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4화 〉 #73. 우놀 (7)
* * *
음악이 흐르고 리듬 위에 목소리가 얹어진다.
헤이, 충고 하나 할까 이건 널 위한 곡이니까 들어봐
오늘도 Diamond가 네 두툼한 손가락에 끼워져 있어
Oh, 그래 네가 자랑하려고 끼고 다니는 그거 말하는 거야
네 왼쪽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는 외제차 차키는 화룡점정
네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텅 빈 곳은 보이지 않는 여유
나를 보는 네 눈빛은 업신여김
헤이, 충고하나 할까 이건 널 위한 곡이니까 들어봐
명품이 기품을 만들지 않아
인품으로 기품을 만들어 치장해
목에 달린 그거 무게가 가벼워 보여, 너는
가격이 무게를 결정하진 않아
돈이 많다고 네가 대단한 건 아냐
Money 보다 중요한 건 Manner Manner 지켜
발음이 다소 뭉개지는 부분도 있고, 박자를 저는 상황도 나왔지만 생각보다 착실하게 가사를 읊어 나가는 모습은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내 손을 아예 타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라면, 본격적으로 연습에 들어가 교정을 받은 후는 기대해 봐도 될 것 같았다.
홍윤아 선배님은 힘겹게 곡을 끝내고 혀를 삐죽 내밀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좋은데요?”
“좋기는. 가사도 다 절었구만. 어우! 랩은 너무 어려워.”
“일단 랩은 목소리가 중요한데, 선배님은 확실히 MC를 오랫동안 보셔서 그런지 발음도 정확하신 편이시고 목소리도 굉장히 깔끔하세요. 그리고 아직 제가 가르쳐드린 것도 아닌데, 개인적으로 연습을 많이 해오신 게 보였어요. 선배님한테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엄청 기특하세요!”
“이거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너무 칭찬만 하니까 나 부담 돼.”
“아니, 왜 이렇게 잘 하세요? 그동안 엄살 피우는 거였네요.”
“야야. 그만 띄워줘! 나 이미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 있거든? 얘 이제 보니까 입에 사탕을 둘렀어!”
“아니에요. 진짜 너무 잘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아이고~ 미치것네.”
홍윤아 선배님은 내가 칭찬을 하면 할수록 안절부절 못하셨다.
나는 그게 또 재밌어서 일부러 더 과하게 칭찬을 했다.
“그럼 나 정말 이대로 불러? 음원까지 녹음해?!”
“아뇨. 그건 안 되죠. 지금부터 제가 하나씩 다시 가르쳐드릴 거에요.”
내 말을 들은 홍윤아 선배님이 어처구니 없어한다.
그 모습이 또 재밌어서 나는 킥킥 웃어댔다.
“뭔가 불안하다. 갑자기.”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든 제가 해낼 수 있도록 만들어드릴게요.”
“나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어. 내가 못해도 잘 할 때까지 굴리겠다는 소리 같은데.”
“우리 멤버들이 전부 독종 소리 들으면서 연습 많이 하는 애들이거든요? 근데 멤버들도 처음에는 그렇게 독하게 연습을 하진 않았어요.”
“…설마 아니지?”
“제가 그렇게 되도록 만든 거거든요. 그러니까 선배님도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지금은 못 해도 이 노래만큼은 세상에서 선배님이 제일 잘 부르게 만들어드릴게요.”
내 호언장담이 기뻤는지 홍윤아 선배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게임이 시작 된 이상 되돌릴 수 없는 판이었다.
? ? ?
홍윤아 선배님은 노래 연습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춤 연습까지 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목표가 뮤직비디오라서 직접 무대에서 노래와 춤을 함께 해야 하는 일은 없다는 점이다.
솔직히 그건 홍윤아 선배님의 나이 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무대를 고려해서 춤의 퀄리티를 낮출 수는 없었다.
결국 내 선택은 뮤직비디오 올인.
어차피 목표가 뮤직비디오이기도 하니 크게 문제 될 거 없는 선택이었다.
“선배님 정말 바쁘게 살고 계셨네요.”
선배님이 연습을 하는 것에 비협조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시간이 나면 굳이 나한테 말할 것도 없이 연습을 하신다.
문제는 그렇게 연습할 시간조차도 없을 만큼 선배님이 바쁘시다는 거였다.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숫자만 생각해봐도 그녀의 사정을 이해하기 충분하다.
TV를 틀면 항상 어느 채널에서 반드시 나오고 계시는 사람이 바로 홍윤아 선배님이다.
