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5화 〉 #72. 유모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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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의뢰인의 첫인상은 다행이도 매우 긍정적이었다.
예상치 못할 만큼 잘 생긴 외모를 한 의뢰인은 그녀를 다른 의도로 바라보지 않았으며, 성품 또한 천박하거나 음흉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온갖 젠체하다가 뒤로는 추잡한 성격을 드러내는 의뢰인들을 많이 경험해온 그녀이다.
그동안 매우 권위적인 의뢰인을 만나온 그녀에게 이 정도로 산뜻하게 대해주는 의뢰인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자신을 최소 2년에서 3년까지 고용할 예정이라고 들었기에 첫 인상이 좋은 의뢰인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녀가 돌봐야 하는 아이는 총 5명이지만 맡아야 할 아이들의 숫자에 비해 해야 하는 일은 매우 적었다.
5명 중 한 명은 거의 다 커서 그녀의 손길이 거의 필요하지 않은 아이였고, 두 명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남은 두 명의 아이들은 굉장히 순하고 착한 편이라서 그녀가 조금 교정을 해주니 문제가 없어졌다.
‘아이들을 훈육해도 별 다른 터치가 없었고.’
감히 우리 아이한테 목소리를 높였다며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의뢰인이 그녀에게 바라는 것은 아이를 돌봐주는 것이지 올바르게 크도록 훈육시키는 것이 아니라면서 말이다.
아이들의 훈육은 그녀 같은 일용직 출신의 유모가 아니라 제대로 교육을 받은 선생님을 따로 고용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선생님’과 ‘유모’의 영역은 엄연히 다르다.
고등 교육을 받은 ‘선생님’이 아이에게 신발을 신는 법을 가르칠 것도 아니지 않은가?
허나 의뢰인들은 그런 뻔한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해서 그녀는 항상 새로운 의뢰를 받아 그곳에 가면 며칠 동안은 쥐 죽은 듯이 지내면서 그 집안의 분위기를 익히는 편이었다.
자신이 고집을 부리는 것보단 의뢰인에게 맞추는 것이 훨씬 편하다는 걸 오랜 경력을 통해 알게 된 탓이었다.
‘이렇게까지 자유롭게 내버려두는 곳은 처음인데.’
그런데 이곳에선 그럴 필요가 없었다.
솔직히 이곳의 분위기를 익히는 것은 하루면 충분했다.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하루 종일인 것도 아니다.
아이의 부모가 일을 끝내고 밤에 아이를 데리러 와서 밤에 그녀가 할 일이 없었다.
정령도 이렇게 놀아도 되냐면서 걱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휴식에 불만을 표하는 사람이 없었다.
쌍둥이가 태어나면 피곤해질 테니 그때까지 쉬라면서 말이다.
결국 이곳에서 지내고 보름이 넘은 현재.
“내가 이번에 의뢰를 잘 고른 것 같아.”
기어코 정령에게 자신의 속 마음을 털어놨다.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사이였기에 정령이 따스한 바람으로 그녀의 마음을 위로했다.
“정말 편해. 이렇게 편하게 지내도 되는 건지 걱정이 될 정도로.”
이제는 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좋은 사람들이야.”
정령이 사락사락 그녀의 머리카락을 흔들면서 말했다.
“여기에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고? 공기가 안 좋아서 싫다면서.”
의뢰인에 대한 첫인상은 좋았으나 정령은 이 세계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자연이 심각할 정도로 오염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도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탁한 공기가 자연에서 태어난 정령에게 좋은 건 아니었다.
“어쩐지. 처음에는 좀 불편했는데 이후로는 괜찮았거든. 네가 도와주고 있었구나.”
정령이 열심히 자신이 한 일을 자랑했다.
그녀와 착한 의뢰인이 지내는 저택 안의 공기를 깨끗하게 바꿔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부탁한 것이 아닌데도 그녀를 위해 해준 일이었기에 고마움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 네가 좋아하는 간식.”
코인으로밖에 구매할 수 없는 정령용 사탕을 꺼내드니 아이가 깜짝 놀란다.
“괜찮아. 주기로 했던 급여해서 더 추가해서 주신다고 한 거 들었잖아. 이 정도는 사치 부려도 돼. 그동안 제대로 못 챙겨줘서 미안했어. 앞으로는 꼭 빼먹지 않고 챙겨줄게.”
정령은 밥을 먹지 않는다.
그녀를 도와준다고 해서 무언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어릴 적 인연으로 맺게 된 계약으로 그녀가 죽을 때까지 곁에서 함께 지내며 추억을 쌓는 것이 정령이 바라는 모든 것이었다.
