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2화 〉 #73. 우놀 (5)
* * *
“아니이!!! 그 사람 풀네임을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난이도를 네가 잘못 뽑아서 그런 거잖아. 근데 이건 너무 심하긴 했어.”
우리나라 위인을 물어봐도 대답을 할까 말까한 판국에 전화기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의 풀네임을 물어보거나 굉장히 유명해진 어록을 말한 사람의 풀네임 등을 물어보는 문제였다.
대답을 할 수 있는 시간도 겨우 10초밖에 주어지지 않아서 이건 결국 절대 풀지 말라는 뜻의 게임이라 볼 수 있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이번에 제가 돌려봐도 될까요?”
게임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시작이 좋아야 하고, 그러려면 룰렛을 내가 직접 돌릴 필요가 있었다.
“이야~ 그런 적극적인 모습 좋지! 해솔이가 한 번 더 해봐.”
홍윤아 선배님은 내 적극적인 태도를 흐뭇하게 생각하셨다.
“나도 룰렛 잘 돌릴 수 있는데….”
하예나 선배님이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투덜거리자 홍윤아 선배님이
“최상은 조용히 하시구요.”
다시 룰렛을 돌릴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나는 연습했던 감각을 더듬으며 힘주어 팔을 움직였다.
드드드득
몇 바퀴 돌아간 룰렛이 점차 한 곳에 멈춰 선다.
“우와아아아!!!!!!!!!”
그리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감탄 소리!
“말도 안 돼! 이거 주작 아니에요?”
하예나 선배님이 말도 안 된다며 경악하면서도 함박웃음을 짓는다.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난리가 났다.
이 난리가 난 이유는 난이도 ‘하’를 뽑았기 때문이었다.
믿기지가 않는지 홍윤아 선배님이 괜스레 룰렛을 한 번 더 돌려본다.
드드득 드드드드득!
몇 바퀴 돌아간 룰렛이 어김없이 커다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난이도 상에 멈춘다.
“이게 정상인데? 황금손이야, 뭐야? 왜 이렇게 잘 뽑아?”
“하하. 운이 좋았어요.”
“잘 했어! 잘 했어!”
홍윤아 선배님과 하예나 선배님이 잘 했다며 나를 연신 칭찬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낮은 난이도의 게임이 시작 되고.
무사히 성공하게 되면서 우리는 허리를 졸라매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의 제작비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시작 된 네 번째 게임 룰렛.
드드득 드드드득
이번에도 어김없이 난이도 하가 당첨이 됐다.
“우와아!”
“이야!”
한두 번은 우연이라고 봐도 되지만, 내가 돌린 세 번의 기회 모두 적은 확률이 걸리자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
“복덩이야, 복덩이! 으하하!!”
“잠, 잠깐만요.”
“뭔 잠깐만이야! 난이도 하! 게임 시작합시다! 아이, 그래봤자 아무것도 나올 거 없다니깐? 내가 방금 돌려봤잖아.”
“아무리 그래도 세 번이나 이러는 건 좀…. 잠시 확인 좀 해볼게요.”
당황한 제작진이 황급히 타임을 외치고 룰렛 점검에 들어갔다.
룰렛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기에 점검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 되는 건 아니었다.
“괜찮은데요?”
“아니, 그럼 왜 이러는 거지?”
제작진이 돌릴 때는 거의 무조건이라 볼 수 있을 정도로 난이도 상, 중상, 최상이 걸린다.
홍윤아 선배님은 그걸 가만히 보고 있다가 뭔가 생각난 게 있는지 나를 불렀다.
“해솔아.”
“네.”
“이거 한 번 더 돌려볼래?”
“그럴까요, 선배님?”
홍윤아 선배님이 뭔가 재밌는 그림을 떠올린 게 분명하다.
사실 나도 대충 어떤 그림을 바라는 것인지 눈치 챈 상황이었다.
나는 굳이 실력을 숨기지 않고 룰렛을 돌렸다.
드드득 드드드드득!
“와아!”
“또?!”
“잠깐만, 저거 설마….”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가 원하는 곳에 멈춰선 룰렛.
