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6화 〉 #73. 우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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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실에 들어가는 홍윤아의 모습.
긴장한 홍윤아의 모습을 집중해서 카메라가 잡았다.
“예능은 편집빨이라더니….”
제작비를 타내기 위한 룰렛 게임도 내가 느꼈던 것보다 훨씬 재밌는 그림이 그려졌다.
덕분에 나는 홍윤아 선배님과 케미가 좋다며 호평을 들었다.
뿐만 아니라 음악방송 여러 번 나오는 것보다 예능에 한 번 나가는 게 인지도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게 사실인 듯 요즘엔 나잇대가 높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봤다.
사실 사람들이 얼굴을 알아보는 것에 일희일비할 정도의 위치는 아니었으나 평소와 달리 높은 연령대의 사람들이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이 낯설면서도 기분 좋았다.
“이게 윤아 선배님이 부른 곡이라는 거지? 확실히 목소리는 윤아 선배님이 맞긴 하네.”
“되게 잘 부르셨지?”
“어. 잠깐 들었는데도 되게 좋다. 가수를 하셨어도 됐을 정도로. 어떻게 사람을 개조시킨 거야? 그 짧은 시간에.”
“선배님이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으셔서 가능한 거였어. 그리고 딱 이 곡 하나만 잘 부르는 거야. 물론 내가 가르치지 않았을 때보다야 전체적으로 실력이 늘긴 했지. 근데 선배님이 가수가 될 게 아니잖아.”
재능도 갈고 닦아야 빛이 나는 법.
가뜩이나 재능도 떨어지는 선배님이 바쁜 스케줄 사이사이에 계속 노래 연습을 할 리 없었다.
“이거 빨리 음원 나왔으면 좋겠다.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됐어?”
오늘 우놀에선 노래를 조금 더 들려주긴 했으나 전곡을 다 들려주진 않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사람들이 우리 곡에 대한 관심이 더 쏠리고 있었다.
감질 맛나게 들려준 곡 때문에 사람들의 호기심이 자극 됐기 때문이다.
“이제 내일 찍을 거야.”
“준비 엄청 열심히 하던데.”
“열심히 하긴 했지. 아무래도 처음 해보는 분야다 보니까.”
뮤직비디오를 찍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콘티에 나와 있는 대로 빠르게 찍을 거라 길어도 이틀에서 삼일을 넘지 않는다.
사실 삼일이나 걸리지 않기 위해 열심히 준비를 해놨다.
될 수 있으면 이틀 안에 끝내고 싶다.
하지만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시간이 늘어나지 않으려면 홍윤아 선배님이 잘 따라 와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실력이 부쩍 늘었으니 잘 하시겠지.’
놀랍게도 선배님은 스케줄을 뛰면서도 대기 시간 때마다 춤을 연습하고 계시다고 한다.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 다소 필요성이 낮아지는 노래 연습은 뒤로하고, 춤에 올인을 한 덕분이었다.
“보러 가고 싶은데 안 되겠지?”
“안 될 게 뭐가 있어? 피디님한테 한 번 물어볼까?”
주아 누나가 촬영장에 온다고 하면 피디님이 좋아하면 좋아했지 싫다고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기왕 온 김에 출연해서 같이 춤을 춰준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을 일이었고 말이다.
“그럼 나 혼자 가기 뭐하니까 민영이랑 같이 갈게.”
“더 좋지.”
주아 누나가 후다닥 민영 누나에게 연락해서 스케줄이 되는지 물었고, 아무 일도 없어서 갈 수 있다는 확답을 받았다.
나는 곧바로 피디님께 연락을 넣어서 민영 누나와 주아 누나가 촬영장을 구경하러 오고 싶어 한다는 것을 전달했다.
연락을 받은 피디님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콜을 외치셨다.
두 대세 여배우가 와준다는데 마다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그녀들은 의류를 대여해준 사람이었다.
즉, 이번 프로젝트에 어떤 식으로든 한 발 걸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녀들이 촬영장에 놀러 온다고 해서 뜬금없다는 식의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것이다.
“뮤비에 잠깐 출연하는 건 어때?”
“뮤직비디오에?”
“응. 카메오로. 너무 갑작스러운 일인가? 누나들 촬영장에 오면 피디님이 분명 기대할 텐데.”
“흐음, 그럼 좀 꾸미고 가야겠네.”
