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84화 (484/849)

〈 484화 〉 #72. 유모 (3)

* * *

실 유모님이 우리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하면 아이가 힘들어해요. 너무 걱정 되는 마음이 커서 조심스럽게 한다고 하는데, 그게 오히려 아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거죠.”

“네에!”

일단 칸나의 아이 돌보는 실력이 쑥쑥 성장했다.

실 유모님이 가르쳐주는 것들을 꼼꼼하게 수첩에 적어 넣으며 배움에 대한 열의를 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집 부리면 안 되는 거에요.”

“흐이잉….”

“울어도 안 되는 게 되지는 않아요. 안 된다고 했는데 고집을 피우면 혼날 거에요!”

칸나의 오냐오냐하는 교육 속에서 다소 버릇이 없었던 아이들도 실 유모님의 교육 속에 확실하게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배워가고 있었다.

아이들의 변화는 칸나를 서운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호되게 혼을 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칸나보다 실 유모님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왜 애들이 저보다 유모님을 더 좋아할까요?”

“칸나씨보다 저를 더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혼을 내서 그런 겁니다. 혼나도 싶지 않으니 무서운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거죠. 어리다고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오히려 아이들에게 배울 때가 많죠.”

유모는 단순히 아이를 키우는데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었다.

“어떠세요?”

“정말 편하네요. 신기해라.”

실 유모님의 노하우로 속이 좋지 않아 밥을 먹지 못하는 정화씨를 뚝딱 고쳐냈다.

신기하게도 그녀가 쓴 재료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재료들이었다.

정화씨에게 해주면 좋은 마사지 같은 것들을 내게 가르쳐주기도 하고, 어떤 자세로 누워 있으면 편할 수 있는지도 알려주었다.

“유모님이 정말 유능해요.”

“그쵸?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애들이 밥도 잘 먹더라고요.”

지현이가 살짝 반찬투정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 유모님이 오신 이후로 안 좋은 버릇이 싹 들어갔다.

“이래서 애들이 잘못하면 다 부모 잘못이라고 하는 건가 봐요.”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바뀌니 잘못을 저지르던 아이들의 못된 버릇이 싹 들어가지 않았는가?

아이들이 잘못하면 자신을 탓하는 게 옳은 일 같았다.

“우리 해솔이, 다 컸네. 다 컸어.”

정화씨가 후후 웃으면서 내 엉덩이를 토닥여줬다.

“솔직히 제가 오냐오냐 하면서 키웠다고 생각 안 했는데, 알게 모르게 아이들이 안 좋은 버릇이 들고 있었나 봐요. 바뀌는 아이들 보면서 반성 많이 했어요. 이제라도 알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태양이가 문제 없이 잘 크고 있어서 지현이와 현오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태양이는 정화씨가 직접 키운 아이이고, 지현이와 현오는 대부분 칸나에게 맡긴 상태였다는 걸 간과했다.

칸나가 아무리 아이들을 잘 돌봐준다 해도 경험자인 정화씨보단 못 할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칸나는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혼내기보단 달래느라 바쁜 성격이었다.

내 피를 이은 아이들이란 점에서 칸나는 아이들을 혼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칸나가 실 유모님한테 잘 배우고 있으니까 다행이지.’

유모님은 코인을 주고 고용해야 하는 사람이다.

최소 2년에서 3년 사이에 칸나가 그녀의 노하우를 열심히 배운다면 이후로 다른 아이들이 태어나도 든든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굳이 비밀로 하지 않아도 되니까 굳이 코인으로 고용할 필요가 없어지려나.’

그래도 웬만하면 아이들을 키우는 것에 외부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확실하게 신분을 보장해주고, 범죄가 일어났을 시 처리도 함께 해주는 서비스가 없지 않은가?범죄에 대해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도 우리 아이들을 보면 분명 빼앗고 싶어질 게 분명하다.

그런 아이들을 어떻게 마음 놓고 맡길 수 있겠는가?

역시 실 유모를 고용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든다.

아무튼 유모님은 우리 식구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여러 차원을 넘나들며 아이를 키운 경력이 빠른 적응을 가능하게 해준 게 분명했다.

