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505화 (505/849)

내가 멤버들과 의견을 모아 후배들을 돕겠다는 소식을 회사에 전달하고 난 후.

두 갈래로 나뉘어 다투던 직원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바꿔 우리를 어떻게 이용해서 후배 그룹을 띄울지 고민에 들어갔다.

후배 그룹의 이름은 리멤버.

영원히 기억 되는 아이돌 그룹이 되자는 의미였는데 어쩐지 그룹명에 맞지 않은 운명을 맞은 아이들이다.

멤버 구성원은 블루, 다니엘, 엠비, 초원, 키유, 영웅, 아이스.

총 7명으로 나이가 제일 많은 이는 리더인 블루였다.

그 아래로 다니엘, 엠비, 키유는 19살.

초원, 키유는 18살

영웅은 17살

막내는 아이스로 16살이라는 어린 나이대의 소년들이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실력이 부족한가 싶을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연습하고 있는 모양이네.”

“실력 좀 볼까?”

“기척 내지 말고 조용히. 괜히 방해할라.”

다행이도 멤버들은 후배들에게 관심이 꽤 있었다.

낯가림이 심해서 문제가 됐다는 걸 듣고는 촬영을 하기 전에 미리 멤버들과 친해지기 위해 시간을 따로 낼 정도로 말이다.

너무 우르르 몰려가면 부담스러워 할 수 있었기에 시간이 되는 애들만 모이기로 했다.

한 마디로 스케줄 때문에 본의 아니게 못 온 두 사람(우연이와 경태 형) 빼고 전부 모인 것이다.

“나쁘지 않은데? 아니, 잘 하는 것 같아.”

“나이가 20살도 안 됐는데 저 정도면 엄청 잘하는 거 아니야?”

“아~ 내가 나이 생각을 못했네.”

남은규와 강준이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후배들은 나와 만났을 때처럼 연습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어찌나 열정적으로 연습을 하는지….

“어휴, 저러면 연골 빨리 나가는데.”

애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안무를 했다.

어째 음방 무대에서 봤던 것보다 안무가 더 화려하게 바뀌어 있다.

계속 같은 무대를 연습하기 심심해서 안무를 바꿔봤나 보다.

“젊으니까 아직 괜찮을 거야.”

“저 안무로 냈으면 젊어도 커버 못 쳤을 듯.”

나이를 먹으면서 생길 수밖에 없는 건강 문제.

“우리라고 안 저랬냐? 데뷔 초때 우리도 몸 안 사리고 췄잖아.”

“그건 그렇지.”

“우리가 도와줄 게 있는 것 같아? 내가 보기엔 손댈 곳이 없어 보이는데.”

어째 도와주겠다고 나서긴 했는데, 도와줄 게 없는 것처럼 잘 한다.

이건 나도 생각한 일인지라 어깨를 으쓱였다.

“선배 노릇 좀 하려는데 후배님들이 도와주질 않네.”

“인지도 부분에서는 우리가 압도적이니까 같이 프로그램을 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나올 거야.”

“그래도 기왕이면 여러 가지 분야에서 도움을 더 주고 싶었거든. 근데 인지도 말고 부족한 게 전혀 안 보여. 우리랑 느낌도 완전 다르고. 진짜 기회만 얻으면 금방 뜨겠어.”

지금 직원들은 후배 그룹인 리멤버를 살리기 위해 바쁘게 회의를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우리 찬스를 쓸 수 있는 게 여러 번 가능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한 번 할 때 뽕을 뽑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구체적 준비와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일이었으니 시간이 걸리는 건 우리가 이해해줘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우리도 후배 그룹과 친해질 시간이 필요했고 말이다.

“비주얼도 되게 잘 어울리는 애들로 잘 모아놨네.”

“응응. 서로 모여 놓으니까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우리는 같이 있으면 되게 튀잖아.”

“그치그치.”

멤버들 모두 특징이 강해서 어울린다고는 말 못한다.

그만큼 개개인의 매력이 크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멤버를 좋아하는 올팬보단 개인팬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단점이 있다.

“근데 무대 위에서 봤던 거랑은 좀 다르긴 하네.”

