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5화 〉 #73. 우놀 (7)
* * *
“언니, 혹시 가수 데뷔 준비해요? 왜 이렇게 잘 해!!”
“내가 잘한 거겠니? 해솔이가 날 잘 가르쳐준 거지. 다른 노래는 이만큼 못 불러.”
한 번에 녹음이 다 끝난 건 아니지만 일단 선배님에게 바깥으로 나오라고 말했다.
홍윤아 선배님은 나오자마자 스태프들의 감탄사를 받으며 쑥스러워했다.
윤아 선배님이 가수를 할 것은 아니므로, 한 곡 한정으로 누구보다 잘 부를 수 있게 됐다는 게 중요한 거다.
더욱이 제작진들은 한 곡만 잘 부른다는 게 잘 믿어지지 않았는지 단순한 겸손이라고 생각했다.
‘이거 진짜 반응 좋겠는데? 이렇게 잘 부르면 좀 진지하게 가야겠어.’
예능인지라 개그스러운 분위기를 아예 안 챙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청률을 위해서 예능 분위기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지할 때는 또 진지하게 꾸며줘야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법이었다.
“해솔아, 어땠어? 어느 부분을 고치면 될까? 사실 너무 긴장해서 내가 어떻게 불렀는지 기억도 안 나.”
“정말 잘 하셨어요. 한 번 들어보실래요?”
엔지니어 분이 센스있게 바로 선배님이 불렀던 녹음을 틀어주셨다.
우리가 선배님이 부른 것을 확인하는 사이 우놀 피디는 작가들과 다급하게 속삭였다.
“연습하는 거 안 찍었지?”
“네. 안 찍었죠.”
“아우! 진작 둘이서 계속 연습한다는 거 알았으면 찍었을 텐데. 연습 스케줄 이후로 더 없어?”
“다음 주에 뮤직비디오 촬영이잖아요. 연습을 하긴 하겠죠.”
“그럼 그때 무조건 따라가서 장면 따오자.”
“근데 그때도 해솔씨가 같이 연습을 해줄까요? 지금도 충분히 시간을 많이 내준 것 같던데.”
“화면 따게 한 번만이라도 부탁해봐야지.”
작가와 상의한 피디님이 기어코 우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왔다.
“연습 과정을 찍으려는 이유는 알지만, 그걸 굳이 찍을 필요가 있을까요? 물론 그게 나가면 시청자분들한테 선배님이 노력하는 모습을 알 수 있으니 좋긴 하겠죠. 근데 선배님을 보세요. 굳이 그걸 보여주지 않아도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첫날에 이 곡을 불렀던 선배님 실력이랑 지금을 비교해보면 알 거다.
이건 피나는 노력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변화라는 걸.
나 엄청 노력했어!!! 라고 대놓고 말하는 것보단 결과를 보여주는 것으로 선배님의 노력을 넌지시 보여주는 게 훨씬 고급스러운 자랑이 아니겠는가?
내 말에 설득 된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 분량으로 탁월할 장면을 놓친 것은 아쉬운지 피디님이 말했다.
“저희 같은 방송쟁이들은 장면이 쓰일지 안 쓰일지 상관하지 않고 찍어야 하는 건 다 찍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것들이거든요. 연습 장면을 쓸지 안 쓸지 모르겠지만 일단 찍어는 놔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다음에 또 연습할 때가 있으면 꼭 연락 주십시오. 언제 어디든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흠,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죠.”
내가 생각한 그림과 피디님이 생각하는 그림이 다를 수 있었기에 더 이상 반론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잠깐의 소란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녹음에 집중했다.
“선배님, 여기서 음정이 좀 떨리거든요. 이건 긴장 때문에 생긴 실수인 것 같으니까 알고만 있으시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부분은 제가 고쳐드렸던 건데, 이번에 다시 튀어나왔어요. 이 부분 주의해주세요.”
“응. 알았어.”
진지하게 얘기를 들은 홍윤아 선배님이 다시 녹음실로 들어갔다.
귓가에 들려오는 익숙한 리듬.
다시 홍윤아 선배님의 목소리가 멜로디에 더해진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의 연습을 헛되이 하지 않은 윤아 선배님의 목소리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 ? ?
“이번에 한 우놀 봤어?”
“아니, 아직. 근데 엄청 화제던데. 진해솔 나왔다며?”
“어!!! 야, 아직 안 봤으면 당장 봐. 졸잼이었어!”
“그렇게까지? 아이돌이 나와 봤자 뭐 얼마나 웃긴다고.”
