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502화 (502/849)

“심한 낯가림이 문제라면 애들이 그런 성격이라는 걸 사람들한테 알려주면 되지 않을까요?”

“어떻게? 뜬금없이 나타나서 저희가 낯가람이 심합니다! 라고 말을 하라는 거야?”

“유티비를 이용해야죠. 저희들도 자체 컨텐츠로 팬들한테 호평 받았잖아요.”

“지금 직원들한테 급하게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그 중에 자체 컨텐츠가 있기는 해.”

문제는 그걸 누가 봐주냔 거다.

“조금의 화제성이라도 갖고 있다면 몰라도 아예 인지도가 바닥인 상태에서 자체 컨텐츠를 만들어봤자 보는 사람이 없을 게 분명해. 그리고 자체 컨텐츠를 한다고 해도 걔네들이 잘해줄지 확실하지도 않고.”

자기네들끼리 있다고 해도 낯선 스태프들과 예능을 찍는 것에 얼마나 긍정적일지 모르겠다.

“그럼 저희들이 좀 도와주죠, 뭐. 저희도 선배님이 초반에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너희는 처음부터 굉장히 잘하고 있었어. 살짝 등만 떠밀어주면 되는 정도였지.”

“미안해서 그래요?”

“…예민한 시기라서 이런 부탁을 하는 게 더 어렵긴 해.”

재계약을 해야 하는 시기.

회사는 우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고, 에어플레인은 더 좋은 조건의 재계약을 받기 위해 회사에게 빚을 만들고 싶은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맞물려서 부탁을 하면 안 된다는 쪽과 그럼 후배 그룹은 이대로 계속 방치하자는 거냐며 미래를 죽이는 일이라는 쪽으로 나뉘게 됐다.

“누님은 어느 쪽이에요?”

“나는 후자야.”

“저도 그럴 줄 알았어요.”

허니 엔터는 연주 누님의 모든 것이다.

지금은 현오 덕분에 그 우선순위가 흔들렸으나 현오 만큼 허니 엔터도 그녀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임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제가 뭘 바라는지 아시잖아요. 그거 해주시면 적극적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레이블을 차려서 따로 떨어지기 위해선 후배 그룹이 잘 되어야 했다.

그래야 허니 엔터에서도 우리를 편하게 놔줄 수 있지 않겠는가?

“레이블…하~ 그것도 내 스트레스 원흉 중 하나라는 걸 알고 있는 거니? 아이돌이 따로 레이블을 차려서 나가는 건 여지껏 한 번도 없었던 일이야. 후배 그룹이 데뷔해서 너희들 관리를 소홀히 할 생각도 전혀 없고. 사람이 부족해서 힘들어지면 새로 고용을 하면 돼.”

“욕심이라고 생각해요? 전 회사에서 애들을 잡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재주가 많은 아이들이다.

각자 하고 싶은 것들도 많고, 그럴 재주가 있음에도 그룹 활동을 위해 참고 있었다.

이번은 어떻게든 계약을 한다고 치자, 그럼 그 다음은 어떨까?

‘거의 불가능하지. 몇 주년을 기념해서 한 번씩 뭉치는 건 가능하려나?’

그 정도는 다른 그룹도 했던 적이 있는 걸로 안다.

하지만 다들 소속사가 달라서 다시 뭉치기까지 굉장히 복잡한 이해 관계가 오갔을 거다.

“레이블을 만들면 굳이 애들이 다른 곳으로 갈 필요가 없어지는 거에요. 레이블이 잘 되면 그만큼의 몫이 애들한테 갈 테니까요.”

오로지 에어플레인의 활동을 돕기 위해 만든 회사.

“전문가들을 고용해서 돕게 할 거에요. 그런데 그걸 허니 엔터가 감당할 수 있겠어요?”

내가 계획하고 있는 바를 이루면 허니 엔터가 너무 커진다.

더욱이 허니 엔터는 주주 회사.

회사의 덩치를 키우는 것을 누님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저야 누님이 여기 있으니까 다른 곳에 안 가겠지만 애들은 그게 아니잖아요. 전 애들이랑 오랫동안 같이 활동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그룹 활동을 오래 지속한 아이돌이 없다고 해서 저희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꿈이 크구나.”

“애들이 변하질 않았어요. 저는 그거에 희망을 갖고 있고요.”