“불편한 점은 없으세요?”

유모님이 우리 집에 생활하기 시작한지 이주일 째.

나는 그녀를 불러 상담을 하기로 했다.

불편을 주지 않고 우리 집에 녹아든 것은 우리 입장에서 좋은 일이지만, 본인에게는 피곤한 일일 수 있었다.

서로 어느 정도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었기에 여태까지 우리에게 맞춘 만큼 우리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괜찮습니다. 아이들이 순해서 정령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칸나씨가 배움에 열정적이라서 가르치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요.”

“식생활이 달라서 곤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의식주 같은 건 불편한 점이 없었나요? 휴식은 일주일에 이틀로 충분한가요?”

“제가 육류를 즐기지 않는다고 말씀을 드리니 이후로 채식 위주로 재료를 준비해주시더군요. 샐러드 소스가 다양해서 식사시간이 즐겁니다. 그리고 이틀이나 쉬는 날을 주실 거라고 생각 못했습니다. 너무 과하게 쉬는 게 아닐지 좀 걱정이 됩니다.”

이틀이 과하다고?

전세계 일하는 직장인들이 들었으면 경악할 소리였다.

“보통 저희들은 5일 동안 일하고 이틀은 쉬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틀 드린 거였어요. 다른 곳에서는 휴식을 주지 않나요?”

“예. 거의 대부분 항상 일을 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입주 유모이지 않습니까? 24시간 아기씨들을 돌보는데 모든 신경을 썼습니다.”

“저희는 그렇게 팍팍하게 일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화씨가 아이 둘을 키워봐서 어려운 일이 없을 거에요.”

만약 정화씨가 쌍둥이를 임신하지 않았다면 굳이 유모를 고용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다.

물론 유모님의 유능함을 알게 된 지금은 고용하길 잘했다고 100번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제가 해야 할 일을 사모님께서 스스로 하시려고 해서 놀라긴 했습니다.”

“그럼 큰 문제 없는 거죠?”

생활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일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것 같으니 불만이 없는 걸로 봐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유모님이 뭔가 걸리는 게 있다는 듯 머뭇거렸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편하게 말씀하세요.”

“다 좋은데, 제가 받고 있는 고용비에 비해 하는 일이 너무 적어서 좀 걱정이 됩니다.”

“어…일이 편하면 좋은 거 아닌가요? 그리고 쌍둥이가 태어나면 지금처럼 편하게 지내지 못하실 거에요. 애기들 태어나면 본격적으로 피곤해지실 겁니다.”

“그럼 그 전까지는 계속 이런 식으로 일하면 되는 겁니까?”

“네. 지금도 너무 훌륭하게 잘 해주셔서 저희는 아무런 불만도 없어요.”

내 말을 들은 유모님의 얼굴이 풀어졌다.

‘생각보다 진상 고용인들이 많았나보네.’

직장 생활을 해본지라 그녀가 우려하는 부분이 뭔지 대번에 눈치 챌 수 있었다.

일을 적게 하니 받는 돈을 줄이겠다는 말을 한 놈이 분명 있었을 거다.

100% 확신한다.

세상은 넓고 또라이도 다양하게 존재하니 말이다.

더욱이 유모를 고용한다는 건 그만큼 재력이 있는 집일 것이고, 있는 놈이 더 하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고용비는 걱정하지 마세요. 더 드리면 더 드렸지 부족하게 드리지 않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정당하게 일하고 받는 돈일 뿐인데, 왜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하는 건지.

과거의 나도 그녀와 다를 바 없는 태도로 직장에 다녔었기에 새삼 옛날 일이 떠오르며 씁쓸해졌다.

“유모님은 잘 해주시고 계세요. 그러니 편하게 일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렇게 말한들 직장이 편해지는 건 아니겠지만요. 불편한 점은 참지 말고 꼭 먼저 말씀해주세요. 앞으로 오랫동안 우리 아이들을 돌봐주실 분인데 불편함을 드리면 안 되지 않습니까.”

“예, 그러겠습니다.”

