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86화 (486/849)

〈 486화 〉 #72. 유모 (5)

* * *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헤헤, 예쁘죠?”

“응. 실 유모님, 아름다우십니다.”

“…감사합니다.”

쑥스러운지 유모님이 고개를 숙이셨다.

그녀의 근처에서 싱그러운 바람이 불고 있었기에 기분이 좋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칸나에게 몰래 엄지를 들어주었다.

칸나는 방실방실 웃으면서 턱을 치켜들었다.

‘실 유모님을 잘 따르기에 한 번 부추겨봤더니 이렇게 잘 해낼 줄 몰랐네.’

휴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깥에 나간다거나 제대로 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그녀를 보며 아직도 그녀가 이곳에 적응하지 못했음을 알았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인 만큼, 이곳에 소속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친분만큼 최고의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정화씨에게는 마음을 좀 푸는 것 같긴 했는데, 자기 몸 관리하기도 벅찬 그녀에게 일을 부탁할 순 없었다.

그래서 칸나를 슬쩍 부추겼다.

‘유모님이 휴일인데 영 바깥을 안 나가시네. 아무래도 외계인이다 보니 여기 문화를 몰라서 그러시는 거 아닐까?’

‘!!!!!!!’

칸나는 미처 그 부분을 생각하지 못했었는지 내 말을 듣고 굉장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리고 내게 양해를 구하고 그녀의 방으로 쪼르르 달려가선 함께 바깥으로 나가더니 저렇게 사람을 완전 변신시켜서 등장했다.

머리도 바꾸고, 피부도 번들번들한 것이 전문가에게 화장을 받은 모양이었다.

거기에 칸나의 옷을 입고 있으니….

‘저 모습을 보고 외계인이라고 누가 믿겠어.’

그나저나 칸나가 저 유모님을 데리고 뭘 하고 왔을지 궁금해진다.

다행스럽게도 칸나는 자신이 오늘 한 일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자랑하면 자랑했지.

“짜잔! 언니랑 사진 찍은 거에요.”

“사진을 찍었어?”

“네! 맛있는 것도 먹고, 마침 괜찮은 작가 사진전이 열려서 거기도 다녀왔어요. 언니가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우리 차원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그녀이니 사진전을 보는 건 꽤 괜찮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사진을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이곳을 알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한 거야?”

“흠흠.”

실 유모님이 멋쩍은지 헛기침을 한다.

칸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랑스레 말했다.

“바깥에서 유모님이라고 부르기가 뭐해서 호칭을 바꾸게 됐어요. 언니라고 부르니까 뭔가 더 친근해진 것 같고 그렇더라고요. 진작 호칭을 정리할 걸 그랬어요.”

“잘했어. 유모님도 칸나랑 놀아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호칭만큼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 없는 만큼, 언니라는 한층 더 친근한 호칭으로 부르게 된 것은 잘 된 일이었다.

특히 칸나는 유모님과 가장 오랫동안 함께 지내야 하는 사람이다.

친해져서 손해 볼 관계는 아니었다.

“아닙니다. 오늘 칸나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칸나랑 자주 놀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얘가 딱히 친구가 없거든요.”

“아앗! 주인님! 그걸 말해버리시면 어떡해요!”

“괜찮습니다. 저도 생각해보니 친구라고 부를 존재가 딱히 없습니다.”

실 유모님의 배려심 깊은 위로의 말에 칸나가 감동을 받는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는 건데, 앞으로 자주 칸나랑 놀아주세요. 바깥에 나가서 능력만 쓰지 않으시면 큰 문제없을 겁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랑 일이 생기면 그땐 이 번호로 연락을 주시면 되고요. 웬만한 일은 문제없이 해결 할 수 있는 친구입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칸나가 친구가 없다는 핑계로 바깥에 데리고 나가는 것만으로는 완벽한 변명이 되지 못했던 모양이다.

실 유모님은 이미 내가 했던 일을 꿰뚫어 봤는지 다 알고 있는 기색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천연덕스럽게 모르는 척 했다.

유모님은 크게 마음 상하지는 않았는지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띄웠다.

밖을 돌아다니느라 피곤했을 유모님이 먼저 방으로 들어가고.

칸나가 내 팔에 팔짱을 끼면서 물었다.

“주인님, 혹시 유모님한테 마음 있으세요?”

