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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79화 (479/849)

〈 479화 〉 #71. 휴식 겸 충전 (3)

* * *

“어머어머어머!!! 너 와~ 기집애, 능력 좋다. 어머나 세상에. 둘이 어쩌다가 만났어요? 아!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언제 시간 좀 내! 애들이 너 많이 보고 싶어 해. 우리가 그래도 인연은 인연인가보다. 이렇게 우연히 만나서 근황도 듣고 말이야. 예정일이 언제야?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오혜영씨는 엄청난 속도로 말을 뱉어냈다.

딱 봐도 수다를 굉장히 많이 떠는 친구인 것 같았다.

“아이가 쌍둥이라서 이렇게 큰 거야. 예정일은 아직 좀 남았어.”

“어머어머! 쌍둥이?? 이 소식 애들이 알면 뒤집어지겠다! 왜 이렇게 좋은 소식을 숨기고 있었어! 내가 진작 축하해줬어야 했는데.”

“그동안 이래저래 바빠서 연락을 할 겨를이 없었네.”

오랜만에 만난 거라 그런지 서로 할 말이 많아 보였고, 이대로 계속 서서 대화를 나누기엔 정화씨의 다리가 걱정됐다.

“정화씨가 오래 서 있으면 다리가 부어서요. 혹시 시간 되시면 근처 카페에 가서 얘기를 나누는 게 어떨까요?”

“어머! 내 정신 좀 봐. 미안, 나 때문에 무리했겠네.”

“아니야. 이이가 쌍둥이다 보니까 걱정이 많아서 그래. 근데 너 시간은 괜찮은 거니?”

“아니! 나 약속 있어서 가봐야 해. 아쉽다. 이렇게 만난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

오혜영씨는 아쉬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다며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헤어지기 전, 연락을 할 테니 꼭 전화 받으라고 신신당부를 하기도 했다.

“친한 친구였어요?”

오혜영씨가 사라지고 나니 어쩐지 귀가 얼얼하단 느낌이 들었다.

사람 한 명 만났을 뿐인데, 이렇게 단숨에 정신을 쏙 빼놓을 줄이야.

뭔가 심상치 않은 사람이다.

목소리가 하이톤이고, 말이 굉장히 빨라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워낙 성격이 좋아서 두루두루 친했어. 혜영이랑 친구 아닌 사람이 없었을 지경이야.”

“마당발 친구군요.”

“응, 이렇게 우연히 만나니까 반갑기는 하네. 근데 혜영이가 알게 됐으니 동창생들은 전부 내 소식을 다 알게 생겼어. 마당발인 만큼 소문도 잘 내는 아이거든.”

“임신한 게 친구들한테 알려지는 게 좀 꺼려지세요?”

“그건 아닌데, 괜히 너 소개시켜달라고 할까봐 그렇지. 이혼 얘기도 안 했다가 이번에 알게 돼서 그것도 엄청 물어 볼 것 같고. 여러모로 좀 시달려야 할 것 같아.”

“친구들이 저 소개시켜달라고 하면 알겠다고 해주세요. 저 시간 많아요.”

“아무리 그래도 널 어떻게 거기에 데려가니? 그러다 들키면 어떻게 하려고.”

친구들을 만나면 소개를 하고, 뭘 하는 사람인지 호구 조사도 자연스럽게 들어 올 것이다.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도 껄끄러운 일이었다.

“흠, 확실히 친구들한테 설명하기가 어렵긴 하겠네요.”

우리들 사이에서 정화씨가 내 여자로 인정받았다고 해서 바깥사람들에게까지 우리 관계를 인정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사위와 잠자리를 하는 것도 부족해서 아이까지 임신했다는 건 딸과 사위가 연예인인 점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었다.

주아 누나와 내가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좀 뻔뻔하게 행동하고 다녀도 괜찮았겠지만, 우리가 연예인인 이상 불특정 다수에게 괜히 욕을 먹을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싶지 않았다.

나만 욕을 먹는 거면 몰라도, 주아 누나와 정화씨 그리고 쌍둥이까지 그 대상이 될 수 있었기에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살아간다는 건 적당히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저한테 좋은 방법이 있어요.”

“방법?”

“이럴 때 쓰기 딱 좋은 방법이에요.”

오혜영씨가 내 진짜 얼굴을 보긴 했지만, 얼굴은 아마 자세히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안경의 효과가 그렇다.

그러니 얼굴을 바꿔서 나타난다 해도 그런가보다 할 것이다.

"무슨 방법인데?"

"저한테 다른 신분이 하나 더 있어요. 그 신분으로 정화씨 친구분들한테 소개 받는 거죠."

