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큼 잘 되진 않았어도 아직 기회가 남아 있잖아요. 너무 실망하지 말고 힘내요.”
이 어린애들이 아이돌로 데뷔해보겠다고 어린 나이에 얼마나 많이 고생을 했겠는가?
특히 이 세상에서 남자는 굳이 아이돌이 되려하지 않아도 편하게 먹고 지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도 자기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서 실력을 쌓고 데뷔까지 했다.
헌데 정작 크게 문제가 될지 몰랐던 낯가림에 의해 소리 소문 없이 묻혀버렸다.
‘내가 얘네들이라고 해도 자괴감이 엄청날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이 어디 그리 쉽게 변하겠는가?
성격을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근데 생각해보면 낯가림이 있는 연예인이 없는 건 아니잖아.’
그런 사람들도 연예계에서 활동하려면 있는 낯 없는 낯 전부 끌어 모아서 적응을 한다.
얘네들의 낯가림을 아예 없앨 수도 없고, 성격을 단숨에 바꿀 수도 없으니 방법은 하나뿐이다.
“혹시 큰 실례가 아니라면 조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희가 뭐가 문제인지는 아는데 할 수 있는 게 마땅히 없어서요.”
“그래서 계속 연습만 하고 있던 거에요?”
“네에.”
“이거밖에 할 일이 없어요.”
푸시를 아무리 해봐도 반응이 없으니 회사에서도 어쩔 수 없이 활동을 끝낸 상태.
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음 컴백을 기다리는 일밖에 없었다.
“흐음, 제가 뭐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분들보다 조금 더 일찍 이쪽 생활을 한 선배니까 몇 마디 할게요. 제가 한 말이 크게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한 말이니까 편하게 들어줘요.”
“감사합니다!!! 신경 써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인데…. 금과옥조로 삼겠습니다!!”
그, 금과옥조?
저게 무슨 뜻이었더라?
어린 아이가 쓰는 말이라기엔 너무 올드한 단어가 나와서 순간 당황했다.
내가 여기서 당황하면 얘네들은 두 배로 당황할 것 같았기에 표정관리를 하며 말했다.
“연예계에서 활동을 했던 걸 곰곰이 떠올려보니까 여러분들처럼 낯가림을 하는 사람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거든요.”
“그분들은 어떻게 낯가림을 극복하셨을까요?”
굉장히 심각하게 내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슬슬 부담이 되려고 한다.
내가 해줄 말이 그리 대단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쓰읍, 진짜 제대로 도움을 줘야 하나.’
말로만 하는 조언을 얘네들이라고 안 들어봤겠는가?
자기들의 낯가림을 가장 고치고 싶은 것은 본인들일 것이다.
“노력이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노력.”
“아…! 노력!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애들이 내 말에 실망한 태도를 안 보이려고 애쓴다.
남자 놈들을 귀여워하는 건 역겨운 일이지만,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애기들인지라 귀여워해도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래요. 가령 선배님들한테 부탁을 해서 도움을 받는 것도 노력 중 하나겠죠.”
“…네? 도움이요?”
“우리도 데뷔초에 선배님들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사실 우리는 도움을 받을 필요없이 데뷔초부터 화제를 모았다.
내 얼굴이 워낙 어그로가 잘 끌리는 미모가 아니겠나?
괜히 비주얼 멤버라는 게 그룹에 필요한 게 아니다.
그 미모로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이후 다른 멤버들의 매력으로 코어팬을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우리의 매력은 멤버 중 구멍이 없는 실력이었다.
유일한 구멍은 나였는데 빠르게 실력을 쌓았기에 문제가 사라졌다.
얘네들도 초반에만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을 어필한다면 후에는 자연스럽게 팬이 뭉치기 시작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우리도 받았던 걸 후배들한테 베풀고 싶다는 뜻이에요.”
“선배니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곧바로 눈치 챈 애도 있고, 그렇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애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모두가 내 말의 의미를 확신했다.
핵심은 쓸데없이 조언이랍시고 말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두 팔 걷고 직접 도와주겠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조언은 많이 들어봤어도 직접 도와주겠다고 손 내민 사람은 얼마 없었을 거다.
직원들이 아무리 고민을 해봤자 내가 도와주는 것만큼의 효과를 보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정들어.”
“히잉. 정들면 안 돼요?”
“어허이, 낯가림 심하다면서요. 벌써 나은 거에요?”
애들이 과하게 감동을 받더니 울먹이기 시작했다.
원래 아기들은 한 명이 울면 다른 아기들도 따라서 울지 않은가?