그렇다 보니 나도 그녀를 연습시키기 위해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더불어 그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하나부터 열 하나까지 전부 내가 직접 교정을 해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필요했다.
“헤이는 일단 가볍게 말씀해주셔야 해요. 헤이라는 단어에도 여러 가지 경우수가 있잖아요? 누군가를 부를 때 헤이도 있고, 하지 말라는 의미로 헤이! 라고 강하게 부르는 경우도 있죠. 여기서는 헤이~! 이런 느낌으로 해주세요.”
“헤이~ 이렇게?”
“너무 부드러워요. 끝부분을 좀 더 강하게 힘을 주세요.”
“헤이~!”
“딱 좋아요. 그럼 다음은 충고 하나 할까 이건 널 위한 곡이니까 들어봐 이렇게 제가 한 것처럼 말하듯이 불러주시면 돼요. 한 번 해보시겠어요?”
“알았어. 충고 하나 할까 이건 널 위한 곡이니까 들어봐.”
“들어봐는 강하게 말씀하셔야 해요. 충고하는 거니까 강하게 말을 해야 상대방이 귀를 기울이잖아요.”
“알았어. 다시 해볼게. 헤이~! 충고 하나 할까 이건 널 위한 곡이니까 들어 봐!”
“나쁘지 않았어요. 한 번 더!”
이렇게 한 단어단어마다 어떻게 하는지 가이드를 보여주고 직접 익힐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곡을 가르쳐주었다.
선배님은 가사지에 열심히 체크를 해가면서 내 수업을 들었다.
이렇게 노래 부르는 걸 가르치면 다음으로는 춤도 연습을 시켜야 했는데, 그러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다.
“쓰읍, 어떡하지?”
뮤직비디오를 촬영해야 할 날은 결정 되었는데, 정작 선배님의 춤과 노래 숙련도가 올라가질 않는 거다.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일단 선배님, 연습 많이 해서 목 아프시죠? 이것 좀 마셔보세요. 목에 좋은 물이에요.”
“어어~ 이거 쓴 거야?”
“몸에 좋은 거니까 드셔요. 쓰기보단 고소할 거에요. 저희 멤버들이 없어서 못 마시는 거거든요.”
“아휴, 그래? 고마워.”
홍윤아 선배님의 칼칼해졌던 목이 내가 준 물을 마시니 시원해졌던 모양이다.
선배님이 너무 좋다며 눈이 동그래지셨다.
“이거 무슨 물이야? 내가 말을 많이 해서 목이 좀 안 좋은 편인데, 이거 먹으니까 확 다른데?”
“지인이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으로 우려낸 물이에요. 시중에 판매하는 게 아니라서요.”
“아~ 그래? 아쉽네. 비법이라는데 뭐 어쩌겠어. 이 정도 상태면 더 연습할 수 있겠다.”
선배님은 호전 된 목 상태를 확인하고 연습에 의욕을 보였다.
나도 그걸 위해 준비한 물이었기에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선배님의 시간이 한정적인 만큼, 한 번 만났을 때 제대로 뽕을 뽑아야 했다.
그렇게 날이 밝을 때 만나서 날이 질 때까지 연습실을 벗어나지 않으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니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가 되자 제법 그림이 나올 정도의 수준으로 맞추게 됐다.
뮤직비디오를 찍기 전에 미리 음원을 녹음해둬야 해서 다음 공식 촬영은 녹음실이었다.
연습할 땐 보지 못했던 카메라가 녹음실에 가득 채워지자 선배님이 답지 않게 긴장하셨는지 침을 꼴깍꼴깍 삼키셨다.
“긴장 되세요?”
“으응…오늘 녹음이 잘 되어야 할 텐데 걱정 되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어요? 그만큼 연습했으면 못해도 녹음이 망하진 않을 거에요.”
선배님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응원을 해주니 선배님도 긴장이 좀 풀렸는지 몸에 힘을 풀었다.
“자, 여기 물부터 드시고.”
고된 연습을 하면서 내가 주는 물에 흠뻑 빠진 선배님이 내가 주는 물을 냉큼 마셨다.
“어우, 앞으로 이거 못 마시면 어떡하지 싶다.”
“제가 택배로 보내드렸는데 벌써 다 드셨어요?”
“아니, 내가 애지중지 아끼면서 마시는 중이야.”
“다 드시면 말씀하세요. 제가 또 보내드릴게요.”
“아이고~ 그렇게 민폐 끼칠 순 없지. 괜찮아.”