제키가 연습하는 걸 유심히 지켜보다가 한 마디 했다.

사실 연습실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더 잘할 수밖에 없는 건 맞다.

사람들의 시선이 없으니 긴장도 덜 될 것이고, 익숙한 환경이 몸을 유연하게 만들어주니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연습실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을 무대 위에서 그대로 보여주는 거다.

“저것도 낯가림 때문이라고 하진 않겠지.”

“무대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그런 거겠지. 무대에 적응하게 되면 나아질 거고.”

“저 모습을 무대 위에 그대로 옮기기만 해도 실력이 부족하다고 욕을 먹진 않을 것 같네.”

연습이 끝났는지 노래가 끊어진다.

우리 목소리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혹시 우리 목소리가 컸나?”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애들 이쪽 본다! 숙여!”

후다닥 문 앞을 등지고 돌아선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눈알을 굴리며 상의했다.

‘100퍼 들켰어. 걍 자진납세하자.’

‘후배들 앞인데 선배답게 멋있게 가면 안 되는 거야?’

‘이미 글렀어.’

‘…….’

눈알을 굴리던 우리들은 갑자기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 화들짝 놀랐다.

똑똑똑-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문 앞의 유리 안에 블루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는 멤버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서서 손을 흔들었다.

그나마 내가 후배들이랑 친하니까 얼굴을 먼저 보여주는 게 낫겠다 싶었던 것이다.

“선배님!”

내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들켰다고 해도 일단 시치미를 떼자.

팀워크가 잘 맞는 우리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금방 상황을 파악하고 연기를 시작했다.

“언제 오셨어요, 형.”

“안녕, 하하.”

“근데 저분들은 누구…신지…?”

아직도 등을 돌리고 있는 멤버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우고 말했다.

“오늘 너희들 소개시켜주려고 데려온 사람이야.”

“저희한테 소개 시켜준다고요?”

블루가 멀뚱멀뚱 눈을 뜨고 있다가 뭔가 떠오른 생각이 있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어? 설마…어?”

“예상했나보네. 맞아. 우리 멤버들이야.”

내가 그 말을 하니 그제야 멤버들이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형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오늘 깜짝 방문인데, 잠깐 실례할게요.”

“우와아아악!!!!!”

“뭐, 뭐야?!”

“형형형! 무슨일이야! 으헉!”

연습실 안에서 문 쪽을 지켜보고 있던 리멤버 후배들이 리더인 블루의 비명소리에 후다닥 문 쪽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문 앞에 모여 있는 우리를 확인하고 자기들도 비명을 질렀다.

애들이 진정할 때까지, 우리는 각자 좀 떨어져서 심호흡을 할 시간을 가졌다.

후배들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애들도 적잖이 놀라 있었던 것이다.

소란이 잠잠해질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밥은 먹고 연습하는 거에요?”

“저희가 분식 좀 사왔어요. 먹으면서 연습해요.”

“우와~ 먹을 거!”

“야야. 선배님들한테 인사부터 해야지!”

“헉! 맞다. 서, 선배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가 먹을 걸 사와서 그런지 후배들이 음식 앞에 정신을 못차린다.

그래도 예의는 착실하게 지키려는지 냅다 90도로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해왔다.

“어이구, 별 거 아닌데…. 아무튼 만나서 반가워요. 후배님들.”

몸이 부셔져라 연습을 했으니 배가 고픈 게 당연했다.

더욱이 내가 이미 경험한 바에 따르면 얘네들은 먹을 걸 굉장히 좋아했다.

같이 음식을 먹고 나면 경계심이 많이 풀어질 거다.

“일단 먹을까? 연습하느라 배고플 것 같아서 사왔어.”

“저번에도 피자 사주셨는데, 또 먹을 걸 사다주셨네요. 계속 얻어먹기만 해서 어떡하죠.”

“선배한테 후배가 얻어먹는 건 당연한 거야. 부담스러워하지 마.”

사실 애들이 전체적으로 기운이 없고 시무룩하며 자존감이 낮아 있는 상태였다.

보통의 연습생 아이들은 데뷔만 하면 모든 게 끝난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 데뷔를 노리는 연습생이 많고, 데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자는 데뷔할 가능성이 여자 연습생보다 훨씬 높기는 하다.

