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정말 이대로 하신다고요?”
“저희들이 여러 가지 상황을 추측해봤어요. 어떤 식으로 계획을 짜야 에어플레인도 리멤버도 피해 없이 최대한의 홍보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당연히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게 맞기는 하다.
“애들한테 중요한 건 인지도에요. 그리고 얘들이 다음 앨범을 낸다는 제대로 된 홍보가 필요했고요.”
이 직원들은 아무래도 우리 전담팀이 아니다 보니 거리감이 좀 있었다.
얼굴을 아예 처음 보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말을 나눠본 적 있는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때문에 서로 예의를 지키면서 대화를 나눠야 했다.
우리 전담팀과 일을 했으면 좀 더 편하게 그들의 속내를 물어봤을 테지만, 이들은 리멤버 전담팀이었으므로 말을 조심해서 할 필요가 있었다.
‘다크서클 진한 거 보면 야근을 밥 먹듯이 한 것 같긴 한데….’
그녀가 말한 내용이 이번 기획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의견을 모아보니까 어설픈 계획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결론도 내려졌어요. 일단 에어플레인 팬들이 리멤버를 도와주는 걸 곱게 보지 않을 거잖아요? 에어플레인 팬의 숫자가 워낙 큰지라 저희한테는 그조차도 부담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음, 그럴 수 있죠.”
그건 우리들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사실 우리조차도 그 경험을 해본 적 있었다.
데뷔초, 선배님의 인지도와 친분을 이용해 예능에 나가 편하게 촬영을 하고 갔던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혼자 덜렁 보내졌을 때보단 같은 회사 선배님과 함께 출연할 때 주변에서 좀 더 신경 써주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선배님의 팬들은 바보가 아닌지라 ‘끼워팔기’임을 모를 수가 없었다.
해주는 쪽은 무조건적인 손해요, 받는 쪽은 말할 것도 없는 이익을 보는 일이었다.
‘선배님 팬이니까 절대 곱게 안 보이지.’
물론 회사도 엄청 욕을 많이 처먹기는 한다.
하지만 회사는 늘 팬들로부터 온갖 욕을 먹는 포지션인지라 그런 식의 악플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우리는 도움을 주는 입장이 되었다 보니 상대적으로 팬들의 반응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를 옹호하면 옹호했지, 욕할 이유는 없으니까.’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건 한줌 팬밖에 없는 리멤버들이었다.
작은 논란에도 모든 게 날아갈 수 있을 만큼 기초 토대가 연약하니까.
“리멤버 애들은 팬이 없어도 너무 없어요. 작은 논란에도 실드를 쳐줄 사람이 없으니까 계속 당하기만 할 거에요.”
“…….”
“그래서 괜히 어줍잖게 끼워팔기 해서 도움을 받아 다수의 미움을 받을 바에야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는 상태에요.”
“야야…. 너무 과하잖아.”
현타가 많이 와보이는 직원.
그녀의 입이 선을 모르고 달려버리자 옆에 있던 직원이 황급히 그녀를 만류했다.
하지만 이미 본 게 있는지라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상황이 많이 안 좋은가 보네요.”
“두 번째 앨범까지 실패하면 저희들은 전부 잘리겠죠. 벼랑 끝에 있는 건 애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사실 더 위태로운 건 저희들이에요. 걔들은 앞으로 꾸준히 기회를 받아도 저희는 더 이상 기회가 없거든요.”
“하아~ 죄송해요. 얘가 삼일 째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아닙니다.”
“너 물 좀 마셔. 진정해. 여기가 네 감정 털어놓는 곳이 아니잖아.”
동료 직원의 다소 냉정한 충고에 다크서클 진한 직원이 정신이 들었는지 거칠어졌던 숨을 고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미안해.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했어요.”
“괜찮습니다. 계속 회의 진행 하시죠.”
아무래도 리멤버 전담팀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애들은 잘못 없어요. 아직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서 그렇지, 굉장히 매력이 넘치는 아이들이에요. 그걸 이번 기회에 꼭!!! 꼭!!!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 계획대로 하면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 거군요.”
“에어플레인의 능력은 두 번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대단하시잖아요. 물론 저희가 전부를 다 맡기고 방치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서 서포트 해드릴 거고요. 어떤 걸 시키셔도 다 해낼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애들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다크서클 진한 직원이 주먹을 불끈 쥐더니 벌떡 일어나더니 냅다 고개를 숙여버렸다.