만약 내 뜻대로 안 된다 해도 해볼 수 있는 일은 다 해보고 끝내고 싶었다.

그래야 미련이 안 남을 테니 말이다.

다시 한 번 연주 누님에게 레이블에 대한 의지를 어필한 나는 후배 그룹 멤버들을 만나러 가보기로 했다.

기왕 도와주기로 했으니 확실하게 돕기 위해서라도 애들이랑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애들은 지금 어디서 뭐하고 있어요?”

“애들?”

“우리 후배님들 말이에요.”

“그 아이들은 왜?”

“친해져야죠. 낯가림 심하다는데 미리미리 친해지면 좋잖아요.”

애들을 도울 때라는 말을 생략했음을 알면서도 연주 누님이 순순히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애들 지금 연습실에 있대.”

“점심은 먹었는지 물어봐주세요. 친해지는데 밥 같이 먹는 게 최고잖아요.”

사실 그 나이대면 쇠도 씹어 먹을 나이인지라 밥을 먹어도 상관이 없기는 할 거다.

하지만 다행히도 점심을 쫄쫄 굶고서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컴백 후 반응이 너무 안 좋았다 보니 돌파구는 실력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저 가볼게요.”

쪽!

기습적으로 연주 누님의 입술에 뽀뽀를 날린 후 방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누님이 웃는 소리가 들려 나도 덩달아 미소를 지은 채로 걸어갔다.

♧ ♧ ♧

“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으헉! 서, 선배님!?”

“헉!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야야! 정신차려! 빨리 인사!”

“아, 아, 아, 안녀엉하, 하세요!!”

내가 갑자기 불쑥 등장해서 깜짝 놀랐는지 애들이 경기를 일으키듯 놀라며 우렁차게 인사를 했다.

“이야, 귀청 떨어지겠다. 인사를 엄청 크게 하네.”

““죄송합니다아….””

얘들은 인사도 다 함께 하더니 사과도 굉장히 열심히 했다.

하긴 지금이 뭐든 다 열심히 할 나이이긴 했다.

‘허니 엔터에서 낸 그룹 중에 최악의 데뷔를 한 애들이라 의기소침 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

아직까지는 애들에 대해 아는 게 없었기에 무슨 매력을 갖고 있는지 알려면 친해져야 할 것 같았다.

생김새는 아직 방송물을 덜 먹은 신인치고 굉장히 잘 생긴 편이었다.

‘확실히 컨셉은 잘 잡았어. 다들 상큼하게 생겼으니까.’

키는 17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구성 되어 있었고 체격은 호리호리한 편이며 다들 예쁘장한 미소년들이었다.

나이도 미성년자가 반 이상이고 나이가 제일 많은 멤버가 20살로 리더를 맡고 있다고 했다.

연습생 기간이 짧아서 안면은 익히지 못했지만, 멤버들의 입에서 자주 들어온 애들이 몇 명 있었다.

“연습하는데 방해해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선배님! 이렇게 뵙게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리더 블루가 멤버들 중 가장 먼저 나서서 내 말을 받았다.

하지만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감정이 보였다.

‘부담스러워 죽으려고 하네.’

그래도 리더라고 저기 똘똘 뭉쳐서 긴장하고 있는 애들보다는 용기가 있었다.

“그,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오셨는지 모르겠어서…혹시 저희가 모르는 스케줄이 있었나요?”

내가 난데없이 나타나니 걱정부터 든 모양이었다.

“긴장하지 않아도 돼요. 무슨 일 있는 거 아니고, 응원차 들린 거거든요. 데뷔했는데 휴식기라서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눴잖아요.”

“아아아!!! 감사합니다. 사실 저희가 선배님 진짜 팬이거든요.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애들이 왜 예능에서 기를 못 피고 폭망했는가.

지금 얘네들이 하는 행동을 보니 짐작이 된다.

삐걱삐걱-

목소리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서 ‘나 긴장하고 있어요!!!’라고 외치고 있었다.

몸의 움직임은 기름칠 안 한 기계라도 되는 것처럼 뻣뻣하기까지 하다.

이대로면 친해지는 건 절대 불가능할 거다.

방법은 하나.

“밥을 안 먹고 연습하고 있다고 해서요. 피자를 좀 시켰는데 괜찮을까요?”

“우와아악!!! 피자!!”