하지만 허니 엔터는 호락호락한 소속사가 아니었기에 성별에 무관하게 데뷔 경쟁이 치열했다.

‘그렇게 치열한 데뷔 경쟁을 이겨내고 데뷔를 했는데, 시작부터 완전히 망해버렸으니….’

자신만만해 하고 있는 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니겠나?

하지만 애들이 다시 활동하기 위해서는 떨어진 자존감을 다시 높일 필요가 있었다.

팬들이 바라는 아이돌은 낮은 자존감으로 우울해 하는 사람이 아닌, 우상으로 여길 수 있는 잘 나가는 연예인일 테니 말이다.

“음식 식으면 맛없을 테니까 일단 먹을까?”

“…그럴까요?”

다들 배가 고팠는지 분식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우리 멤버들까지 다 함께 먹어야 했기에 넉넉하게 구매해왔는데,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말라서 많이 먹지 못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이미 경험해봐서 안다.

쟤네들이 1인 1피자를 먹고도 아쉬워했다는 걸 말이다.

나는 떡볶이, 튀김, 김밥 등등을 먹으면서 주도적으로 멤버들과 후배들을 소개시키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리멤버 아이들도 우리들이 도와주기 위해 이곳에 왔음을 알고 있었기에 은연 중 호의가 깔려 있는 상태였다.

“사실 요 앞에서 연습하는 걸 좀 봤거든요.”

“헙!”

“쿨럭!”

“저, 저희가 연습하는 걸 보셨다고요?! 어, 엉망이었을 텐데!”

“뻔히 아는데 겸손할 필요 없어요. 다들 실력 좋더라고요.”

“나이가 어리다고 들어서 더 깜짝 놀랐어요.”

멤버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 애들이 좋아 죽으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막내인 아이스가 떡볶이를 먹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한다.

“어어어? 왜 울어요.”

“떡볶이가 많이 매웠나…?”

막내 아이스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면서도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계속 울었다.

그래도 형이라고 막내가 우니 초원과 영웅이가 옆으로 가서 아이스를 달랬다.

“선배님들께서 저희를 도와주시겠다고 하신 것 때문에 감격해서 이러는 거에요. 절대 기분 나빴다거나 떡볶이가 매워서 우는 거 아니거든요.

“꼭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칭찬을 해주시니까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막 심장이 뛰고,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님!!! 덕분에 용기가 났어요.”

“맞아요. 다들 저희 잘못이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 저희가 부족해서 이런 일이 생긴 게 맞잖아요.”

“근데 선배님들이 도와주겠다고 해주시고, 이렇게 칭찬도 막 해주시니까….”

분식을 먹다가 왜 이런 분위기로 바뀌어버렸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시작은 막내인 아이스라는 거다.

하나 둘 터트린 울음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아이고,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으면….”

애들이 우는 걸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열심히 달랬다.

하지만 원래 달래주면 더 울음이 심해지는 건 국룰 아니겠나?

한바탕 울음소리가 연습실을 맴돌았다.

“이제 좀 진정 되는 거야?”

“네에…. 죄송해요, 형.”

“괜찮아. 다들 진정 됐으면 목 상하지 않게 물 좀 마셔.”

“우동 국물 마셔도 돼요?”

“…당연히 괜찮지. 마셔마셔.”

눈가에 눈물자국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로 우동 국물을 마셔도 되냐고 묻는 게 왜 이렇게 웃긴지 모르겠다.

우는 후배들을 달래주며 멤버들도 후배들에게 점점 마음을 많이 열었는지 표정이 좋았다.

이런 식으로 후배들과 친해지면, 촬영을 시작해도 낯가림 때문에 후배들이 자기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일이 생기진 않을 것 같다.

실패한 데뷔 때문에 생겼던 상처에 딱지가 앉고 새 살이 돋기 시작했으니 남은 건 직원들이 계획을 잘 짜서 촬영 스케줄을 잡는 것이었다.

직원들이 과연 어떤 아이디어를 내올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간이 흘렀고.

마침내 직원들은 우리에게 꽤 큰 프로젝트 기획서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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