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83화 (483/849)

〈 483화 〉 #72. 유모 (2)

* * *

가장 뚜렷하게 바람을 볼 수 있는 경우가 무엇인가.

보통의 사람이라면 흔히들 우리가 알고 있는 ‘토네이도’ 라는 자연 현상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은 자연현상이라서 무서움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토네이도에 휩쓸리면 인간으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자연재해에 해당했다.

“정령은 살아 있는 생명체인가요? 의사소통이 가능한가요?”

“그럼요. 다만 그들은 우리처럼 목소리로 의사소통을 하진 않아요. 그들만의 특별한 의사소통 방법이 있죠.”

“그럼 제가 정령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건 불가능하겠군요.”

“맞습니다. 정령과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가장 첫 번째 조건이 바로 그들만의 특별한 의사소통을 이해하고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요. 그만큼 희귀한 재능입니다.”

정령은 우리 아이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외형을 이리저리 바꾸면서 아이들의 흥미를 이끌었다.

아이들의 몸을 둥실둥실 떠올려서 흔들의자에 앉은 것처럼 부드럽게 리듬에 맞춰 흔들어주기도 했다.

“제 정령은 아이를 좋아해서 자주 저렇게 놀아주곤 합니다. 앞으로 저 아이가 아이들 곁에서 지켜주고 놀아줄 테죠. 안전에 있어서는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바람 그 자체인 정령이 아이를 떨어트릴 일은 절대 없습니다.”

사실 높이 들어 올린 건 아니지만, 아이를 허공에 띄우고 있는 걸 보고 걱정이 안 될 수가 없긴 했다.

그래도 정령이라고 하니 아이를 위험하게 만들지는 않겠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유모가 그 부분을 확실하게 꼬집어 주니 마음이 편했다.

“확실히 아이들이랑 놀아주는 게 능숙해 보이네요.”

“자연이 때론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지만, 대부분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나누어주는 존재입니다. 정령은 그런 자연에서 태어난 존재입니다.”

즉, 아이들에게 해를 끼칠 리가 없다는 것.

이미 무수한 경험을 통해 확실하게 검증 된 부분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나를 안심시킨다.

나는 그녀의 말에서 보이는 익숙함이 의아해 물었다.

“어쩐지 설명하시는 게 익숙해보이네요. 자주 비슷한 말을 하셨나봐요.”

“보호해야 하는 소중한 존재인 아이를 맡아 지키는 일을 해야 하다 보니 걱정이 많은 부모님들을 많이 뵀습니다. 워낙 차원이 다양해서 이곳처럼 이능력이 존재하지 않거나 배척하는 세계가 있곤하죠. 때문에 정령이 아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라는 걸 설득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워낙 소설 속에서 정령이라는 존재를 긍정적으로 보아왔으니 크게 거부감이 없었다.

대체적으로 누구나 모르는 것에 대해 수용하기보단 배척하기 마련이고, 아이를 돌보는데 정령의 도움이 필수적인 실씨는 항상 정령이 안전하다는 것을 납득시킬 필요가 있었다고 한다.

“정령을 너그럽게 받아주셔서 다행입니다. 아무리 언어 체계가 다르다고 해도 배척 받고 있다는 사실까지 모를 정도로 눈치가 없는 친구는 아닙니다. 상처도 받고, 슬퍼하기도 하죠.”

“아이들이 저렇게까지 좋아하고, 안전하게 지켜주는 존재라는데 배척할 이유가 없죠.”

지금도 봐라.

정령이 나름 터프하게(?) 놀아주는 것에 홀딱 빠져서 낯가림도 없이 금세 절친이 되었다.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마음에 들거나 궁금해지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기 마련인데, 정령은 자신을 자꾸 물려고 하는 아이들의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

오히려 손수건을 들어올리더니 아이들의 입가 주변에 묻은 침을 닦아주는 세심한 모습까지 보여줬다.

“더군다나 정령이 아이를 다루는데 굉장히 능숙해보이잖아요. 솔직히 저보다 우리 애들을 더 잘 다루는 것 같아요.”

“저 친구가 워낙 아이를 좋아하고, 저를 도와서 육아를 한 경험이 많아서요.”

“아이고, 지현아. 그거 먹는 거 아니야. 친구잖아.”

정령을 아예 깔아 뭉개려고 하는 지현이를 허겁지겁 말리고.

다음으로는 유심히 실씨를 관찰하고 있던 칸나를 소개시켜주었다.

“이쪽이 지현이랑 현오를 돌봐주고 있는 유모에요. 서로 인사 나눠.”

“안녕하세요. 칸나에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실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저도 칸나라고 편하게 불러주세요.”

칸나는 실씨가 다른 차원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들은 상태였기에 잔뜩 긴장한 채였다.

