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9화 〉 #73. 우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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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되어보는 게 끌리지 않는다면 다른 직업들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거에요. 요리사가 된다거나 호텔리어가 된다거나. 좀 스케일을 크게 들어가 보면….”
작가가 쏟아내는 아이디어를 듣다 보니 평소에도 이런 아이디어들을 잔뜩 생각하고 머릿속에 넣어두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운을 떼자마자 이렇게까지 여러 말들을 쏟아내지 못했을 거다.
“한 번도 생각 못해본 것들이 많네요. 근데 제법 솔깃한 것 같기도 해요.”
“제가 말한 것 중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있으셨나요?”
“어…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음, 몇 가지 생각나는 게 있다면 단편 영화 제작이요. 제가 연기를 해봐서 그런지 그쪽에 관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거든요.”
만약 사정이 된다면 이후 내 개인 활동은 연화정 감독님의 작품이 될 수 있다.
대단한
“단편 영화 제작! 좋죠! 그것도 너무 좋죠! 우리 윤아씨도 연기 좀 하는 거 알죠?”
“하하! 알죠.”
홍윤아 선배님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연기를 하셨던 걸 기억한다.
웬만한 배우보다 더 다양한 역할로 연기를 해보셨을 거다.
로맨스도 해보고, 코믹과 액션도 빠지지 않고 해본 경험자였다.
솔직히 나와 비교하면 엄청난 경력직의 선배님이신 것이다.
‘진짜 그걸 어떻게 다 하셨지? 대단한 분이야.’
연기 실력이 대단한 건 아니지만, 시청자들이 보기에 불편함을 느낄 정도가 아니니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제가 단편 영화에 출연하는 건 별로 관심이 없어요. 도전도 아닐 거고요. 저는 제작진으로 단편 영화 제작에 한 손 얹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미술 쪽 스탭으로 일하면 재밌을 것 같거든요.”
“미술에 재능이 있으셨어요?! 어머어머, 너무 재밌겠다. 다른 건 해보고 싶으신 거 없으세요?”
제작진은 나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싶은지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쉬지 않고 쏟아지는 질문들에 허겁지겁 대답하면서도 이들의 열정이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제작진이 있으니 프로그램도 재미를 유지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도 기왕 출연하기로 한 거 적극적으로 협조하자는 생각이 들어서 열심히 대답을 했다.
“저희가 그럼 오늘 미팅을 중심으로 재밌게 꾸며볼게요! 기대해주세요.”
“네.”
미팅이 끝나고 며칠 후.
나는 두 번째 미팅을 위해 다시 방송국을 찾았다.
두 번째 미팅에서는 홍윤아 선배님과 PD님이 함께 참석을 한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어~ 진해솔이! 이야~ 넌 여전히 반짝반짝하구나.”
“어서와요, 해솔씨.”
“하하, 잘 지내셨어요?”
“그래그래. 잘 지냈지. 미팅 한 번 했다면서? 네가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내줘서 작가들이 엄청 좋아했다더라. 이쪽은 정미연 작가 임고은 PD 그리고 이쪽은 이현주.”
“안녕하세요.”
“호호호, 오늘도 참 잘생기셨어요.”
“나도 얘 실물 처음 봤을 때 진짜 깜짝 놀랐잖아. 너무 잘 생겨서. 사람이 맞나 싶더라니까?”
홍윤아 선배님은 나와 만나자마자 주변 사람들에게 내 칭찬을 쏟아냈다.
항상 사람의 좋은 점만 봐주시는 분인지라 홍윤아 선배님의 쏟아지는 칭찬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면서 나도 칭찬을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선배님 앞에서 칭찬을 받으려니까 부끄럽네요.”
“아유~ 우리 애가 이렇게 겸손하기까지 하다니까. 내가 인정하는 친구야. 성격이 참 예의 바르고 좋다니까.”
“에어플레인 멤버들 전부 예의 바르고 착하다고 들었어요.”
“아! 그런 얘기가 있었나요?”
“원래 방송국이 이런저런 소문이 잘 퍼지잖아요.”
안 뗀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데, 불 뗀 굴뚝에서 나는 연기는 오죽할까?
작가와 피디님이 흐뭇하게 날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개인 활동이라서 그런지 어색하고 서툰 점이 많아요. 실수하면 따끔하게 혼내주시고, 그래도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아유! 저희가 어떻게 해솔씨를 미워하겠어요.”
“맞아요, 긴장하지 마시고 편하게 하세요. 우리 무서운 사람들 아니랍니다. 호호호!”