“전혀 아닌데. 그렇게 보였어?”

“되게 정중하게 대하시고,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것 같아서요.”

“유모님이 다루는 정령이라는 능력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게 없잖아. 그 능력으로 뭘 할 수 있는지 아는 게 없는데 어떻게 함부로 대하겠어? 그리고 우리 아이들 맡기는 사람인데, 더 정중하게 대우를 해드려야지. 그래야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애정 있게 봐주시지 않겠어?”

“그럼 저는여?”

“칸나 네가 왜?”

“저도요! 저도 그렇게 해주세요!”

유모님을 롤모델로 삼은 칸나가 꽤나 앙큼한 소원을 바래온다.

나는 칸나의 머리에 손을 얹고 일부러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꺄악! 이거 미용실에서 만진 머린데!”

“어차피 이제 옷 갈아입고 씻을 거잖아.”

“으이잉! 오늘 예쁘게 꾸며서 주인님 침대에 들어가려고 했단 말이에요! 마사지도 받아서 몸이 부드럽게 풀려서 기분 좋으실 걸요?”

앙큼한 소원을 바라는 것도 부족해서 앙큼한 목표까지 갖고 있었다.

“어이구~ 그것도 모르고 내가 머리를 망쳐버렸네.”

“너무해요오!”

칸나가 울상을 지어서 어쩔 수 없이 손가락으로 어설프게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를 빗어냈다.

“그래도 예쁘니까 걱정하지 마. 오늘 기특한 일 많이 했으니까 잔뜩 칭찬해줄게.”

“!!”

내가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니 칸나의 귀가 붉어졌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그녀의 엉덩이에 손을 턱하니 얹고 조물조물 주물렀다.

싫은 기색도 없이 얌전히 내 손에 잡혀 엉덩이가 주물러지는 걸 즐긴(?) 칸나가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며 후다닥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 밤은 칸나 덕분에 화끈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내가 실 유모님의 적응을 돕느라 바빴을 사이.

다큐멘터리가 방영이 됐다.

우리들이 메인으로 나온 게 아니라서 나온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시청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 꽤 임팩트 있게 나왔다고 볼 수 있었다.

드라마나 예능 포맷에 관련 된 내용도 나오고, 점차 세계에 진출하기 시작하는 한식에 관련 된 내용도 있었으며, 뷰티에 관련 된 내용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었던 비보이 관련 분야도 나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청을 했던 것 같다.

이 모든 것들이 꽤 흥미로운 소재인 건 사실이었지만, 단연코 우리가 나오는 촬영 분 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다.

콘서트를 보기 위해 모여든 엄청난 인파와 길게 늘어선 줄.

우리들의 노래를 부르고, 우리 이름을 연호하며 서슴없이 사랑을 고백하는 팬들.

거기다 에어플레인을 사랑하기에 그들의 나라까지 관심을 갖고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팬의 인터뷰까지.

그건 다른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다큐멘터리가 방영 되고 난 이후 우리에 대한 기사가 꽤 많이 올라왔다.

우리가 해외에서 잘 나간다는 건 들었지만, 이 정도로 잘 나가고 있을 줄은 몰랐던 사람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사실 관심이 없었던 거겠지.’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아이돌을 싫어하거나 무관심해 한다.

[은규 ­ 새삼스럽게 엄청 관심을 주니까 살짝 부담이긴 해. 날 알아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어.]

[나 – 넌 전국일주하고 있어서 더 그렇겠네.]

은규는 휴가를 받은 현재 뜬금없이 전국일주를 하고 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오래 전부터 계획을 해놓은 일이라는데, 걸어서나 자전거를 타고 전국일주를 하는 게 아니라 렌터카를 빌려서 꽤나 호화스럽게 전국일주를 하고 있었다.

에어플레인 단체톡방에 전국일주를 하며 찍은 사진을 자주 올려줘서 뭘하고 다니는지 멤버들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경태 – 야 나처럼 이렇게 하고 다니면 아무도 말 안 걸어.]

그렇게 채팅을 보내오더니 경태 형이 사진 하나를 찍어서 보내온다.

“푸하하하!”

[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연 – 형 왜 그러고 다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골 아주머니들이 입고 다니는 화려한 꽃무늬의 몸빼 바지.

그리고 얼굴에는 보자기를 두르고, 머리에는 썬캡을 쓴 모습.

