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491화 (491/849)

〈 491화 〉 #73. 우놀 (4)

* * *

칸나가 우리 집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그녀의 방에 함부로 출입했던 적은 없다.

보통 잠자리를 가질 때는 칸나가 생활하는 공간이 아니라 내 방에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칸나가 자기 방에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괜히 재벌집 딸이 아니네.’

저택이라고 불러도 충분한 집.

쓰는 방의 수보다 쓰지 않은 방의 수가 더 많아서 얼마든지 다른 방을 사용해도 됐다.

나 또한 침실을 제외한 방을 두 개 더 사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나는 취미 생활을 할 때 지내는 공간으로, 나머지 하나는 창고 겸 옷 방으로 말이다.

그러니 그녀들이라고 이런 방을 못 만들 이유는 없었다.

“여기가 옷방이야 명품 매장이야?”

“헤헤.”

“네 방보다 여기가 더 큰 것 같은데…?”

“맞아요. 이곳이 제 아이덴티티 같은 곳이랄까요?”

우리 집에는 공식 메이드복이 있지만, 그 옷은 일을 할 때 썩 효율이 좋은 옷은 아니었다.

순전히 내가 보기 좋으라고 만든 옷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칸나는 아이를 돌볼 때에는 메이드복을 입기보단 편한 티셔츠와 바지를 입거나 원피스를 입는 등 간편한 복장을 입고 다니곤 했다.

아이를 돌보지 않을 때는 메이드복을 입으려고 노력을 하긴 했지만….

‘거의 대부분 아이를 돌보는데 시간을 쓰니까.’

나는 메이드복을 입고 다니는 걸 강요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메이드복을 굳이 준비한 이유는.

‘우리 집 메이드들이 진짜 집안일을 하는 건 아니잖아?’

아이템으로 집안의 청결이 유지 되는 집에서 궂은일을 할 필요가 없으니 본인들이 메이드라는 자각을 못할까봐 그걸 상기시키기 위한 장치였다.

‘물론 보기 좋다는 점이 제일 큰 장점이지만!’

그런데 칸나가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메이드복의 불편함이 문제가 됐다.

결국 칸나는 현실과 타협하여 간편한 옷을 입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한참 꾸미는 걸 좋아할 나이라는 걸 잊고 있었네.’

그렇게 편한 옷을 입고 다닌다 해도 이런 옷에 대한 욕심이 아예 사라질 리 없다는 걸 방금 깨달았다.

명품을 이렇게나 애지중지하며 전시 해놓는 사람이 꾸미는 걸 싫어할 리 없지 않은가?

“이걸 보니까 좀 미안해지네. 애들 돌보느라 사놓고 쓰지도 못한 게 많잖아.”

“명품은 사놓는 것만으로도 재태크가 되는 거라 괜찮아요. 그리고 원래부터 사놓고 사용 안하는 경우가 많아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 걸요.”

내가 미안해진 것과는 달리 칸나는 전혀 아쉬움이 없어보였지만 말이다.

“요즘 가장 핫한 아이템이 바로 얘거든요. 이 브랜드 신상이에요. 아마 이거 들고 뮤비 찍으면 다들 난리가 날 걸요? 그리고 이건 겨우겨우 사정해서 웃돈 주고 구한 아이에요.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 없어서 주인님의 뮤비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줄 거에요. 보통 뮤비에 소품으로 나온 아이템들을 사람들이 보고 가격대를 알아본단 말이에요. 아마 얘가 나오면 입을 쩍 벌릴 걸요?”

“너무 과한 걸 내보내는 건 뒷말이 나올 수 있어.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작하는 뮤직비디오잖아. 사람들이 흔히 명품이라고 보는 가격대의 상품이라면 괜찮지만, 몇 천을 넘어가는 가격대의 명품은 곤란해.”

“이것들 전부 그렇게 안 비싸요. 다만 제가 말한 것들은 돈이 있어도 못 사는 상품들에 해당한 것뿐이에요. 자격이 안 되는 사람한테는 팔지 않는 상품들인 거죠.”

비앙카의 비범한 능력 덕분에 요즘 가문에서 능력 있는 후계자로 떠오르고 있는 칸나.

덕분에 이름값이 올라가며 ‘그들만의 리그’에서 급이 올라갔다고 한다.

그 덕분에 정말 극소수의 VVIP들에게만 제공 되는 것들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고.

“그러니까 사실 이것들을 주인님께서 사용하시는 게 당연한 거에요.”

