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3화 〉 #73. 우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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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 있는 사람만이 매너 없는 사람을 지적할 수 있는 법.
홍윤아 선배님이라면 그 자격을 갖고 있으니 내가 만든 곡으로 제대로 따끔하게 혼내주길 바랐다.
추가적인 설명을 모두 끝마친 나는 홍윤아 선배님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하며 지켜봤다.
한참 고민을 하던 홍윤아 선배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말했다.
“가사가 나와 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좀 순화하거나 비유로 가사를 쓴다면 괜찮을 것 같긴 해.”
다행히 선배님이 과하게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내가 계획한 아이디어를 쓸 수 있게 될 확률이 올라가고 있는데 못 할 이유가 없었다.
“선배님께서 걱정하시는 게 뭔지 알지만,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거에요. 아니면 선배님께서 직접 가사를 써보시는 것도 괜찮고요.”
“에이! 내가 가사를 어떻게 써! 그런 건 전문가가 하는 거지. 내가 하면 이 좋은 곡이 동요가 된다고. 어휴, 그나저나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 곡 설명을 듣고 다시 한 번 들어보니까 노래가 확 와닿는 것 같아.”
“정말 선배님을 보고 작곡한 곡이에요.”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닌데….”
겸손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홍윤아 선배님은 대단한 사람이 맞다.
그녀는 유명한 사람이든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예의 있고 매너 있는 태도를 고수하신다.
그뿐만 아니라 매해 꾸준히 기부를 하고, 봉사활동도 하고 계셨다.
내가 알기로 웬만한 부자들보다 홍윤아 선배님이 이룬 부가 더 많다고 알고 있다.
그렇게 많은 부를 이루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들을 배려하는 매너를 갖춘 분이니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컨셉이 오로지 홍윤아 선배님만이 가능한 컨셉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한다면 ‘너는 뭐가 그렇게 잘나서 지적질이야?!’ 라는 말을 들을 거다.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참된 인성을 인증하신 분.
그런 그녀가 매너를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매너를 지키라고 따끔하게 혼내줬으면 했다.
“힙합스러운 분위기가 난 것도 혹시 가사를 그렇게 쓸 거라서 그런 거야?”
“아무래도 그쪽 분야가 디스에 익숙한 장르니까요.”
곡과 컨셉에 대한 컨펌을 받은 나는 다음 문제로 들어갔다.
홍윤아 선배님이 이 곡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에 대한 불안감이다.
“이 곡이 날 떠올리면서 만든 곡이라는 게 믿어지질 않아.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선배님이 이런 걱정을 괜히 하는 게 아닌 게, 내가 생각해도 이번 곡이 참 고급스럽게 잘 빠지긴 했다.
“선배님이랑 잘 어울릴 거에요.”
“일단 곡은 이걸로 가는 걸로 하면,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할 거야?”
곡을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게 우리의 최종 목표가 아니겠는가?
“뮤직비디오는 선배님이 각종 진상들을 혼내는 장면들을 넣을 거에요. 춤도 비슷하게 힘을 많이 줄 거고요.”
“음…혼내는 장면이 너무 직접적으로 나오면 보시는 분들이 불편해 하지 않을까?”
“노골적인 묘사는 없을 거에요. 아무래도 말로 설명하기엔 선배님이 이해하기 힘드실 것 같으니까 제가 그림으로 그려드릴게요.”
“그림으로?”
홍윤아 선배님이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제작진에게 종이와 팬을 빌린 나는 미리 생각해두었던 장면들을 빠르게 스케치 하기 시작했다.
“와아…! 너 그림도 잘 그리는구나! 도대체 못 하는 게 뭐야?”
“하하. 별 거 아니에요.”
겸손의 말을 했지만, 순식간에 완성 되는 그림들은 결코 별 것으로 칠 수준이 아니었다.
“이야~ 이렇게 그림으로 보니까 네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전부 알겠어.”
“이걸 중심으로 제대로 된 콘티를 짜볼게요.”
일명 콘티(Continuity).
영화나 드라마 촬영을 위하여 각본을 바탕으로 필요한 모든 사항을 기록한 것을 뜻한다.
이 콘티를 이용해 촬영을 하고, 나중에 편집을 할 때도 요긴하게 써야 하므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제작진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이 된다.
“이게 나인 거지?”
“네.”
홍윤아 선배님은 내가 만드는 콘티들을 넋 놓고 바라봤다.
모두 그녀가 카메라 앞에서 해내야 할 것들이니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었다.
“근데 우리한테 있는 제작비로 이런 걸 어떻게 구하지?”
