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7화 〉 #72. 유모 (6)
* * *
‘심심하다!’
내가 집에서 뒹굴거리는 이유 중 하나인 정화씨는 유모님과 칸나가 데려가서 뭘 하고 있는지 깜깜 무소식이었다.
임산부에게 좋은 운동을 가르칠 거라고 하는데, 과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정화씨의 산달이 정말 멀지 않았다.
그리고 슬슬 멤버들이 활동에 시동을 걸기 시작하자 팬들이 나에 대한 소식을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다른 멤들은 활동 시작했는데 왜 우리 해솔이 소식은 없음?
경태는 스타 아이돌 멘토로 나온대!! 해솔이도 거기 같이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 애들 실력으로 빠지지 않잖아.
스타 아이돌 여자편 아님? 괜히 경태 거기 나갔다가 여우들이 꼬리쳐서 넘어가는 거 아냐?
ㄴㄴ 남자 편이라고 들음.
남자편이라고!? 언제 시작함? 생방은 없나?
아니!! 그래서 우리 해솔이는 뭐하냐고!!!
“나 뭐하냐고?”
쉬고 있지.
소파에 누워서 뒹굴뒹굴거리면서.
그동안 너무 열심히 일했더니 백수로 한 번 돌아가니 움직이고 싶지가 않더라고.
“날 찾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네. 흐.”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뿌듯하고 기분 좋다.
요즘 들어 부쩍 소속사 쪽에서 부지런히 연락을 해온다 싶더니 이런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팬들은 내가 활동을 안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못’ 하고 있을 거라고 지레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여태까지 휴식을 최소화 하고 열심히 활동한 만큼 부지런한 그룹으로 이미지가 잡혀 있어서 그럴 것이다.
‘내가 보고 싶어도 좀 참아요.’
이번에는 꼭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곁에서 지켜줄 생각이었다.
팬들은 왜 활동을 안 시키냐며 소속사에 따지는 것 같은데, 애석하게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소속사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허니 엔터가 팬들의 투정을 듣고 우리 스케줄을 강요하는 어리숙한 회사가 아니다.
당분간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해놓은 상황인데 억지로 일을 시킬 리가 없었다.
실제로 지금도 팬이 항의하고 있다는 소릴 하지 않고, 안부 묻듯이 전화해서 넌지시 제안하는 정도로만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더욱이 재계약을 앞둔 지금과 같은 예민한 상황에서 말이다.
그렇게 나름 열심히 쟁취해서 얻은 시간이었는데….
“훨씬 편해졌어. 고마워.”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나는 방 안에서 들려오는 화기애애한 목소리를 들으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여자들끼리 너무 잘 지내고 있다.
내가 필요 없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 유모님이 추가로 들어오면서 내가 하려고 했던 역할을 그녀가 모두 차지해버렸다.
오히려 내가 했을 때보다 더 편해하고 있으니 역할을 뺏겼다고 봐도 될 것이다.
‘정화씨가 편하다면 내가 좀 서운해도 어쩔 수 없지.’
특히 정화씨가 유모님의 손길에 생활이 엄청나게 편해해서 서운함을 겉으로 드러낼 수도 없었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내가 괜히 서운하다고 투정을 부리면 정화씨 마음이 어떻겠는가?
쌍둥이의 무게를 감당하면서 생활을 해야 하는 정화씨가 정령의 도움을 받아 한결 편하게 생활하고 있는 중이었다.
괜히 철없게 내 감정 알아달라고 해서 정화씨를 신경 쓰게 할 순 없었다.
쌍둥이를 임신해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찬 그녀이다.
“흠.”
하지만 어쩐지 백수가 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휴식을 취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만, 평소 그렇게 살아보질 못해서 그런지 자꾸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몸은 벌써 편한 백수 생활에 익숙해져서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 이성이 따라주지 않으니….
이렇게 멍 때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뭔가 생산성 있는 일을 할 순 없을까 고민을 하게 된다.
‘태어날 쌍둥이를 위해서 놀이터라도 만들어줄까?’
태양이도 그렇고 지현이와 현오도 놀이터를 만들어주면 참 좋아할 것이다.
이제 친구들도 사귀게 될 테고, 위험한 바깥을 돌아다니며 놀기보단 안전한 곳에 마련되어 있는 놀이 공간에서 노는 게 훨씬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을 만드는 것은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에 마땅한 공간이….’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들 놀이터로 만들 공간은 충분한 것 같았다.