그렇게 화기애애한 신변잡기가 끝나고.
“그럼 이제 슬슬 미팅 시작해볼까요?”
“좋지. 그래서 이번엔 또 뭘 시킬 거야? 해솔이 너무 고생시키면 안 돼. 얘 팬이 몇 명인지 알고 있지? 조심해야 된다.”
홍윤아 선배님의 입담도 서서히 모터가 돌아가듯 열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너스레를 떨면서 분위기를 단숨에 사로잡는 선배님을 보니 절로 마음이 든든해진다.
사실 미팅실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보였던 게 카메라였다.
아무래도 우리가 사전미팅을 하는 모습도 TV에 방영할 생각인 듯했다.
해서 아까부터 긴장을 놓지 않고 있었다.
카메라에 빨간불이 언제 들어올지 몰랐으니 말이다.
“그렇게 겁주지 않아도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그래? 한 번 말해봐.”
홍윤아 선배님이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채로 의자에 등을 기댄다.
삐딱하고 거만한 태도였지만 특유의 장난스러운 움직임에 누구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이번에 홍윤아님이 게스트인 진해솔님과 해볼 프로젝트는 프로듀싱 뮤직스타! 에요.”
“프로듀싱 뮤직스타? 그게 뭐야?”
“사실 단편 영화 제작기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쪽이 더 좋을 것 같아서 기획을 바꿨죠. 저희가 알기로 진해솔씨가 작곡에 재능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해솔씨가 작곡하거나 다른 작곡가 곡을 섭외해서든 곡 하나를 만들고, 그 곡에 어울리는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거에요.”
“뮤직비디오?? 와~ 요새 뮤비 찍는데 돈 많이 들지 않아?”
“최종 목표는 뮤비를 유티비에 올려서 목표 조회수를 달성하면 조회수에서 0하나를 더 붙인 금액을 기부하는 겁니다.”
“뮤직비디오 제작에 기부까지 한다고? 너희 괜찮겠어? 얘 진해솔이야. 진해솔. 500만은 기본일 거고 1000만 조회수도 나올 수 있어.”
조회수 1000만이 나오면 거기에 0을 더한 금액이 무려 1억이 된다.
“그래서 저희가 최대 금액을 정해놨어요. 목표는 300만이고요. 최대 1000만까지.”
“최대 천만?! 너희 돈 많구나?”
“저희가 돈이 어딨어요! 당연히 해솔씨가 출연해주시니까 가능한 금액인 거죠. 벌써 방송가에 소문 쫙 났어요. 해솔씨 우리 프로그램에 출연하다고.”
“광고 많이 들어왔니?”
홍윤아 선배님의 말에 피디님이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린다.
“장난 아니게 들어왔죠. 전부 해솔씨가 복덩이라서 그런 거고요. 고마워요~ 우리 프로그램에 귀한 분을 모실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아닙니다. 제가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그리고 저야말로 출연시켜주셔서 감사한 걸요.”
이후로 몇 번 더 티카타카를 하며 분량을 뽑고, 적당히 뽑았다 싶었을 때 홍윤아 선배님이 말했다.
“그럼 나는 가수인 거야? 해솔이는 뮤비 감독이고?”
“네, 해솔씨가 미술에도 감각이 있다고 들었어요. 실제로 직접 그림을 그리시는 것도 유티비를 통해서 봤고요.”
“너 그림도 잘 그리니?”
“아…조금요?”
굳이 빼지 않고 사실을 말하니 홍윤아 선배님이 대단하다며 박수를 치셨다.
사실 단편 영화가 아니라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거라면 내 입장에서 환영해야 할 일이었다.
뮤직비디오가 단편 영화를 제작하는 것보다 훨씬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제일 좋은 건 시간이 훨씬 덜 들 거라는 점이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장기 프로젝트는 부담이 된다는 말을 해서 배려를 해준 건가?’
뭐가 됐든 작가들이 아이디어를 잘 짰다 싶다.
거부할 이유가 없는 기획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그게 표정에 티가 났는지 홍윤아 선배님이 말했다.
“얘 되게 마음에 들었나본데? 표정이 활짝 폈어.”
“하하하! 정말 마음에 들어요?”
“네…하하, 사실 벌써 기대 돼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어요. 뮤비 촬영이라면 저한테 아예 낯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직접 뮤비를 제작하는 입장이니까 익숙한 것도 아니고요.”
대학교 생활을 다시 하는 거나 단편 영화를 찍는 것보다 뮤직비디오 촬영하는 게 훨씬 낫다는 결론이 나왔다.