주아 누나는 의외로 내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뭐야, 이미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었어?”
“후후! 당연하지. 먹기 좋은 먹잇감이 제 발로 온다는데 예능 피디가 그걸 놓칠 리 없잖아.”
“그럼 소속사에 말 좀 해봐. 괜찮은지.”
“알았어.”
다행이 주아 누나와 민영 누나 소속사 쪽에서 나쁘지 않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우놀 이번 프로젝트가 호평과 관심을 받고 있는지라 잠깐 나왔던 민영 누나와 주아 누나도 덩달아 화제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 효과를 톡톡히 봤는데, 다시 한 번 출연할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는 듯 했다.
? ? ?
내가 기획한 뮤직비디오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일단 소위 갑질하는 사람들을 마네킹으로 표현할 거다.
갑질이라는 게 어디 한두 분야겠는가?
직장 상관과 부하 직원, 사장님과 아르바이트생, 잘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등등.
꼽아보자면 계속해서 쏟아낼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모두 표현할 수 없었기에 마네킹으로 그들을 상징하기로 했다.
수많은 마네킹 사이를 걸어가며 홍윤아 선배님이 노래를 부른다.
처음은 덤덤하게, 하지만 천천히 곡이 진행 되면서 홍윤아 선배님의 춤과 노래가 고조 된다.
그들의 불의(不?)한 행동을 꾸짖기 위해서.
홍윤아 선배님은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다양한 옷을 갈아입게 될 예정이었다.
부하직원이 되었다가 직장 상관이 되기도 하고,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가 사장님이 되기도 한다.
명품과 귀금속으로 치장했다가 낡고 값싼 남루한 옷을 입기도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윤아 라는 사람의 가치는 달라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부 이해 되셨어요?”
나는 뮤직비디오 촬영 전에 윤아 선배님에게 다시 한 번 콘티 설명을 해줬다.
이미 콘티를 받아서 머릿속에 넣어두셨겠지만 내가 직접 이 장면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하나하나 설명하는 걸 들으니 색달랐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셨다.
“너 정말 이런 일 처음 하는 거 맞아? 왜 이렇게 잘해? 장면 하나하나 마다 의미가 담기지 않은 게 없네.”
“이 정도는 해야 해요.”
뮤직비디오의 1초를 쪼개고 쪼개서 분석하는 게 바로 아이돌 팬들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직접 의미를 부여한 것도 있지만, 별 생각 없이 집어넣은 장면도 팬들의 다양한 해석을 통해 엄청난 의미가 담긴 장면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이 정도의 의미를 담은 장면은 만들어줘야 하는 거다.
그래야 팬들도 내가 만든 뮤직비디오를 하나하나 뜯고 맛(?)보며 즐길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진짜? 그렇게 다 뜯어본다고?”
“네. 의미를 담지 않은 장면이 나와도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이야~ 네 말 들으니까 더 긴장 되네.”
“걱정하지 마세요. 잘 하실 거에요. 연습 정말 많이 하셨잖아요.”
“근데 내가 좀 걱정 되는데, 내가 예능 이미지가 강하잖아. 근데 여기선 너무 멋진 역할이란 말이지? 근데 사람들은 그동안 나를 봐온 게 있다보니까 내가 진지하게 뭐를 해도 다들 웃을 준비부터 하거든.”
즉, 이렇게 많은 의미를 담은 뮤직비디오에 괜히 자신이 나와서 의미가 퇴색 되거나 웃음거리가 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는 의미였다.
“저는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어요.”
“응??”
“주제가 아무래도 좀 무겁잖아요. 제가 뮤직비디오 컨셉으로 잡은 게 갑질하는 사람들을 혼내는 건데 이걸 한 마디로 설명하면 비판이에요. 아무리 좋게 꾸며봤자 누군가한테는 불편한 주제의식이란 말이죠.”
“음…그렇지.”
“제가 초반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선배님이 중요한 거에요. 선배님만 할 수 있는 컨셉이었던 거고요. 누군들 비판을 받으면 기분이 좋겠어요. 근데 선배님이 해주시니까 사람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거에요.”
“아…그런 거야?”
내 말에 점점 홀려가는 건지 눈빛이 흐릿해진다.
“네! 선배님을 생각하고 만든 곡이라고 했잖아요. 선배님의 예능적인 이미지가 무거운 주제인 곡에 활력을 불러 일으켜주고 있는 거에요.”