멜리사와 비앙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도 우리가 이곳에 저택을 마련하고 살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에 다른 집들도 하나 둘 지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땅값도 많이 올라갔는데, 애초에 이곳에 우리 집을 지은 이유가 투자 가치가 있어서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여기가 아직 개발이 안 돼서 그렇지, 교통이 편리하고 낙후 된 건물들이 많아서 개발하기 딱 좋은 지역으로 보이긴 했다.
저택을 지은 후에도 꾸준히 주변 땅을 매입해뒀던 게 도움이 돼서 꽤 넓은 공간을 사유지로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놀이터 같은 곳을 넘어서 놀이기구를 잔뜩 만들어놔도 크게 무리가 없을 만큼의 공간이 있는 것이다.
‘정화씨한테 물어봐야지!’
애들이 놀이공간을 선물 받으면 엄청 좋아할 게 눈에 선했기에 벌써부터 의욕이 넘쳐났다.
때마침 정화씨가 유모님과 함께 방에서 나왔다.
“몸은 좀 어때요?”
“응~ 너무 좋아.”
확실히 얼굴색만 봐도 정화씨가 한결 편해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고생하셨어요. 유모님.”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밥부터 먹죠. 벌써 점심시간이에요.”
정화씨가 먹고 싶어 하던 걸 미리 요리해주시는 분이 전달 받고 해놓은 상황이다.
유모님도 이제 우리 집에 많이 익숙해져서 함께 밥을 먹는 것을 어색해 하지 않았다.
“오늘은 매콤한 아구해물찜이에요. 정화씨는 여기 이걸로 먹으면 된대요.”
“이걸 정말 준비한 거야? 아이한테 안 좋을 텐데….”
“아무리 아이가 중요해도 먹고 싶은 건 먹고 살아야죠! 참기만 하면 병 나요. 그리고 정화씨가 걱정을 많이 해서 일부러 따로 준비했잖아요. 덜 매운 아구 해물찜으로.”
임신했을 때 매운 건 좋지 않아서 요리사분이 적당하게 맵기를 조절해서 아구해물찜을 만들어주셨다.
우리가 먹을 건 해물찜을 먹고 싶어서 자면서 잠꼬대까지 하면서도 직접적으로 먹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는 정화씨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요리였다.
거기다가.
“그리고 아구해물찜 먹기 전에 이걸 드시면 문제없을 거에요.”
“약이잖니. 약은 먹으면 안 될 텐데?”
“제가 그런 걸 가져왔겠어요?”
“또 거기서 구매한 거야?”
“네.”
“정말 괜찮은데. 그리고 이건 아무래도 알약이라서 먹기가 좀….”
임신했을 때 함부로 약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녀인지라 아무리 내가 줬다고 해도 선뜻 먹고 싶지 않은 듯 했다.
“전부 알아보고 구매한 거에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알고 있는 약입니다. 산모가 섭취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입덧을 막아주고, 아이에게 해가 되는 영양분을 막아주는 기능을 합니다. 임산부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약이 아닙니다.”
“정말 실이 알고 있는 약이야?”
“예. 제가 유모로 일하면서 임신을 한 부인께서 섭취하신 걸 많이 봤습니다.”
“그렇다면….”
“부인께서 드셔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겁니다. 오히려 태아에게 좋을 겁니다. 좋지 않은 영향분은 막고, 좋은 영양분만 섭취하게 될 테니까요.”
좋은 영양분을 듬뿍 먹고 자라면 훨씬 건강하게 태어날 거라는 부가 설명을 들으니 정화씨도 더 이상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살짝 맛만 봐볼까…?”
정화씨가 침을 꼴깍 삼키면서 알약을 먹었다.
내가 건네주는 물로 깔끔하게 알약을 섭취한 정화씨의 시선이 매콤하게 잘 만들어진 아구해물찜에 꽂혔다.
임신을 했을 때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어야 하는데, 아이를 위해 참느라 얼마나 고생이었겠는가?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는 판이 깔리자 정화씨가 본격적으로 먹부림을 시작했다.
오늘 아구해물찜을 먹을 때 가장 의외였던 것은 실 유모님이 매운 걸 서슴없이 즐기며 먹었다는 점이다.