“그래도 이렇게 부담 되는 건 좀 그래. 적당히 천만 원 아래 가격 대 명품으로 추천해줬으면 좋겠어.”

천만 원이 우스운 가격은 아니지만, 명품이라는 자존심과 화제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가격대를 맞춰줘야 했다.

“끄응, 아쉽지만 그렇게 할 게요. 근데 이게 또 누가 착용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다르거든요. 혹시 홍윤아씨를 직접 만나서 확인할 순 없을까요?”

칸나의 말은 직접 본인이 나서서 코디를 하고 싶다는 뜻으로 보였다.

“할 수 있겠어?”

“저 어릴 때부터 명품 아니면 몸에 대본 적도 없는 사람이에요. 명품 코디는 어디랑 비교해도 빠지지 않을 자신 있어요.”

제작진이 인건비를 제작비에서 빼지 않겠다고 했기에 전문 인력을 따로 쓰려고 했지만, 칸나가 하고 싶다고 하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어보였다.

더욱이 그녀의 물건들이니 다른 사람이 코디를 하는 것보단 더 잘 하지 않을까 기대감도 들었다.

“그럼 부탁 좀 해볼까?”

“네!!”

제안을 받아들이자 칸나의 얼굴이 활짝 폈다.

뒤늦게 상황을 알게 된 비앙카와 멜리사가 그녀들이 갖고 있던 보석들을 제공함으로써 한층 뮤직비디오를 화려하게 꾸밀 준비가 끝났다.

? ? ?

2차 미팅이 끝나고 본격적인 우놀 첫 촬영이 들어갔다.

첫 촬영에는 제작진이 제시하는 게임을 통해 제작비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위화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기본 자금은 백 만원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천만 원은 어렵지 않게 확보할 수 있도록 쉬운 게임을 준비했고, 단계를 거듭해서 올라갈수록 게임의 난이도가 올라가게 될 거라고 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돈 단위가 너무 높게 올라가면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조취였다.

솔직히 제작비를 초과로 쓴다고 해도 누군가가 영수증을 받아가서 꼼꼼하게 따지는 건 아니었으므로 크게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다.

“오히려 게임을 좀 많이 틀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주변 지인들한테 빌리고 다니는 과정이 재밌을 테니까요?”

“네.”

“그랬다가 제작비가 부족해지면요?”

“적당히 빌렸다는 그림으로 지원해드릴 거에요. 그리고 협찬 물품들도 지금 저렇게 쌓여 있는 중이거든요.”

제작진이 괜히 기부금 1억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제시한 게 아닌 듯.

오늘 촬영을 해서 협찬 물건들이 한쪽에 쌓여 있었는데, 그 수가 굉장했다.

“진짜 에어플레인 최고에요….”

작가가 한 쪽에 쌓여 있는 협찬 물건들을 바라보는 나에게 슬그머니 엄지를 치켜들었다.

“사실 저희가 기부할 예정이긴 했는데 초반 금액이 1천만 원이었거든요. 근데 협찬 쪽에서 어떻게 알아냈는지 자기들도 손을 보태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사실 해솔씨 팬클럽에서 기부금 모금을 해서 전달을 해주셨어요.”

“제 팬클럽에서요?!”

“비밀로 해달라고 하긴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예 모르고 계시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거에요. 알고 있다는 티는 내지 말아주세요. 팬클럽 쪽에서 부담 주는 것 같아서 알리기 싫다고 하셨거든요.”

“전혀 몰랐어요.”

촬영이 끝나면 SNS에라도 사진을 남겨 팬들과 소통을 해야겠다.

이런 예쁜 짓을 해놓고도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니…!

팬들이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줬으니 뮤직비디오를 더 열심히 제작해서 꼭 1,000만 조회수를 달성해야겠다.

촬영에 앞서 오늘 어떻게 촬영이 진행 될지 설명을 들은 나와 홍윤아 선배님은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은 룰렛을 돌려서 결정하게 되는 건데….

“야!! 쉬운 게임 준다고 했잖아! 근데 쉬운 게임만 엄청 좁잖아!!”

홍윤아 선배님이 룰렛 꼬라지를 보자마자 소리를 버럭 질렀다.

누가 봐도 악의적으로 만들어진 룰렛!

방송국 사람들은 믿으면 안 된다더니, 이렇게까지 대놓고 코를 베어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얘 얼굴 좀 봐. 놀래서 허옇게 떴어! 귀한 손님 초대해놓고 이럴 거야?”