다른 신분의 얼굴도 내 진짜 얼굴 못지않게 잘 생긴 미남이었으니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나름 번듯하게 직업도 갖고 있어서 창피하진 않으실 거에요.어떠세요?”

정화씨는 잠시 동안 고민을 하다가 이내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동의를 했다.

“그냥 거절하면 돼. 그 친구들이 막무가내로 요구하고 그런 스타일 아니야."

"그래도 제가 싫어요. 앞에서는 아무 말 안해도, 남편이 있는데 왜 당당하게 소개를 못 시켜주냐면서 뒷말을 할 수도 있잖아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말을 들어요,"

"널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전혀 귀찮지 않아요. 오히려저는 기분 좋았어요. 친구분들이랑 같이 있는 모습 봐서요.”

“그게 왜 기분이 좋아?”

“친구랑 같이 계실 때, 정말 소녀 같았거든요.”

지금까지 내게 보여줬던 정화씨의 모습은 기품 있고, 다정하며, 어른스러운 것들이었다.

그런데 오늘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정화씨는 평범한 소녀처럼 들뜨고 어딘가 아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혜영씨 덕분에 정화씨의 새로운 얼굴을 볼 수 있게 됐으니 좋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별스럽기는….”

소녀라는 말에 정화씨가 눈을 흘겼다.

이 나이에 소녀라니!

내가 기분을 맞춰주려고 거짓말을 하는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탠 건데요?”

“너 그렇게 능글맞게 굴 때마다 혼나야 돼.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을 수 있다고.”

“장난으로 던진 거 아니고, 일부러 던진 겁니다. 장난으로 돌 던질 나이는 지났죠.”

세상에는 아름다운 여자가 많이 존재하지만, 내 여자들만큼 매력적이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사람은 없었다.

돌을 던지려면 적어도 개구리에게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관심조차도 가져지지 않으니 장난으로 돌을 던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비비안씨랑 너무 잘 되고 있어서 살짝 양심에 찔리긴 하지만….’

슬슬 다리가 아파온다는 정화씨를 데리고 집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날 밤, 미리 예고했던 것처럼 오혜영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예측한 것처럼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나를 소개받고 싶어 했다.

친구들의 성화를 못 이긴 정화씨가 결국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기로 했다.

바깥에 나가서 만나기엔 몸에 무리가 갈 수 있어서였다.

한동안 할 일이 마땅히 없어서 방만하게 굴던 메이드들에게 특명이 내려진 순간이었다.

? ? ?

우리 집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이 바로 가족사진이다.

내가 가장 좋아해서 거실 한 가운데 떡하니 붙여놨는데, 이번에 정화씨 친구들을 초대하기로 해서 어쩔 수 없이 잠시 벽에서 떼어져야 했다.

가족사진이 비워진 곳엔 다른 유명 현대 작가의 그림이 다소곳하게 걸려 졌다.

이 집을 구매한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난 상황이었다.

메이드들은 친구들을 초대한 것을 기회로 삼아 집안 곳곳을 새롭게 꾸미기 시작했다.

공사를 해서 인테리어를 바꾸는 정도는 아니어도, 간단하게 바꿀 수 있는 인테리어들이 하나씩 교체 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바꿔놓으니까 확실히 분위기가 확 산다.”

주아 누나도 메이드들과 쿵짝이 잘 맞아서 집을 바꾸는데 한 몫 거들었다.

“솔직히 주인님이 번거로운 걸 싫어하셔서 바꾸고 싶어도 못 바꾸고 있었거든요. 이런 기회가 생겨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비앙카도 그렇고 멜리사도 그렇고.

생각보다 집을 바꾸는데 매우 진심이었다.

“나한테 말이라도 해보지 그랬어? 난 딱히 반대할 생각 없었는데?”

“집에 사람들 들락거리게 될 거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하실 거였잖아요. 지금 인테리어로 충분하다고 하셨을 거고요.”

집에서 생활하는데 편의를 주는 아이템들이 이곳저곳에서 굴러다니는지라 함부로 집에 사람을 들일 수 없는 건 사실이었다.

그저 기분 전환으로 집 인테리어를 바꾼다?

아무리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부를 갖게 되었다고 해도 평범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내가 선뜻 시도하기엔 거리감이 있는 일이긴 했다.

“이사하는 것도 아니니까….”

이 집에 들어올 때 이미 가구들을 최고급으로 맞춰놔서 생활 기스가 다소 생기긴 했어도 멋스러움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망가지지도 않은 가구를 고작 기분 전환 때문에 바꾼다?