“고향 음식들이 매운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매운 맛에는 익숙합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다만 해물은 자주 접할 수 없던 음식이라 낯설어서 선호하지 않는 맛이었는데, 이렇게 양념에 넣어서 조리해 먹으니 맛있네요.”
유모님도 만족하고, 정화씨도 매우 만족한 식사가 끝나고.
나는 오늘 혼자서 멍 때리다가 생각난 아이디어를 그들과 공유했다.
“아이들 놀이터를 집에다가?”
“다른 곳에서 놀라고 내버려두기에는 너무 위험하잖아요. 집 안에서 놀게 하면 안전에 대한 위험성이 훨씬 적어지지 않겠어요? 우리가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땅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요.”
“놀이터를 만드는 건 나쁘지 않은데, 스케일이 너무 커질까봐 걱정이 돼서.”
“일단 쌍둥이가 태어나면 이후에 빠르게 공사할 거에요. 정화씨가 산후조리하고 나오면 놀이터가 다 지어져 있을 정도로만 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한참 흥분해서 어떤 걸 만들어서 놀이터에 넣을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돌연 정화씨가 날 보며 풋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왜 그래요?”
전혀 웃긴 얘기가 아닌데 빵 터진 것이 의아해 물어봤다.
“눈이 반짝거려서. 해솔이 너 초반에는 좀 괜찮다가 요즘 눈빛이 완전 죽은 거 알고 있었니?”
“제가 그랬어요? 아닌데….”
“네가 일하러 다닐 때는 안 그랬거든. 피곤하다고 해도 항상 눈이 반짝반짝 빛났었어. 그런데 쉬기 시작한지 한 이주에서 삼주 정도 됐나? 그때부터 점점 눈빛이 죽기 시작하더라고.”
“아니에요! 그냥 할 일이 딱히 없어서 멍 때린 건데….”
정화씨가 날 그렇게 보고 있을 줄 몰랐기에 당황스러웠다.
“네가 내 옆에 있는 걸 싫어한다고 오해한 게 아니야. 네가 하고 있는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됐을 뿐이야. 쌍둥이 낳을 때까지 곁에 있을 거라고 워낙 단호하게 말해서 뭐라고 하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네가 심심해 하는 걸 보는 게 편치 않더라.”
“전 정화씨랑 같이 있는 거 정말 좋아요. 하나도 안 심심해요.”
“근데 나랑 24시간 붙어 있는 게 아니잖니.”
실 유모님이 우리 집에 오게 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사라진 건 어쩔 수 없는 진실.
그렇다고 내가 할 일이 없으니 서툰 손으로 그녀를 돌보겠다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가 훨씬 편해하는 게 보이는데 본말전도를 저지를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생긴 지루함을 정화씨는 다 꿰뚫어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주아도 슬슬 가벼운 스케줄은 받고 있잖니. 나도 네가 해외에 나가서 일하는 건 싫어. 근데 하루나 이틀 정도 잠깐 시간을 써서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보다시피 네가 없어도 나는 정말 편하게 지내고 있으니까.”
정화씨가 내 손을 다정하게 잡아왔다.
“내가 서운해 할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줘. 내가 편할 수 있는 건 칸나랑 실이 나 대신 일을 해주고 날 돌봐줘서니까.”
그리고 칸나와 실이 정화씨를 돕는 이유는 나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한 일이라고 봐도 되는 일인 것이다.
“제가 여태까지 아이 낳을 때 곁에 있어준 경험이 없잖아요. 그래서 꼭 정화씨만큼은 곁에서 돌봐주고 싶었어요.”
“네 마음을 어떻게 모를 수 있겠니? 이렇게 나를 사랑해주는데. 항상 고맙고 감사하고 있어.”
정화씨가 내 볼을 다정하게 쓰다듬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도 네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는 건 싫어. 계속 같이 있어 버릇하니까 네가 없으면 허전할 것 같아. 대신 잠깐잠깐씩 일을 하고 다니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너는 아닌 척 굴지만, 사실 일하는 거 좋아하잖니.”
내가 아이돌로 일하는 걸 좋아한다고?
확실히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하다.
30년 넘게 살면서 내가 아이돌이 될 거라고 상상조차 못했던 나인데도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는 게 무척 즐거웠다.
포니와 계약할 때 아이돌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게 몇 번인가?
과거에는 아이돌 안 해도 상관없다! 라고 말하고 다녔으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마음이 다른 것처럼 이미 내 마음도 변해버린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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