“걔는 얼굴만 봐도 웃겨!!!”
코를 벌름거리며 외치는 친구의 말에 당황하면서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그렇겠지. 근데 그렇게 잘 생겼어?”
“이건 시발, 같은 사람이 아니라니까? 어떻게 인형이 걸어다니는 건지 진짜 이해가 안 됨. 실물 본 사람들 중에는 잠깐 기억이 안 난다는 사람도 있었어. 실물 본 순간 넋을 놔서.”
“와씨, 꼭 한 번 보고 싶긴 하다. 어떻게 생겼길래 그런 말들이 떠도는지.”
진해솔은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이미 인정받은 노래 실력과 알음알음 알려지고 있는 작곡 실력.
거기에 인종이 다른 해외에서도 아름다운 남성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 바로 진해솔이다.
“아무튼 우놀 꼭 봐! 아, 빨리 다음 주 됐으면 좋겠다.”
그렇게 친구에게 우놀 추천을 거하게 받은 그녀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을 켜서 우놀을 시청했다.
익숙한 얼굴의 홍윤아가 나오고 곧 게스트로 진해솔이 나왔다.
“허억!”
에어플레인은 국내 활동을 해도 잠깐이고, 곧 해외에 나가서 활동을 하기 때문에 이런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걸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쟤는 어째 더 잘 생겨진 것 같다?”
사람이 이렇게 잘 생길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잘 생긴 얼굴이면서, 오랜만에 본 진해솔은 더 잘 생겨져 있었다.
요즘 연예인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굴욕을 선사한다는 선명한 화질 속에서도 진해솔의 피부는 빛이 났다.
“쟤는 돈을 쏟아 부어서 얼굴 관리 하겠지?”
그러니 저렇게 점점 잘 생겨지는 게 당연한 일일 것이다.
홍윤아도 진해솔과 오랜만에 만났는지 반가워하며 얼굴을 보고 감탄한다.
“그렇지. 봐도봐도 새로운 얼굴이지. 저런 얼굴로 하루만 살아 봤음 좋겠다. 어떤 기분이려나.”
그리고 우놀의 특성상 게스트가 나오면 프로젝트를 하나 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무려 뮤직비디오를 찍겠단다.
“가능해?”
진해솔이 가수가 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시나리오겠지만, 가수는 홍윤아가 뮤직비디오 총괄은 진해솔이 맡는다고 했다.
“하긴, 저래놓고 카메라 뒤에서 스태프들이 다 해주겠지.”
그리고 숨 쉬듯이 불신을 드러낸 그녀의 앞에 이걸 보면 할 말 없을 거다! 라는 것처럼 진해솔이 팬을 잡는 게 보였다.
그렇게 시작 된 콘티 작업.
“와~ 쟤 금손이야? 도대체 못하는 뭔데?”
얼굴도 잘 생겨, 돈도 잘 벌어, 노래도 잘 불러, 곡도 잘 써.
너무 한 사람에게 많은 재능을 준 거 아닌가 싶어 신에 대해 원망을 하려는데, 그것도 부족했는지 그림까지 잘 그렸다.
순식간에 완성 되는 콘티들.
그리고 그 그림들을 통해 단순히 그림만 잘 그리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미리 제작진이랑 상의한 거겠지? 설마 진짜 저기서 아이디어를 낸 건 아닐 거야….”
사람이 적당히 잘 나가면 질투심이 치솟는데,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잘나면 경외심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진해솔은 너무 잘나서 보통 경외심을 갖게 하는 사람이었다.
‘CG일 게 분명하다는 소리도 많이 듣긴 하지. 저 얼굴로 왜 가수를 할까? 연기를 했으면 난리 났을 텐데.’
아이돌 활동 끝내고 배우로 전향을 해도 100% 성공적일 것이다.
저런 얼굴을 갖고 있는데, 누군들 그를 캐스팅하고 싶지 않겠는가?
연기도 못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안다.
진해솔의 팬은 아니지만, 예전에 나왔던 작품을 모두 본 그녀다.
진해솔은 처음으로 연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수준급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치이, 저 재능 중에 나 하나만 주지….”
그녀가 보고 있는 우놀의 진행은 스피드하게 진행 되고 있었다.
“푸하하하!!!!! 저게 된다고? 말도 안 돼! 아하학!”
제작진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란이 인다.
제작비를 따내기 위해 시작 된 게임.