“허.”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주억인다.
드디어 넘어왔다!
나는 흐뭇하게 웃고 홍윤아 선배님의 손을 꽉 잡았다.
“선배님, 제가 존경하는 거 아시죠?”
“야야. 또 나 부담주려고!”
“진심이에요. 오늘 뮤직비디오 촬영 잘 부탁드립니다!”
“네가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당연히 잘 해야지. 나도 열심히 연습했어.”
“알죠알죠. 잘 알죠.”
누구보다 열심히 해줬다는 것을 안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오늘 도와주러 오신 스태프들 한 명 한 명에게 가서 인사를 나눴다.
황공(?)해 하는 사람도 있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알겠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다소 퉁명스럽게 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워낙 방송국이 험난한 곳이다 보니 인성 좋은 사람은 잘 살아 남지 못하는지라 이 정도 반응이면 대단한 거였다.
허니 엔터 출신인 우리도 데뷔 초에는 많은 무시를 당했었다.
‘우리보다 못한 엔터 출신들은 얼마나 무시를 당하겠어. 그러니까 뜨면 사람이 달라지는 거지.’
자기가 당한 게 있다 보니 그걸 보상 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깔려 있을 거다.
갑자기 뮤비 촬영 준비하다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촬영장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참견을 해댔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미술을 담당해주시는 분과의 소통이었다.
“어떠세요?”
“나쁘지는 않은데 역시 마감이 좀 아쉽네요.”
“시간이 촉박하다보니….”
“네, 그렇죠.”
배경을 CG로 하면 좋겠지만, 그러려면 제작비가 엄청나게 뛰어버린다.
그래서 적당히 타협이라는 걸 하기로 했는데, 바로 어느 정도 배경을 만들고 나머지 디테일을 CG로 처리한다는 거였다.
“제가 살짝 손을 좀 대도 괜찮을까요?”
“어느 부분이 마음에 안 드시는 건가요? 말씀하시면 저희가 다시 만져보겠습니다.”
그렇게 내가 촬영 준비를 하고 있는 사이, 홍윤아 선배님은 헤어 메이크업을 받고 옷을 갈아입으셨다.
우놀 제작진들은 이 과정을 꼼꼼하게 찍어냈는데, 잠깐 시간이 날 때면 꼭 말을 걸었다.
“잘 준비 된 것 같으세요?”
“아…정신이 좀 없긴 하네요. 아무래도 처음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이렇게 준비 된 걸 보니까 뿌듯해요.”
“윤아 언니랑 같이 작업해본 소감은요?”
“소감이요? 일단 대단하다? 선배님이 오랫동안 많은 분들한테 사랑을 받는 이유를 알 것 같았어요. 솔직히 평소에 하던 일이 아니다 보니 분명 힘드셨을 거거든요. 그런데 힘들어 하시면서도 꾀를 내면서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시더라고요. 촬영을 하기 전에도 존경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촬영을 함께 해보면서 본받을 점이 많은 분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예전보다 더 존경하게 됐달까요?”
“윤아 언니는 오히려 해솔씨가 대단하다고 하셨어요. 굉장히 실력이 뛰어나시다면서요. 천재인 것 같다고 하셨거든요.”
“제가 천재요? 에이, 너무 과분해요. 선배님이 잘 따라와주셔서 가능한 거였어요. 저는 그냥 살짝 등을 밀어드린 것뿐입니다.”
작가님과 겸손하게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니 홍윤아 선배님이 준비를 끝내고 촬영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와~ 오늘 예쁘신데요?”
“화장 엄청 두껍게 했어.”
내가 예쁘다고 칭찬을 하니 머쓱해지셨는지 괜히 화장발이라며 오리발을 내미신다.
“그나저나 촬영장이 되게 크네. 어휴, 저기서 촬영할 생각 하니까 벌써부터 침이 마른다.”
“리허설 한 번 해보실래요? 부담 없이요.”
“음…그럴까?”
“저도 찍히기만 해봤지 찍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나오는지 직접 보고 싶었어요.”
“너도 긴장했어?”
“어떻게 긴장을 안 할 수 있겠어요. 저한테도 익숙하지 않은 작업인 걸요.”
그렇게 우리 둘은 합심해서 카메라가 켜지지 않은 틈을 타 리허설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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