“촬영 들어갑시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촬영 준비가 끝났는지 촬영을 알리는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촬영이 시작되자마자 피디님은 홍윤아 선배님이 얼마나 연습했는지를 물어보았다.
“연습? 야, 너희들 모르지? 해솔이가 엄청 시간을 많이 내줬어. 얘가 나 연습할 때마다 옆에서 코치해줬거든.”
“연습할 때마다요?!”
피디님은 내가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홍윤아 선배님을 가르칠 거라 생각하지 못한 모양인지 깜짝 놀라셨다.
사실 홍윤아 선배님한테 어떻게 부르면 되는지 가르치고 이후로는 혼자서 연습해오라고 해도 상관이 없는 일이긴 했다.
그렇게 했어도 내가 아는 홍윤아 선배님이라면 혼자서 열심히 연습해왔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마추어가 혼자 연습하는 것보단 나 같은 사람이 옆에서 봐주는 게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피디님도 그걸 몰라서 방치한 게 아니었다.
‘내 시간을 그렇게까지 빼앗는 게 부담 되셨겠지.’
더욱이 그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려면 골치가 꽤 아플 것이다.
내 입으로 말하기 뭐하지만, 우리 몸값이 한두 푼이 아니었다.
“진짜 내가 이렇게 자신감 있게 말한 적이 없는데, 이 곡만큼은 내가 제일 잘 부르는 게 맞아. 연습한다고 이 곡만 한 천 번은 넘게 부른 것 같거든.”
홍윤아 선배님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지만 내가 준 물 덕분에 평범한 사람이라면 결코 하지 못할 시간을 목이 상하지 않게 연습을 할 수 있었고, 그 나비효과는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다.
‘멤버들이 증명해준 일이라서 확신할 수 있지.’
긴장한 게 언제냐는 듯 촬영에 들어가자 거침없이 자신감을 표출하는 홍윤아 선배님의 모습에 스태프들이 술렁였다.
여태까지 그들이 홍윤아 선배님이 노래 부르는 걸 보지 못한 게 아니다 보니 저런 자신감 있는 태도가 낯설었던 것이다.
“시작해볼까요?”
오늘 녹음을 도와줄 엔지니어님에게 눈짓을 보냈다.
“녹음실 안으로 들어가주세요.”
“헉! 벌써요?”
거만하게 턱을 치켜세우던 홍윤아 선배님의 어깨가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선배님이 소심한 몸놀림으로 녹음실 안에 들어갔다.
홍윤아 선배님은 척척 헤드폰을 쓰고 꼬깃꼬깃한 가사 종이를 펼친 후 마른 침을 삼켜냈다.
가사는 이미 외운지 오래였으나 긴장감 때문인지 익숙한 가사 종이를 곁에 두는 게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간 한 번 볼까요?”
“네. 선배님! 편하게 불러주세요. 연습이니까요.”
어어! 알았어!
연습이라는 말에 잔뜩 긴장했던 선배님의 표정이 한결 편해진다.
“녹음은 전부 해주세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첫 끗발이 개끗발이 될 수도 있었다.
엔지니어님이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기계를 조작했다.
어느덧 익숙해진 비파음을 시작으로 곡의 시작을 알렸다.
비파음에 멜로디가 더해지고 선배님의 목소리가 화합해 완벽한 노래가 완성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헤이~! 충고 하나 할까 이건 널 위한 곡이니까 들어봐!”
!!!!!
뭐야??
와아!
왜 이렇게 잘 불러?
녹음을 지켜보고 있던 스태프들이 술렁였다.
홍윤아 선배님과 오랫동안 프로그램을 같이 한 스태프들이기에 그녀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다.
스태프들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은, 내 손을 거쳐 탈바꿈한 선배님은 더 이상 과거 아마추어 홍윤아가 아니라는 점이다.
“Diamond가 네 두툼한 손가락에 끼워져 있어
Oh, 그래 네가 자랑하려고 끼고 다니는 그거 말하는 거야”
함께 듣고 있던 엔지니어님도 홍윤아 선배님의 노래가 나쁘지 않았는지 조금씩 어깨를 흔들면서 리듬을 타셨다.
곡도 좋고, 그걸 부르는 보컬의 실력도 괜찮으니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좋은 곡이 완성 되고 있었다.
‘그래도 디테일을 좀 깎긴 해야겠네.’
오늘 선배님과 내가 정한 우리들만의 목표가 있었는데, 이미 그 목표를 초과 달성한 상태였다.
선배님의 노래 실력으로 스태프들을 깜짝 놀래키는 것.
헌데 시작부터 이미 깜짝 놀라서 다들 경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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