나는 멈춰선 룰렛을 다시 한 번 돌렸다.
드드드드득 드드드득!
“이야아~!!!”
“이거 사기잖아요!!!!”
이번에는 일부러 같은 곳에 정확히 멈추게 만들었다.
이를 본 피디님이 결국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당연하지만 스태프들도 난리가 났고, 홍윤아 선배님과 하예나 선배님 또한 감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바라는 대로 룰렛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알게 된 것이다.
“뭐! 뭐가! 룰렛 돌리라매!! 돌리라고 해서 돌린 건데 뭐가 사기야! 으하하하!!!”
“아이고~ 이쁜 것! 세상에~ 이런 능력이 있었으면 처음부터 그냥 다 네가 돌릴 걸 그랬다! 내가 괜히 나섰네!”
“자, 잠깐만요! 여러분! 잠시만요!! 이건 아니죠. 에이~ 너무한 거 아닙니까? 이건 안 됩니다!”
이대로 계속 난이도 ‘하’가 걸린다면 우리는 호화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수 있었다.
제대로 틈을 만들었음을 깨달은 홍윤아 선배님이 천연덕스럽게 제작진을 압박했다.
제작진 쪽에서 기획해온 룰렛 게임.
그런데 우리가 너무 잘 해서 물러달라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거였다.
제작진도 그걸 알지만, 기부할 돈까지 뮤비 제작비로 나가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건 안 될 일이었기에 필사적이었다.
결국 피디님이 굴욕적인 부탁을 한 후에야 홍윤아 선배님이 딜을 받아들였다.
“좋아요. 그럼 해솔이가 룰렛을 돌리지 않는 걸로 합시다. 대신 성공했을 때 2배인 겁니다.”
“예! 좋습니다.”
내가 룰렛을 돌리지 않는 대신 성공시 2배.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더욱이 이번 일로 확실한 분량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 ? ?
첫 촬영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다음 촬영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뮤비 컨셉 회의에 들어갔다.
이때, 가장 중요한 일을 해야 했는데, 바로 곡 결정이었다.
내가 그리고 있는 홍윤아 선배님의 무대가 있었기에 곡이 나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다만 그 곡을 선배님이 좋아하실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슬쩍 들려달라고 했는데도 절대 안 된다고 해서 엄청 궁금했어.”
“곡은 잘 나왔는데, 선배님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어요.”
“나는 댄스면 돼. 댄스면.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 아니야.”
“그럼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그래. 그러자!”
미리 준비해놓고 있었기에 곧장 노래가 나왔다.
띵~♬ 띠딩♪! 띵띵띵띠딩♪♩
비파를 시작으로 악기와 리듬이 비파의 소리 위에 화려하게 덧붙여진다.
힙스러우면서도 세련 된 멜로디가 흥겹게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다.
둥둥둥둥♪♩~♪♬~
곡을 만들면서 여러 번 들어 봤지만 여전히 마음에 쏙 드는 멜로디였다.
그리고 그 리듬에 맑고 깔끔한 목소리가 더해진다.
아직 가사가 정해지지 않아 이상한 단어들을 조합해서 만든 가이드였지만, 예사 실력이 아닌 목소리가 더해지니 한층 노래의 질이 올라갔다.
‘확실히 주아 누나가 배우 활동만 하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야.’
곡의 가이드를 딴 사람은 다름 아닌 주아 누나다.
오랫동안 아이돌 연습생으로 있었던 누나다.
여자 음역대의 가이드가 필요했는데, 누구한테 부탁을 할까 고민하다가 주아 누나를 떠올려서 부탁을 해봤다.
그랬더니 부담스러워하기는커녕 굉장히 좋아하며 가이드를 불러주더라.
‘반응은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홍윤아 선배님노래를 어떻게 듣고 있는지가 제일 중요했기에 나는 리듬을 즐기면서도 선배님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마침내 곡이 끝나고.
홍윤아 선배님이 박수를 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야~ 노래 좋은데?”
“어떠셨어요?”
“이거 가이드 누가 한 거야? 노래를 너무 잘 부르신다. 이대로 음원을 바로 내도되겠어!”