아직 어린 티를 벗어나지 못해 토실토실한 볼살을 갖고 있는 다람쥐 닮은 미소년이 어울리지 않은 괴성을 내질렀다.

깜짝 놀라 그쪽을 바라보니 소리를 지른 당사자도 깜짝 놀랐는지 자기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직원들이 얘네들 보고 예능돌이 딱이라고 했었다고 했나?’

낯가림 때문에 꽁꽁 숨겨져 있지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기세가 심상치가 않다.

‘일 잘하는 직원들이 왜 얘네들을 뽑았나 궁금했는데 역시 이유가 있었네.’

이 정도로 싹수가 있는 녀석들이라면 밀어주는 것이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아직까진 예의를 잘 지켜서 더 보기 좋기도 하고 말이다.

잠시 후.

피자가 배달 됐다.

멤버가 7명이라 피자를 몇 판 시켜야 하나 고민했다가 젊은 나이를 고려하여 1인 1판으로 주문을 했다.

“우와아~”

“1일 1판이래. 엄청나다.”

“플렉스야. 플렉스!”

작은 목소리로 자기들끼리 수군수군거린다.

내가 귀가 좋아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못 들었을 속닥거림이었다.

“피자는 좀 다양하게 시켰거든요. 각자 먹고 싶은 걸로 섞어가면서 먹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배님, 이쪽으로 아, 앉으세요. 그,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피자가 손아귀에 쥐여지니 낯도 좀 사라졌는지 옹기종기 모여 있던 멤버들이 나에게 자리를 권했다.

마지막엔 어디 기어들어갈 것처럼 목소리가 작아지긴 했지만, 나한테 말을 걸었다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도 나름 나를 무척 신경 썼는지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방석을 하나 꺼내서 그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앉지 않으면 얘네들도 앉지 않을 것 같았기에 순순히 방석에 앉았다.

“그냥 바닥에 앉아도 됐는데. 혼자 방석에 앉아 있으려니까 부담스럽네요. 말은 천천히 놓을게요. 그래도 괜찮죠?”

“네!! 그리고 전혀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들이 연습하느라 온 몸이 먼지투성이거든요. 그래서 바닥에 앉아도 문제없습니다! 그리고 바닥에 저희 땀이 막 흘려져 있어서 꼭 방석에 앉으셔야 합니다.”

“제가 비록 연습생 시간이 길진 않았어도 데뷔하고 나서는 연습실에서 멤버들이랑 살다시피 했거든요. 저도 여기가 되게 익숙한 사람이에요. 그래도 절 위해서 준비해준 거니까 앉아 있을게요. 챙겨줘서 고마워요.”

서로가 어색한 건 사실인지라 얘들과의 대화거리는 순식간에 떨어졌다.

그나마 피자가 앞에 있어서 나는 피자 냄새만 맡고 있는 애들에게 말했다.

“편하게 먹어요. 그래야 저도 먹죠.”

“앗! 넵. 잘 먹겠습니다! 너희들도 빨리 인사해.”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불편하지 말라는 의미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피자를 가장 먼저 손에 들었다.

애들도 내가 먹는 걸 확인하니 그제야 피자를 손에 들었다.

문제는 피자를 먹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애들이 내 눈치를 본다는 것이었다.

피자를 먹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슬그머니 리더를 향해 물었다.

“내가 많이 부담 돼요?”

“네, 네?! 아니요!!! 절대 부담 안 됩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죠. 사실 오늘 여러분들에 대한 얘기를 살짝 들었어요.”

“아…!”

내가 갑자기 여기 온 이유가 뭔지 많이 궁금했던 걸까?

내 말을 듣고서 애들이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여댔다.

“그…말을 들으셨다고 하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건데 저희가 문제가 좀 있어요.”

“네, 낯가림 때문에 활동하는 게 어렵다고요.”

“네에.”

“저희는 그게 큰 문제가 될 줄 몰랐거든요.”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한데 용기가 나질 않아서….”

피자 먹다가 채하겠네.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터져 나온다.

어느덧 피자를 먹던 속도도 현저히 느려졌다.

애들 밥은 좀 먹이고 말을 꺼낼 걸 그랬다.

“아무래도 저희는 끼가 부족한가봐요.”

“선배님 후배로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죄송합니다.”

시무룩해져서 축 쳐진 어깨를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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