“어우,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음, 일단 멤버들이랑 상의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니까요.”
“너, 너무 부담되시나요? 저희가 혹시 몰라서 타협안도 준비를 해놨거든요.”
우리에게서 부정적인 느낌을 받았는지 직원이 갑자기 타협안을 말해왔다.
“타협안이요?”
“저희가 막 그렇게 염치없는 사람들은 아니거든요. 앨범 관련해서는 전부 저희가 준비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최종 결정권자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저희가 애들이랑 만들어 온 결과물을 확인하고 괜찮은지, 애들한테 어울릴지 심사만 해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그런 심사를요?”
“여러분들 실력을 믿고 있습니다. 성공가도를 달리고 계신 분들이니 조언 몇 마디만 해주셔도 애들한테 큰 도움이 될 거에요.”
직원의 말대로 하면 우리한테 크게 부담 되는 일은 아니게 된다.
적어도 앨범 제작 전체를 우리에게 맡기겠다고 했던 것보단 말이다.
‘뮤직비디오 찍는 것도 그렇게 신경 쓸 게 많았는데 앨범 프로듀싱이라니…. 이건 너무 나갔지.’
우리를 정말 등골까지 뽑아 먹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본인들도 욕심이라는 걸 알아서 타협안을 미리 준비해 둔 것일 테고 말이다.
‘우리가 좋다고 했으면 정말 맡겼을 것 같네. 그렇게 본인들 감각에 자신이 없는 건가?’
본인들이 해야 할 일을 왜 우리에게 맡기는가.
결국 실력에 자신감이 없으니 이런 일을 만드는 것 아니겠나?
역시 아까 잠깐 생각했던 리멤버 전담팀에 문제가 있다는 게 확실해보였다.
‘일단 대외적으로 권한을 우리에게 넘겨놓고 자기들이 일을 열심히 해서 어떻게든 커버를 쳐보려는 거겠지? 그건 결국 내부에 트롤이 있다는 뜻이고.’
제키라면 이 프로듀싱 제안에 흥미를 보였을 것 같다.
나는 고개를 돌려 제키를 바라봤다.
아니나 다를까, 기획서를 아직도 꽤 진지하게 읽고 있었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너무 부담을 갖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편하게 의견 나눠보시고, 부담 된다는 생각이 들면 편하게 거절해주세요. 저희가 이거 말고 다르계획도 많이 준비해놨거든요. 애초에 이 계획은 여러분들이 억지로 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일이 아닙니다. 도움을 주시는 건데 괜히 기분 상하시면 안 되잖아요.”
직원은 끝까지 우리에게 저자세를 유지하며 말을 했다.
리멤버 애들을 어떻게든 살려보겠다는 의지로 보였기에 우리도 덩달아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예! 말씀하세요.”
내가 질문을 하겠다고 하니 직원이 냉큼 대답한다.
“전담팀에 문제가 있는 건가요?”
“!!!”
“!!!”
직원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내가 너무 정곡을 찌른 모양이다.
“역시 그런 거군요. 저희한테 권한을 넘기려고 애쓰시는 것 같았거든요. 저희 실력을 믿는다기보단 어떻게든 권한자를 넘겨서 트롤링을 막아 보려는 느낌이랄까요?”
멤버들은 그런 일이 있었어?! 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직원들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끄덕여왔다.
“다른 직원들이 멤버들 중에 해솔씨가 제일 무섭다고 할 때 왜 그럴까 궁금했는데 이젠 알겠네요. 티를 안 내려고 노력했는데….”
“네가 너무 티를 냈잖아! 어휴, 이 화상! 해솔씨, 이거 최대한 숨겨주시면 안 될까요?”
“도대체 누구인데 이러는 거에요?”
말단 직원이 건드릴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인가?
직원이 머뭇거리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사장님 친척분이세요.”
“아~!”
그 말에 이 상황이 완전히 이해가 됐다.
대표직을 연주 누님에게 넘겼다고 해도 여전히 회사에 대한 지분을 가장 많이 갖고 있기에 그쪽 인사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사장님과 다이렉트로 연락이 가능한 연주 누님 빼고.
“그 사람이 정확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에요?”
쿵!
다크서클 진한 직원이 내 말에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녀는 맹렬히 분노하고 있는 중이었다.