“하하, 선배님이 부르셔야 하는 노래인데 다른 사람을 왜 주겠어요.”
“쓰읍, 근데 말이야. 좋기는 한데 난이도가 너무 높은 것 같아. 정말 내 마음에 쏙 들긴 하거든? 근데 듣고 생각나는 게 이걸 내가 부를 수 있을까 였어.”
곡을 만들 때 선배님이 부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음역대를 조절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선배님 음역대를 고려해서 만든 곡이에요. 직접 불러보시면 다를 거에요.”
듣기에 굉장히 쉬워 보이는 곡인데 정작 부르면 어려운 곡이 있고, 반대로 어려워 보이는 곡이 의외로 쉬울 때가 있다.
더욱이 좀 어렵다고 해도 내가 가르치는 것 하나는 잘 할 자신이 있었다.
멤버들이 지금의 실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내 관리를 받은 덕분이 아니겠는가?
홍윤아 선배님이 조금만 노력을 해준다면 충분히 이 곡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주아 누나가 노래를 너무 잘 부른 게 문제인가? 시작하기도 전에 겁부터 먹으셨네.’
적당히 조절해서 불러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아이돌 꿈을 접고 배우로 전향한 누나에게 흔치 않은 기회여서 그런지 너무 잘 불러버리고 말았다.
가이드에 불과함에도 좋아하는 게 눈에 보여서 힘을 빼달라고 할 수가 없더라.
“부를 수 있다 없다는 둘째로 치고, 곡 자체의 느낌은 어떠셨어요?”
“내가 이번에 아이돌 노래를 좀 듣고 왔거든. 뮤직비디오도 많이 보고 왔고. 그런데 그때 들었던 곡보다 지금 이 곡이 훨씬 좋은 것 같아.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선배님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도 자신이 느낀 감정들을 더듬더듬 표현해주셨다.
그녀가 곡을 듣고 만족해 하고 있음을 확신한 나는 안도했다.
“근데 이걸 정말 이걸 내가 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세요. 안 되면 되게 만들게요. 확실하게 곡이 마음에 드신 건 맞는 거죠?”
“응응. 완전 좋아. 곡 잘 만든다는 소리는 건너서 들었는데 이렇게 잘 만들 줄 몰랐어. 대단하다. 대단해.”
“감사합니다. 하하.”
“가사는 어떻게 할 거야?”
“가사는 컨셉을 확실히 정하면 거기에 따라서 만들 생각이에요. 일단 제가 이 곡을 만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말씀드릴게요.”
곡을 부르는 사람이 가사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어야 곡을 부를 때 편하고, 잘 부를 수 있는 법이다.
더욱이 비전문가인 선배님한테는 꼭 그런 배려가 필요했다.
해서 이미 어느 정도 가사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편견을 만들지 않게 가사 없이 가이드를 만들었다.
“선배님을 떠올리면서 만든 곡이거든요. 선배님께서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 보여주시는 이미지가 아니라 평소 이미지요.”
“내 평소 이미지?? 내 평소 이미지가 이렇게 대단하다고?”
선배님은 납득이 되지 않는지 어리둥절한 기색이다.
“네. 선배님의 기품을 표현한 곡이에요.”
“기, 기품이라고? 내가?”
“처음에 나왔던 악기가 비파인데, 그 비파가 선배님의 기품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악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이 곡을 만들었는지 차분히 설명을 시작하니 당황하던 선배님도 진지하게 내 설명을 들어주셨다.
“기품이라는 말이 뭔지 아시죠?”
“음, 알긴 하지.”
“보통 기품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귀족, 고상함 뭐 그런 거잖아요? 다만 저는 기품이라는 게 단순히 돈이 많다고 해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선배님께서 기품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를 너무 띄워주니까 당황스럽네. 나 그런 말 생전 처음 들어봐.”
“당황하실 필요 없어요. 선배님이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해주시는 모습들로 화제가 되는 건 알고 계시죠?”
“…매니저한테 듣기는 했지.”
부끄러우신지 직접 찾아본다는 말은 하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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