[나 – 형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농사꾼 됐어?]

[경태 – 하, 말도 마라. 우리 할머니가 농사를 좀 크게 지으시거든. 엄마가 이번에 꼭 나 데리고 가서 자랑할 거라고 끌고 왔어. 첫날에는 오냐오냐 애지중지 하셨는데 둘째 날부터 일꾼으로 다 시키신다. 나 하루 종일 복숭아 따고 있어.]

이야~ 복숭아 농사를 지으시는구나.

[제키 – 효도하고 있네. ㅊㅋ]

[우연 – 제키 형!!! 형은 도대체 뭐하고 있어요? 저 형은 왜 목격담도 안 뜨지?]

[제키 – 내가 뭘 하는지 왜 궁금한 건데?]

[우연 – 다른 멤버들은 뭐하는지 다 아는데 혼자만 안 알려주니까요!!]

남은규는 전국 일주를, 경태 형은 농사를, 우연이는 부모님과 해외여행 다니면서 맛집 투어를 하고 있고, 강준은 집에서 쉬다가 요즘은 슬슬 연기 연습을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정말 멤버들 중에 어디서 뭐하는지 모르는 건 제키밖에 없었다.

[은규 – 맞아맞아. 왜 안 알려줘? 우리가 귀찮아?]

[제키 – 응 귀찮아.]

매정한 말을 써놓고 제키가 떠나버렸다!

멤버들이 아우성대면서 농성을 해봤으나 제키에겐 씨알도 안 먹히는 행동이었다.

오랜만에 연락한 멤버들은 그렇게 한참 메시지와 사진을 주고받으며 서로 뭐하고 지냈는지를 공유했다.

‘솔직히 이런 부분은 아직도 어색해.’

남자들끼리 휴가 때 뭐했는지 사진을 주고받으면서 수다를 떤다니.

개인적으로 내게 익숙한 태도는 제키였다.

사내 놈이 휴가 때 뭐하고 지냈는지 알바인가?

굳이 물어봐서 기억 속에 넣어둘 만큼 가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물론 팬들은 멤버들끼리 사이좋은 모습을 보면 좋아하겠지.’

우리끼리 묶어서 알페스인지 뭔지를 한다는데, 현실에서는 단 0.1%도 가능성 없는 일이었다.

물론 애들 중에 우연이 같은 경우는 뭐랄까 앵긴다고나 할까? 그런 경향이 있는데, 그 정도는 아들 같은 동생이니 그럭저럭 받아줄 수 있지만 다른 놈이 우연이처럼 앵긴다고 생각하면 닭살부터 우수수 돋아난다.

아이돌로 먹고 살려면 사내 놈들의 접촉을 견딜 줄 알아야 했는데, 그나마 익숙해진 것이 우연이와의 접촉이었다.

[경태 – 다들 휴가 끝나고 뭐하기로 했어? 나 이번에 경연 프로그램 멘토로 출연하게 될 것 같아.]

[나 – 경연 프로그램?! 프로그램 이름이 뭐야?]

[우연 – 헉!!!!! 혹시 스타 아이돌?!]

[경태 – 뭐야, 우연이 어캐 앎?]

[우연 – 대박대박! 짱이에요, 형!]

스타 아이돌?

아이돌 뽑은 프로그램인가?

우연이가 알고 있는 걸 보면 꽤 이름 있는 프로그램 같았다.

[나 – 멘토로 나가는 거면 부담이 좀 덜해서 괜찮긴 하겠다.]

[경태 – 사실 거절할까 고민 많이 했어.]

[은규 – 왜 거절을 해? 엄청 좋은 기회 같은데.]

[준 – 우리 이제 멘토로 나가는 짬이구나. 새삼 감회가 새롭네.]

그러게.

슬슬 음악 프로에 나가면 선배님들보다 후배들이 우리에게 인사를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직도 내 기억 속에는 선배님들 대기실로 인사 드리러 다녔던 게 생생한데 말이다.

이제 어딜 나가도 선배님을 뵙는 것보다 후배들을 만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우리도 짬이라는 게 찬 것이다.

20대 초반에 데뷔해서 이제 나이가 중반을 넘어가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생활한 게 10년도 안 되는데, 30년이 넘도록 살았던 거기보다 이뤄놓은 게 훨씬 많네.’

나보다 더 감회가 새로운 사람이 있을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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