솔직히 그 정도의 세심함을 남자에게 바라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거봐요! 주인님이 저렇다니깐요? 어쩜 남자가 저렇게 둔할 수가 있담?”

“적당히 때립시다. 아프다. 아퍼. 그래서 지금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잖아. 집에 무슨 짓을 하든.”

사람이 들락날락거리기 전.

아이템은 싹 다 수거해서 금고에 뒀다.

인테리어 교체가 다 끝나고 친구들의 초대가 끝난 이후에 다시 꺼낼 예정이었다.

“산뜻하게 바꾸니까 너무 좋다.”

작은 공사가 끝나고 난 집은 예전보다 한층 깔끔하고 고급스러워져 있었다.

정화씨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창피는 안 당할 수준이었다.

나도 완성 된 인테리어를 감상하기 위해 집안을 둘러보는 사이.

비앙카가 정화씨에게 딱 달라붙었다.

“애들이 엄청 놀라겠어. 부담스러워하면 어쩌지?”

“부담보단 부러움이 크시겠죠. 이런 집에서 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자랑하려고 초대한 게 아닌데.”

“원래 사람 마음이라는 게 뻔한 부분이 있죠. 자랑하세요. 자랑하는데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이런 걸 자랑하지 않으면 뭘 자랑할 수 있겠어요? 진짜 친구라면 이렇게 잘 사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잘 사는 걸 보고 속이 뒤틀린다면 그게 과연 진정한 친구일까요? 이번이 진짜 친구와 가짜 친구를 가려 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집 구경 하다가 뒤늦게 그 광경을 본 나는 재빨리 다가가 비앙카와 정화씨를 떨어트렸다.

무슨 말을 정화씨한테 속달거린지 몰라도 정상적인 내용은 아닐 거라 100% 장담할 수 있었다.

“너! 정화씨한테 이상한 말 했지?”

“아닌데요?”

“시치미 떼지 마. 네 표정보고 다 눈치 챘어. 너 사람 괴롭힐 때 딱 그 표정 짓거든.”

“어머, 이거 감동해도 되는 부분일까요? 제 표정도 알아봐주시고.”

“전혀 감동 받을 부분 아니거든? 정화씨, 비앙카가 한 말은 무시해요. 제가 누누이 말했지만 비앙카 쟤가 사람 잘 되는 걸 보면 혀에 바늘이 돋거든요.”

“그런 거 아니야. 비앙카가 좋은 말 해줬어.”

“아~! 이미 넘어가버린 거에요?”

“그런 거 아니래두. 호호호!”

정말 크게 이상한 소릴 한 건 아니었는지 해맑게 웃는 정화씨를 보며 마음이 풀렸다.

“친구 분들, 이틀 후에 오는 거 맞죠?”

“응. 이틀 후 오후 2시.”

“와~ 은근 긴장 되네요.”

내 여자의 지인을 소개 받는 건 항상 긴장 되는 일이었다.

친구들이 왔을 때 집에는 정화씨와 나만 있을 예정이었다.

아이들은 메이드들이 잘 보살펴 줄 것이기에 오로지 친구들의 방문에만 신경 쓰면 되는 것이다.

“네 다른 얼굴 보여줘.”

“또요?”

“그냥 아예 이틀간은 그 얼굴로 지내는 건 어때? 혹시 불편하니?”

정화씨도 친구를 집에 초대하는 것이 긴장 되는 건 마찬가지였는지 나에게 여러 가지 요구를 했다.

내 다른 신분의 정보를 말해달라는 것과 다른 얼굴을 자주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만약 친구들과 함께 있는데 실수라도 하면 곤란해지지 않겠는가?

다행인 것은 내 다른 얼굴을 의외로 정화씨가 좋아해준다는 점이었다.

“정화씨는 이 얼굴이 더 좋아요? 왜 이렇게 예쁜 눈으로 보는 거에요?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잖아요.”

“그냥 너라서 좋은 거야. 이런 걸로 질투하면 안 되는 거죠?”

투정 부리는 아이를 달래듯 차분하게 달래는 말에 속수무책이 된다.

정화씨가 이렇게 나오면 나는 정말 아이가 된 것처럼 얌전히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옙.”

쪽!

“잘했어요.”

정화씨의 입맞춤.

내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기 충분했다.

가볍게 키스를 남기고 달아나려는 정화씨의 어깨를 붙잡았다.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뒷머리를 붙잡고, 입술을 가져다댔다.

임신한 정화씨를 돌보겠다는 핑계로, 휴가를 듬뿍 즐기는 나날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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