그녀에게 바라는 게 없는 만큼, 자신이 정령을 실망시킨다면 소리 소문없이 사라질 수 있는 위험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녀의 정령은 간식조차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할 만큼 어려웠을 때에도 곁을 떠나가지 않았다.
부모님이 버렸을 때도 정령만은 그녀의 곁에서 위로를 해준 것이다.
똑똑똑
“유모님!”
오늘은 주말이어서 그녀가 돌보던 아이들이 각자의 어머니 집으로 가 있는지라 그녀가 할 일이 조금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차원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지라 휴식 할 시간이 생겨도 딱히 할 만한 일이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정령과 소소하게 얘기를 나누는 것 뿐.
그런데 누군가가 그녀가 지내는 방문에 노크를 해왔다.
익숙한 목소리였기에 실은 별 다른 의문 없이 말했다.
“들어오세요.”
“유모님, 쉬고 계시는 중이세요?”
“네. 따로 해야 할 일이 생긴 겁니까?”
“아뇨아뇨! 쉬는 날인데 할 일이 생겼을 리 없죠. 그…혹시 바쁘지 않으시면 저랑 어딜 좀 가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어딜 간다고요?”
“네. 제가 요즘 유모님한테 도움을 정말 많이 받고 있잖아요. 덕분에 몰랐던 것들을 잔뜩 알게 됐어요. 보통 직접 경험하면서 익힌 노하우는 쉽게 얻을 수 없는 지식이잖아요. 그래서 너무 감사한 마음에 선물을 좀 해드리고 싶거든요. 또 여기 지내다 보면 필요한 것들이 있으실 거잖아요. 겸사겸사 그것도 사러 가면 좋을 것 같아서요.”
칸나에게 자신의 지식을 베푼 것은 추가금을 더 얹어주겠다는 의뢰인의 말 때문이었다.
만약 그 말이 없었다면 진짜 노하우를 쉽게 베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칸나씨는 그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제가 칸나씨한테 선뜻 제 노하우를 알려드린 건 계약 때문입니다. 의뢰인께서 제게 추가금을 주기로 했던 겁니다. 그러니 제게 고마움을 표하기보단 의뢰인께 말씀드리는 게 맞습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주인님께는 따로 감사 인사드릴 생각이고요.”
“그런데도 저한테 선물을 해주고 싶다는 말씀이신 겁니까?”
“네. 되게 친절하게 가르쳐주시잖아요. 제가 잘 못 알아듣고 어수룩하게 굴어도 화 한 번 안 내주면서요. 그래서 감사해서 꼭 제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녀는 칸나의 황당한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몰라 선뜻 마음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 오시고 한 번도 바깥에 나가보지 않았잖아요. 구경하고 싶지 않으세요?”
“…….”
사실 정령이 이미 그녀 대신 바깥을 돌아다니며 생생하게 보여주는지라 굳이 나갈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정령은 한동안 바깥을 열심히 돌아다니다가 요즘에는 시들해져서 나가지 않고 있는 참이다.
이곳은 온통 오염으로 가득해서 구경을 해봤자 경악스러운 광경만 보게 된다는 거다.
확실히 그녀가 정령을 통해 본 이곳 사람들의 삶은 굉장히 독특했다.
마법과 정령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면서 마도 문명이 고도로 발전 되어 있는 곳만큼 화려하고 발전 된 차원.
마나가 없기에 몬스터가 없고, 인간이라는 종족이 세계를 자치한 곳.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정령을 통해 충분히 구경할 수 있었기에 빈 시간이 생겨도 나갈 생각을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찾아와 함께 나가자고 하니 솔깃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제가 맛있는 것도 사드릴게요!”
“…괜찮습니다. 함께 가는 걸 바라시는 것 같으니 같이 가도록 하죠. 선물은 해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런 걸 바라고 한 일이 아니니까요.”
선물을 받으면 오히려 부담이 될 것 같았다.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칸나를 겨우 달래고 옷을 빌려서 바깥으로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실은 그녀가 경험하게 될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의뢰인의 메이드들이 평범한 고용인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 ? ?
“여기 이 언니 내 귀빈이니까 최고로 솜씨 좋은 분으로 붙여줘야 해. 알지?”
“예, 물론이죠!”
칸나가 가장 먼저 실을 데리고 간 곳은 마사지샵이었다.
선물을 줄 수 없다면, 다른 방법으로 그녀에게 은혜를 갚으면 되는 일이 아니겠나?