“어…작가님이 촬영 전까지만 해도 게임 되게 쉬운 걸로 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여주셨거든요. 그래서 다행이다 하면서 안도하고 있었는데…그 말 들은 지 5분도 안 됐거든요.”

아마 지금쯤 내 얼굴에 옆에 해골이 쾅쾅 붙지 않았을까 싶다.

홍윤아 선배님이 내 얼굴을 보고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얘네들 절대 믿으면 안돼! 해솔아. 걱정하지 마. 이 누님만 믿어!”

“아니, 누님이라뇨! 저 친구랑 나이 차가 몇인데. 이모라고 불러야지.”

“야야. 그래도 이모는 너무하잖아. 그리고 우리 사적으로 친하거든?”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에서 홍윤아 선배님과 나만으로 예능적인 즐거움을 줄 순 없다는 판단이었는지 게스트를 한 명 더 불러 놨다.

그녀가 부른 사람은 과거 여자 아이돌로 데뷔했으나 크게 성공하지 못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예능에 나와서 특유 쾌활한 성격으로 주목을 받은 ‘하예나’라는 선배님이다.

성격이 좋아서 홍윤아 선배님이 참 예뻐라 하시며 데리고 다니는데, 내가 막 웃기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하예나 선배님을 불러서 예능 분량을 챙기려고 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노림수가 제대로 먹혔다.

하예나 선배님이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대화에 홍윤아 선배님과 찰떡처럼 맞장구를 쳐서 지루하지 않게 대화에 양념을 쳐주셨다.

덕분에 나도 마음을 편하게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작가님에게 뒤통수를 맞은 건 맞은 것이고.

제작비를 따내기 위한 게임이 본격적으로 진행 됐다.

홍윤아 선배님이 룰렛을 돌리는 걸 나한테 시켜준 덕분에 일이 조금 수월해졌다.

“이야아!! 좋다좋다. 이거 진짜 쉬운 걸로 해줘야 된다. 어려우면 가만 안 있어!”

난이도 (최하)의 퀴즈 게임.

룰렛에 굉장히 좁은 칸을 아슬아슬하게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게 정확히 걸렸다.

보통 예능에서 게임을 결정할 때 룰렛을 돌려서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서 미리 연습을 해왔는데, 연습한 보람이 있는 성과였다.

“와~ 저게 어떻게 걸리지? 제일 칸이 좁은데.”

“우리 해솔이가 복덩이네, 복덩이야!”

“사실 룰렛 돌리는 거 연습해왔거든요.”

“룰렛 돌리는 걸 연습해왔다고? 푸하하하!”

내가 연습을 하긴 했어도 첫 번째 룰렛 결과는 운이 따른 것이라 생각한 제작진들과 출연진들.

난이도 최하답게 퀴즈가 어렵지 않아서 간신히(?) 성공했다.

“너 왜 이렇게 무식해!!”

홍윤아 선배님이 하예나 선배님을 구박했다.

하예나 선배님의 백치미에 하마터면 저 쉬운 퀴즈를 실패할 뻔했던 것이다.

“아니이~!!”

우리나라 사람답게 ‘아니’라는 말로 억울함을 표하려 했으나 변명이 필요 없는 상황인지라 홍윤아 선배님의 구박이 계속 됐다.

한참 구박을 한 홍윤아 선배님은 그래도 성공했다며 박수를 짝짝 치곤 제작진들에게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두 번째 게임 갑시다! 이번에는 진짜 잘 하자. 응?”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이번 룰렛은 제가 돌리겠습니다!”

두 번째 룰렛을 돌린 하예나 선배님이 돌렸다.

그리고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고 난이도 최상에 걸렸다.

“으이구! 으이구!”

“아니이~!!! 저렇게 크게 해놨는데 안 걸리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닙니까?”

“해솔이를 봐! 한 방에 최하로 딱! 해줬잖아!”

“저건 완전 운빨 사기친 거죠! 뽀록!!”

“방송하면서 뽀록이 뭐냐? 뽀록이!”

다시 한 번 홍윤아 선배님에게 구박을 당한 하예나 선배님이 이번 게임은 자신이 캐리하겠다며 두 팔을 걷어붙였다.

“성공하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번 게임이 뭡니까?”

“이번 게임은 위인 맞추기입니다.”

“…….”

위인 맞추기 최상급.

하예나 선배님은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장렬하게 패배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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