예사롭지 않은 손놀림을 보여준 진해솔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경악하는 소리가 재차 들려오고, 룰렛은 기어코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진해솔의 바람대로 가장 좁으면서도 당첨 될 기회가 적어야 할 곳에 정확히 멈춰졌다.
처음에도 그렇고 두 번째도 그렇고 세 번째에서도 같은 결과였다.
이쯤 되니 모를 수가 없는 거다.
룰렛이 조작(?) 되었음을!!
얼굴 잘 생긴 애가 웃겨봤자 얼마나 웃기겠냐고 생각하던 그녀는 이걸 보고 편견을 버리기로 했다.
뭐든 못 하는 것 없이 잘 하는 놈이 웃기는 것도 잘 하더라!
그렇게 배꼽 빠져라 웃다보니 어느새 이번 주 방영분이 끝나 있었다.
“아~ 다음 주는 본방 챙겨봐야겠다.”
홍윤아와 진해솔이 보여주는 예상치 못한 케미가 굉장히 찰졌다.
요즘 주변에서 우놀 얘기가 많이 나오는 이유도 방영분을 보고 나니 이해가 됐다.
어떤 곡이 만들어질지 모르겠지만, 나오기만 하면 분명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오를 게 분명했다.
지루한 평일이 지나가고, 드디어 우놀의 다음 화가 방영 되는 날이 밝았다.
저번 주는 뒤늦게 다운로드 받아서 우놀을 봤지만, 이번에는 본방을 챙겨보기 위해 소파에 엉덩이를 얹었다.
우놀 시청률이 올랐다더니 프로그램이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광고의 수가 굉장히 많았다.
이번 주 우놀은 본격적으로 뮤직비디오 촬영을 준비하는 모습이 나왔다.
곡과 컨셉이 결정 되고, 본격적으로 뮤직비디오 촬영 준비를 하는 진해솔은 무척이나 진지해보였다.
저렇게 열심히 준비해도 결국 부를 사람은 홍윤아인 게 좀 아쉬웠다.
‘다른 멤버가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멘토하던데 쟤는 거기 안 나오나?’
거기 나와서 활약해주면 좋겠다는 사심이 스믈스믈 생겨나는 가운데, 장면이 바뀌었다.
며칠 후라는 걸 알 수 있게 옷이 바뀌고 장소도 바뀌어 있었다.
“벌써 곡을 보여준다고?”
1화만에 곡을 들려줄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제작진이 편집으로 요술을 부렸다.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려놓고 결국 곡의 초반만 들려주고 이후부터는 편집해서 들려주지 않은 것이다.
홍윤아가 곡이 좋다며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궁금함에 몸이 베베 꼬였다.
“비파 소리였구나! 엄청 좋네.”
초반 잠깐 나온 것이었지만 곡의 느낌이 굉장히 세련 됐다.
그리고 곡을 설명하는 진해솔의 말을 들으며 흥미로운 컨셉에 귀가 기울여졌다.
“홍윤아는 자격 있지. 대단한 사람이잖아.”
홍윤아의 이미지가 친근해서 그렇지, 사실 돈도 많고 명성도 높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갑질하는 사람들을 지적하고 혼내는 컨셉이라는데 참 찰떡이다 싶었다.
더욱이 홍윤아가 한껏 당황하며 이거 정말 날 떠올리고 썼다고?! 하는 모습이 굉장히 웃겼다.
“의외로 재밌네.”
특히 진해솔이 능글능글하게 굴면서 홍윤아를 치켜세우는 모습이 굉장히 재밌었다.
저번 주도 그랬지만, 이번 주에 보여주는 케미가 정말 찰떡이었다.
차라리 둘이서 듀엣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그랬으면 곡의 퀄리티도 훨씬 올라가지 않겠는가?
아주 잠깐 나온 멜로디였지만, 시작부터 귀를 사로잡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하필 저런 좋은 곡을….”
홍윤아의 노래 실력은 이미 널리 알려진 탓에 그녀에게 대단한 노래 실력을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프로그램의 화제성에 음원을 내면 높은 순위로 올라가긴 하지만, 그게 홍윤아가 노래를 잘 불러서인 건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이런 생각은 그녀만 하는 게 아니었다.
다음 주에 방영할 우놀을 기대하는 사람 모두의 공통 된 생각이었다.
모든 사람이 진해솔 같은 재능을 가진 건 아닌 법.
우놀의 진해솔 편을 시청하는 사람들의 공통 된 생각이 깨지기 시작한 건 다음 주에 방영 된 우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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