“그 부분은 이제부터 구해봐야죠.”
이럴 때를 위해 미리 제작진 쪽에서 언급을 해준 ‘지인 찬스!’.
드디어 본격적으로 지인들에게 구걸(?)을 하러 다닐 때가 된 것이다.
두 번째 촬영이 그렇게 끝나고, 며칠 후 세 번째 촬영이 시작 됐다.
“너 누구 부를 사람 있어?”
이번 촬영은 아예 지인찬스가 목표였기에 홍윤아 선배님이 뻔히 알면서도 천연덕스럽게 내게 물었다.
“네. 이럴 때 딱 도와달라고 하기 좋은 사람이 있어요.”
나 또한 그녀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맞장구를 치며 대답했다.
“오~ 준비 해왔구나. 좋아좋아.”
상대도 촬영 전에 미리 말을 다 해놔서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어서 오세요!”
“이야~ 누구인가 했더니 진주아씨잖아?”
이미 어떤 지인한테 간다는 걸 다 말해놨지만 촬영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선 모르는 척 해야 했다.
조금씩 활동을 시작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영화나 드라마에 캐스팅되기 전인 상태인 주아 누나는 이런 식으로 대중들 앞에 얼굴을 보이는 것이 나쁘지 않겠다 싶어 흔쾌히 출연하기로 해준 상태였다.
이런 식으로 얼굴을 내보이면 자연스레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며 캐스팅 제안을 받게 되기 때문이었다.
“주아 누나랑 윤아 선배님 몸매가 그리 차이가 안 나는 것 같더라고요.”
“내가 이 몸매랑 어떻게 차이가 안 나? 그런 소리 하면 내가 주아씨 팬들한테 맞아 죽어요!”
내 말에 홍윤아 선배님이 경악하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홍윤아 선배님은 다른 곳은 몰라도 가슴 부분은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아니에요. 윤아 선배님이 평소에 꾸준히 관리하시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 걸요.”
아이돌처럼 예쁜 몸매를 가꾸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위한 운동을 하는 사람인지라 연예인과 비교하면 많이 다른 몸매이기는 했다.
그렇게 겉치레가 몇 차례 지나가고.
홍윤아 선배님이 주아 누나와 내가 어떻게 친한지를 물으셨다.
“근데 두 사람은 어떻게 알게 된 사이야?”
“제가 허니 엔터에서 아이돌 연습생으로 오랫동안 있었어요.”
“아~! 같은 회사 소속이었어?!”
“그때 주아 누나는 연습생들이 감히 쳐다도 못 볼 정도로 유명한 선배님이셨어요. 전 그때 회사에 들어 온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누나랑 말을 나누게 됐고 그게 인연이 돼서 지금까지 이어졌네요.”
지금 이 촬영 내용은 나중에 우리 관계를 밝혔을 때 다시 화제가 될 것이다.
몇 가지 질문과 대화가 오가고.
본격적으로 주아 누나와 우리 사이의 밀당이 시작 됐다.
쉽게 무언가를 빌려주지 말라고 사전에 얘기가 되어 있었기에 주아 누나는 짓궂은 장난을 쳤다.
“와~ 잘 어울리세요!”
“컨셉에도 너무 잘 맞을 것 같은데? 딱이다. 딱이야. 누나, 이거 빌려주세요.”
“어머? 나한테 옷 맡겨놨어요? 당당하게 빌려달라네. 빌려주면 뭐해줄 건데요?”
“…빌려주기로 했잖아요. 갑자기 뭘 해달라뇨.”
“공짜로 빌려줄 순 없죠.”
“이러기야?”
“응. 이러기야. 이 옷 빌리고 싶으면 일을 하셔야 해요.”
“뭘 해야 되는데요.”
“음, 일단 한 곡 뽑아볼래? 저기에 노래방 기계 있거든.”
“아니, 집에 노래방 기계가 있어요?”
노래방 기계가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면서 열심히 방송 분량을 뽑아냈다.
뮤비 촬영을 하는데 옷을 하나로만 돌려서 쓸 순 없는 법.
내가 노래를 하나 하자 흥이 오른 홍윤아 선배님이 자청해서 마이크를 잡아챘다.
그렇게 재롱잔치 아닌 재롱잔치가 시작 되었다.
흥에 겨워진 주아 누나도 빼지 않고 한 곡 뽑았는데, 놀랍게도 홍윤아 선배님이 누나의 목소리를 알아봤다.
“어? 설마 주아씨가 가이드한 가수였어요?”