내 말의 진심을 읽으셨는지 유모님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도 밝아지셨다.

그날 상담 이후.

상담 효과가 있었는지 유모님의 태도도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정화씨에게만 마음을 풀고 다른 이들에겐 선을 긋던 그녀가 다른 이들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 ? ?

실파르도 타바이스코 라체리아소파태.

몬스터를 사냥할 수도 없는 고작 해봐야 바람 조금 불게 하는 것이 전부인 작고 어린 정령과 계약을 맺었을 땐,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친구들의 놀림, 부모님의 실망 그리고 버림받기까지.

그녀의 인생은 꾸준히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었고, 언제까지고 내리막을 걸어가다가 낭떨어지를 만나 떨어지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모두가 무시한 능력으로 훌륭하게 살아갔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순수한 자신의 능력으로 제법 두둑한 재산을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작고 어린 정령이 밉지 않았다.

오히려 평생 함께 할 소중한 친구를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내 소중한 가족….’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느꼈는지 정령이 살랑이며 산들바람을 만들어 그녀의 피부를 따스하게 훑고 지나갔다.

“이번에는 괜찮은 곳에 온 것 같아. 그렇지?”

정령이 아이들이 참 귀엽고 마음에 든다고 귓가에 속삭였다.

아무리 아이를 좋아한다지만, 못된 짓을 하는 귀족 가문의 아이까지 정령이 좋아하진 않았다.

아이들을 돌보다보면 ‘순수악’이라는 것이 뭔지 알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보며 권력을 어설프게 알아버리면 아이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악마가 되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을 교정시키는 것이 유모인 그녀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실은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정령이 익숙하게 자신의 손바닥에 미니 토네이도 모양으로 짠 나타났다.

이 행동은 둘이 감정을 교류하는 방식 중 하나였다.

“이곳은 신분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래. 여태까지 많은 곳을 다녀봤지만 신분이 없는 곳은 처음이야. 솔직히 처음에는 공산주의 세계인 건가 싶었거든.”

공산주의.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공유재산을 실현하여 빈부의 차를 없애려는 사상.

하지만 그녀는 공산주의 체계를 따르고 있는 차원에서 유모로 일하다가 학을 뗐었다.

“맞아, 정말 끔찍했지. 다신 그쪽 차원으로 가고 싶지 않아.”

그곳은 완벽한 공산주의가 체계로 잡힌 곳이었다.

그리고 공산주의 체계를 이루기 위해 그곳의 주민들은 스스로 욕망을 거세 해버렸다.

욕망이 없는 세계는 정말 말 그대로 공유 재산으로 모두가 같은 옷을, 같은 음식을, 같은 수준의 돈을 지급 받으며 살아갔다.

나라에서 제공해주는 놀이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나라에서 요구한 장소에서 일을 하며, 나라에서 요구한 계획을 철저하게 따르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살아간다.

“이번 일을 끝내면 드디어 목표 금액을 달성해. 계약한 대로 코인을 받으면 목표 금액을 넘어서 사치를 부려도 될 정도의 돈이 될 거야.”

그녀는 공산주의 체계를 갖춘 차원의 아이들을 키우다가 도저히 못하겠다며 계약을 중간에 해지했다.

납득이 되지 않은 공산주의 체계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세뇌하듯 강요해야 하는 교육 과정을 도저히 이행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계약을 해지 했을 때 줘야 하는 금액이 부담 됐지만, 그동안 모아둔 재산으로 해결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로인해 그동안 모아두었던 재산에 큰 구멍이 생겼지만, 좌절하지 않고 다시 목표했던 코인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그녀의 꿈은 ‘내 집 마련’.

그녀가 살았던 차원으로 돌아가 집 한 채를 구매해서 느긋하게 노후를 보내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목표했던 코인을 반드시 벌어야 했고, 어릴 적부터 쉬는 날 없이 일해 온 그녀에겐 못할 것 없는 목표이기도 했다.

목표 했던 금액을 벌기 위해.

이번 의뢰는 문제없이 계약을 이행해야 했다.

중도 계약 해지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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