그 울음을 빠르게 주변 멤버들에게로 전파 되었다.
이러다가 한 바탕 울음바다가 만들어질 것 같아서 일부러 좀 퉁명스럽게 말했다.
“저희가 뭐라고…사실 도움을 주실 이유가 없는 거잖아요.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데 정말 괜찮을까요?”
“노력. 안 할 거에요?”
연예계.
스타가 되기 위해서 별의 별 짓을 다 하는 곳이다.
안 좋은 방향으로는 자기 몸을 함부로 팔아서 기회를 얻으려 하는 이도 있을 정도가 아닌가?
그에 비하면 선배에게 좀 뻔뻔스럽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아주 쉬운 노력에 불과했다.
“합니다! 해야죠!”
다행이 이들은 기회를 놓칠 만큼 멍청하거나 성공에 목마르지 않은 상태는 아니었다.
리더가 어쩔 줄 모르고 있는 멤버들에게 눈치를 주자 재빨리 태도를 바꿔서 소심하게 매달려왔다.
“부,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부탁드립니다!!!”
“도와주세요!!”
“저희가 꼭 은혜 갚겠습니다!”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태도를 바꾼 멤버들이 90도로 꾸벅 고개를 숙이며 부탁을 해왔다.
“인사 받으려고 한 말은 아닌데 그런 태도는 마음에 드네요. 열심히 합시다. 우리 후배님이 잘 되어야 우리도 편해지거든요. 일단 직원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가져 올 때까지 기다려봐요. 그때까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한 가지에요.”
“해야 할 일이요….”
“말씀만 해주세요!”
열심히 경청하는 아이들을 향해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제일 중요한 거에요. 그러니까 잘 들어요.”
“네!!!!”
“넵!!”
귀를 쫑긋쫑긋 세우고 있는 멤버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엄청나게 친해지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낯가림을 하지 않을 정도로.”
“!!!”
“아아!”
“친해져요…?”
“저희가 선배님이랑 감히 그래도 되는 걸까요?”
“반드시 그래야 해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서 낯가림 때문에 제대로 활약을 못한 게 문제인 거잖아요. 도와준다고 해도 나한테 낯가림을 하면 소용이 없죠.”
에어플레인 진해솔과 합법(?)적으로 친해질 기회인데 싫는가 싶어 바라보니 다들 설레어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일단 호칭부터 정리할까요?”
친해지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호칭정리가 아닐까?
“호칭이요?”
“어려워서 안 된다는 건 없는 겁니다. 지금부터 시작! 하면 우리 모두 형 동생이 되는 거에요. 처음에는 어색하고 자꾸 실수를 하겠죠. 근데 그 실수도 재밌을 겁니다. 왜냐면 우린 이제부터 게임을 할 거거든요.”
“게임이요?”
“가볍게 야자타임부터 시작할까요?”
상과 벌칙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그들 앞에 점점 식어가고 있는 피자.
사람을 가장 원초적으로 쪼잔하게 만들 수 있는 피자가 게임의 재미를 높여줄 거다.
♧ ♧ ♧
후배 그룹을 돕기로 했다는 결정은 나 혼자서 한다고 해도 멤버들에게 전달을 안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강준 : 그걸 왜 형만 해? 나도 시간 낼게.]
[남은규 : 후배님들이 힘들다면 우리가 좀 도와줘야지. 애기들이라며?]
[나 : 응. 제일 나이 많은 리더가 20살이야.]
[제키 : 어리네.]
[남은규 : 우리도 그 나이 때가 있었는데…. 아련하구만!]
[강경태 : 나도 시간 낸다. 스케줄 잡어.]
[제키 : 곡도 만들어줘야 하나?]
[나 : 그 정도까진 안 해도 될 거야. 얘네들이 곡이 안 좋아서 못 뜬 건 아니니까. 얘들이 실력이 부족하진 않더라고. 그래도 아마 주면 펑펑 울지 않을까? 애들이 엄청 순하고 착해.]
내게 사정을 전달 받은 멤버들은 후배 그룹을 돕는 일을 생각보다 긍정적으로 봐줬다.
바쁘게 개인 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흔쾌히 시간을 내겠다고 한 것이다.
[기우연 : 고마워요, 형들!! 걔네들 진짜 착하고 좋은 애들이거든요. 이번에 잘 안 됐다고 해서 되게 속상해하고 있었는데….]