왕년에 갑질 좀 해본 칸나의 성격을 고려해보면 칸나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사실 실이 오기 전에도 이미 저렇게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왜 그렇게 긴장하냐고 물으니 대답이 황당했다.

‘외계인이잖아요!! 저 외계인 처음 본단 말이에요! 주인님은 안 놀라우세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웬 외계인? 이냐며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됐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칸나의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외계인이 맞긴 하지. 다른 차원에서 온 거니까.’

다만 칸나가 말한 것처럼 외계인을 처음 접하는 건 아니었다.

칸나는 이미 외계인이 해준 요리도 먹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긴장 때문인지 칸나는 그때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리고.

‘외계인이라서 싫은 건가 걱정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네.’

유모로 온 실씨가 외계인이라 해도 칸나는 금방 적응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정령을 다룬다는 특별한 점 외에는 우리와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괜히 유모를 고용하는데 여러 조건을 따진 게 아니다.

너무 이질적으로 굴어서 함께 생활하기 어려워지면 곤란하기에 까다롭게 따진 거였다.

그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칸나와 실씨가 어렵지 않게 관계를 다지고 있었다.

“앞으로 많이 가르쳐주세요. 유모로 굉장히 많은 경력을 갖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저는 전문적으로 배우지 못해서 모르는 게 많아요.”

“예,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은 돕겠습니다.”

이미 나에게 보수를 약속 받은 실씨는 그런 칸나의 도움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칸나는 기쁘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실씨는 내밀어진 손에 잠시 당황하다가 어색하게 손을 마주잡았다.

“이게 이곳의 인사인가요? 이렇게 하는 게 맞습니까?”

“아! 맞아요. 이게 우리들 인사에요. 이렇게 손을 맞잡고 살짝 흔들어주는 거에요. 손에 힘을 꽉 주실 필요는 없어요. 헤헤. 다른 곳에서 오셨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저희랑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서 긴가민가 했거든요. 말도 되게 잘하시고요.”

“앞으로 저도 많이 배워야 할 겁니다. 아무래도 이쪽 문화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보니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정확히 지적해주시고, 가르쳐주셨으면 합니다. 오해가 깊어지지 않도록 말이죠.”

“네! 그럴게요!”

“그리고 제가 돌봐야 할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물론이죠! 아가씨랑 도련님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드릴게요.”

칸나는 외계인에 대한 호기심이 실씨에 대한 호감으로 변한 듯했다.

아이들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니 실씨와 칸나씨의 대화에 내가 낄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칸나가 그동안 지현이와 현오를 돌보는데 얼마나 많은 애를 쓰고 있던지, 할 말이 매우 많은 듯했다.

칸나가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줬다면 실씨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얘기를 많이 꺼냈다.

“둘이 대화 나누고 있어. 나는 애들이랑 같이 있을게.”

내가 끼어들 수 있는 대화가 아니었으니 계속 듣고 있는 건 곤욕이었다.

결국 백기를 들고 자리를 피해주기로 했다.

내가 자리를 피하는 게 저쪽에서도 대화 나누기 더 편할 것 같았다.

바깥으로 나오니 애들이 정령한테 홀려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꺄르륵!

꺄하하!

더! 더 높이!

용맹한 지현이가 더 높이 날고 싶다고 정령에게 의사 표현을 했다.

하지만 정령은 높이를 올리기 보단 좀 더 다양한 방향으로 아이를 움직이게 해주면서 새로운 자극을 줬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정령이 아이들의 안전을 고려하며 놀아주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지현아, 현오야, 재밌어?”

내가 아이들 가까이로 다가가 물으니 현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공에 둥둥 떠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건 솔직히 나도 좀 해보고 싶은 경험이긴 했다.

현오는 마치 슈퍼맨처럼 낮은 높이에서 둥둥 자유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더! 더어!!”

내가 와서 그런지 정령이 현오와 지현이를 바닥에 안전하게 내려줬다.

바닥에 깔린 푹신한 카펫이 엉덩이에 닿자 아이들이 난리가 났다.

만족스럽게 놀지 못한 지현이와 현오가 더 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음. 애들이 푹 빠진 것 같은데, 혹시 더 해줄 수 있니?”

이렇게 말을 한다고 정령이 내 말을 알아들을 것 같지 않아 걱정이 됐는데, 우리가 뭘 바라는지 눈치를 챈 것인지 지현이와 현오의 몸이 다시 둥실둥실 떠올랐다.

정령의 유능함에 푹 빠진 지현이와 현오가 서로 정령의 차지하겠다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정령은 그러지 말고 사이좋게 놀라는 듯 두 명 모두와 공평하게 놀아주고 있었다.

‘애는 실씨가 보는 게 아니라 정령이 보는 거였나?’