“실력이나 안목이나 개뿔 없는 주제에 거들먹거리는 건 예사요, 인맥질로 뭔 되도 않는 작곡가 곡을 구매해서 애들한테 부르게 하라질 않나!!”
“대표님도 아시나요?”
“…대표님이 어디 회사에 모를 일이 있겠습니까.”
문제는 그래도 당장 처리를 하지 못하는 인사라는 거다.
“명분이 없으니까?”
“네에….”
“흠, 알겠습니다. 이번 일은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우리 실력이 필요해서 기획한 일이 아니라 그저 에어플레인이라는 이름의 방패막이가 필요할 뿐이라면.
못 해줄 것 없는 일이 아닌가?
물론 멤버들과 진지하게 상의를 해보기는 해야 할 것이다.
‘허니 엔터도 사람들이 사는 회사긴 하구나.’
능력자들만 모여서 우리를 보조해주던 전담팀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리멤버 전담팀과의 회의가 끝났다.
♧ ♧ ♧
흔히 있는 끼워팔기도 아니고, 애들 앨범 프로듀싱이라니! 라며 뒤늦은 뒷북을 치는 멤버는 없었다.
회의실에서 어떻게 돌아가는 판인지 모두 들었고, 리멤버 애들이 가운데 끼여져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있음을 알게 된 상태였다.
“좀 소름 돋네.”
“우리 누나들한테 선물이나 좀 돌릴까요?”
우연이가 말하는 ‘누나’는 우리 전담팀을 말하는 거다.
멤버들 중에 반대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전담팀이 제대로 일을 안 해줬을 때 생기는 폐해를 간접적으로 경험했으니 말이다.
“리멤버 애들이랑 많이 친해졌는데 안타깝네. 해결 방법이 없으니.”
“맞아. 그 사람이 계속 전담팀에 있으면 결국 문제는 해결 된 게 아니지.”
“우리는 결국 임시방편인 건가?”
“그래서 다들 어떻게 생각해? 이거 받아 말아?”
“저쪽에서 컨셉 같은 건 전부 알아서 정해오고, 곡도 알아서 구해오겠다고 했으니까 받아들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우연이는 어떻게든 애들을 도와주고 싶었는지 찬성하는 쪽이었다.
“우리는 평가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야, 심사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우연이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는 사람은 경태 형이었다.
그는 서바이벌 아이돌 프로그램에 나가 심사를 봤는데, 의외의 말을 했다.
심사가 결코 쉬운 게 아니라면서 말이다.
“심사하는 거 힘들었어?”
“응. 엄청 힘들었어. 몸이 힘들다는 건 아니고, 감정을 좀 많이 갉아먹어.”
“뭐야, 뭔 일이 있었던 겨?”
“기왕 말 나온 김에 털어놔봐.”
서로의 정신 건강을 챙겨주는 건 멤버들 모두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내가 별 생각없이 한 말을 걔네들은 평생 가슴에 얹고 살아가더라고. 우리가 악플 때문에 힘들었잖아. 심사도 그거랑 다를 바가 없어. 별 생각 없이 한 말에 걔네들 인생이 달라져.”
경태 형이 털어놓은 얘기는 방송에 나가지 않은 비하인드였다.
“나는 좀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에서 좀 독하게 말한 거였거든. 나름 재능이 있어보여서 노력을 하면 정말 잘 할 것 같았어. 그런데 내가 몇 마디 했다고 걔는 프로그램에서 바로 하차를 해버리더라. 내가 그땐 뭘 몰라서 말의 무게를 생각 못했던 거야.”
엔터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엄하고 독한 건 쉬쉬하는 사실이다.
우리라고 엄하게 교육을 받지 않은 건 아니다.
허니 엔터이기에 더 독하게 교욱 받았다.
“그건 걔 의지가 박약했던 것 같은데.”
“맞아, 형이 말했던 것처럼 재능이 있는데 노력을 안 하는 사람이었다며. 형이 한 말 때문에 하차한 게 아니라 그냥 형이 도망칠 구멍을 만들어주니까 그걸 핑계로 도망을 친 거지.”
애들이 하는 말이 경태 형을 달래줬는지 창백해졌던 안색이 펴졌다.
“정말 그런 걸까?”
귀가 얇아서 남이 하는 말에 은근히 잘 넘어가는 사람이 경태 형이었다.