특히 우연이는 후배 그룹에서 아는 동생이 있어서 내가 전달한 소식을 굉장히 반겼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우리 그룹이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자칫 귀찮다고, 혹은 바쁘다고 거절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빼지 않고 의욕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짜식들. 이젠 제법 든든하네.’
후배들의 낯가림이 아예 답이 없으면 몰라도 저번에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희망을 봤다.
예사롭지 않은 낯가림으로 회사 직원들의 걱정을 샀던 멤버들은 내가 계속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자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을 했다.
‘확실히 다들 좀 낯가림이 있기는 해. 그런데 얘기를 들었던 것보다 심한 건 아니었어.’
결국 방송국에서 심한 낯가림으로 문제가 됐던 이유는 아직 어린 멤버들이 사회의 냉정함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인 걸로 보였다.
‘우리도 데뷔했을 때 여기저기서 무시당했는데 얘네들이라고 안 당했을 리가 없지. 오히려 애들 나잇대가 어리니까 더 만만했겠지.’
허니 엔터가 보호를 해준다고 해도 완벽하게 다른 사람들의 악의를 막아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가뜩이나 순딩하고 낯가림 심한 애들이다.
낯설고 차가운 사회생활이 이들에게 폭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우리들은 경태 형도 심지가 굳건 했고, 나와 제키도 만만한 인상은 아니었다.
그나마 남은규와 기우연이 좀 순딩한 성격이긴 한데, 강준이 애들을 잘 챙기고 다녔기에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후배 그룹 멤버의 상태를 보면 마땅히 외부로부터 멤버들을 지킬만큼 강단 있는 애가 없었다.
‘그룹에는 한 명쯤은 기가 센 애가 있어야 되는데.’
마냥 착하다간 호구 당하고 코 베인다.
문제는 코 베인 걸 자기들끼리 속에 담고 낑낑거리다가 곪아버리는 거다.
‘그러지 않으려면 최대한 빠르게 떠야 될 거야.’
우리도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방송국 사람들의 엄청난 태도 변화를 직접적으로 느낀 적 있다.
아마 그런 방송국 직원들의 태도 변화가 연예인 병을 만드는 원인이 될 것이다.
갑질을 당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굽신 거려야 했던 방송국 직원들이 인기를 얻자마자 태도를 바꾸니 말이다.
그건 정말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짜릿하기도 하고,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지.’
아무튼 이런 것들은 아직 후배들한텐 멀디 먼 얘기였다.
이런 조언은 나중에 애들이 잘 됐을 때나 해주는 게 맞을 것이다.
지금 해봤자 잊히거나 공감하지 못할 일일 테니 말이다.
후배를 도와주기로 결정을 내리고 직원들이 방법을 궁리해올 때까지 시간은 널널했다.
나는 집에서 육아를 하며 하루를 굉장히 짧게 보내고 있었다.
쌍둥이들을 돌보다보면 24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났던 것이다.
그나마 밤에는 실 유모님이 쌍둥이들을 전담으로 돌봐줘서 잠은 설치지 않을 수 있었다.
정화씨는 예정했던 대로 산후조리원에 들어가지 않고 바로 집에 왔다.
실 유모님이 장담했던 것처럼 정화씨를 살뜰하게 챙겼다.
이곳 산후 조리를 어떻게 하는지 자세히 공부한 후에 그녀가 알고 있는 산후조리 방법을 적절히 섞은 방법으로 정화씨를 돌봐서 선뜻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역시 전문가한테 맡기는 게 최고야.’
정화씨의 몸은 마치 아이템의 도움을 받은 것처럼 빠르게 회복했다.
정령이 공기를 따듯하게 덥혀서 혹여나 몸이 차가워지지 않도록 했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완전히 막아주었다.
또한 각종 보양식을 만들어서 몸의 회복을 도왔는데, 보양식을 먹으니 젖이 잘 돌아서 쌍둥이들이 배부르게 모유를 먹을 수 있게 했다.
‘모유라는 게 아무리 많이 나와도 손톱만큼도 안 되는데 진짜 신기하다니까.’
실 유모님이 유능하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아이들이 태어나니 더 절절하게 알 수 있었다.
한 명도 아니고 무려 쌍둥이가 태어났는데 우리 집은 여전히 평화로웠고 눈만 뜨면 우는 게 일인 갓난아기들의 울음소리로 고통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애기를 키워 본 집이면 알 거다.
밤에 푹 잘 수 있는 것과 아이들 울음소리에 고통 받지 않는다는 것.
온전한 시간에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그건 정말 큰 축복이었다.
‘이래서 사람 쓰는 거지.’
그녀를 고용하는데 들인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은 유능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