사람이 있었다.

자칫 잘못 걸려서 끈질기게 따라오는 사람이 생기면 괜히 아까운 시간을 버리게 되니, 아주 큰 단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정화씨랑 같이 나와서 사람들이 접근을 하진 않네요.”

누가 봐도 우리는 결혼을 한 사이로 보였을 것이다.

좋은 물건으로 관리를 받은 정화씨는 겉으로만 봐서는 절대 본래 나이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젊은 나와 나란히 있어도 부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정화씨는 얼굴도 예쁘니까.’

주아 누나를 낳은 정화씨다.

얼굴로 누구에게 꿀릴 사람이 아니었다.

“너무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 큰일 나는 거 아니야. 널 보면 내가 부셔질까봐 전전긍긍하는 것 같아.”

“부셔질까봐 걱정이 된다기보다는 그만큼 아껴주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못해준 게 많아서 초조했던 것도 있고요.”

“충분히 잘 해주고 있어. 너 같은 남자를 무슨 복이 있어서 이렇게 만났나 항상 감사하고 있을 정도로.”

정화씨의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사랑을 담아서.

키스를 받은 정화씨가 눈에 꿀을 한가득 담은 채로 나를 올려다 봤다.

이곳이 길거리가 아니었다면 당장 입술을 빼앗았을 것이다.

“너 정화 맞지?”

서로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그때.

누군가가 정화씨의 이름을 정확히 언급하며 말을 걸어왔다.

깜짝 놀란 정화씨가 내게서 시선을 떼서 낯선 사람을 확인했다.

“어? 혜영이?”

“어머! 너 진짜 정화 맞구나! 세상에, 이게 얼마 만이야!”

그녀의 이름을 부른 여성은 굉장히 반갑다는 듯 목소리 톤을 높이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도저히 숨길 수 없는 부른 배를 확인하고 깜짝 놀란 표정이 됐다.

“너 임신…했어? 어머! 세상에, 축하 해! 너무 예뼈저서 처음에는 주아인가 했다니까?”

“응. 진짜 오랜만이다. 이게 얼마만이지? 우리가 만났던 게 세정이 결혼식 때였으니까 6년 만인가?”

“아유~ 먹고 살기 바빠서 연락한다는 게 쉽지가 않네. 근데 넌 잘 살았나보다. 예전보다 얼굴이 확 폈어. 뭘 먹고 다니기에 이렇게 예뻐진 거야?”

꽤 친했던 친구였는지 정화씨의 얼굴에 곤란함보단 반가움이 깃들어 있었다.

덕분에 나도 금방 경계심을 풀고 정화씨의 지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친구와 반가움에 대화를 나누던 정화씨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해솔아, 여기는 나 고등학교 때 친구.”

“안녕하세요. 진해솔입니다.”

안경을 믿고 있었기에 솔직하게 내 이름을 말했다.

내 이름을 듣고도 지인은 내 정체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유, 안녕하세요. 오혜영이에요. 근데 누구신지…?”

우리 관계가 궁금했던지 오혜영씨는 궁금함을 숨기지 않고 물어왔다.

내가 먼저 관계를 설명하기 전, 정화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나 그 사람이랑 이혼했어.”

“뭐어?!”

“지금 아이 아빠는 이 사람이야.”

“!!!!”

오혜영씨가 내 얼굴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확인한다.

안경의 능력으로 내 정체를 못 알아본다고 해서 내가 얼마나 잘 생긴 남자인지, 그리고 얼마나 젊은 남자인지 못 알아보는 건 아니었다.

“어…내 착각인지 몰라도 되게 젊어 보이시는데….”

“응. 아직 20대니까.”

정화씨의 말을 들은 오혜영씨의 눈이 개구리처럼 커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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