“여긴 뭐하는 곳입니까?”
“요새 일 배운다고 너무 열심히 했더니 얼굴에 뾰루지가 난 거 있죠? 그래서 마사지 좀 하고, 피부 관리까지 받을 거에요.”
“피…부 관리요?”
차원이 다르다 해도 미용에 관련 된 것은 항상 수요가 넘치는 법이다.
때문에 귀부인들이나 귀족 영애들이 받는 피부 관리에 대해 아는 바가 있기는 했다.
더욱이 코인으로 미용에 관련 된 상품들이 많이 있어서 구경을 한 적이 제법 있었다.
물론 그 상품을 직접 구매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언니는 피부 관리 어떻게 해요?”
바깥에 나와서부터는 유모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언니라는 호칭을 쓰기 시작한 칸나.
호칭이 달라져서 인지 한층 살갑게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다.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기에 덤덤하게 받아주고 있었는데, 어째 그녀가 묻는 질문에 답하기가 마땅치 않았다.
“딱히 관리하고 있진 않습니다.”
“아이 참, 언니~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그래.”
“헤헤, 거봐요! 얼마나 좋아요. 근데 관리를 안 한다고요? 그런데도 이렇게 피부가 좋아요? 난 관리 조금만 안 해줘도 피부가 되게 푸석푸석하거든요.”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이게 다 관리를 해서 유지하는 거에요. 그리고 원래 이 정도 급이 아니었는데, 그분께서 사다주신 걸 쓰기 시작하면서 피부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어요. 피부는 돈을 얼마나 쏟아 붓냐에 따라서 천차만별인데, 저 같이 타고 난 게 없는 사람들은 더 많이 관리를 해줘야 해요.”
결론은 타고 난 그녀의 피부가 무척 부럽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타고 났다고 해도 비싼 코인으로 구매한 상품을 쓰고, 이런 전문 샵에서 관리를 받은 칸나보다 피부가 좋을 수는 없었다.
더욱이 그녀는 어릴 때부터 궂은일을 많이 해왔었다.
그녀의 피부는 풋풋했던 어릴 때와 달리 많이 상해 있었고, 상처와 기미 주근깨로 가득했다.
“손님께서는 골격이 굉장히 크시네요. 몸에 근육도 많으시고요. 혹시 괜찮으시면 남자 마사지사를 불러와도 될까요? 제게 받으시면 시원하게 받기 어려우실 것 같아요.”
“남자가 제 몸을 만지게 한다고요? 됐습니다. 차라리 받지 않겠습니다.”
“아이고~ 언니. 다시 누워요. 차라리 한 명 더 불러와요. 그럼 되죠?”
“아…!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인간과 같은 외형이라고 해서 그녀가 이 차원 사람들과 같은 종족인 건 아니었고, 그로인해 마사지를 받을 때 다소 소란이 있었지만 다행이 빠르게 수습 됐다.
생전 처음 마사지를 받아 본 실은 노곤노곤하게 풀린 몸을 무척이나 어색했다.
정령은 그녀의 근처를 기웃거리면서 괜찮은지 묻고 있었다.
‘괜찮아. 아니, 몸이 이렇게 시원한 건 처음인 것 같아.’
마사지가 끝나자 얼굴에 무언가를 치덕치덕 바르기 시작한다.
시원하면서도 미묘한 감촉이 적응 되지 않아 손가락을 악기 연주하듯이 움직이면서 견뎌냈다.
“와~ 언니. 한 10년은 젊어진 것 같아요. 원래도 예뻤는데, 관리까지 하니까 장난 아니다.”
피부 관리와 마사지까지 모두 마치고 난 후.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한 실은 차마 칸나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이게 나?’
10년은 오버일지 몰라도 한 3년은 젊어진 것 같은 자신의 얼굴이 거울에 비춰지고 있었다.
“자자! 이제 다음 코스로 가요!”
일정이 다 끝난 줄 알았던 실의 팔짱을 칸나가 잡아챘다.
“어, 어딜 가는 겁니까?”
“피부 관리 받았으니까 이제 헤어를 할 차례죠. 지금 스타일도 나쁘지 않긴 한데, 전문가 손길이 닿으면 더 예쁠 거에요.”
돈을 쓰면 예뻐진다!
이 사실을 직접 확인한 칸나는 거칠 것이 없었다.
가진 거라곤 젊음과 돈밖에 없는 그녀이지 않은가?
이를 모르는 실은 칸나의 폭주에 휘말려 질질 끌려가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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