“어머, 알아보시네요.”
“내가 그 곡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 못 알아보겠어요. 와~ 노래 정말 잘 부르신다. 그동안 이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거에요?”
아마 이 방송이 나가면 주아 누나의 노래 실력이 화제에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팔방미인에 해당하는 누나인지라 그녀의 재능이 널리 알려지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아~ 신나게 놀았네.”
뜻밖으로 펼쳐진 노래시간.
홍윤아 선배님 특유의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춤사위에 우리들은 배꼽 빠져라 웃을 수 있었다.
“옷 깨끗하게 쓰고 돌려드릴게요. 빌려줘서 고마워요.”
“뮤직비디오 나오면 꼭 시청할게요~”
주아 누나의 집에서 나온 우리는 다른 곳도 방문했다.
의상을 주아 누나에게만 빌리는 게 아니라 민영 누나에게 가서 또 빌릴 예정이었다.
사실 주아 누나에게 빌린 의상으로 충분했지만, 촬영 분량을 위해 민영 누나도 섭외해놓은 상황이었다.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 많은 의상을 빌려두고 상황에 따라서 바꿔 입어야 했기에 크게 무리 있는 설정은 아니었다.
“아니, 해솔씨 대단한데? 대세 배우 두 사람이랑 다 친한 거잖아.”
“민영 누나는 제가 처음으로 연기를 했을 때 상대역이였어요.”
“아~ 맞다! 그 유티비에 올라온 그거 같이 찍었지?”
“네, 웹 드라마요.”
“인연이 그렇게 이어지는구나. 주아씨랑 민영씨가 소문 난 단짝이었죠?”
홍윤아 선배님은 우리 세 사람의 친분을 굳이 의심하지 않았다.
민영 누나와의 촬영도 주아 누나와 함께 했던 촬영처럼 화기애애하게 진행 됐다.
주아 누나는 빌려주려면 뭔가 해줘야 한다며 장난을 쳤는데, 민영 누나는 반대로 굉장히 비싼 것도 다 가져가라며 부담이 될 정도로 선뜻 내어주는 바람에 오히려 우리 쪽에서 전전긍긍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괜찮은데….”
“아니, 이걸 내가 입었다가 찢어지기라도 해봐요. 심장 떨려서 이건 절대 못 입어.”
“어…그럼 이건 어때요?”
대세 배우답게 민영 누나의 옷장은 화려했다.
제작진은 주아 누나와 다른 그림으로 뽑힌 분량에 흡족해 했고, 우리는 민영 누나에게 거하게 식사까지 대접 받으며 배와 손을 두둑하게 챙길 수 있었다.
“옷은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소품들은 어떡하지?”
사실 의류보단 소품이 제일 중요했다.
매너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돈이 많은 사람을 빼놓을 수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보니 명품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촬영 때 쓸 소품은 제가 지인한테 부탁을 해놨어요.”
그리고 나는 이미 그 문제를 해결해놓은 상태였다.
이러면 모든 걸 내 지인들한테 의존한 게 아닌가 싶을 수 있으나, 홍윤아 선배님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홍윤아 선배님은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 도움을 줄 스태프 섭외에 큰 도움을 주셨다.
오히려 이 부분은 내가 손 댈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기에 다행이었다.
제작진 쪽에서 인건비를 대신 내주기로 했다지만, 실력 좋은 카메라 감독님을 구하는 건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은 단가가 너무 쎄지.’
정 안 된다 싶으면 제작진 쪽에서 섭외를 해주겠다고 했으나 그렇게 섭외 된 인물들의 실력을 확신할 수 없었다.
때문에 스탭 섭외에 대한 고민이 컸는데, 다행히 홍윤아 선배님의 지인찬스를 써서 해결할 수 있었다.
나는 소품에 관련 된 내용을 홍윤아 선배님에게 전달했다.
“일반인이라서 촬영에는 안 나올 거고, 뮤비 촬영할 때 코디랑 소품 대여에 도움을 주실 거에요. 패션에 감각 있는 분이라서 제가 도와달라고 했거든요.”
“아~ 그래? 너무 좋지. 착착 준비가 되니까 좋구만, 좋아. 뮤비 대박날 것 같은데? 나만 잘하면 되겠어.”
이제 남은 건 콘티대로 촬영을 하기 위해 홍윤아 선배님의 실력을 키우는 것만 남았다.
아마 이 부분이 이번 촬영에서 가장 힘든 과정일 것이다.
선배님은 남은 일이 벌써부터 걱정이 됐는지 마른 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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