정령도 실씨의 능력이니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더욱이 정령은 사람이 놀아주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기발하게 놀아주고 있어서 뭐라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현오면 몰라도 지현이까지 저렇게 좋아하는 건 처음 보는데.”

정령이랑 찐친을 먹은 아이들을 보니 내가 유모를 잘 고르긴 했구나 하는 뿌듯함이 든다.

그리고.

‘나도 해달라고 하면 너무 철없어 보이려나?’

아가들이 해맑게 노는 걸 보면서 나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걸 보면 남자는 죽어도 철이 안 드는 생물이라는 말이 맞는 거 같다.

? ? ?

내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정화씨가 실씨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앞으로 실씨는 쌍둥이가 태어나면 아이를 돌볼 것이고, 정화씨의 옆에서 산후조리를 도울 사람이었다.

“어머, 이분이 그 유모님?”

“네.”

“안녕하십니까.”

정화씨는 실씨를 유모님이라고 부르며 천천히 통성명을 나누었다.

그녀는 섣불리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차분히 시간을 두고 알아가는 편이었기에 나도 그에 맞춰서 행동할 필요가 있었다.

“정령이라는 거 정말 대단하네요.”

정화씨는 특히 실 유모님이 다루는 정령에 대해 많은 관심을 표했다.

정령이 육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경험자인 이상 모를 수가 없었다.

실 유모님도 정화씨의 부드럽고 온화한 태도에 감화 되었는지, 며칠 함께 생활하더니 금새 마음을 열고 칸나 앞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던 사적인 대화도 조금씩 나누고 있었다.

“사실 제 능력은 고향에서 정말 보잘 것 없는 수준입니다. 이 능력으로는 먹고 사는 것도 버거울 지경이었죠. 그래서 그런지 저희 부모님은 저를 어린 나이에 귀족의 하녀로 보내버리셨습니다.”

“세상에, 많이 서운하셨겠어요. 이렇게 좋은 능력인데 왜 그러셨을까.”

“보통 재능이 없는 아이들은 그렇게 귀족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서 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도 특별할 것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가족들한테 받은 상처가 사라지는 건 아니죠.”

“…귀족의 집에서 하녀로 생활하며 컸고, 정령을 이용해 살림을 잘 한 덕분에 우연히 아기씨를 모실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사실 그것도 유모의 일을 돕는 잡일에 불과했지만 말이죠.”

“그 경험 덕분에 지금의 실 유모님이 있을 수 있었던 거군요!”

“네, 제 정령이 귀한 아기씨가 위험할 때 목숨을 구해줬습니다. 그때의 포상으로 돈을 두둑하게 받고 하녀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죠. 자유민이 됐지만,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던 저는 그래도 하던 일을 계속 하는 게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작 된 유모 일.

초반에는 실수가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능숙해지고, 경력이 쌓아지면서 나름 명성도 얻게 됐다.

“성공해서 부모님 앞에 나타나 내가 이만큼 성공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부모님을 찾아가서 말해줬나요? 성공했다고요!”

“아뇨. 제가 하녀로 일할 때 부모님이 계시던 지역에 물난리가 나서 일가족이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오히려 버림받은 게 목숨을 구한 게 된 겁니다.”

“아!”

별 생각 없이 그녀의 말을 정화씨와 함께 듣고 있던 나는 그녀의 비극적인 개인사에 깜짝 놀랐다.

“괜찮습니다. 이미 오래 전의 일이고, 저는 지금의 제 생활이 만족스럽습니다. 아마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 중에 저보다 성공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실 유모님은 자신의 능력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녀가 이렇게 먼저 선뜻 자신의 얘기를 해주며 마음의 문을 여니, 정화씨도 마냥 거리를 재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모양이다.

“실 유모님 마음에 들어.”

우리 둘만 있는 공간에서, 정화씨가 슬며시 자신의 생각을 알려왔다.

“괜찮아 보여요?”

“응. 사람을 잘 고용한 것 같아. 사람이 깔끔하고 깨끗해. 아이들을 진심으로 예뻐하는 게 보이기도 하고. 특히 정령이라는 존재가 너무 유용하더라. 나도 하나 분양 받고 싶은 심정이야. 곁에 그런 존재가 있었으면 주아를 키우는 게 훨씬 쉬웠을 텐데.”

육아 만렙 정령은 솔직히 나도 갖고 싶긴 했다.

하지만 정령과 계약을 맺는 건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소수의 특별한 존재들만이 가능한 재능이었다.

그녀의 고향에서는 흔한 재능일지 몰라도 종족도, 차원도 다른 우리가 감히 탐낼 수 있는 능력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실 유모님은 큰 문제 없이 우리 가족 안에 스며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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