애초에 이 컨텐츠를 짜왔을 작가님들이 모든 조건들을 고려해서 결정한 컨텐츠에 부정적인 의견을 낼 생각도 없었다.
“마음에 드신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네요.”
“제가 뮤비 감독님이 되는 거죠?”
“네. 가수는 윤아 언니가 되는 거고요. 실력이 마음에 차는 수준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영 그른 실력은 또 아니거든요.”
“아니, 내가 뭐 어때서! 나 1위도 찍어본 적 있는 가수거든?”
실제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 홍윤아 선배님은 차트 1위를 찍어 본 적이 많았다.
다만 그게 실력이 좋아서라기보다는 홍윤아 선배님 자체가 대중의 픽이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가 아무 곡이나 받아서 만든 게 아니다 보니 곡이 좋기도 했다.
‘홍윤아 선배님만큼의 인지도를 가진 사람이 보통 이상의 곡을 부른다? 그럼 게임 끝이지.’
더욱이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곡을 만든 거라서 굳이 홍보를 따로 할 필요도 없었다.
“보다시피 어려우실 겁니다. 아마 깜짝 놀랄 거에요. 왜 이걸 못하지? 하면서요. 그래도 잘 다독여주시면서 가르치셔야 합니다.”
“제가 감히 선배님한테 뭐라고 할 수 있나요. 그냥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리겠다는 말만 하겠습니다.”
“역시 우리 해솔이가 참 예의가 바르고 참하다니깐. 그나저나 목 좀 관리 해줘야겠네. 내가 요근래 말을 많이 했더니 목 컨디션이 별로거든.”
“제가 목에 좋은 걸로 좀 챙겨드릴게요.”
“뭐 받으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이제 제 가수가 되실 거니까요. 제가 챙겨야죠.”
“하하하! 벌써부터?”
홍윤아 선배님이 내 의욕적인 태도가 예뻐보였는지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드려주셨다.
“목 관리도 해야겠지만, 춤 연습도 빡세게 해야 하는 거 아시죠? 요즘 뮤비는 연기도 해야 하지만, 춤도 중요해요.”
“춤이면 내가 빠지지 않지!”
“윤아 선배님은 타고난 끼가 있으셔서 금방 잘 하실 거에요. 벌써부터 기대 되네요.”
어떤 뮤직비디오를 제작할지 벌써부터 여러 가지 컨셉들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주인공은 홍윤아 선배님이니 곡도 그렇고, 뮤직비디오도 그녀에게 어울리는 스타일로 만들어야 했다.
“아! 선배님, 혹시 선호하시는 곡 컨셉이 있을까요?”
“나? 나는 무조건 댄스지.”
홍윤아 선배님의 확고한 취향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정말 한결 같은 사람이다.
“해솔이 너는? 뭐하고 싶은데.”
“저는 좀 강렬한 비트에 화려하고 블링블링한 컨셉을 해보고 싶어요. 선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신나는 곡으로요.”
“블링블링?! 내가?”
“네.”
“에이~ 나는 이제 안 어울리지! 내 나이가 몇인데.”
“이 프로그램이 원래 시도해보지 못한 걸 해보는 재미잖아요. 저는 여자 아이돌 곡을 불러주셨으면 좋겠어요.”
“여, 여자 아이돌 노래를?”
“여자 아이돌 노래라고 해도 퀄리티가 낮거나 쉬운 곡은 아닐 거에요. 그래도 저는 선배님이 하실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내가 눈을 반짝이면서 말하니 홍윤아 선배님이 난감해 하면서도 기분 나쁘지 않은 듯 허허 웃음을 지었다.
“아~ 이렇게 부담을 줘버리면…뺄 수가 없어지는데. 근데 진짜 내가 아이돌 노래를 할 수 있을까? 아이돌은 예쁜 사람만 해야 되는데 괜히 내가 했다가 눈 버리게 하면 어떡해.”
“선배님도 아름다우세요. 꾸미는 방법이 달라서 그렇지, 제대로 꾸미시면 위화감이 전혀 없을 걸요?”
내 호언장담에도 홍윤아 선배님이 긴가민가 하는 표정이었다.
“제가 작가님이랑 얘기하면서 생각난 게 있거든요. 정말 잘 어울리실 거에요.”
홍윤아 선배님이 평소 겸손하고 예의 바르며 친근한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그렇지, 얼굴을 잘 살펴보면 색다른 매력이 숨겨져 있었다.
나는 그걸 이번 기회에 끄집어내는 게 어떨까 생각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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